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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철환 한국은행 총재

“한국경제, 불투명하지만 더 나빠지진 않는다”

  • 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hwang@donga.com

“한국경제, 불투명하지만 더 나빠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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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은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 가끔 나옵니다. 한은이 법률상 주어진 권한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이죠. FRB와 비교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한은은 한은법에 물가안정이라는 단일 목표로 통화신용정책만 책임지는 정책기관으로 돼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은행 감독기능이 분리되면서 한은은 정책수행 과정이나 결과가 쉽게 눈에 띄는 인허가 및 감독관련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됐습니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긴박한 과제로 대두됐고 소관부처인 금감위와 재경부가 이러한 구조조정을 주도함에 따라 한은이 하는 일들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습니다.

한은이 제 기능을 다 했느냐는 평가는 그간의 거시경제 운영 성적표와 연결지어 이뤄져야 합니다. 1999년 이후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거시경제 면에서 물가안정과 견실한 성장, 경상수지 흑자, 외환보유고 확충 등 비교적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국민경제가 이처럼 안정적인 성장을 달성하는 데 한은이 크게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한은은 기업·금융 구조조정 추진과정에 금융시장 불안이 초래되지 않도록 유동성을 신축적으로 공급했습니다. 신용경색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총액한도 대출을 1997년 말 4조6000억 원에서 지금은 9조6000억 원으로 확대했습니다.

한은과는 대조적으로 FRB는 강력한 감독·검사권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중앙은행의 중립성과 경제의 안정성장을 뒷받침하는 통화신용정책을 잘 수립한 전통 때문에 국민의 신뢰가 두터워요. 독립된 중앙은행의 위상에 걸맞게 통화신용정책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관행을 확립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정부가 발행한 국고채를 직접 인수하라고 요구받자 실세금리로 시장에서 발행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영리법인에 대한 직접 출연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현행 한은법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기에 미흡하다는 점을 국회 업무보고, 국정감사, 관계 장관회의 등을 통해 누누이 제기했습니다. 국회 업무보고 때는 ‘칼이 있어야 무를 자를 것 아니냐’고까지 했습니다. 아무런 권한도 안 주면서 뭘 하라는 겁니까.



그간 정부가 주도해온 기업 구조조정이 지난 2월부터 시장에 의한 상시 구조조정 체제로 전환하는 등 시장시스템이 어느 정도 복원됨에 따라 이제는 채권시장과 외환시장 등 금융시장이 과거와는 달리 중앙은행의 정책의지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습니다. 이건 아주 큰 성과거든요.

최근에는 한국은행의 견해나 정책 방향에 따라 금리나 환율이 즉시 변동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은의 시장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자원 배분에서 시장의 기능이 더욱 커지고 정부 정책도 규제보다는 민간의 자율과 시장기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등 시장시스템이 더욱 확충돼 나갈 것으로 예상되므로 통화신용정책의 영향력도 커지고 중앙은행의 위상도 높아질 것으로 내다봅니다.”

진보와 보수의 조화

━전총재의 저서들을 보면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보이시더군요. 가령 ‘사회정의와 경제의 논리’ 머리말에서는 “무릇 사회정의에 대한 감각은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고 쓰셨습니다. 경제학자로서 지닌 진보적인 색채와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중앙은행 총재라는 자리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냅니까?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해서 중앙은행의 보수적인 성격과 조화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공정한 분배를 위해서는 물가안정이 긴요한데 이게 바로 중앙은행의 기본 목표입니다. 중앙은행이 책임지는 물가안정의 목표는 공정하게 분배하고 계층간의 격차를 줄이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가안정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매우 중요한 인프라입니다. 다만 통화신용정책을 운용하는 면에서는 진보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통화증발의 유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보수적이어야 합니다.”

━재테크는 어떻게 하십니까?

“정기예금과 채권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발령 받던 날 자식들을 불러다놓고 명령을 했죠. ‘너희 아버지가 중앙은행 총재를 잘 마칠 수 있게 하려면 주식거래는 지금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움직이지 말아달라’고.”

━한은총재는 주식투자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까?

“법률로 제한된 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은의 금리정책 등은 주식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칩니다. 금리가 떨어지면 채권보다는 현금이나 다른 금융자산을 선택하게 될 겁니다. 반대로 금리가 오르면 채권을 보유하는 대신 다른 금융자산을 줄일 겁니다.

또한 금리가 인하되면 금융자산 중에 주식을 늘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통화신용정책을 관장하는 중앙은행의 총재는 주식시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금리의 향방을 미리 알 수 있는 ‘내부자’입니다. 따라서 중앙은행 총재나 그 가족은 주식거래를 해선 안 되죠.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하니까요. 채권이야 확정금리니까 사든 팔든 상관이 없겠지만.”

국제화 시대의 세계경제는 그물망처럼 연결돼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우리만 잘한다고 경제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 일본 등의 해외 여건이 한국경제의 중요한 변수이고 이것은 우리 의지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부분이다.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미국과 일본의 경기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과거에는 예측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일기예보라고 했어요. 일기예보가 어려운 것은 날씨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지요. 요즘에는 기상관측 기법과 기기, 정보전달 수단이 발전해 일기예보가 비교적 잘 맞지만 아직도 특정한 지역에 특수한 여건이 조성됐을 때는 맞추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일기예보는 기초 데이터를 분석해 현재의 상황은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를 비롯한 사회현상은 지금 당장의 상황도 잘 모릅니다. 안다는 게 겨우 3개월 전, 2개월 전의 상황입니다. 통계를 수집하고 합계하고 분석하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연현상보다 사회현상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게 더 어렵습니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조사·분석능력과 예측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우리 은행의 과제입니다.

미국 경제는 지난 1/4분기에 1.3% 성장한 것으로 나타나 경기침체 우려가 줄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를 보면 소비가 예상외의 호조를 보였는데도 산업생산이 감소하고 실업률이 상승해 2/4분기 중에도 여전히 경기가 부진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와 달리 재고 조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그 동안의 금리인하 및 감세 효과 등에 힘입어 하반기 이후 경제가 점차 회복세를 나타내리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난해 4/4분기 중 557억 달러로 증가했던 재고가 1/4분기에는 189억 달러로 감소했습니다.

일본 경제는 세계 경제의 후퇴에 따른 수출감소와 기업투자 및 민간소비 위축 등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수출과 산업생산의 감소세가 지속되면서 기업수익의 신장세가 둔화되고 고실업의 영향 등으로 소비도 위축되고 있어요. 일본 경제는 국내외 수요부진, 물가하락 등을 감안할 때 당분간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얼마 전 IMF는 올해와 내년의 일본경제 성장률을 각각 0.6%와 1.5%로 전망하면서 경제가 회복되려면 정책당국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를 촉진하고 국채 매입규모를 확대하는 등 유동성 공급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미국 경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혼재하고 있으나 완만하게나마 금년 하반기에는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아직도 방향을 짐작하기가 대단히 힘든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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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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