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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미방 사건과 이회창 문부식 김현장의 기묘한 인연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부미방 사건과 이회창 문부식 김현장의 기묘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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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다양한 군상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시계바늘을 1982년 3월 어느 날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지만 사건의 전과정에 소요된 시간은 불과 20여 분, 그 20여 분을 들여다봐야만 사건을 이해하고 그 후 이 사건 참여자들의 변신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82년 3월18일 오후 2시, 20대 초반의 여성 두 명이 부산시 대청동 부산미국문화원 건물 정문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또 다른 20대 초반의 여성 두 명이 각각 양손에 물통을 들고 문화원 정문 앞으로 접근했다. 물통에 들어 있는 것은 휘발유였다.

휘발유통을 든 두 여인을 발견한 정문 옆의 두 여인은 문화원의 두꺼운 출입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곧이어 휘발유통을 든 여인들은 문화원 실내의 복도바닥에 휘발유를 쏟아붓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문을 열어준 두 여인은 곧바로 주머니에서 가스라이터와 나무젓가락에 알코올을 적신 솜뭉치를 매단 ‘방화봉’을 꺼내들어 불을 붙인 뒤 휘발유가 쏟아진 바닥에 던졌다.

잠시 후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미문화원은 불길에 휩싸였다. 네 사람의 여성은 총총히 미문화원을 빠져나와 대신동 방향으로 사라졌다.

미문화원에 불길이 치솟은 직후 미문화원으로부터 800m 가량 떨어진 국도극장 3층 복도 끝 창문이 열리면서 200여 장의 유인물이 거리로 쏟아졌다.



유인물의 제목은 ‘살인마 전두환 북침준비 완료’였고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광주시민을 무참하게 학살한 전두환 파쇼정권을 타도하자” “최후발악으로 전두환 정권은 무기를 사들여 북침준비를 이미 완료하고 다시 동족상잔을 꿈꾸고 있다”는 등 9개의 구호가 거칠게 인쇄돼 있었다.

문화원 건물에 인접한 유나백화점 6층에서도 또 다른 유인물이 허공을 가르며 뿌려졌다. 이 유인물에는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한국에서 물러가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한국 군사정권 지지를 비난하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지금 들여다보면 다소 유치하기조차 한 주장도 여과없이 실려 있지만, 사건 당시만 해도 이런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받아든 시민들은 한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미문화원이 화염에 휩싸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검은 화염에 휩싸인 건물에 소방관들이 물을 끼얹는 장면은 그 후 며칠간 텔레비전 화면을 장악했다. 뉴스마다 사건 관련 보도가 첫머리를 장식했다. 한국뿐 아니라 해외 언론에도 불타는 미문화원은 톱뉴스로 보도됐다.

미문화원이 화염에 휩싸인 그 순간 미문화원 맞은편 건물 2층 창가에는 작달막한 키에 금테 안경을 낀 장발의 청년이 이 장면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이 청년이 바로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총지휘자 문부식, 사건 당시 23세의 고신대 신학과 4학년 휴학생이었다.

미문화원에 휘발유가 든 물통을 들고 들어간 두 여인은 김은숙과 이미옥, 두 사람은 각각 고신대 교육학과와 고신대 의대에 재학중인 대학생이었다. 문을 열어주고 방화봉을 던진 두 여인은 최인순과 김지희로, 부산대 약대와 부산여대에 재학중인 학생들이었다.

이들 외에 문부식과 함께 현장 근처까지 택시로 휘발유를 운반해준 뒤 유인물을 살포한 류승열은 부산대 학생이었고, 국도극장에서 유인물을 살포한 최충언과 박원식 역시 대학생들이었다.

불타는 미문화원은 그날 이후 언론의 첫머리를 장식했다. 연일 수사속보가 보도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범인들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미문화원 방화 현장에 있던 범인들이 여학생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저놈들을 죽여라”

사건발생 19일이 지난 1982년 4월5일 문부식 등 방화사건 관련 대학생들이 다시 미문화원 주변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남들 눈을 피해서가 아니라 50여 명의 경찰에 둘러싸여 포승줄에 묶인 채였다.

검찰의 지휘하에 진행된 현장검증은 이날 아침 8시 반에 시작됐다. 식목일인데도 이들을 지켜보기 위해 2000여명의 부산시민이 미문화원 주변에 몰려들어 이 사건에 쏠린 국민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이날 현장검증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부산지검 김두수 부장검사, 최병국, 장창호, 고영우 검사 등 네 명의 공안부 검사가 지휘하는 가운데 실시된 현장검증은 주범인 문부식이 휘발유통을 들고 택시에서 내리는 미문화원 근처 중앙성당 옆에서부터 시작됐다.

양손에 수갑을 찬 채 두 경찰관의 호송 아래 경찰기동대 버스에 실려 현장에 도착한 문부식은 검거 당시 입고 있던 베이지색 골덴 잠바와 청바지 차림에 검은색 고무신을 신고 있었으며 곱슬머리 텁수룩한 모습에 얼굴은 표정을 잃었으나 고개는 꼿꼿이 세우고 범행을 재연했다.

검증장면을 구경하러 몰려온 2000여 명의 시민들은 범인들이 물통을 들고 문화원 앞 큰길가에 나타나는 순간 ‘저놈들을 죽여라’고 고함을 질렀으며, 국도극장 3층 복도 끝 창문에서 최충언 등이 100여 장의 현장검증용 불온전단을 길바닥으로 떨어뜨리자 1000여 명의 구경꾼들이 입에선 ‘와’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저런 죽일 놈들’하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중략)

이미옥과 김은숙은 양손에 휘발유가 담긴 물통 두 개씩을 들고 지하실을 빠져 나와 미문화원 뒤쪽 중앙교회를 돌아 대청로를 통해 문화원 정문으로 들어오는 장면까지 순순히 재연했다. 미문화원에 이르러 김과 이는 미리 문화원 안에 들어가 있던 김지희와 최인순이 밖으로 나오면서 문을 열어주자 휘발유를 붓고 뒤이어 김과 최가 작은 솜사탕 모양의 솜뭉치에 불을 붙여 던지는 장면을 태연히 재연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방화로 검게 탄 문화원 내부 곳곳을 쳐다보기도 했다.”

당시 신문의 보도는 다소 객관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이 사건을 보는 국민의 여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현장검증 과정과 관련, 문부식씨는 “현장검증 현장에서 ‘저놈들 죽여라’ 하는 고함소리를 듣는 순간 알몸에 돌멩이를 맞는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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