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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40년만에 털어놓은 군사쿠데타의 숨겨진 진상<2>

이한림의 울분 “박정희가 말뼈다귀냐 개뼈다귀냐”

  • 김준하

이한림의 울분 “박정희가 말뼈다귀냐 개뼈다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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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 많았던 친서 내용은 지극히 평범하고 훈시적이었다. 대통령은 친서에서 “작금 돌발적으로 발생한 사태에 처해서 우리 군의 행동은 국내외적으로 큰 파동을 주었으며 이 사태를 우리가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라고 5·16의 중대성을 강조하고 “더욱이 우리나라가 이 중대한 사태를 수습하는 데 불상사가 발생하거나 조금이라도 희생이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경고했다.

끝으로 친서는 “귀하는 이 나라 국민을 생각해 이러한 면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군의 정신적인 안정을 도모해주셔야 할 것이며 휴전선 방위에 만전을 기하고 이 나라에 유리한 방향으로 귀하의 충성심과 노력이 발휘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또한 전국민에 대해서 이 중대한 사태를 수습하는 데 불상사가 없도록 걱정하고 진력할 것을 부언하는 바입니다”라고 강한 사태수습 의지를 다짐했다.

어느 구절을 찾아봐도 쿠데타를 지지하라든지 반대로 쿠데타를 반대하라는 내용은 없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할 말을 한 것뿐이지 않은가. 그런데 장면 정권 당시 민주당 신파 소속으로 국회 국방위원장이었던 이모씨는 2001년 4월 모 월간지에 등장해 “윤대통령은 매그루더의 요청을 듣지 않고 비서 김준하(필자)를 전방1군 예하 부대에 보내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하는 친서를 전달하게 하지 않았어…” 운운하는 대담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이모씨는 5·16 당시 국내에 있지도 않았다. 후세 사가들은 편리한 대로 말하는 사람들의 증언은 귀담아 들어서는 안 된다.

정신없이 5월16일 하루를 보내고 밤새워 작성한 ‘대통령 친서’도 정서가 끝났다. 17일 중에 일선에 가서 친서를 전달할 일만 남았다. 육군 참모총장 장도영 중장은 거의 완벽하게 쿠데타 세력에 포섭된 듯했다. 그가 쿠데타 전선 전면에 나섬으로써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쿠데타 세력이 ‘힘’을 과시하는 데 큰 도움이 된 듯했다. 문제는 5개 야전군단을 거느린 제1군사령관 이한림(李翰林) 중장이었다.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쿠데타의 성패를 가르는 요체인 것처럼 보였다.

17일 청와대로 출근하자마자 이장군에게 전화를 걸고 오후 2시까지 김남 비서관과 내가 원주에 있는 1군사령부를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이사령관은 면담 장소로 자신의 군사령관 관사를 원했다. 김남 비서관은 군에 있을 때부터 이중장과는 절친한 사이였다. 김비서관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한림 중장이 쿠데타 소식을 확인한 것은 16일 새벽 3시30분 경으로 육군참모차장의 전화를 받고 알았다는 것이다.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나 1군사의 참모들은 쿠데타에 찬반 양론으로 갈라져 격론을 벌였다고도 했다.

김남 비서관이 육군에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이장군은 자기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킨 데 대해 몹시 불쾌해했을 뿐 아니라 사상적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군인들이 쿠데타 세력에 포함된 사실을 적시하면서 불만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아침 10시가 되자 두 대의 군대 지프가 청와대에 도착했다. 우리를 안내할 두 명의 중령이 따라왔다. 나와 김남 비서관은 이한림 중장과 민기식 최석 군단장을, 그리고 윤승구·홍규선 두 비서관은 다른 세 명의 군단장을 방문하도록 계획이 짜여 있었다.

“박정희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

청와대를 떠나기 직전 대통령은 서재로 나를 불렀다. “여보. 어제 당신도 박정희란 사람 보았지만 아주 간단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이한림 장군은 그를 잘 알고 있을 테니 이장군을 만나거든 박정희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고 오라고” 하며 신신당부를 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검은 안경을 쓰고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던 5월16일 아침의 박정희 소장에 대해 대통령은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던 모양이다.

40년 전의 일이지만, 5월16일 다음날 태도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선의 군단장을 만나러 간다는 것은 위험도 하려니와 생사를 점칠 수 없었던 만큼, 솔직히 무섭기도 했다. 지프가 삼각지를 막 돌았을 때 나는 안내하던 장교를 보고 “여보 중령, 어차피 늦었으니 어디서 점심이나 들고 가면 어떻겠소” 하고 운을 뗐다.

중령은 “그렇게 하시지요”라고 대답했다.

중령과 우리 두 사람은 근처에 있는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나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심약한 아내가 걱정할 것 같아 일선에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위험한 곳에 가게 된 이상 아내에게 꼭 한마디를 남기고 싶었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나는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요. 지금 대통령 친서를 가지고 일선에 가는 길이오. 아무런 걱정할 필요없소.” 아내는 몸조심하라고 했다. 그 말 끝에 나는 농담조로 “여보 만일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 재가(再嫁)해도 괜찮아” 하고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내 나이 서른하나, 아내는 스물여덟 젊은 때의 일이다. 농담조로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후련한 것 같았다.

지프가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하니 L19헬리콥터가 대기하고 있었다.

원주 1군사령부에 도착한 것은 1시 반이 넘어서였다. 권총으로 무장한 대령 한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대뜸 하는 소리가 “이 비행기가 국군 비행기입니까? 혁명군 비행기입니까?”였다.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이자가 쿠데타를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반대로 쿠데타를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내 답변에 따라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나는 그 대령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여보 대령! 나는 대통령 특사입니다. 우리 나라 대통령은 어느 나라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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