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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상과 통일신라의 왕도문화·변방문화

  • 최완수 <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

비로자나불상과 통일신라의 왕도문화·변방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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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을 자세히 살펴보면 장흥 보림사 대적광전에 봉안된 과 동일 양식인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우선 지권인을 지은 것이 같고, 육계(肉)가 상투인지 머리통인지 구분되지 않을 만큼 커진 것이 같으며, 이중착의법(二重着衣法)으로 가사를 두 벌 입어 양쪽 옷깃을 풀어헤친 듯 앞가슴을 드러내 놓은 것도 같다. 보림사 철불이 858년에서 860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니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은 목과 허리가 좀 짧아지고 무릎 높이가 높아져 있다. 지권인을 지은 두 손 높이도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다 조금 더 긴장된 모습을 보여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옷주름을 도식적으로 처리한 것이나 결가부좌한 두 발을 모두 옷자락 속에 숨긴 표현도 이 불상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어놓은 요인 중의 하나다. 형식의 틀에 갇혀서 이를 탈피하지 못한 채 말라 죽어가는 신라 왕도문화의 실상을 반영하는 듯한 조각기법이다.

이에 반해 은 옷자락을 자유분방하게 멋대로 풀어헤치고, 옷주름도 사실성을 염두에 두며 형식성을 타파하고, 두 발은 시원스럽게 옷자락 밖으로 드러내 활달한 기상을 표출하고 있다.

틀에 얽매여 노쇠화해가는 신라의 왕도문화와 새로운 이념을 바탕으로 참신하고 건실한 새 문화의 창조를 모색해 가는 변방문화의 대조적인 현상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에서는 국화잎새 구름무늬와 불꽃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된 광배에 구름을 탄 화불(化佛)이 좌우에 4구씩 돋을새김되고, 그 정상 부분에는 삼존불좌상 형태의 화불이 하나 더 표현되어 모두 9구의 화불이 장식됨으로써 그 화려한 장식성을 과시하고 있다.



문성왕 이래 왕권의 정통성을 되찾고 추악한 왕위 다툼을 청산하여 실추된 왕권을 잠시나마 회복하고 난 뒤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던 해상세력과 대타협을 이루어냄으로써 일시 재봉춘(再逢春; 가을에 꽃피는 현상)을 맞이하였던 경문왕 시대의 왕권 과시 욕구가 이렇게 화려한 장식성을 요구했을 것이다.

연화대좌의 상대(上臺)는 위로 핀 연꽃잎(仰蓮)을 2중으로 돌려 장식했는데 연꽃잎 표면에 다시 배추잎새 같은 덧장식을 가하였고, 중대석에는 국화잎새 구름무늬와 사자상을 높은 돋을새김으로 전면을 장식해 놓았다. 8면을 상징하기 위해 운각(雲脚; 구름 모양으로 만들어낸 상다리나 난간 기둥) 형태의 구름당초 기둥을 8면에 세우고 그 사이 8면에 사자상을 입체조각에 가깝게 높게 돋을새김해 놓았다. 그리고 하대는 아래로 핀 연꽃잎(覆蓮; 뒤집어진 연꽃)이 쌍엽으로 장식되어 있다. 연화좌와 사자좌, 수미좌의 의미를 함축한 복합적 의미의 좌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바로 (제25회 도판 9)의 기단부에서 보여주던 복합적 대좌의 의미다. 이것이 이미 이 불상에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혹시 의 대좌도 이런 형태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철감선사 도윤(道允, 798∼868년)이 돌아간 해가 경문왕 8년(868)이고 이 조성된 것이 858∼860년이며 이 이 조성된 것이 경문왕 3년(863) 전후한 시기이니 이 셋이 서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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