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별기획|세계의 ‘살기 좋은 도시’를 가다 ②

현관만 나서도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곳

이탈리아 나폴리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현관만 나서도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곳

2/3
나폴리 도심이 호텔과 관공서, 은행과 상가 등으로 구성된 반면, 주택가는 도심에서 10분 정도 벗어난 외곽에 배치돼 있다. 나폴리와는 지하철로 연결되는 소카보, 방롤리, 포초리 등 위성도시들도 잘 발달돼 있는데 이들 위성도시들은 풍부한 녹지로 둘러 싸여 쾌적한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다.

나폴리라는 도시이름은 그리스의 식민도시 ‘네아폴리스(Neapolis)’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를 피해온 주민들이 건설한 도시라는 설도 있다. 고대 로마시대에도 번영하던 도시로 그 당시 닦은 기본적인 가로망은 현재도 시 중심지에 그대로 남아 있다. 2000년 전에 닦은 길 위로 자동차와 사람이 오가고 있다는 얘기다. 포장한 지 수세기가 넘은 중심가는 돌을 촘촘히 박는 방식으로 포장을 했는데 이 때문인지 달리는 차량 수에 비해 시끄럽게 느껴진다.

늘 사람을 들뜨게 하는 기후, 비옥한 토지 등 천혜의 자연조건 탓에 역사적으로 나폴리는 언제나 주변 강자들로부터 침략의 대상이 됐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로마제국의 몰락 이후 나폴리의 통치자는 수시로 바뀌었다. 그러나 나폴리는 통치자의 변경을 역사의 비극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통치자들의 문화를 고스란히 흡수해 나폴리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열심이었다. 이 작은 도시국가를 지배했던 이민족 왕들은 지금도 플레비시트 광장에 자리잡은 왕궁 벽면에 조각상으로 남아 나폴리를 찾는 관광객들을 굽어보고 있다.

18세기 말 부르봉 왕조 지배를 받던 나폴리는 인구 40만을 헤아리는 이탈리아반도 최대 도시로 부상하기도 했다. 1861년 가리발디 장군에게 정복되어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스페인 프랑스 등 주변국의 나폴리 점령은 이곳 사람들의 모습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유럽의 도시답지 않게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많아 가끔은 한국의 어느 지방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수도 로마와는 기차로 두 시간 거리에 불과하지만 나폴리 사람들의 기질은 로마 사람들과 확연히 다르다. 나폴리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배우 소피아 로렌이다. 나폴리는 소피아 로렌의 어머니 고향이며 소피아 로렌 역시 나폴리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나폴리 시내를 오가는 여자들은 어딘가 모르게 소피아 로렌을 닮은 듯하다.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폴리 여자들은 ‘생활력이 강하며 정이 깊다’는 평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와 닮아 보이는 나폴리 사람들의 진면목은 시내를 잠깐만 돌아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주택가 베란다마다 널려 있는 하얀 빨래는 이 도시를 처음 찾는 사람들의 긴장감을 단숨에 풀어준다. 늦은 오후, 햇살 따가운 플레비시트 광장 한켠에서는 어머니인 듯한 중년 여성이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아이를 큰소리로 꾸짖고 있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딴청을 피우는 아이의 모습에서 사는 모습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나폴리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나폴리 청소년 점령한 일본 만화영화

이곳 청소년들은 무척 자유로워 보였다. 방과 후 아이들은 플레비시트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한켠에 수십명의 아이들이 몰려 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다가가 보니 동남아계 행상 소년이 파는 일본만화영화 사진을 구경하고 있었다. 즉석에서 사진을 사고 파는 모습도 보였는데 그 흥정하는 모습이 너무나 진지해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탈리아의 동심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좌우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민영TV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본 만화영화를 보여준다. 일본풍이 전혀 걸러지지 않은 채로 공중파를 타고 있어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다. 이 만화영화에 나폴리 청소년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나폴리 시민들은 언뜻 보기에 무질서하다. 횡단보도가 있거나 말거나, 붉은 신호등이 켜져 있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찻길을 건너는 이곳 사람들의 행동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을 따라 몇 번 무단횡단을 하다 보면 신호에 관계없이 철저하게 보행자를 보호하는 이곳 운전자들의 보이지 않는 질서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는 유난히 소형차와 경차가 많다. 심지어 장난감 같은 2인용 일본제 초미니카도 곧잘 눈에 띄는데 이탈리아는 국가 차원에서 경차를 장려하는 나라다. 이 나라에서 중형차 가격은 대단히 비싸다. 배기량 1500cc급 이상의 자동차도 우리 나라와 비교해 30% 정도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나폴리 거리를 누비는 차량 행렬을 보노라면 10대에 1대꼴로 한국차를 볼 수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국가경제의 골치 거리인 대우자동차가 이탈리아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국가의 위신을 드높이고 있었다. 대우의 마티즈나 라노스 등은 대단히 인기 있는 자동차였다. 한번은 도심에서 시끄러운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가 지나가기에 유심히 봤더니 대우 마티즈였다.

중앙역 안내데스크에 근무하는 시청 공무원은 “나폴리의 자랑거리가 뭐냐”는 질문에 “지금 서있는 이곳과 쾌적한 공기”라고 말했다. 도심을 중심으로 자동차소음과 매연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에 그는 “다 좋을 수는 없지만 다른 이탈리아 도시에 비해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나폴리 물가는 로마보다는 싼 편이다. 특히 음식값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우리 돈으로 5000원 정도면 성인 두 사람이 배불리 먹을 정도의 피자 한 판을 살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 보면 야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물값’은 비싸다. 어느 음식점을 가도 음식값 외에 별도로 물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1만원어치의 식사를 할 경우 별도의 물값 3000원을 낼 각오를 해야 한다.

2/3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목록 닫기

현관만 나서도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곳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