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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 성공학

가전 ‘빅3’와 맞붙은 TV업계 작은 거인

(주)현우맥플러스 최형기 사장

  • 곽희자 < 자유기고가 >

가전 ‘빅3’와 맞붙은 TV업계 작은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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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출장을 가면 보통 한 달 넘게 걸렸고, 한꺼번에 여러 나라를 돌아 가방 속엔 항상 사계절 옷을 넣고 다녔다. 아침, 저녁 시차가 바뀌는 상황에도 일에 빠져 힘든 줄을 몰랐다.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 집안 일은 거의 모르고 지냈다. 그러나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의 사업에 귀한 자산이 되었다. 특히 외국 바이어들과의 교분은 현우의 성공에 결정적 요인이 됐다.

최사장 등 대우전자의 중남미팀이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중남미 시장 전역에 진출하는 데 3∼4년이 걸렸다. 이들이 진출하기 전까지 이 시장은 일본 제품이 장악하고 있었고 삼성과 LG가 시장의 귀퉁이를 차지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 들어서면서 중남미 시장의 40%를 대우전자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시장을 잠식할 수 있었던 것은 수요자들의 요구를 세심하게 파악, 그 요구를 가능한 한 충족시키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브라질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은 완제품보다 반제품이나 부품형태로 수입하기를 원합니다. 이럴 경우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고, 관세도 적기 때문이죠. 당시 우리는 각 나라 바이어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수용해주고 그들이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도면이나 장비를 만들어 주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판로가 넓어졌어요. 이렇게 반제품이나 부품 형태로 수출을 하면 적은 재료비에 원하는 추가 기능에 따라 값을 올릴 수 있어 완제품보다 마진율이 높아요. 그리고 부품이나 반제품의 경우 일단 계약이 맺어지면 그 제품규격에 맞게 공장 시스템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쉽게 거래처를 변경하지 못해 거래가 오래 유지되죠. 그런데 이런 계약관계를 맺기까지가 쉽지 않아요.”

현지 생산성을 고려해 장비를 설계하고 가격도 적정선에서 조정해주며 다른 업체와 차별화된 영업 방법을 취하자 시간이 흐르면서 판매망은 늘어났다. 이렇게 시장이 확대되면서 대한전선에서 대우전자로 옮겨올 당시 30명이던 직원은 2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내부 조직이 커지면서 업무에 대한 의사 결정은 늦어졌다. 이 일에 남다른 열정과 재미를 느꼈던 최형기 사장은 더욱 새로운 일로 자유롭게 시장개척을 해보고 싶었지만 조직사회다 보니 제약이 많았다. 그러자 갑자기 회사에 다니기가 싫어졌다.

마침내 ‘현우’ 간판을 올리다



이런 생각이 들자 한 달 만에 그는 회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오직 ‘마음껏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대책없이 회사를 그만둔 것이다. 대우전자 시절, 별것도 아닌제품으로 해외에서 돈을 버는 걸 보고는 굳이 회사에 몸담지 않아도 세상엔 돈 벌 일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일을 해도 혼자 할 순 없다는 생각에 동료 직원들에게 슬며시 “내가 일을 시작하려는데 차제에 나와서 함께 해보자”며 의사 타진을 해보았다. 그러자 몇몇 직원들이 선선히 그러겠다고 희망 의사를 보였다. 그러나 가족들은 최사장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며 말렸다. 어머니만은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해보라”며 지지했다.

1992년 1월 그의 나이 서른아홉에 여의도에 열 평짜리 사무실을 얻어 현우맥플러스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사무실을 얻어놓고 그는 한 달간 중국 TV생산업체들을 돌아보며 시장조사를 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가장 잘 아는 TV를 인건비가 싼 중국에서 생산해 중남미 시장에 팔기 위해서였다. 시장조사를 하고 돌아오자 과거 함께 일했던 직원 한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고 현우에 합류했다.

그 후 2∼3개월 사이에 3명의 동료가 들어왔다. 최사장까지 연구원 5명이 뭉치니 기술력에서 부족할 게 없었다. 여기에 최사장의 오랜 마케팅 능력까지 갖춰져 겁날 것이 없었다. 본격적인 회사가동을 위해 각자 1000만원씩 투자, 자본금 5000만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 제품을 개발해서 중국 생산 공장에 외주를 줘 수출하려던 계획은 자금이나 인력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 차후에 하기로 하고 다른 일을 찾았다.

그때 (주)대우로부터 제품을 개발해 달라는 개발용역이 들어왔다. 그 동안 대우전자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던 (주)대우는, 대우전자가 독립해 나가면서 마케팅 채널과 인원은 있는데 팔 물건이 없자 현우와 손잡고 제품을 개발해 중국에서 생산, 수출할 계획을 세웠다. 자금력이 없던 현우로선 기술력을 이용할 수 있으니 크게 나쁠 건 없었다. 그러나 개발용역은 자금결제가 몇 개월 단위로 이루어져 아직은 규칙적인 수입원이 없는 현우로서는 회사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용역 서비스업이라 제조업보다 세율도 높고 정부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최사장은 개발한 제품의 일부를 중국공장에서 생산해 대우를 통해 수출하기로 했다. 중국공장엔 기술지원과 함께 그곳에서 생산되지 않는 부품을 직접 수출공급도 했다. 2년을 이렇게 하다보니 직접 제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모은 돈으로 공장부지를 물색했다. 싼 가격에 넓은 공간을 찾아 전남 함평까지 내려갔다. 부도로 경매에 부쳐진 공장을 직원 20명까지 함께 인수해 생산설비를 갖춘 후 바로 제품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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