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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사 100년 비화 · 1

단성사! 기생들의 무대에서 서편제 신화까지

  • 박은경 < 자유기고가 >

단성사! 기생들의 무대에서 서편제 신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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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안이 인파로 미어터질 지경이 되면 다른 사람 어깨 위에 걸터앉아 구경하는 관객도 있었다. 영화배우 최무룡이 미성으로 ‘꿈은 사라지고~’를 뽑으면 아가씨 아줌마들은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그가 지방공연에 나서면 “여공들이 극장으로 몰려가는 통에 가발공장 문닫아야 할 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 만큼 인기가 높았다.

극장쇼가 끝나면 주인을 잃고 극장 앞에 내동댕이쳐진 고무신만 한 트럭이 나왔다. 미처 신발을 챙기지 못하고 인파에 떠밀려 극장을 나선 사람들이 다음날이면 고무신을 찾느라 극장 앞은 또다시 북새통이 됐다.

어려운 집에선 고무신 한 켤레 사 신기도 쉽지 않던 시절이라 군데군데 실로 꿰맨 고무신일망정 그냥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편 6·25전쟁 때 입은 부상으로 불구가 된 ‘상이군인’이 마땅한 일거리를 찾을 수 없자 ‘사람’과 ‘돈’을 따라 극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극장마다 이들의 행패로 몸살을 앓았지만 단성사는 상이군인조합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해 소동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극장쇼의 쇠퇴와 함께 상이군인들의 행패도 조용히 사라졌다. 70년대 초 텔레비전이 보급되고 극장식 맥주홀이 생겨나면서 맥주홀과 텔레비전에 연예인을 빼앗긴 극장쇼는 시들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즈음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를 앞세운 외국영화가 흑백영화인 국산영화를 밀어내고 있었다. 덩달아 극장쇼 관객의 주류를 이루던 아줌마, 아저씨도 남녀 젊은층이 눈치를 보며 극장에서 빠져나갔다. 대신 까까머리 남학생들이 ‘할리우드키드’를 꿈꾸며 극장으로 대거 몰려든 때도 60~70년대다.

이때는 극장에 다니는 삼촌이나 형을 둔 학생이 학교에서 왕 대접을 받았다. 직원 ‘백’이 있는 친구 따라 혹시 공짜 관람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자랑스레 할인권을 흔드는 친구에 묻어 극장에 따라갈 수 없을까 요행을 바라는 아이들이 주변에 몰렸기 때문이다.

극장 말단직원들은 포스터를 붙이러 나가면서 할인권을 ‘삥땅’했다. 당시 젊은이들이 많이 드나드는 빵집이나 맥주집 입구에 포스터를 붙이려면 가게 주인에게 잘 보여야 했는데 그때 극장측에서 ‘뇌물’로 내준 것이 영화할인권이었다. 가게 한 곳당 서너 장씩 할당받은 할인권 한 장을 몰래 빼내 만두집에 가면 주인은 찐빵과 만두를 공짜로 듬뿍 주었다.

한편 영화상영 도중 필름이 끊기거나 정전 소동이 벌어져도 지금처럼 환불해 달라며 아우성치지는 않았다. 대신 관객들은 막간을 이용해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동행과 수다를 떨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금일 개봉! 손수건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개봉 첫날 극장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던 것도 60~70년대다. 지금처럼 홍보수단이 발달하지 못해 영화제작사 직원들이 직접 발품을 팔며 홍보맨으로 뛰어야 했다.

호객행위를 하던 직원들이 가장 꺼리는 사람은 개봉 첫날 맨 처음 표를 사는 여자다. ‘여자가 첫 손님으로 들면 재수 옴 붙어서 망한다’는 징크스가 강하게 신봉되던 시절, 저만치 여자가 극장을 향해 걸어오면 제작사 남자직원이 재빨리 매표소로 뛰어가 돈을 내고 표를 샀다.

노란색으로 영화제목을 쓰지 않는 사연

흥행성공 여부는 극장이나 제작사 양쪽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이다. 따라서 극장과 제작사 관계자들 사이에 영화흥행과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특유의 ‘징크스’와 ‘속설’이 많다. ‘부정탄다’는 이유로 개봉을 앞둔 영화감독은 물론이고 출연배우를 비롯해 전 스태프가 영화개봉 첫날까지 며칠씩 면도나 세수를 거른 적도 있다.

영화 개봉과 종영을 ‘간판을 올린다’ ‘간판을 내린다’고 표현할 만큼 극장간판은 흥행성공 여부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때문에 극장간판미술가들 사이에 지금까지 지켜지는 금기사항이 있다. 영화제목을 쓸 때 절대 노란색은 쓰지 않는다. 누렇게 떠서 흥행이 ‘황’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간판을 뉘어서 타넘지 않고, 간판 달기 전날은 부부관계를 하지 않는다. 이날은 술을 먹어도 ‘작부’나 ‘아가씨’가 있는 집에 발걸음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혹시 부정 탈까 꺼리는 이유에서다.

한편 80년대 초반 영화계는 ‘대종상 수상작이 흥행에 실패한다’는 속설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만다라’가 단성사에서 개봉돼 1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롱런을 기록했다. 여우주연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한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는 연일 전회가 매진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서울 장안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아리랑’ 상영,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유성영화) ‘춘향전’ 제작·상영, 한국 최초의 영화(무성영화) ‘의리적 구토’ 제작·상영 등 지난 한 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숱한 한국영화사를 써온 단성사는 또 다른 도약을 준비중이다. 오는 2003년 11개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 ‘시네시티 단성사’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그러나 까까머리 시절 학교 수업을 ‘땡땡이’치고 단성사 주변을 기웃거리던 중년들 마음 한구석은 어쩐지 허전할 것만 같다.

신동아 200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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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 자유기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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