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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수’ 정수일 박사의 이슬람 문명 산책 ②

알라의 빛, 신기루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퍼지다

  • 정수일 박사

알라의 빛, 신기루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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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대의 부름을 좇아서 나타난 사람이 바로 무함마드다. 흔히 그를 가리켜 이슬람교의 창시자니 교조니 하는데, 이것은 이슬람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다. 이슬람적인 사고에 따르면 만민을 위한 보편종교로서의 이슬람은 절대신 알라가 우주를 창조한 그 시각부터 이미 있어 왔는데, 그 동안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선지자(先知者)인 무함마드에 이르러 비로소 완전무결하게 인간에게 계시된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의 창조자는 원초적으로 알라일 뿐, 그 외에는 아무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무함마드는 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은 이슬람의 전달자이고 그 실현의 인도자일 따름이다. 이슬람은 7세기 무함마드가 ‘창시’하거나 ‘출현’된 것이 아니라 다만 그에 의해 ‘알려진 것’뿐이라는 게 정확한 이슬람적인 표현일 것이다. 따라서 항용 이슬람의 ‘창조’니 ‘출현’이니 하는 말은 어디까지나 다른 종교들의 창조나 출현에 대비한 관용어(慣用語)이다.

무함마드는 고도 메카의 명망 있는 꾸라이쉬 부족의 하쉼 가문 출신이다. 550년경에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상모(喪母) 하고 고아로 자랐다. 낙타몰이꾼으로 대상에 참가해 북쪽 시리아지방을 자주 내왕하던 그는 거기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미래의 꿈을 키워갔다. 25세에 15세 연상인 부유한 과부 하디자와 결혼한 후 생활이 안정되자 메카 부근의 히라동굴에 들어가 명상과 사색에 잠겼다. 15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가 마침내 그의 나이 40에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읽어라, 창조주인 너의 주님의 이름으로 그분께서 한 방울의 정액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라는 알라의 첫 계시를 받는다. 이로부터 각성하여 ‘라술라’(‘알라가 보낸 사람’이란 뜻)로 자처하면서 유일신 알라의 종교인 이슬람을 포교하는 데 나섰다.

메카에서의 초기 포교는 온갖 탄압과 비방중상 속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리하여 활로를 찾기 위해 그는 70여 명의 신자와 함께 620년 9월24일(음력 7월16일) 메카에서 북쪽으로 400km 떨어진 메디나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이 역사적인 이동을 이슬람사에서는 ‘히즈라’, 즉 성천(聖遷)이라고 한다. 17년 후에 제2대 할리파 오마르가 이날을 이슬람력의 기원으로 선포했다. 메디나에서 무함마드는 부족들간의 고질적인 유혈복수전을 종식시키고 교세를 확장하는 데 기초하여 첫 신정국가(神政國家)체제인 이른바 ‘움마’(al-Ummah, 이슬람공동체)를 건설했다. 그는 이를 위해 알라를 최종 주권자로 하고 자신을 알라의 대리자로 하여 혈연이나 지연이 아닌 종교신앙(이슬람)에 바탕한 새로운 인간집단, 즉 ‘움마’를 건설한다는 요지의 ‘메디나 헌장(憲章)’을 반포하고 유대인들을 포함한 모든 메디나 주민들과 그 실행을 위한 서약을 맺었다. 이것은 부족적 단합정신을 아랍족 전체의 단합된 힘으로 승화함으로써 역사적 요청에 화답하는 새로운 아랍민족국가 건설의 바람직한 길이었다.

그러나 이 길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외래자로서 메디나에 뿌리내리기도 어려웠지만, 기득권세력인 메카 부족과의 충돌도 피할 수 없었다. 624년부터 627년 사이에 세차례의 큰 전투를 거쳐 메카세력을 제압하고 드디어 630년 1월 메카에 무혈입성(無血入城)했다. 이해를 이슬람사에서는 ‘정복의 해’라고 한다. 이듬해에 메카의 여러 부족들은 메디나에 사절단을 보내 메카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할 것을 서약했다. 그 다음해인 632년 무함마드는 노구를 이끌고 메카를 순례하고 부근의 아라파트산에서 마지막 고별연설을 하면서 이슬람의 승리(출현)를 세상에 공식 선포했다. 무함마드는 그해 6월 향년 62(?)세로 영면했다.



이슬람의 지속적인 확산과정

이와 같이 기원 7세기 전반 아라비아반도의 메카에서 출현한 이슬람은 그 내재적(內在的) 고유성과 역사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 광범위한 권역을 형성하면서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곳에 확산됐다. 이슬람의 확산이란 종교로서의 이슬람교와 그에 바탕한 복합적 이슬람문화의 지역적 전파를 의미한다.

일찍이 범세계적인 문명권을 이룬 이슬람의 확산과정을 통관하면, 크게 세단계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제1단계는 초전기(初傳期)다. 메카에서 메디나로의 성천을 기점으로 하여 정통할리파시대까지 약 40년을 포함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무함마드는 생전에 국가체제로서의 이슬람공동체를 건설했으며, 계시를 통해 이슬람교의 기본교리를 정립하고 그 확산의 기틀을 마련했다.

무함마드의 유업을 이은 4대 정통할리파시대의 29년(632~661)은 이슬람군의 동·서정(東·西征)에 편승하여 이슬람교가 처음으로 아라비아반도 밖 여러 지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제2대 할리파 오마르(재위 634~644년)와 제3대 할리파 오스만(재위 644~656년)시대에 일어난 군사적 정복활동의 첫 파고기(波高期)에는 이슬람세력이 동으로는 중앙아시아의 후라싼으로부터 서로는 북아프리카의 리비아까지, 남으로는 아라비아반도로부터 북으로는 아르메니아에 이르기까지 호한(浩瀚)히 뻗어갔다. 비록 군사적 정복활동기간이 짧아 피정복지에 이슬람교가 착근하지는 못했지만, 이슬람법에 따른 각종 행정조치가 취해졌다. 무슬림군사들의 이슬람적 행적으로 인해 피정복지 사람들은 처음으로 이슬람교를 접하게 되고 부분적이기는 하나 공전(公傳)과 사전(私傳)이 동시에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슬람 확산의 제2단계는 정착기(定着期)다. 이 시기는 세습적인 전제주의적 권력구조를 가진 우마위야조(661~750, 13대 89년간) 아랍제국의 건립으로부터 압바스조(750~1258, 37대 508년간) 이슬람제국의 멸망까지의 약 600년을 포함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세계적 종교로서의 이슬람교가 신학적으로 정립되고, 그에 바탕한 복합적인 이슬람문명이 정형화됐다. 또 초기의 군사적 정복활동과 힐라파제(계위제)의 확립에 따라 중앙집권적 통일제국이 출현함으로써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광활한 지역에 하나의 세계적 문명권인 이슬람권(이슬람세계)이 확고히 정착하게 됐다.

왈리드를 비롯한 우마위야조 할리파들은 8세기를 전후하여 일시 중단했던 군사적 정복활동을 재개했다. 이슬람의 서정군(西征軍)은 7세기 말엽에 북아프리카지역을 공략한 데 이어 8세기 초에는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유럽 원정을 단행하여 피레네산맥을 돌파(719)하고 아비뇽을 점령(730)했다.

한편 동정군(東征軍)은 8세기 전반에 중앙아시아 일원에 대한 원정을 재개하여 730년대 말까지는 하외지역(河外地域, 즉 트랜스옥시아나)과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서투르키스탄 전역을 장악하고 인도의 인더스강 동안까지 진출했다. 이러한 동정은 당시 그 지역을 경략(經略)하고 있던 중국 당(唐)조와의 충돌을 불가피하게 했으며, 마침내 751년에 고구려 유민의 후예인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지휘하는 당군과의 역사적인 탈라스전투가 발발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이슬람군의 승리는 중앙아시아 일대를 이슬람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렇게 8세기 전반에 이르러 우마위야조 할리파의 지배영역은 중앙아시아의 시루강안과 인도의 인더스강으로부터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와 유럽의 이베리아반도 전역까지 크게 확대됐다. 이 영역의 심장부인 시리아와 이라크 및 이집트는 두 차례에 걸친 이슬람군의 공략으로 인해 원주민들이 이슬람화했다. 외연지역인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 하외지역, 북아프리카, 안달루스(이베리아반도)의 주민들은 이른바 ‘짐마’(al-Jimmah, 피정복지의 비무슬림)의 신분을 버리고 이슬람교로 대거 개종하여 ‘마왈리’(al-Mawali, 이슬람으로 개종한 비아랍인)가 되는 현상이 점차 두드러졌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는 샤리아(이슬람법)에 준한 제반 사회적 시책이 실시되고 통일적인 중앙집권적 행정이 펼쳐졌다. 이것은 사실상 이 영역을 기반으로 하여 이슬람권이 형성됐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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