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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암 환자가 된다는 것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한국에서 암 환자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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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이 얼마나 의사의 ‘설명’에 목말라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서울 공덕동의 한 오피스텔에 있는 암환자모임에는 하루에도 십수 명의 보호자가 전화를 걸거나 찾아와 “의사 선생님이 하신 그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한다. 뭔가를 듣기는 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교적 친근한 동네 병원에 차트를 들고 가 해석을 부탁하는 이도 있다. 경기도 광명시의 한 개업의는 “지난 1년간 내가 차트를 봐주거나 상담해준 암환자만 족히 100명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도 종합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해 암병동 의사들이 얼마나 바쁜지 잘 압니다. 그래도 좀 너무하지 않나 싶어요. 혹시 친절하게 대해줬다 계속 귀찮게 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사실 암환자의 경우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긴 하지요. (의사로서는) 방어적이 되기 쉬워요.”

진료기록을 달라거나 진료비 내역을 알려달라는 요구는 거의 하지 못한다. “지금 맞는 항암제 이름이 뭐고 특장점은 뭐냐”는 질문을 던졌다가 “말해주면 아느냐”는 핀잔을 들었다는 대학 강사도 있다.

직장에 암이 생겨 11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은 정미영씨(37). 수술 전 종양 크기를 줄이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한 달간 고통스런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방사선을 쬔 부위가 헐고 뭉그러져 그것을 치료하는 데만 다시 한 달이 걸렸다. 정씨는 “방사선이 무서운 건 여자의 경우 아이를 낳을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사전에 말해주는 의료진은 없다. 모든 것은 피를 토하는 경험을 통해서만 알게 될 뿐”이라고 말했다. 정씨가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것은 수술 부위를 좁혀 항문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씨는 결국 영구 장루(인공항문) 보유자가 됐다.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고액의 방사선 치료는 결국 받지 않아도 됐을 것이었다.



원자력병원 류백렬 과장도 “의사에게 따지는 환자가 되라”고 당부한다.

“무관심한 보호자보다 ‘피곤한’ 보호자가 훨씬 낫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야지요. 의사에게 되도록 많은 정보를 들어 환자나 가족 스스로가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반대로 의사에게는 여러 가능성과 예상되는 결과를 충분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암은 특히 설명이 많이 필요한 병입니다.”

그러나 류과장도 “우리 의료 현실이 환자 개개인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을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갔다. 류과장 자신도 30명 가까운 암환자의 주치의를 맡고 있는 데다 외래 진료, 과제연구 등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결국 근본원인은 기형적인 의료체계라는 지적이다.

암환자 등치는 사기꾼들

막상 수술을 하고 난 다음, 혹은 수술조차 못할 상태임을 알게 되면 환자와 가족들은 ‘제3의 길’을 찾아 헤매게 된다. 병원 치료로 암 퇴치 혹은 생명 연장에 성공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지만 확률은 아직 높지 않은 편. 특히 3개월, 6개월, 1년 등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암 환자 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병원 치료로는 안 된다는 걸 분명히 아니까요. 그렇다고 멀쩡히 살아있는데 손놓고 죽을 날만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위암 말기인 누나(36) 때문에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김재형씨. 야채스프부터 느릅나무 달인 물, 키토산, 상황버섯, 숯, 녹즙, 알로에까지. 그가 ‘미음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누나에게 정성껏 구해 대령하는 ‘항암식품’ 목록은 오늘도 늘어만 간다.

‘한국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임’의 인터넷홈페이지(www.A-M.or.kr) 게시판에는 기적의 치료법을 찾아 헤매는 환자와 가족의 사연이 수없이 올라와 있다. 각종 대체요법이나 약재, 식품, 병원, 의사에 대한 정보 교환이 주목적. 막막한 심경을 털어놓은 글에는 환우(患友)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이어진다.

휘문고 3학년생이라고 밝힌 장재호군의 ‘착한 우리 엄마’라는 글에는 홀어머니에 대한 염려와 사랑, 암 앞에서 당황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소년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얼마 전에 엄마가 위절제 수술을 하셨어요. 무엇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까요? 어떤 말씀이라도 좋으니 해주세요. 병원에서 육류를 많이 먹으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인터넷에선 절대 금하라고 해서 고기는 드시지 못하게 하는데. 잘 하는 걸까요? 혹시라도 제가 잘 알지도 못하구 오히려 엄마한테 잘못하는 게 아닌지 걱정돼요. …형이랑 저랑 엄마랑 세 식구가 사는데 엄마가 갑자기 아프시니까 너무 두렵네요. 누구는 쑥뜸이 좋다고 하는데, 혹시 잘 아시는 분 있으세요? 또 어디선 면역을 높여준다고 AHCC라는 일본 제품이 좋다구 해서 오늘 택배로 왔는데. …가정형편은 안돼도 엄마만 살면 되니까 사기 당하는 건 상관없지만…. 엄마가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어느 분이든 평생에 걸쳐서 갚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더 기막힌 건 이렇듯 혼란과 불안에 떠는 말기암 환자나 가족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말기암 환자 집에 전화를 걸어 “이 약 한 첩이면” 혹은 “이 치료 한 달이면” 어떤 암이라도 씻은 듯이 낫는다며 환자의 생명과 가족의 사랑을 담보로 금품을 갈취한다. 3기 말이라는 한 위암 환자는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어떤 사람은 정말 죽이고 싶더라”며 강한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치료법을 찾아 일본, 중국 등 외국의 용하다는 의사나 의료기관을 찾아 나서는 환자도 있다.

두 아들을 둔 주부 김미선씨(37)는 97년 5월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엉덩이 전체가 떨어져나가는 듯한 통증 속에서 수술을 받았고 다시 세 차례의 항암 치료를 견뎌냈다. 98년 1월,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중의원(中醫院)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씨는 시아버지의 적극적인 독려를 받으며 현지로 날아갔다. 잠깐 진찰을 받은 후 산 두 달치 약 값은 750여 만원. 어마어마한 돈이었지만 ‘혹 나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김씨도 가족들도 아까운 줄 몰랐다. 99년 7월, 김씨의 암은 결국 재발했다.

“그때 이미 암세포가 골반뼈까지 전이돼 있었대요. 당사자인 저만 몰랐던 거죠. 남편은 그래도 그 약 때문에 재발이 좀 늦게 나타난 것 같다며 자위를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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