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의 박모 원장은 “하루 세끼 먹는 것도 힘들던 1960, 70년대에도 성형은 있었다”고 말한다. 성형은 크게 재건성형과 미용성형으로 나뉜다. 재건성형은 교통사고나 화재로 인해 손상된 신체, 선천성 기형에 대한 치료 및 수술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6·25 전쟁 직후 재건성형 분야에서 성형수술이 시작됐다. 1950년대에 국내에 들어온 미국인 의사들이 언청이 시술을 한 것이 그 시초다.
1950, 60년대에는 무면허 의사, 소위 돌팔이들이 ‘미용’을 목적으로 성형수술을 했다. 타과 전문의가 성형을 겸하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성형외과가 일반외과에서 분리돼 전문화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경제성장과 맞물려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미용 성형의 역사는 이처럼 오래된 것이다.
성형 붐에 대한 비판의 근거는 ‘획일화된 아름다움’이다. 큰 키와 날씬한 몸매, 갸름한 얼굴, 오똑한 콧날, 주름살 없는 피부 등 미디어에 의해 모델링된 이른바 ‘미인의 조건’ 때문에 지금의 사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성형을 “왜곡된 미적 관념에 사로잡힌 여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미용성형에 치료적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재원 원장은 “성형은 일종의 심리치료”라고 말했다. 실제로 ‘남 보기 예쁜 사람’보다는 한두 가지 결점이 있는 사람들이 수술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점에 계속 신경 쓰며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느니 성형으로 해소하는 것이 낫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 ‘결점’이라는 것에 객관성을 부여하는 것도 ‘사회적 통념에 따른 미의식’이다.
압구정동 C성형외과에서는 홈페이지를 이용해 네티즌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얼굴이 예쁜 사람이 사회에서 더 우대받는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다. 7월10일 현재 응답자 1061명 중 90.8%에 해당하는 963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예쁜 사람이 사회에서 우대받는’ 현실 에서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니 생긴 대로 살자’는 식의 충고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탤런트들이 예뻐 보이는 건 매스컴의 조작 때문이야. 난 이대로도 충분히 예뻐”라고 확신할 수 있는 여성이 있다면 그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슈렉’의 피오나 공주는 만화 주인공일 뿐이다. ‘마녀의 저주를 받은 못생긴 공주가 진실한 사랑을 통해 아름다움을 되찾는다’는 환상은 ‘슈렉’에서 유쾌하게 파괴된다. 공주 피오나는 알고 보니 괴물 슈렉 못지않은 추녀였고, 영화는 두 추남 추녀가 황홀한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드림웍스가 제작한 ‘슈렉’은 ‘디즈니의 불온한 사상을 뒤집은 걸작’으로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슈렉’의 관객들은, 머리로는 마음이 아름다운 있는 그대로의 피오나를, 마음으로는 날씬하고 아름다운 피오나를 선호한다. 영화를 보고 나온 한 여성은 “피오나가 추녀로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기분이 찜찜하다. 사실은 슈렉까지 멋진 왕자로 변해야 제대로 된 영화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환자들은 주로 어떤 것을 요구할까. 남성이건 여성이건 서구적 미의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세원성형외과의 오세원 원장은 “동양인의 50∼60%는 쌍꺼풀을 갖고 있지 않다. 얼굴 윤곽도 밋밋한 것이 특색이다. 서양인은 90%가 쌍꺼풀을 갖고 있고 얼굴 윤곽도 뚜렷하다. 쌍꺼풀 수술이나 얼굴 윤곽 수술, 코 높이는 수술 등 주요 성형수술은 모두 서구적인 미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쌍꺼풀 수술 방향도 ‘둥글고 큰 모양’에서 ‘작으면서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바뀌었다. 국광식 원장은 “예전에는 둥근 얼굴에 어울리게 둥근 쌍꺼풀을 요구했다면 지금은 서구적인 모양을 많이 찾는다. 탤런트 이나영처럼 밖으로 열리는 쌍꺼풀, 약간 날카로워 보이는 모양이 인기”라고 말했다.
무조건 서구적 미인을 모방하는 풍조에도 변화는 있다. 오세원 원장은 “서구화가 한동안 유행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되 자연스럽게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수술해주기를 바라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매몰법으로 해주세요”
환자들의 요구사항은 점차 다양화, 전문화하는 추세다. 성형 부위의 모양뿐 아니라 수술방법에까지 까다롭게 신경을 쓴다.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인 만큼 환자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성형 정보를 얻는다. 예전에는 의사와 상담하러 와서도 수동적으로 조언을 듣는 환자가 많았다면 지금은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필요한 질문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환자가 더 많아졌다.
관상을 보고 와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바꿔달라고 주문하는 환자도 많다. 심지어 점술가에게 수술 날짜와 시간을 받아오는 경우도 있다. 의사로서는 스케줄이 겹쳐 난감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환자는 강경하다. 환자는 “정한 날 수술을 받아야 예쁘게 되고 운세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의사를 설득한다. 최재원 원장은 “환자가 원하는 때에 수술을 해야 심리적으로도 안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환자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말했다.
전문의들이 가장 곤란해하는 문제는 ‘환상을 갖는 환자가 많다’는 것. 심영기성형외과의 심영기 원장은 성형외과의 애로로 “성격에 장애가 있는 환자를 상대하는 것”을 첫째로 꼽았다. 상담을 통해 환자가 원하는 것과 의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을 줄여야 하지만 ‘무조건 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그래서 전문의들은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성형은 매직(마술)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주부 이진선(45·가명)씨. 이씨는 12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코 수술을 받은 일이 있다.
“언론에서는 할 일 없고 돈 많은 유한부인의 사치라고 매도했죠. 하지만 국내 수준을 믿을 수 없었어요. 게다가 성형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아서 성형수술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지요. 두 달간 여행 겸 다녀왔어요.”
이씨는 당시의 선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지금 이씨는 주름살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 압구정동의 한 성형외과에 와 있다. “숨길 이유도 없거니와 국내 의료수준도 많이 높아진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다.
성형은 마술이 아니지만 기술은 점차 완벽해지고 있다. 얼굴에서 신체 모든 부위로 확장됐고, 간단한 수술에서 복잡한 수술로 진화했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많이 행해지는 수술은 눈, 코 수술이다. 눈, 코 수술은 국내 미용성형의 초기 단계인 1960년대에 시작됐다. 심영기 원장은 “1970년대에는 유방확대와 축소 수술이 보급됐고 1980년대에는 광대뼈나 턱뼈 등 뼈를 깎는 고난도 수술이 본격적으로 행해졌다. 1990년대 들어서는 주름제거수술과 지방흡입수술이 많이 보급됐다”고 설명했다.
지방흡입도 예전에는 국소 비만을 치료하는 수준이었다. 1500∼3000cc의 지방을 뽑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몸무게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최근에는 5000∼7000cc의 대량 흡입이 시도되고 있다. 시술한 경우 몸무게 3∼4kg이 줄어든다.
D성형외과 송홍식 원장은 “10년 전 교과서에는 지방을 1500cc 이상 빨아내면 수혈이 필요하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5000cc, 많게는 8000cc까지 뽑아낼 수 있다. 출혈을 줄이면서 안전하게 흡입하는 테크닉이 발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편 의료수준이 높아지면서 복잡한 수술을 간단하고 빠르게 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달하고 있다. 쌍꺼풀 수술은 ‘절개법’이 가장 일반화돼 있지만 시간이 적게 드는 ‘매몰법’이 점차 각광받는 추세다. 매몰법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수술법이 아닌데도 매몰법으로 해달라고 떼쓰는(?) 환자가 있을 정도다.
주름살 제거 수술로는 ‘보톡스시술법’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보톡스는 주름살이 있는 부위에 약물을 투여해 주름살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시간이 적게 들고 통증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서울대의대 피부과의 서구일 박사는 보톡스를 소개할 때 늘 “차 한잔 마실 시간이면 시술이 끝나고 남편도 모른다”고 말한다.
신기술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신기술일수록 검증이 덜 됐다는 뜻이기 때문. 오세원 원장은 “장안에 화제를 몰고 왔던 기술이 많은 의료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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