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남북정상회담 1주년 특별기고

미국의 한반도정책, 우리 손에 달려 있다

  • 최장집 < 고려대 교수· 아세아문제연구소장 >

미국의 한반도정책, 우리 손에 달려 있다

3/5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란트 정부는 동방정책을 일관되고 착실하게 추진하여, 밖으로는 닉슨 정부가 유럽에서 데탕트를 추구할 수 있는 한 축(軸)을 만들고, 안으로는 1982년 이후 헬무트 콜 기민당정부가 이를 계승하도록 하여 독일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한국과 독일이 아시아와 유럽에서 각각 냉전의 최전방으로서 분단과 미군정을 경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데탕트와 탈냉전의 타이밍에 차이가 있는 것은 자율 공간을 활용하여 기회를 창출하는 지도자들의 능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민들의 공감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서독과 미국, 한국과 미국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자율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차이다. 그것이 마치 동맹의 해체로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3월 한미정상회담 과정에 미국의 신정부 고위인사들이 한미간 동맹관계에 어떤 차이 내지는 틈새라도 생긴 듯 불쾌함을 나타낸 것은, 한국도 일정한 자율 공간을 활용하면서 대북정책 주도권을 가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혹은 일정한 외교적 자율공간을 확보한 한국이 자신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미사일방어체제를 무조건 지지하지 않고 유보적 태도를 보인 데 대한 그들의 유쾌하지 않은 심리적 상태의 표현임과 동시에, 한국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길들이기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거친 한국대통령 다루기’를 국내의 일부 냉전보수파들이 지지한 것은 자국(自國)부정적 심리상태가 아닐 수 없다.

탈냉전으로 바뀐다는 구조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지난 한미정상회담이 다수 여론과는 달리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통해 대북 평화공존, 화해협력정책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의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그의 보수강경파 막료들과의 대면에서 난관에 직면했다. 그러나 미국의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볼티모어 선’ ‘월스트리트 저널’ 그리고 짐 호그란드, 돈 오버도프와 같은 베테랑 기자 등 주요 언론과 언론인들, 기업인들을 포함하는 비정부적 차원에서는 적지 않게 한국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들의 지지는 남북관계에서 탈냉전으로의 변화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햇볕정책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유럽과 캐나다 등 세계 여러 국가들이 부시 정부의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한국정부의 대북평화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대북평화정책이 시대변화를 대변하는 하나의 보편적인 정책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요컨대 1차 남북정상회담 성과와 이후 한반도에서 탈냉전 진전 정도는 유럽의 냉전해체에 발맞추어 아시아냉전해체를 뒤늦게 촉발하면서 세계적 수준에서 탈냉전과정을 바꾸기 힘든 것으로 만들었다는 구조적 변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냉전적 발상을 갖는 부시 정부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이 추진하는 미국의 패권적 팽창정책은, 탈냉전과 평화질서의 발전이라는 구조적 변화와 조응하기 어렵다. 물론 냉전적 요소가 국지적으로 존립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것은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변화된 상황과 2차 남북정상회담

1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답방을 제일의 의제로 올려놓았다. 답방이라는 말은 1차 정상회담의 성공을 표현하는 말로, 내외적 조건의 연속성을 전제로 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답방은 1차 회담의 합의내용을 다지고, 그 바탕에서 한반도 탈냉전을 가속화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미국 공화당정부의 수립 이후 석 달 동안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이제 한반도의 탈냉전 과정은 커다란 재조정기를 맞게 된 것이다. 설사 탈냉전 과정이 다시 진행된다 하더라도 과거 클린턴정부와는 크든 작든 차이를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는 과거와 같이 미국으로부터 포용정책을 지원받기 어려운 환경에서 남한의 ‘햇볕정책’과 북한의 ‘제한적 개방정책’이 상호 대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 협력 분위기가 일정하게 냉각된 상황에서 남북한은 1차 회담의 합의내용을 지키고, 나아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탈냉전을 실현하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부시 정부는 집권 초 수개월 동안 한반도의 탈냉전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북한을 ‘불량국가’, 미사일방어망 구축의 주요 타깃으로 규정하면서 대북 강경정책을 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정할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의 전세계적 수준의 방위전략 수정이라는 차원, 둘째는 지역적 수준인 대(對)한반도 정책변화라는 차원, 셋째는 국내적 수준으로서 이에 대한 남북한간의 대응으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패권 확대정책을 추구하고 미사일방어망을 지속적으로 구축할 것이냐 아니면 국내외적 반대에 직면하여 포기할 것이냐가 첫 번째 차원의 문제다. 두 번째 차원은 강경정책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U턴하여 다시 포용정책을 수용할 것이냐의 문제다. 그리고 마지막 차원은 남한과 북한의 냉전보수파들이 냉전 상황을 만들어 내부상황을 보수화하고 사태를 뒤집을 것이냐 아니면 냉전 후의 화해협력, 평화공존세력들이 우세해질 것이냐의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드러나는 것은 NMD, TMD 같은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중심으로 한 미국 방위전략의 전면적 방향전환과 대북강경정책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동일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꾸어 말하면 부시의 신방위전략 아래서도 동아시아에서 남북한평화공존관계 발전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남북한 정치지도자들의 노력에 따라서는 남북한관계의 자율적 공간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첫 번째의 전체 방위전략적 수준보다는 두 번째의 대한반도정책 수준에 있어서 남북한의 정책방향과 남북한 각각의 국내적 조건이 미국의 정책을 바꾸는 데 더 큰 효과를 가질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정책이 한반도정책을 규정하기보다는 국내 조건이 그 향방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즉 인과관계는 역(逆)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 화해협력, 평화공존 공감대를 이루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3/5
최장집 < 고려대 교수· 아세아문제연구소장 >
목록 닫기

미국의 한반도정책, 우리 손에 달려 있다

댓글 창 닫기

2023/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