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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美 共和黨,강경파 대 온건파

  • 이흥한 < 미 KISON 연구원 >

美 共和黨,강경파 대 온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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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편에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을 때에는 다른 편으로 옮기는 것도 정치판에서는 상식이요 불문율로 통하며, 생존의 한 방법이다. 그리고 배경이야 어떻든 제퍼즈의 반란은 정치적 행동이며 게임이었다. 보수파 논객인 로버트 노박은 제퍼즈가 배를 바꿔 탄 이유를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원의석 수가 50 대 50으로 갈려 있던 상황에서 공화당의 98세 노령인 스트롬 서먼드 의원이 타계하면 어차피 상원은 민주당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었는데, 제퍼즈 의원이 위원장 자리를 노리고 한발 앞서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25년 동안 잘 있다가 제퍼즈가 느닷없이 복도를 건너간 것(상원에서 당을 바꾼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서먼드 의원이 세상을 뜨면 제퍼즈 의원은 51번째가 아닌 52번째가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탈당 효과가 반감되어) 상임위원장 자리를 보장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인 지난해에 그는 이미 민주당 지도부와 거래를 시작했다. 상원이 50 대 50으로 똑같이 나뉘자 민주당 톰 대슐 원내총무와 다음 단계를 밟았던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노박의 이 글은 뒷말을 무성하게 만들었다. 포브스가 지적했던 우려가 나타나기 시작한 징조로도 읽힌 탓이다.

노박의 주장에 따르면 의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말 많기로 유명한 상원에서 제퍼즈 의원의 탈당 가능성을 공화당 지도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탈당 이틀 전에야 눈치챘다는 것이다. 제퍼즈 의원은 민주당과 환경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비밀리에 거래해 놓고도 탈당 결행 하루 전 공화당 온건파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부시를 비난하기는커녕 심사숙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는 것이 노박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공화당에서 빼먹을 것 다 빼먹고는 극적으로 배를 갈아탔다는 것.

배를 갈아탔든 복도를 건너갔든 제퍼즈 의원이 아무리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돌출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그의 공화당 탈당은 미국 정치 이념 변화의 속사정을 드러냈다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인 한 사람의 정치 쿠데타이기 이전에 공화당 온건 중도파라는 집단이 마침내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의 사설(5월24일자)은 ‘제퍼즈 의원은 1940년대 로널드 레이건이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꿨을 때의 심정인 것 같다. 당시 레이건은 자신이 민주당을 떠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자신을 내쫓았다고 했다’고 지적하면서, 제퍼즈 의원의 공화당 탈당을 1940년대 레이건 의원의 민주당 탈당과 견주었다.

공화당 중도파 의원들은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간 다음부터 자신들의 당내 입지가 주변으로 밀려난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노인을 위한 제조약 처방과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안을 들이밀었으나 대부분 거절당했다.

상원뿐이 아니었다. 221 대 210석으로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의 중도파 의원들도 체니 부통령에게 경고를 보낸 사례처럼 부시 행정부와 손발을 맞출 수가 없었다.

1994년 상하 양원 장악이 문제

진보 진영의 인사들은 공화당이 오늘처럼 온건파들이 극우파를 성토하는 장으로 변하게 된 것은 가깝게는 1994년의 상하 양원 장악에 직접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상하 양원을 장악한 후로 극단주의자들이 대담해지기 시작했고 당 내분이 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방정부가 임시 문을 닫게 만든 것, 클린턴을 탄핵으로 몰고 간 것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해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공화당의 톰 딜레이 의원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환경보호단체들은 모두 게슈타포 같은 곳”이라고 비난하고, 트렌트 로트 전 상원 원내총무 같은 의원이 “힐러리 클리턴은 상원의원이 되기 전에 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는 가시 돋친 농을 던지는 것 등이 모두 거만하기 짝이 없는 행태의 본보기라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보수 일변도의 강경으로 치달으리라는 것은 대선에서 체니를 부통령으로 지명했을 때부터 예견된 것이다. 그때 이미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온건파가 설 자리는 없어진 셈이다.

체니의 투표 기록은 부통령직을 그만둘 때까지 민주당 진보 진영의 공격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안전음수법안 반대, 서민을 위한 주택공급안 반대, 에이즈 실험 및 자문을 위한 연방 지원법 반대, 극빈 가정 아동의 학교 급식을 위한 기금안 반대 등이다.

보수 진영도 나름대로 온건파에 대한 불만이 많다. 뉴 깅리치 하원의장은 젊은 공화당 의원들에게 “우리 공화당의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구역질 나는 일일망정 필요할 때는 해야 한다고 격려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신보수주의의 대부로 불리는 보수파 논객 어빙 크리스톨은 “어느 정당이나 국가의 비전과 이상을 제시하긴 하지만, 특히 좌파 정당이 그 이상을 정리하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지적했다.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 즉 소득 재분배, 산업 국유화, 새로운 정부 같은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잘 짜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좌파가 말하는 ‘유토피아’란 결국 ‘아무 데도 없다(nowhere)’는 것이 문제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국 정당정치는 이념에 따른 줄서기

이 논리는 결국 우파 정당인 공화당이 민주당의 유토피아 논리에 끌려만 다닌다는 결론에 가 닿는다. 점잔만 떨어서는 할 일을 못 한다, 비열한 일이라 하더라도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는 깅리치의 항변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온건파 제퍼즈 의원의 탈당은 결국 미국의 이런 좌우 이념 극단화의 절정으로 평가된다. 동북부의 한 자유 온건파 의원이 자신의 정치 견해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제퍼즈의 반란은 정치 지도의 색 구분을 분명하게 만든 동시에, 당의 이념적 양극화 현상을 뚜렷하게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정당 정치는 이념에 따른 줄서기가 분명하다. 이념의 체로 사람들을 가려내고 추려내고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줄을 세운다. 1960년대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좌우의 폭이 넓고 넉넉했다. 공화당에는 극우파 배리 골드워터에서부터 온건파 넬슨 록펠러까지 다양한 이념이 같이 섞여 있었고, 민주당 안에도 남부 출신의 인종분리자인 제임스 이스트랜드에서부터 흑인과 백인이 같은 버스에 타야 한다고 주장한 에이브러햄 리비코프에 이르기까지 역시 상반된 이념이 공존했다.

1960년대 이후 공화 민주 양당은 조금씩 이념의 스펙트럼을 체로 걸러내기 시작했고, 공화당과 민주당의 성격이 뚜렷해지는 동시에 각당 내에서도 정치 이념에 따른 줄서기가 이루어졌다. 의회 정책 전문지인 ‘내셔널 저널’이 보수와 진보라는 두 축을 기준으로 의원들의 정치 성향을 구분한 자료에 따르면, 1999년이 처음으로 이런 줄서기가 완성된 해로 기록된다.

즉 가장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이 모두 공화당 왼쪽에 위치하고, 가장 진보적인 공화당 의원들이 민주당의 오른쪽에 위치하는 일직선 현상을 나타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왼쪽에서부터 민주당 좌파-민주당 중도파-민주당 우파-공화당 좌파-공화당 중도파-공화당 우파가 일렬 횡대로 줄을 서게 된 셈이다.

이런 분류는 당을 빠르게 결집시켰다. 1970년 의회 의원들은 소속 당이 제출한 입법안에 60%의 찬성률을 보였고, 최근 들어 소속 당 제출 법률안의 찬성률은 90%에 육박한다. 당의 정체성 확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정치의 극단화라는 부정적인 현상도 동시에 부각되었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제퍼즈 의원의 탈당은 상원에서 의견의 폭과 영역의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 지도부가 수용하는 의견의 폭이 훨씬 좁아지고,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의 극단화 현상을 혐오하는 제퍼즈 의원 같은 이가 결국은 극단화 현상에 일조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미국 시민은 중도론자들이다. 여론 조사가 그렇게 말하고 선거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이 중도화 현상은 1972년 처음 일반사회조사(General Social Survey)가 행해진 이후 차츰 빨라졌다. 의회는 점점 더 날카롭게 양극으로 극단화하고, 일반 여론은 가운데로 몰리는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더욱 눈에 띄는 현상은, 1900년대 전반기에는 집권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던 기간이 전체 시간의 85%에 이른 데 반해, 1955년 이후에는 양원을 장악하는 기간이 3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이르러 백악관은 상하 양원 가운데 최소 한쪽과 앙숙이 되었다. 이런 흐름에서 공화당은 드디어 백악관과 상하 양원을 동시에 접수하는 정치 승리를 거두었는데, 자축 잔치가 끝나기 무섭게 제퍼즈 의원의 탈당으로 상원을 민주당에 빼앗긴 것이다.

제퍼즈 의원의 탈당은 한때 공화당의 아성이었으나 이제는 과거의 영광이 되어 버리다시피 한 동북부 출신 공화당 의원들의 쇠락한 입지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동북부의 공화당은 상징적인 존재로만 남아 있었다. 그나마 제퍼즈 의원 같은 뉴잉글랜드 출신이 동북부 공화당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던 판이었다. 이젠 의회 내의 보루였던 존재마저 공화당을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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