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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신건 국가정보원장

솜같은 분위기, 칼같은 기질

  • 이수형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 sooh@donga.com

솜같은 분위기, 칼같은 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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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아주 묘한 표현이었다. ‘천천히, 사실대로 다 밝혀진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지만 이 말을 듣는 기자들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소문을 사실로 확인해주는 것처럼 들렸다. 이 말에 ‘힘’을 얻은 기자들은 신차관 등이 연루됐다는 소문을 사실로 간주하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그해 9월 슬롯머신사건 수사가 마무리되고 재판이 지루하게 진행되던 무렵 한 일간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꽤 비중 있게 실렸다.

“유력 정치인 검찰 안기부 간부 등 고위공직자가 대거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큰 파문을 일으켰던 슬롯머신 비리사건의 1심 재판이 종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일부 관련자들에 대한 1심 재판은 이미 끝나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으나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진(53) 덕일씨(45) 형제와 이들의 비호세력으로 지목된 박철언 의원(51) 이건개 전대전고검장(52) 등 주요 관련자들의 1심 공판은 갈수록 유무죄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박철언 의원의 경우 지금까지 다섯차례의 공판이 열려 정씨 형제 등 모두 7명의 증인이 출석했다.…(중략)



한편 이 사건 수사과정에 정덕진씨와의 관계로 곤욕을 치른 신건 전법무차관은 당시 검찰 조사결과 아무런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신 전차관는 정씨에게서 17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제공받았다는 소문에 대해 검찰이 조사했다는 일부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억울한 피해를 보았다. 당시 검찰 수사결과 이 부분은 전혀 근거 없는 헛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어쨌든 신차관에게는 슬롯머신사건이 검사로서의 생명을 끊은 치명타가 됐다.

신원장의 시련은 그가 바라고 기여한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이어졌다.

신원장은 슬롯머신 사건에서 ‘누명’을 쓰고 퇴직한 직후 미국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로 떠났다가 94년 귀국해 그해 12월 후배 변호사들과 함께 법무법인을 설립했다. 그 후 3년 가까이 야인생활을 하다 97년 10월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에 입당해 김대중 총재의 법률특보를 맡았다.

그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당시 정확한 정보수집과 상황판단으로 안기부 등의 북풍 공작을 차단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원장은 김대중 총재가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분과위원으로 일했고 이듬해 3월 국민의 정부가 정식 출범하면서 안기부 1차장(현 국정원 2차장)에 임명됐다.

시련 끝에 국정원장에

정권 교체 뒤 첫 조각에서 그는 법무부 장관에 사실상 내정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차관 시절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불명예퇴진한 그는 법무부에 복귀해 공식적으로 명예를 회복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막판에 박상천(朴相千) 당시 국민회의 원내총무에게 자리를 내줬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슬롯머신사건의 ‘악령’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새 정부 출범 직전인 98년 2월19일 공직에 임명된 부패사건 관련자 104여 명의 명단을 발표하면서 신원장의 이름을 끼워 넣은 것이 화근이 됐다.

당시 참여연대는 ‘새 정부 공직에 취임해서는 안 될 인물 104명’을 선정,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이 명단에는 신원장도 올라 있었다. 슬롯머신사건에 연루됐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검증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이 자료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전달됐다.

신원장은 명단 발표 당일 심야에 참여연대 사무처장인 박원순 변호사를 박변호사의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당시 신원장은 박변호사에게 다음과 같이 따졌다.

“당신들이 권력에 핍박받아온 나를 다시 핍박할 수 있소. 내가 어느 자리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주시오. 나는 검사 생활을 하면서 국가를 위해 한 달 동안 꼼짝도 안 해본 사람입니다. 이제 내 명예와 내 인생을 위해 이 자리에서 한 달간 꼼짝도 안 할 수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다음날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잘못을 인정하고 이례적으로 ‘정정보도’까지 해줬다.

신원장은 법무부장관으로 가지 못하고 안기부(국정원) 차장에 임명됐다. 99년 6월 국정원 차장에서 물러난 그는 다시 변호사 사무실로 돌아갔다.

야인으로 돌아간 그에게는 또 다른 누명이 씌워졌다. 99년 5월 불거진 김태정(金泰政)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延貞姬)씨 등의 ‘옷로비’ 의혹 사건이 한겨레신문을 통해 처음 보도됐는데 신원장이 관련 첩보를 흘렸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이것은 물론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이었지만, 그 소문은 그해 말 옷로비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와 사직동팀 최종 보고서 유출 등이 완전히 해명될 때까지 1년 넘게 신원장 주변을 맴돌았다.

또 지난해 말 ‘진승현 게이트’ 사건조사 과정에서는 한나라당의 ‘권력형 비리진상조사특위’가 신원장이 배후일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했다. 신원장은 강력히 항의했고 한나라당은 한 달 후인 그해 12월 이례적으로 “조사 결과 신 전차장은 무관한 것으로 밝혀져 이를 정정한다”고 공식 사과했다.

우여곡절 끝에 신원장은 지난 3월 제25대 국정원장에 임명됐다.

신원장 체제의 국정원에 대해선 기대가 많은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내년 대선 등을 앞두고 국정원에 쏠리는 의혹의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워질 것이다. 또 대북정책 이념논쟁도 골칫거리다.

근본적인 문제는 국정원이 정권의 국정원이냐, 아니면 국가와 국민의 국정원이냐 하는 문제다. 신원장을 잘 아는 법조계 인사들은 신원장이 남다른 지휘력과 조직 장악력, 통솔력으로 ‘국민의 정부’ 후반기에 중요한 일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신원장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즉 그가 ‘정권’에 대한 충성자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어려운 시험에 놓여 있는 것이다.

신동아 200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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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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