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추적취재! 검찰 마약수사부 vs 국제마약조직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05-05-23 16: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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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가 그 자리에서 제게 히로뽕을 투약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모든 짓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났습니다. 부산 거리를 칼을 들고 다니면서 배신자를 찾기도 했습니다.…여자와 하루 동안 성관계를 가졌는데 그때는 정말로 기분이 좋았고 모든 게 내 세상이었습니다. 옷을 입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기도 했지요.

    옥상에서 여자를 강간하면서 여자 목에 칼을 들이대고 인질로 잡았습니다. 경찰 기동수사대 마약단속반이 출동해 마이크로 이야기했습니다. 인질을 놓아주면 히로뽕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기동수사대가 쏜 가스총에 맞아 정신을 잃었습니다.

    …저는 마약중독자를 위해 인생을 걸고, 청소년을 위해 봉사하고자 이 편지를 썼습니다. 마약이 주는 효과는 너무 좋아서 그 맛을 알면 영원히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약을 한 번 하면 죽음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홈페이지(www.drugfree.or.kr) ‘상담&교육’ 란에 올라 있는 한 마약중독자의 경험사례다. 17년 동안 마약을 하다 단약교육을 받고 현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 중독자는 편지에서 “마약은 인간의 힘으로 끊을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마약수사부 신설



    ‘마약과의 전쟁’은 어쩌면 영원히 끝이 나지 않을 인류의 숙제인지 모른다. 검찰은 해마다 이맘때면 마약사범 자수기간을 설정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검찰청 주변에 관련 포스터가 붙었다. ‘마약류 투약자 특별자수기간 실시’-‘마약과의 전쟁 선포’ ‘마약에서 해방’ ‘자수자는 형사처벌 면제 및 무료 재활치료’. 자수기간은 3월12일∼6월30일이다.

    마약류 사범이 날로 늘어나는 가운데 검찰이 마약수사팀을 대폭 강화하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4월20일 검찰은 대검 마약부와 서울지검 마약수사부를 신설했다. 기존의 대검 강력부 소속 마약과와 서울지검 강력부 소속 마약과를 독립시켜 별도의 부서로 만든 것이다. 검찰의 이러한 조처는 우리 사회의 마약 거래 실태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반에 널리 쓰이는 마약이라는 용어는 엄밀하게 말하면 마약류의 한 종류다. 지난해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마약류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쓰이고 있다. 마약류는 마약 대마 향정신성의약품을 총괄하는 것이다. 또 마약류 관련 법규는 기존의 마약법, 대마관리법 및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을 통합한 것이다.

    마약은 크게 천연마약과 합성마약으로 나뉜다. 천연마약에는 아편 모르핀 헤로인 코카인 등이 있으며, 메사돈 염산페치딘 등이 합성마약에 속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진정 및 진통제로 쓰인다는 점. 그러나 중독될 경우 도취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신체조정력을 상실하는데, 심하면 죽음에 이른다.

    대마는 대마초(마리화나) 또는 대마 수지(樹脂)를 가루로 만든 헤쉬시 등의 이름으로 널리 유통되고 있다. 마약과 달리 의약용으로는 쓸모가 없고 도취감과 약한 환각상태가 특징이다.

    향정신성의약품 중 대표적인 것은 메스암페타민이라는 의약명을 갖고 있는 히로뽕(필로폰)이다. 각성제인 히로뽕은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마약류 중 으뜸을 차지하는 것으로 식욕억제 효과를 내며 환시 환청 피해망상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다. 마약과 마찬가지로 증독증이 심할 경우 목숨을 잃는다. 그 밖에 환각제 LSD, 지난 4월 마약류로 새로 지정된 염산날부핀 등이 향정신성의약품에 해당한다.

    한편 대학가를 중심으로 젊은층에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는 신종 마약 엑스터시(MDMA·일명 도리도리)는 환각성과 암페타민의 특성이 섞여 있는 합성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엑스터시는 히로뽕보다 값이 싸면서도 환각 효과는 3배 가량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월 서울에서 회의를 가진 유엔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거래되는 마약류 밀매 규모는 2000년 현재 5000억 달러(약 600조 원)에 이른다. 마약류 불법거래에 따른 돈세탁 규모는 약 2500억 달러. 또 적발된 마약류 남용자 수는 2억 명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마약류 유통 추세에 발맞춰 국내 마약류사범도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1950∼60년대 가장 흔했던 것은 아편과 메사돈(합성마약)이었다. 1970년대 들어서는 대마초가 크게 유행했으며,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는 메스암페타민, 곧 히로뽕이 주종을 이룬다. 대검 마약과장을 거쳐 6월14일 초대 서울지검 마약수사부장에 취임한 정선태 부장검사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내성적이고 욱하는 성격의 한국인에게 히로뽕이 가장 잘 맞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주한미군과 한국여자 유학생

    한편 1995년부터 연평균 18.5%의 증가율을 보인 마약류사범은 1999년 1만 명을 넘어섰다. 마약류사범 증가추세는 언론 보도만 봐도 실감이 난다. 거의 매일 마약 관련 기사가 눈에 띈다.

    아울러 마약류 유통량도 폭발적인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1996년 이후 주요 마약류 압수량은 연평균 82kg 수준이었는데, 지난해엔 158.8kg으로 전년(76.3kg) 대비 108.1% 증가했다. 올해 들어선 5월 현재 73.5kg의 마약류가 압수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9.8%가 증가한 수치다. 지난 5월17일에는 단일 밀수량으로는 최대 규모인 30kg(1000억 원 상당)의 히로뽕을 국내에 들여오려던 밀수업자가 검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서울지검 마약수사부 정중근 검사에 따르면 마약시장은 예전엔 수요자 중심으로 움직였으나 요즘은 공급자 중심으로 바뀌었다. 마약류 판매자들은 일반 영업사원처럼 행동한다. 이들이 즐기는 판매수법은 처음에 공짜로 제공해 ‘길’을 들인 후 ‘영구 고객’으로 삼는 것이다.

    정검사에 따르면 과거엔 유흥업계 종사자, 연예인, 운전기사 등 특정계층의 수요가 돋보였지만, 요즘엔 대학생, 일반 직장인, 가정주부, 약사, 한의사 등 다양한 계층으로 번지고 있다. 이제 마약은 우리의 일상이 된 것이다.

    수사 사례 중엔 아내가 중독자인 남편을 따라 마약을 복용한 사건도 있다. 또 결혼한 지 일주일 만에 마약 복용으로 검찰에 검거된 평범한 회사원도 있다. 검찰로부터 이 소식을 통보받은 그 회사원의 아내는 처음엔 너무 화가 나 “빨리 구속시켜 달라”고 했다가 뒤늦게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임신부가 마약을 복용하다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이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젊은층의 수요 급증이다. 그 중심엔 해외 유학생과 일부 부유층 대학생이 있다. 이들은 신촌 등지의 대학가 주변에서 레이브(rave) 파티나 댄스 파티 등을 이용하거나 호텔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서 집단적으로 마약류를 복용하거나 투약한다. 이들이 선호하는 것은 엑스터시 등 먹기에 편하고 값도 싼 신종 마약류다.

    주한미군을 통해 유통되는 것도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에도 주한미군과 유학생 신분의 한국 여성 몇 명이 어울려 마약을 투약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엑스터시 대마초 헤쉬시 등 다양한 종류의 마약을 즐겼다. 엑스터시와 대마초는 주한미군이 구한 것이고 헤쉬쉬는 한국인 유학생이 스페인에서 밀반입한 것이었다.

    대형화·대중화 추세와 더불어 또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공급선의 다변화다. 지난해 외국에서 밀반입된 마약류는 총 97.6kg. 전년(24.5kg) 대비 298.4%가 증가한 것이다. 그중 주종 마약류인 히로뽕 밀반입량은 46.5kg으로 218.5%, 대마초는 44.4kg으로 전년 대비 1010% 증가했다. 향정신성의약품인 펜플루라민 성분 등이 함유된 중국산 ‘살 빼는 약’도 36만 정이나 밀반입됐다.

    기자는 6월7일 오후 서울지검 마약수사부 김진모 수석검사실에 들렀다가 포승에 묶인 외국인 2명이 조사받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다. 한 명은 흑인이고 한 명은 동남아계로 보였다. 알고 보니 흑인의 국적은 나이지리아이고, 다른 한 명은 필리핀인이다. 두 사람은 샤부(필로폰의 일종)라는 마약류를 서로 팔고 산 혐의를 받고 있었다. 김검사에 따르면 마약거래와 관련된 외국인 입국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또한 이들을 통해 엑스터시 등 신종 마약류 유입량이 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외국인 구속사례가 있었다. 김진모 검사는 5월16일 태국인 파누뎃 잔르엉(24)을 마약류관계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했다. 5월7일 중국 베이징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던 이 태국인은 여행용 가방 안 커피봉지에 히로뽕 500g을 숨겨 들어온 혐의를 받고 있다.

    공급선 다변화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현상은 중국이 한국에 대한 마약류 주요 수출국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해외에서 몰래 들여온 히로뽕(44.5kg)은 모두 중국산이다. 히로뽕 1회 투약분은 0.03g이므로 44.5kg이라면 148만3333명이 한 번씩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0.3kg이 압수된 헤로인도 전량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검찰은 대검 마약부 신설 배경에 대해 “날로 국제화·조직화하는 국제마약조직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미국의 마약청과 같은 강력하고 전문적인 수사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전국 일선 검찰청의 마약수사팀을 총괄지휘하게 된 대검 마약부는 ‘국제 마약조직과의 전면전’을 선포, 앞으로 마약수사의 국제공조 강화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올 초 검찰이 중국 공안당국과 협조해 이른바 ‘김동화파’를 일망타진한 사건은 향후 마약류 수사의 주류가 국제공조수사임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중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히로뽕 제조책 김동화씨를 주축으로 한 ‘김동화파’가 중국에서 히로뽕을 밀조해 한국과 일본에 밀수출하다가 적발된 사건으로 한·중·일 3국간 마약류 거래 실태의 전형을 보여줬다. 검찰 확인 결과 그 동안 국내에 들어온 중국산 마약류의 50% 이상을 ‘김동화파’가 제조·공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과정에 한국 검찰과 중국 공안당국은 역할을 분담했다. 한국 검찰은 서아무개씨를 비롯해 히로뽕 운반 및 판매 관계자 10명을 구속하는 한편, 히로뽕 15kg을 압수했다. 반면 중국 공안은 한국 검찰의 정보를 토대로 김동화씨를 비롯한 제조 관계자 4명을 구속하고, 히로뽕 제조공장을 찾아내 완제품 8.3kg, 반제품 740kg, 액체원료 620kg을 압수했다.

    현재 검찰은 중국과의 마약공조수사를 위해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마약수사검사를 파견하고 있다. 또한 중국측에 ‘한·중 마약회의’를 제의한 상태다. 대검 마약부는 중국어 능통자도 채용할 계획이다. 정선태 부장검사를 비롯한 일부 검사는 요즘 열심히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정부장검사는 이에 대해 “중국어를 배우는 것은 수사에 앞서 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한편 중국 외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마약류도 나름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압수된 야바 8010정은 헤로인 밀수출국으로 이름을 떨쳐온 태국에서 밀반입된 것이다. 야바는 정제형 히로뽕으로 메스암페타민 가루에 카페인 파우더 색소 등을 섞은 것이다. 트럭운전사나 공장 근로자들이 졸음을 쫓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최근엔 쾌락용으로 젊은층에 퍼지고 있다. 미국에선 엑스터시, LSD 등이 639정,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대마초 43.3kg, 파나마에서는 코카인 2.5kg이 몰래 들어왔다. 그 외 필리핀 네덜란드 등이 새로운 밀수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중반까지는 히로뽕 밀수출국이었다. ‘전성기’엔 일본에 밀수출되는 양만 해도 연평균 100kg을 웃돌아 한·일간 외교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한동안 한국은 유엔에서 마약수출국가로 지탄받았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마약수사의 필요성을 느낀 검찰은 1989년 대검에 마약과를 신설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 검찰청에 마약수사반이 설치됐고 전국에 걸쳐 마약류 제조자 검거선풍이 일었다. 1970년대만 해도 마약수사는 복용자과 투약자를 단속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히로뽕 제조자와 제조시설을 찾아내는 것이 마약수사의 중요한 목표가 됐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제조되는 히로뽕이 해외에서 들어오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검·경의 대대적인 단속 결과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국내 히로뽕 제조조직들은 거의 다 뿌리뽑혔다. 대신 필리핀 대만 하와이 등지에서 만든 히로뽕이 국내 시장을 파고들었다. 외국산 마약류 밀반입이 급증하자 검찰은 주요 공항과 항만에 마약분실을 설치했다. 그 과정에 일부 히로뽕 제조기술자가 중국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이들이 중국에서 제조한 히로뽕은 뒷날 중국에 문호가 개방되면서 국내에 역수입된다. 앞서 소개한 ‘김동화파 사건’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일찍이 아편전쟁을 치른 바 있는 중국은 마약 제조업자와 판매자를 ‘인민의 공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정량의 마약류를 소지하거나 판매 또는 수출입하는 자를 공개사형에 처할 정도다. 매년 수백 명이 마약범죄와 관련해 사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산 마약류의 유입 경로는 다양하다. 선박과 항공편을 통한 밀반입이 가장 흔하고 국제우편을 이용하기도 한다. 어선으로 위장해 해상에서 직접 거래를 시도하기도 한다. 서울지검 정선태 마약수사부장에 따르면 중국산 마약에 대한 수사는 향후 국제마약공조수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전망이다.

    “2∼3년 전부터 중국산 마약이 동북아를 휩쓸고 있다. 중국엔 공안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마약류 제조공장이 부지기수다. 중국의 개방화바람을 타고 대만 필리핀 등지에서 제조된 마약류도 중국으로 다량 흘러 들어가고 있다. 그에 따라 중국은 마약범죄의 가장 큰 온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 마약거래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의 폭력조직이 연대할 가능성이 높다.”

    마약거래에 폭력조직이 개입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마약거래에 따른 불법수익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큰 범죄조직의 주 수입원은 마약이다. 미국의 마피아와 일본의 야쿠자가 좋은 예다. 중국의 폭력조직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마약거래 외에 밀입국 불법이민 등에 관여해 이권을 챙긴다.

    정부장검사는 “우리나라도 결국 그렇게 될 것”이라며 폭력조직과 마약조직의 연계 가능성을 우려한다.

    “중국 폭력조직의 카운터파트너는 결국 국내 폭력조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직폭력이 마약과 연결되면 수사는 점점 힘들어진다. 마약수사는 철저하게 정보에 의존한다. 큰 사건은 밀고자, 혹은 배신자가 나와야 가능한데 폭력조직에서는 밀고자나 배신자에 대한 응징이 철저하므로 제보자의 부담이 무척 크다. 일본에선 연 2만 명 이상이 마약사범으로 단속되는데 그중 70%가 야쿠자다. 야쿠자가 마약공급에서 소비까지 관여하는 한 일본에서 마약은 근절되지 않는다. 이들은 절대 조직의 비밀을 폭로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국내 폭력조직들은 마약에 관련되는 것을 꺼려 왔다. 마약에 손대면 주먹계에서 ‘양아치’ 취급을 받는 까닭이다. 말하자면 제법 큰 조직의 경우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거기엔 마약에 잘못 손댈 경우 자칫 조직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험부담도 깔려 있다.

    검찰에 따르면 마약거래에 관련된 폭력조직들은 군소 조직들이다. 정중근 검사는 “일부 폭력조직이 마약거래에 관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조직 차원보다는 폭력배들이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폭력조직과 마약조직의 연대

    하지만 마약시장 규모가 계속 커지면 조직 차원의 개입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마약수사검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마약거래는 100% 현찰거래인데다 일이 어긋날 경우 쌍방 모두 손실이 크므로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때문에 폭력조직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검찰은 앞으로 마약 이권을 둘러싼 폭력조직들의 영역 확보 싸움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은 컴퓨터 세계의 해커 전쟁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 검찰의 마약수사 강화에 반발이라도 하듯 마약범죄수법은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마약수사는 함정수사 또는 공작수사다. 즉 수사기관 쪽에서 마약 구매자로 꾸며 판매자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검사들에 따르면 마약이 거래되는 현장을 잡아야만 범죄가 성립하는 마약수사의 특성상 이런 식의 수사방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법원 판례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함정수사를 하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위장 구매자를 동원하고 마약대금을 준비해야 한다.

    “예전엔 다방이나 여관 호텔 등지에서 돈과 물건을 맞교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마약수사가 강화된 요즘은 현장거래를 피하는 추세다. 현장거래를 약속한 경우도 막상 현장에 나가면 여간 애를 먹는 것이 아니다. 현장거래는 차량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 나가면 차에 위장구매자를 앉혀 놓고 수사관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차를 대놓고 감시한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돼도 사람은 안 나오고 대신 (위장 구매자의) 휴대폰이 울린다. 다른 장소를 일러주며 그리로 오라는 것이다. 그곳으로 가면 또다시 장소를 옮기라는 연락이 온다. 이런 식으로 몇 차례 장소를 바꾸면서 위장구매가 아니라는 걸 확신할 때만 판매자가 나타난다. 그런데 현장에 나타나는 사람은 판매책과는 상관없는 단순한 심부름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범은 멀리서 망원경으로 현장을 감시할 뿐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베테랑 마약수사관 유아무개씨가 말하는 함정수사의 어려움이다. 마약수사관들은 종종 ‘인간 미끼’를 사용하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얼마 전 경북 칠곡에선 검찰이 마약판매책을 잡기 위해 이미 잡힌 마약사범을 접선장소에 데리고 나갔다가 그 마약범이 차를 몰고 달아나는 사고가 일어났다. 마약범은 달아나면서 마을 주민 4명을 치었는데, 그중 한 명은 숨을 거뒀다. 이런 사고를 우려해 예전엔 현장에 동행하는 마약범을 피아노줄로 묶어 두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요즘 마약 판매자들은 현장거래보다는 ‘선대금, 후물건’ 방식을 선호한다. 물건을 건네기에 앞서 온라인 송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돈을 입금하면 택배 등의 방법으로 물건을 전달한다. 요즘 널리 쓰이는 방식은 퀵 서비스 배달이다. 약속장소에 나가면 퀵 서비스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 물건을 휙 던지고 가버린다. 물론 퀵 서비스 직원은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붙잡아봐야 수사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최근엔 더 세련된 수법이 등장했다. 바로 사물함 열쇠를 이용하는 것이다. 대금을 송금하고 나면 전화가 걸려온다. 어느 호텔 프런트를 찾아가라는 것이다. 가보면 물건은 없고 열쇠만 달랑 있다. 대개 기차역 사물함 열쇠다.

    해외 밀수품의 경우 항공우편을 이용한 택배 방식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런 경우는 정보가 없는 한 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공항을 통해 직접 들여오는 경우도 압축·진공 포장 등의 방법으로 검색대를 무사통과한다는 것이다.

    비록 판매책은 못 잡더라도 물건이라도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마약수사관들은 종종 사기성 거래에 발을 구른다. 물건은 구경도 못하고 돈만 떼인 사례가 적지 않다. 정선태 부장검사는 “선결제가 추세여서 (공작자금) 회수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 상대쪽이 거래량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10kg을 거래하기로 약속해 그에 해당하는 대금을 챙기고도 실제로는 1kg만 건네는 것이다.

    마약수사검사들에게 수사의 고충을 물을 때마다 한 목소리로 나오는 대답은 장비 부족과 모자란 인력이다.

    “송수신기, 감청 장비, 망원렌즈 등 과학수사를 하는 데 필요한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또 외국의 마약수사기관을 보면 한 번 수사할 때마다 성능 좋은 여러 대의 차량을 동원하고 헬기를 띄워 공중촬영도 한다. 이에 반해 우리는 겨우 봉고차와 승용차 한두 대 움직이는 수준이다. 현장거래는 대개 ‘차치기’ 방식으로 하는데, 차 성능이 일의 성패를 좌우할 때도 있다. 거래를 하다가도 낌새를 채면 충돌을 무릅쓰고 도주를 시도하는데, 간혹 우리보다 저쪽의 차량 성능이 더 좋아 놓치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 모 검찰청 마약수사팀은 구매자로 꾸민 정보원을 데리고 현장에 나갔다가 차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 거래를 위해 상대방 차에 탔던 정보원이 막 차에서 빠져 나오는 순간 수사 차량들이 다가가 에워쌌다. 앞은 봉고차로 막아서고 옆엔 순찰차, 뒤엔 지프를 갖다댔다. 범인이 탄 차량은 고급 외제 승용차였다. 범인 차량이 2∼3차례 치받자 봉고차가 밀려나면서 퇴로가 생겼다. 경찰관이 총을 쏴 옆구리를 맞혔지만 범인은 차를 몰고 달아났다. 한 시간쯤 뒤 차는 찾았지만 범인은 잡지 못했다.

    장기 미행과 야간 잠복을 밥먹듯 하는 마약수사관들의 근무여건은 매우 열악하다. 낮과 밤을 바꿔 살고 며칠씩 밤을 새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지검 마약수사부의 이아무개 수사관은 “마약사범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저항하기 때문에 수사관들의 위험부담률이 매우 높다”며 “수사관 수가 상대쪽 인원보다 최소한 두 배는 많아야 안전하게 제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수사관들에 따르면 마약사범이 환각 상태에서 저항하는 경우는 가스총도 무용지물이다. 여관 6층에서 뛰어내리는가 하면 칼과 가스총으로 수사관들에게 결사대항한다. 몇 년 전엔 대마 밀매사범을 잡는 데 동원된 경찰관이 마약사범의 칼에 찔려 죽은 사건도 있었다.

    마약수사관 총기 허용해야

    이와 관련, 정선태 부장검사는 총기사용법의 개정을 주장했다.

    “마약사범을 체포하는 과정에 직원들이 다치는 일은 예사다. 실적도 중요하지만 수사관들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상대방은 사제총까지 들고 나오는데 우리는 가스총과 전자봉이 고작이다. 외국처럼 마약수사관들에게는 총기를 지급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총기 휴대가 허용되는 직업은 경찰과 군인, 그리고 국정원 수사요원이다. 검찰은 관계법령의 개정을 통해 마약수사관들에게 총기 휴대를 허용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그에 대비해 마약수사관들은 현재 별도의 사격훈련을 받고 있다. 검찰은 또 경찰이나 군 출신 무술특기자를 마약수사관으로 특채할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빈약한 수사비도 걸림돌이다.

    “거래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공작수사의 첫 단계는 대금을 저쪽에 건네는 것이다. 그런데 마약구입자금이 충분치 않아 아예 수사할 엄두를 못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떤 수사에는 억 단위의 자금이 필요할 때도 있다. 지금의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런 사정을 아는 마약조직이 수사팀을 시험하기 위해 거래규모를 키우기도 한다. 그 경우 속수무책이다.”

    한편 대검 마약부는 마약 공급자와 판매자에 대한 수사강화와는 별개로 마약사범에 대한 수사방식을 처벌에서 치료 및 재활 위주로 바꿀 방침이다. 김진모 검사는 “외국에 비해 마약사범에 대한 치료·재활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 동안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삼았으나 재범률이 매우 높아 마약사범 근절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처벌 일변도 수사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마약퇴치운동본부 상담실 관계자도 “처벌보다 중요한 것은 치료”라며 “검찰 수사가 마약환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선태 부장검사는 “시대가 변하고 있으므로 수사기관도 기존 관념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30, 40대만 하더라도 마약을 반사회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10대나 20대는 다르다. 이들은 마약을 술이나 담배 정도로 여긴다. 기존 세대와는 문화와 가치관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런 현실을 인정한다면 마약사범에 대한 수사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다. 또 매년 그 수가 늘어나는 마약사범을 일일이 처벌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치료·재활 시스템을 얼마나 갖추느냐가 향후 마약수사의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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