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정통부 · 산자부의 IT 산업 대혈투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입력2005-05-23 15: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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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2월11일 오후. 문화일보 1면에 충격적인 기사가 났다.

    “정보통신부 해체 통신위로 축소개편”

    한 달 후 있을 정부조직 개편에 앞서, 기획예산위원회가 정통부 해체 방침을 확정했다는 것이었다.

    시커먼 바탕에 희고 굵은 체로 쓰인 열다섯 글자는 정통부를 발칵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고위관계자들은 요로에 진위를 확인하느라 동분서주했고, 기자실 역시 청와대로 기획예산위로 전화를 눌러대는 조간 기자들의 높고 긴박한 목소리로 한바탕 북새통을 이뤘다.

    부산한 확인 작업 끝에 기사는 오보로 판명 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모 국장은 기사를 쓴 기자를 두고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한동안 그 기자는 출입처에서 ‘왕따’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악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달 후인 3월12일, 정부조직개편안을 작성했던 정부 경영진단조정위원회는 산업자원부·과학기술부·정통부를 통합해 ‘산업기술부’를 신설하는 안을 확정해 기획예산위에 제출했다. 민주당(당시 국민회의)마저 이 안을 당론으로 확정, 3부처 통폐합은 기정사실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100일 넘게 관료들을 뒤흔들어 놓았던 조직개편 논의는 정치 논리와 해당 부처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IT 관련 부처 통폐합론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조직 개편 대비한 명분 쌓기

    그로부터 2년, 관가와 정보기술(IT)업계가 다시 술렁이고 있다. 정통부의 위상을 둘러싼 논의가 재부상(再浮上)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 ‘산자부가 정통부의 IT업무를 흡수하기 위해 새 정부조직개편안을 마련중’이며 ‘산자부와 정통부의 흡수통합뿐 아니라 문화부와 정통부를 합쳐 정보문화부를 신설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물론 관련 부처는 이러한 보도를 공식 부인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꼭 그런 것도 아니어서, 요즘 각 부처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기 쪽에 유리한 정부조직개편안을 여·야 공약사항에 포함시키기 위해 적지 않은 공력을 쏟아붓고 있다. 2년 전 ‘적극적 구조개편 대상’으로 지목됐던 정통부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정통부 관료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정통부의 중요성과 존속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산자부에서 IT업무 흡수를 계획중이라는 이야기도 정통부 고위관계자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일부 출입기자나 타 부처 관리들은 이를 ‘정통부 몫을 다른 부처에서 욕심 내고 있으니 잘 감시해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취재를 위해 접촉한 정통부 관료들은 부처의 앞날에 적지 않은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타 부처 공무원들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통부에 비하면 아무래도 긴장이 덜했다. 가져올 게 있을 뿐 빼앗길 것은 없다는 생각인 듯했다.

    관련업계에서는 요즘 진행중인 부처간 IT관련 업무영역 조정을 조직개편의 전초전으로 보고 있다.

    정통부·산자부·문광부 등은 지난 5월 초부터 한 달여간 중복되는 IT 관련 업무 중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무협상을 벌여왔다. 지난 4월30일~5월18일, 5월21일~6월7일 감사원이 두 차례에 걸쳐 정부 추진 정보화 사업을 감사한 것도 사실상 업무 중복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믿을 만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6월8일, 조정역을 맡은 재정경제부는 각 부처에 ‘부처간 IT관련 업무영역 조정 합의사항(안)’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로써 IT 업무를 둘러싼 부처간 갈등이 해소되리라 믿는 관계자는 없다. 조정안이 언론에 보도된 날 둘러 본 세 부처의 반응은, 한마디로 “택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봉책일 뿐”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지금 IT 산업쪽을 보면 꼭 미국 개척기의 서부 같다. 부처마다 대표선수를 선발해 깃발 하나라도 먼저 꽂으려 전력 질주하는 형국이다. 예를 들어 식당에 불고기를 먹으러 갔다고 하자. 그 중 한 사람이 ‘그을린 건 다 내 것’이라며 게걸스럽게 먹어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른 사람들도 ‘익을 때까지 기다리다간 맛도 못 보겠다’ 싶어 저마다 날고기를 집어먹게 될 것이다.”

    IT업무 중복 문제에 대한 공정위 모 과장의 비유다. IT 업무와 관련, 정통부와 타 부처간에 갈등이 발생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초기에는 산자부와 과기부가 주로 부딪치던 것이 경제·사회·문화 전분야에서 IT의 중요성이 극대화하면서 문광부·교육부·중기청·공정거래위 등으로 범위가 점차 넓어졌다.

    문제가 표면화할 때마다 각 부처는 실·국장급 연석회의를 열거나 청와대에 조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원인은 조직인데 업무조정에만 매달리다 보니 빚어진 현상이라는 것이 대체적 관측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깊이 파다가는 자칫 부처 통폐합 문제로 번질까 두려워 봉합 차원의 조정에 무게를 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늘 논란이 돼온 사안이건만, 관계자들이 최근 상황에 유난히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대선, 그를 전후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명분 쌓기 혹은 논리 쌓기의 측면이 강하다. 지금 밀렸다간 그 기조가 대선 후까지 이어져 조직개편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계산이다.

    조직개편으로 가는 길에 던져질 또 하나의 불씨는 정통부가 추진중인 ‘정보기술산업발전기본법(이하 IT기본법)’이다. IT기본법이 현재의 안(案)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정통부 장관의 지위는 ‘경제 부총리급’으로 격상된다. 정통부의 위상이 공고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정통부에게는 ‘난세’를 돌파하기 위한 회심의 카드요, 산자부 등 타 부처에는 정책 입안과 업무 수행에 큰 변화를 몰고 올 태풍의 눈이다.

    IT산업 관련 업무 분장이 이토록 중차대한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정보기술을 빼놓고는 어떤 분야도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게 된 시대 상황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냥 ‘산업’이라고 하면 그것이 ‘IT산업’을, 또 그냥 ‘문화’라고 하면 그것이 ‘디지털 문화’를 가리키는 세상이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산자부만 해도 추진 중인 정책의 약 40%가 IT산업과 관련된 것이다. 문광부가 관장해 온 출판, 문학, 미술, 영상 등도 오프라인 텍스트에서 온라인 콘텐츠로 빠르게 양질전화하고 있다. 어찌 보면 ‘정보’와 ‘통신’이 관련된 모든 산업을 자기 영역으로 선언한 정통부와 타 부처 간의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정통부 대 산자부로 대표되는 부처간 갈등에는 단순히 공무원 사회의 해묵은 ‘밥그릇 싸움’으로 폄하하기엔 석연치 않은 문제가 내재해 있다. 시대는 IT산업 전반의 업무를 관장하고 부처간 업무 조정 및 협력을 이끌어낼 조직을 요구하고 있다. 또는 정부 각 부처가 반목 없이 자기 분야에서 IT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유도하는 구조적이고 효과적인 방책을.

    정통부는 현재 상황에 대해 “IT 분야가 이른바 ‘물 좋은 곳’으로 인식되고, 이쪽으로 돈과 인재가 몰리자 위기의식을 느낀 타 부처가 괜한 욕심을 부리고 있다. 일부 의미 있는 문제제기도 IT기본법 제정으로 해소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업계와 학계, 타 부처에서는 차제에 정통부의 위상과 역할, 그리고 이를 포함한 정부의 IT정책 전반을 재고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체신부가 정통부로 확대 개편된 것은 1994년 12월이다. 김영삼 정부는 미래 국가발전의 핵심전략 산업인 정보통신 사업추진체계를 보강하기 위해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개칭했다. 정통부는 기존 체신부 업무 외에 상공자원부의 정보통신산업 육성 및 과기처의 정보산업기술 개발 업무를 이관해왔다.

    당시 정통부에 부여된 최대 과제는 국가·사회 정보화 추진이었다. 1995년 7월에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보화촉진기본법을 제정했다. 핵심 내용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보화추진위원회’ 설치와 ‘정보화촉진기금’ 조성이었다. 주관부처는 정통부. 주로 통신사업자들이 낸 출연금으로 조성한 거액의 정보화촉진기금은 이후 정통부가 IT 관련 대규모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데 든든한 재정 기반이 되어 주었다.

    ‘육성’과 ‘규제’라는 양날의 칼

    정통부가 국가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에 기여한 공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2001년 5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는 600만 명. 전체 1440만 가구 중 무려 41%가 정보고속도로의 혜택을 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최근 발간한 ‘OECD회원국 초고속망에 관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30개 OECD 회원국 중 1위”라며 회원국들에게 “한국의 사례를 배울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정통부는 우리나라가 기술대국으로 부상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특히 CDMA· IMT-2000 등 핵심 통신기술 개발에 진력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무선통신 대국으로 부상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정보통신산업 육성에도 5년간 6098억 원을 투자했다. 이로써 IT산업이 2000년도 국내총생산(GDP)에 12.9%(132조8000억원)를 차지할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정통부에 대한 IT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통신업계와 정통부 간 불신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다. 10년 가까이 ‘동반 성장’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업계와 학계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정통부가 국내 경쟁을 유도해 국제경쟁력을 높인다는 미명하에 통신사업권을 남발, 업계의 총체적 부실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정부가 출연금을 받는 기간통신사업자만 37개사에 이른다. 이중 상당수가 이미 부도가 났거나 도산 위기에 몰려 있다. 장비업체나 설비업체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 넓어진 시장만 보고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과당경쟁에 치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통신사업권 남발이 ‘과거의 실책’이라면, 현재의 쟁점은 정통부가 쥔 ‘육성’과 ‘규제’라는 양날의 칼이다.

    통신사업은 공공의 성격이 짙다. 적정한 주파수 대역과 통신회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파수는 국민 모두의 재산이므로 통신업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출연금을 내고 정해진 주파수 대역을 ‘사야’ 한다. 그러므로 정통부가 PCS나 IMT-2000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것은 거칠게 말해 ‘주파수를 할당받을 자격이 있는 기업을 선정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통신사업은 경쟁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첨단IT산업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한 업체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면 모르되, 여러 업체가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는 공공성과 수익성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 통신시장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사업권을 내준 정통부로서는 모든 사업자가 일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정책적으로 배려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사용하는 것이, 이른바 ‘공정 경쟁’을 위한 각종 규제이다. 한국통신·SK 등 선발업체의 가격 인하를 불허한다든가, 이동통신업체가 기간통신망 사업자에게 지불하는 접속료를 조절한다든가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우수한 기업을 육성해야 하는 과제도 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논리에 따라 옥석을 가리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통부 동향 파악에 바쁜 업계

    이렇듯 상반된 목표에서 나온 정통부의 각종 통신정책은 업계에서 환영을 받기는커녕 일관성이 없다, 특정 사업자만 비호한다, 경쟁원리에 어긋난다는 등 불신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부처가 산업정책과 경쟁정책을 동시에 취급함으로써 발생하는 혼란이다.

    예를 들어 한국통신은 “대주주인 정통부가 공정 경쟁이란 명목으로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회사의 수익과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사업권을 남발한 건 우리가 아니라 정통부인데, 이제 와서 다른 업체도 먹고 살아야 하니 시장을 잃어달라는 건 지나친 요구가 아니냐”는 것이다.

    반대로 데이콤, 하나로통신 같은 신생사업자는 “살아남기 위해선 접속료 인하 등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통신과 밀월관계에 있는 정통부가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모두로부터 지탄을 받는 모양새다.

    모 통신업체 부장은 “요즘은 각종 규제 때문에 일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어떤 분야나 시장 형성 초기에는 공정 경쟁을 위한 각종 장치가 필요하다. 그 장치들이란 대개 규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 규제들은 시장이 활성화되고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 통신업계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정통부는 여전히 통신업체들을 공기업처럼 다루려 한다. 업계 자율이란 허울좋은 명목일 뿐, 실제로는 정통부의 허락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IMT-2000 사업만 해도 ‘동기식 1사, 비동기식 2사(1동 2비)’ 등의 표준 규제 규정만 두지 않았던들 지금처럼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 견해다.

    모 통신업체 정보담당 임원은 “통신업체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은 기획실이나 마케팅이 아니라 정보부서에 배치된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정통부와 경쟁기업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때로는 투자, 기술개발보다 정통부의 의중을 탐색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고 말했다. 시장을 상대로 승부하는 것보다 정통부로부터 뭔가를 얻어내는 것이 이윤 창출에 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다.

    “정통부의 정책에는 일관성이 없다. PCS나 IMT-2000 사업자 선정 때도 그랬고, 이동통신 관련 정책을 수립·운용하는 면에서도 그렇다. 정통부가 의욕적으로 벌인 사업들의 결과를 보자. 초고속통신망 업체 적자, PCS 사업자 부실, 무선데이터통신 업체들은 오늘내일 하고, 서울이동통신 등 호출서비스 업체들도 전멸 직전이다. 안 된다고 했다가 상황에 밀려 허용하고, 다시 반대쪽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면 규제를 강화하는 식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모 통신업체 A이사의 신랄한 비난이다.

    정통부의 강력한 가격 규제 정책으로 인해 경쟁의 열매가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타사에 비해 이윤 폭이 커 요금을 낮추고 싶어도 정통부의 ‘후발 사업자 보호’ 논리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통신료 인하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주장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참여연대 시민권리국 박원석 국장은 “지금 정통부가 시행하는 가격정책은 매우 ‘비시장적’이며 담합 구조를 합리화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특정 업체의 시장 지배와 초과 이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 상황에 너무 민감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통신사업권 남발, PCS 사업자 선정 비리, 최근의 ‘CDMA 밀어주기’ 등은 모두 정치적 이해가 맞물린 것이었다.

    이러한 업계의 시각에 대해 정통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정통부 모 사무관은 “정통부 규제 때문에 힘들다는 하소연은 우리 부처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통신산업은 공공성이 중시되는 특성상 시장원리에 무조건 맡겨둘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또 사업자마다 입장이 너무 달라 이를 조율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정책적 판단 외의 요소들로 인해 이동통신 사업권을 남발한 측면이 있지만, 좋지 않은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무선통신 강국의 기반을 착실히 닦아 왔다. 업계가 통신망 확충, 핵심 기술 개발, 공정경쟁 구현을 위해 기울여 온 정통부의 노력을 과소평가한다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는 또 “정통부가 그토록 ‘힘’이 세다면 IMT-2000 사업자 선정에서 1동2비의 방침을 왜 관철하지 못했겠느냐”며 “정통부야말로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꿔가며 제 잇속만 차리려는 사업자들의 얄팍한 행태로 인해 여러모로 곤란을 겪고 있다. 혼연일체가 되어도 어려운 판국에 이래도 되느냐”고 맞받아쳤다. 어떤 나라에도 통신 관련 규제책은 있게 마련인데 제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정부의 정당한 행정력 행사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제 얘기의 초점을 대형 통신업체를 제외한 IT업계로 돌려보자.

    B씨는 모 통신업체 임원으로 근무하다 퇴직, 2년 전부터 IT벤처기업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통신업체에 근무할 때는 늘 정통부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런데 벤처업계로 나와보니 그럴 필요가 없어 솔직히 마음 편하다. 정통부 공력의 70~ 80%가 통신에 집중돼 있다는 말은 분명 과장이 아니다.”

    이어 그는 “IT벤처에서 정통부와 관련한 일이라면 아무래도 기금 지원 요청이다. 그러나 이 역시 나는 별로 바라지 않는다. 정통부 외에도 산자부, 중기청 등에서 각종 벤처자금지원사업을 하고 있지만 그런 도움은 기업 체질만 약하게 만들 뿐 본질적인 도움은 되지 못한다. 벤처야말로 시장원리에 맡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백화점식 벤처 지원 정책

    관료 출신 벤처기업 대표 C씨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통부의 자금 지원은 분명 기업에 도움이 된다. 또 IT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대하기가 편하다. A부터 Z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나 딱히 초점이 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백화점식 정책 수립은 우리 정부의 오랜 악습이다.”

    실제로 정통부는 업계로부터 IT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보다 1998년 이후 모두 18개의 펀드를 만드는 등 직접투자 정책에만 집착해왔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한국통신에 근무하면서 정통부의 기금 지원 심사에 참가한 적이 있는 모 인사는 기금 지원 사업의 실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말이 지원이지 담보 없이 기술만 가지고 빌릴 수 있는 돈은 많아야 1억~2억 원이다. 그 정도 돈으로 개발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이 몇 가지나 되겠는가. 제법 쓸 만큼 끌어오려면 담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땅을 산 벤처기업도 없지 않다. 이자율도 6% 정도여서 요즘처럼 은행 금리가 쌀 때는 효용성이 더 떨어진다. 상환 부담 없이 그야말로 순수하게 지원받을 수 있는 돈은 1억 원 미만이다. 이 역시 50%는 회사가 현물 투자를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정통부 관계자는 “정통부는 IT기업을 괴롭히지 않는다. 오직 지원하고 향도(嚮導)할 뿐이다. 정통부 업무 중 핵심은 통신서비스업이 아니라 기술 개발과 IT산업 육성이다. 자금 지원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이 있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IT인력 양성에도 큰 비중을 두어 1997~2000년 3082억 원을 투자해 55만여 명의 전문 인력을 배출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정통부의 ‘뒷심 부족’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정통부 고위 관료는 대개 옛 체신부 출신으로 재경부, 산자부 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정부 내 영향력이 크지 않다. 이로 인해 정통부가 중심이 돼 힘있게 밀어붙여야 할 정책도 정치논리, 부처간 알력에 떠밀려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분석이다.

    정통부 내에도 이러한 지적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있다. 한 서기관은 “어쩌다 과천 정부종합청사에 들어가면 ‘왕따’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보니 인적 교류가 부족한데다, 재경부·산자부 등에는 행정고시 재경직 합격자가 주로 배치되는 데 비해 정통부에는 일반행정직 출신이 많은 것도 한 요인이다.

    모 국장도 “부처간 연석회의 자리에서 우리 부처의 견해를 대변하기 위해 목청을 높일 때가 있다. 그런데 발언을 끝내고 나면 묘한 허탈감이 찾아온다. 내 말이 먹히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산자부 모 과장은 이와 관련 “경제 5단체장, 10대 그룹 회장과 만날 수 있는 건 정통부 장관이 아니라 재경부·산자부 장관”이라고 꼬집었다. 어쩌면 정통부가 부처 위상 확립에 그토록 신경을 쓰는 것도 ‘약한 부처’라는 자의식과 위기의식의 발로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정통부 관료들은 IT산업에 대한 열정과 전문지식만큼은 어떤 부처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산자부 출신의 한 벤처기업 사장도 “정통부 핵심인력들은 유능할 뿐 아니라 사명감도 높다. 산자부 시절 업무 중복 문제로 정통부 관료들과 토론을 벌인 적이 있는데, IT에 대한 타 부처 공무원들의 지식이 워낙 일천하다 보니 가르쳐가며 싸우느라 더 고생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돈 쥐어 주는 건 下策

    정통부에 대한 업계의 비판은 정부의 IT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정통부, 산자부는 물론 문광부나 과기부, 중기청, 교육부 등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가장 피부에 와닿는 문제는 각 부처의 IT 관련 중복 투자 및 규제, 영역 다툼이다.

    산자부-정통부 사이에서 표류중인 굵직굵직한 문제만도 전자화폐 표준화, 음성정보기술, 차세대 PC, 소프트웨어 품질인증, 해외벤처 지원 등 10여 가지에 이른다. 두 부처가 경쟁 차원에서 비슷한 분야의 협회를 만들거나 기술 개발을 시작하면 해당 업체에선 양쪽의 비위를 다 맞추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과 돈, 인력을 낭비해야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다.

    산자부 출신 업계 인사 G씨는 “청와대와 총리실의 정책 조절 기능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공무원들을 가장 분통 터지게 하는 건 청와대나 총리실의 미적지근한 태도다. 대개 각 부처의 안을 살펴보면 어느 쪽이 옳은지 금방 판별이 된다. 그럴 때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고 효과적인 중재역을 담당하는 게 청와대가 할 일이다.”

    G씨는 청와대와 업무를 협의하는 과정에 느낀 ‘억장 무너지는 분노와 답답함’이 공직 사회를 떠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고백했다.

    중복 투자도 수없이 지적돼온 문제다. 부품 개발, 초고속통신망 설치, IT인력 양성 등.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IT벤처 육성이다. 특정 업체에 특혜성 중복 지원을 하거나, 목표 자금을 모두 집행하기 위해 시장성 없는 기업에 돈을 몰아주는 부실 지원 등이 횡행하고 있다. 이들 업체에 지원되는 돈은 통신사업자 출연금 등 대개 민간기업으로부터 거둬들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금은 곧 국민의 돈이다.

    역시 산자부 출신인 벤처기업 사장 E씨는 기금 낭비보다 기업의 체질 약화를 더 큰 문제로 꼽았다.

    “정부가 기업에 직접 돈을 주는 것은 가장 하책(下策)이다. 상책(上策)은 국가 정보화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각 부처가 외국에 벤처 인큐베이팅 센터를 개설해 놓고 자금을 지원하는 행태도 옳지 않다. 갈 만한 회사는 가만 놔둬도 민간 네트워크를 통해 얼마든지 진출할 수 있다. 정부 부처가 할 일은 기업에 꼭 필요한 고급 정보를 수집·제공하고 해외에 한민족 벤처 네트워크를 구축, 측면 지원을 하는 것이다.”

    E씨는 또 각 부처가 “기금 지원, 건물 대여 등에 열을 올리는 건 아웃풋이 분명하고 구체적인 실적 제시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더라도 기업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꼭 필요한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가 절실하다”고 했다.

    정부의 IT정책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요즘 업계에서는 정통부와 산자부가 통합하기를 바라는 시각이 제법 세를 얻고 있다. 규제를 줄이려면 조직을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 첫째 이유다.

    “통신업계에선 정통부를 외아들을 둔 어머니에 비유한다. 아이가 하나이면 아무래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우리가 꼭 그런 꼴이어서, 잘하건 못하건 늘 정통부의 간섭과 규제를 받아야 한다. 룰을 만들었으면 심판만 봐야지 자꾸 경기에 뛰어들면 게임을 계속할 수 없지 않은가.”

    모 이동통신업체 D상무의 말이다.

    산자부도 이런 의견에 동의한다. 한 과장은 “산자부 업무 영역에는 고무신부터 조선업까지가 다 포함된다. 특정 산업 분야에 매달려 미주알고주알 훈수 둘 시간도 여력도 없다. 물론 산자부도 예전 상공부 시절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주무부처로 업계에 많은 간섭과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민간부문이 발달함에 따라 대부분의 규제는 사라졌고 이젠 국내·외 산업환경에 대한 모니터링, 발전 방향 제시 등 대(對)기업 서비스에 치중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통부와 산자부가 통합한다면 그건 정통부 권한 대부분이 민간으로 이양되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990년대 중후반에는 정통부가 우리나라 IT산업 발전의 모터보트 구실을 했다. IT 개념을 정립하고 인프라를 확충한 것은 분명 정통부의 큰 공이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제조업을 비롯한 전 산업 분야에 IT라는 터보엔진이 필요하다. 산자부야말로 큰 시각에서 IT를 바라볼 수 있는 부처다. 예를 들어 정통부에서는 IT와 제조업, IT와 BT(바이오테크)·NT(나노테크)의 결합 등 거시적 관점의 정책 수립 및 추진이 어렵지 않은가.”

    산자부 측은 전문성 문제도 결정적인 걸림돌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통부 관료들이 IT분야에 밝다면 산자부는 산업 전체에 대한 종합적 시야를 갖고 있다. 오히려 두 집단이 만나 예기치 않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산자부 고위 관계자 G씨는 좀더 자세한 분석을 내놓았다.

    “정통부의 기능은 크게 IT산업 육성, 통신망 확충, 우정사업, 정보화 촉진, 산하 통신위원회를 통한 통신사업자 감시·규제다. 우선 한 부처가 육성 기능과 규제 기능을 모두 가진 것이 문제라고 본다. 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규제책은 새로 독립된 형태의 통신위원회를 구성, 그곳에서 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신망 확충은 정통부가 가장 잘한 사업이지만 앞으로 2년 후면 어느 정도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우정사업은 이미 본부로 분리됐고 정부 방침에 따라 민영화할 예정이다. 결국 남는 건 정보화 촉진과 IT산업 육성인데, 이건 정통부만의 소관이라기엔 범위가 너무 넓지 않은가.”

    그는 또 정통부가 막대한 규모의 정보화촉진기금을 지엽적이고 협소한 분야의 연구에 투입하고 있다는 비판을 했다. “만일 산자부에 지금 반만큼의 자금이라도 쥐어 준다면 훨씬 쓸모있게 사용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온라인은 정통부, 오프 라인은 산자부 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해 놓는 건 온-오프 라인의 효과적 결합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산자부 위기감이 갈등 불러”

    정통부 폐지론에 힘을 실어주는 건 최근 있었던 일본 정부의 구조개편이다. 우리나라의 정통부에 해당하는 우정성과 자치성·총무청을 통합해 총무성을 만든 것. 산자부 관계자는 “정통-과기-산자부 통합은 공론화가 돼 가는 문제인데 왜 정통부는 문을 꽉 닫아놓고 아무 대비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산자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정통부 측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정통부가 정보화촉진기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오늘날 정보 강국의 기틀을 다져놓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IT전문인력, 핵심 기술 개발 체계 등 IT산업 육성에 필요한 핵심 요소와 오랜 경험을 갖고 있다. 또 아직 우리나라의 정보화 수준은 정통부의 존폐를 논할 만큼 완벽하지 않다.”

    정통부 모 과장의 설명이다.

    정통부는 또 IT업무가 산자부에 통합될 경우 지금처럼 막대한 자금을 IT 한 분야에만 쏟아붓기는 어려울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에 IT 강국의 면모를 갖춘 것은 ‘정보기술 드라이브’라 해도 좋을 만큼 정통부를 중심으로 이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와 관심을 보여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통부의 입장이다.

    정통부는 산자부와의 갈등이 표면화한 것에 대해, IT산업 급성장으로 정책 수요가 증대했고 전통산업과 IT신사업 간의 갈등이 커지면서 전통산업을 관장해 온 산자부가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라 보고 있다. 전통산업 분야에서 정부 역할은 축소되고 구조조정마저 재경부와 공정거래위 중심으로 진행되자 위기를 느낀 산자부가 IT산업으로 방향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정통부는 “부처 통폐합을 주장하는 것은 IT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부처통합론의 논리적 배경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작은 정부는 불필요한 공공부문은 감축하되 행정 수요 중심으로 정부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정확한 행정수요 조사나 객관적 진단 없이 정책갈등을 부처통합론으로 단순 연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통부도 지금의 조직과 법제만으로는 타 부처와의 갈등과 업계의 불만을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추진하는 것이 IT기본법 제정이다.

    정통부 정보통신정책국 손홍 국장은 “지금은 우리나라 IT산업이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도약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기술 혁신체제 구축, 세계 최고의 IT인력 양성 등 정보기술 산업을 체계적·효율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손국장은 또 “일본에는 총리를 본부장으로 한 IT전략본부와 민간이 참여하는 IT전략회의가 있다. 미국도 1991년 각 부처의 IT분야 연구 개발을 총괄하는 HPC법을 제정하고 대통령 정보기술자문위원회를 설치했다. 우리가 추진중인 IT기본법은 IT기술개발과 전문인력 양성, 창업 지원 등 국내 IT산업 기반 강화를 위한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되면 부처간 업무 조정도 쉬워질 것이고 종합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하에서 정보통신 대국 건설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IT기본법의 핵심은 대통령 산하에 민간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정보기술산업자문회의’를 설치하고, 국무총리 산하에 IT관련 주요 정책 및 사업 조정과 예산 심의를 담당할 ‘정보기술산업발전위원회’를 설치한다는 것. 그러나 입법과정 중 논란의 핵심은 바로 여기, ‘정통부에 국가 차원의 IT 개발 전략, IT산업 발전 전략 등을 기획하고 정보기술산업자문회의 및 정보기술산업발전위원회의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정보기술전략기획단’을 둔다’는 대목이다.

    이 법이 통과하면 정통부 장관은 명실공히 ‘부총리급’의 권한을 갖게 된다. 재경부장관이 경제관련장관 연석회의를 소집하듯 정통부장관도 ‘IT관련장관 연석회의’를 소집·주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서 정통부 장관은 IT업무를 둘러싼 부처 갈등 조정은 물론, 사실상 정보기술산업과 관련된 전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는 정통부 측에서도 인정한 사실이다.

    이로써 IT산업을 이끌어갈 조직으로 두 가지 대안이 제시됐다. 정통부와 산자부를 합친 산업기술부, 또 하나는 IT기본법 제정을 통해 그 권한과 조직이 대폭 확대된 ‘업그레이드형 정통부’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도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지는 않다.

    정통부는 올해 안에 IT기본법을 국회에 상정, 법 제정을 도모할 계획이다. 그러나 산자부를 비롯한 중기청, 과기부, 문광부, 교육부, 공정거래위 등 IT 관련 전부처의 파상공세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산자부는 벌써부터 “조직 개편을 빼고는 새로운 내용이 없다. 다른 부처 혹은 정통부 관련 법안에 이미 그 실체가 다 있는 것들 아닌가. IT기본법 제정 시도는 정부조직 개편시 살아남으려는 정통부의 ‘생존전략’에 불과할 뿐”이라며 폄하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지금은 다른 부처와 통폐합된 통상성과 우정성이 IT전략회의 사무국의 주도권을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인 일이 있었다. 한치 양보도 없는 힘겨루기 끝에 정작 IT전략회의 사무국은 우리의 총리행정조정실에 해당하는 내정심의실로 넘어갔다. 이에 반발해 통산성 전자정책과장이 사표를 던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 역시 IT기본법 제정을 둘러싸고 그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산업 IT 이끌 횡적 통합조직 절실

    IT기본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업계는 일단 관망하는 자세다.

    LG그룹의 P상무는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만큼 지금은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정통부의 의도가 부처 이기주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업계도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전자통신연구원 출신 벤처기업인 Q씨의 제언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정보통신산업은 특정 부처의 전유물일 수 없다.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힘·자금·전문성을 갖춘 횡적 통합 조직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통부를 축소, 산자부로 흡수하거나, 반대로 정통부 조직을 확대해 권한 강화를 꾀하는 것 모두 무리한 측면이 있다. 그보다는 대통령 산하건 국무총리 산하건, 각 부처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해 정보·과학기술 관련 주요 정책과 업무 조정, 심의 등을 관장할 정보화위원회와 기술개발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이 어떨까. 이때 중요한 것은 위원회 사무국이 특정 부처 내부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통부의 위상을 논하는 것은 부처에 주어진 소임이 그만큼 크고 무겁기 때문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특정 부처의 통폐합 여부가 아니라 정부가 IT산업 육성에 대해 어떤 비전과 철학을 갖고 있느냐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일 아닌가. 문제는 주요 정책마저 정치적 이해관계와 부처 이기주의에 밀려 흔들리거나 훼손된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통부 역할 재정립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논의되고 결정되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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