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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내면의 고통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컴퓨터에 접속해 신문들을 훑어 보았다. 그러다 문득, 한 철학자가 쓴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날카로운 질문은 폐부를 찔렀다. 나는 그 칼럼을 읽고 또 읽었다. 그 칼럼은 미궁을 헤매는 나에게 한 줄기 빛을 던져주었다.
「인간이 동물에서 벗어나 죽음을 인식하는 유일한 동물로 진화한 이래,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왔다. “이 우주의 기원은 무엇인가? 신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우리는 어떤 힘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죽은 다음에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가 기쁨 속에서 혹은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누구의 의지 때문인가?”
기원전 수백년경에 ‘우파니샤드’에서 인도인들이 던진 이 형이상학적인 질문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고뇌의 원천을 표현하고 있다. 모든 철학과 종교, 과학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구하려는 인간적 노력이었다. 이 오래 되고 반복되는 질문에서 드러나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비극성!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벗어난 순간부터, 인간이란 존재는 이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답을 구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비극적 존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순박한 고대인들은 직관적 통찰을 통해 발견한 신성(神聖) 혹은 자연과의 조화에서 삶의 의미를 구했다. 서구의 중세 시대조차, 기독교의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신의 품속에서 정신적 삶을 구가하고 있었다. 아, 차라리 그 시대 인간들은 행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성을 발견한 근대 이래로 오늘날까지 시대의 인간은 비극적 이성의 사유를 철저하게 추구하여 신을 추방하고, 대신 인간 자신이 신적 존재가 되는 데서 삶의 가치를 찾았다. 역설적인 사실은, 인간 이성이 최고도로 발전시킨 현대 과학으로도 ‘우파니샤드’가 던진 이 질문에 해답을 주기는커녕, 무기력감만 더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현대 과학은, 그 질문이 담고 있는 가치론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철저히 유보하거나 외면한 채, 과학만을 위한 과학의 맹목성에 몰두하고 있었다. 혹은 현대 학문과 과학의 지나친 세분화와 전문화가 위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 인간이, 정확하게는 기업과 결탁한 과학이 공공연하게 생명을 복제하기 시작한 때부터, 인간의 몰락은 이미 예고되어왔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하나의 사물, 생명이라는 원자핵을 가진 하나의 사물로 전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생명 공학’이라는 단어는 이미 인간을 하나의 공학적 연구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태도는 사실 저 먼 과거시대의 서구 철학인 데카르트주의에서 연원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세기 후반기에 일군의 철학자가 데카르트주의를 신랄하게 공격했고, 실제로 많은 부분을 해체했지만, 그들은 그러한 부정적 해체와 파괴 뒤에 새로운 긍정적인 종합을 이루어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러한 무차별적인 해체와 파괴로 인해 현재 상황은 인식론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가치의 아노미 상태로 빠져들었고, 이런 상황은 금세기 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다. 오히려 지나친 상대주의는 저급하고 천박한 니힐리즘과 곧잘 연계되어 오늘날 가치부재의 시대를 초래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데카르트주의는 여전히 맹위를 떨쳤고, 그 극한점을 향해 치달았다. 데카르트주의가 초래한 근본적인 악은, 인간과 우주를 신성성(神聖性)의 숨결로 감싸주던 우주적 통일성을 파괴했다는 데 있다. 인간과 우주는 신의 품속에 안전하고 통일된 평화를 구축했는데, 데카르트주의는 그 신을 걷어차 버렸던 것이다.
신이 떠난 바로 그 자리에서 인간 이성의 우주적 주권을 선포했던 것이다. 데카르트주의란, 바로 그러한 인간중심주의적 가치관이었다. 그 결과 우주와 우주 내의 모든 사물 ― 생명적인 것이든, 비생명적인 것이든 간에 ― 은 신성성을 상실하고, 단순한 사물의 질서 속으로 편입되도록 강제되었다. 무엇보다 인간과 우주, 그리고 사물이 대립적이고 적대적 관계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이다. 우주와 사물은 이제 인간에게 단지 인식을 통한 지배와 인간적 유용성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데카르트주의가 말하는 것은 결국 다음과 같다. “이성이 이 세계를 합리적으로 지배할수록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며, 인간은 그런 과정을 통해 고귀한 자기 완성이라는 목적에 다가간다.” 바로 이것이 계몽적 이성의 교리이며, 근대와 오늘날 초현대라는 시대 전체를 떠받치는 정신이었던 것이다.
계몽적 이성이 확립한 그러한 신화, 즉 사물에 대한 인간의 주권과 지배권은 성경 창세기에 대한 교묘한 해석으로 한층 정당화하고 합리화했다는 점을 잊을 수는 없다. “하느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 28)” 근대 기독교(프로테스탄티즘을 포함한)는 창조주인 신을 거부하지 않는 한, 피조물인 이 우주에 대한 인간의 주권은 그대로 인정했으며, 기독교와 데카르트주의의 기괴하고 섬뜩한 결합으로 서구적 이성은 비서구사회에 대한 약탈적인 제국주의마저 정당화할 수 있었다(실제로 데카르트는 여전히 충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이것이 식민지 착취와 약탈 행위의 과정에서 어떻게 기독교와 근대 국가가 행복하게 협력할 수 있었던가를 드러내는 기원 설화다. ‘야만과 문명’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적 도식이 현대인의 두뇌 속에 각인되는 실로 거대한 착각의 역사의 시원이다.
진실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초현대적 물질문명 전체는 바로 이러한 데카르트주의적 신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초현대라는 지금의 시대도 결코 그 신화를 극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 초현대인의 가치관 속에 집단무의식처럼 각인되어 있었다. 데카르트주의는 일종의 뿌리깊은 신화다. 유물론적으로 서구화한 모든 지구촌 사람들은 이미 수백년 전에 만들어진 그 신화에 삶의 근본적인 가치관을 의존하고 있다. 이성·진보·개인의 자유 등. 그런데 데카르트주의적 인간은 비극적 인간이다. 데카르트주의적 삶은 비극적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곳은 우주와 공동체,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이기 때문이다. 신의 예정, 조화조차 없는 라이프니츠적 단독자의 좌충우돌에 의한 자기 파멸이기 때문이다. 그런 삶은 니체가 예견한 니힐리즘을 훨씬 넘어서는 비극을 안고 있다. 이것이 인간 존재론적 비극성의 근대적 특이성을 이루는 것이다.
오늘날의 초현대적 인간도 역시 비극적 인간이다. 데카르트주의에 의해 신이 죽임을 당하자, 그와 병행하여 인간도 죽기 시작했다. 신의 죽음은 바로 인간 자신의 죽음이었다. 오늘날 인간이란 존재가 기계가 되고, 여타 생물체와 다를 바 없는 단지 생물체의 한 분과로 분류되고, 길거리에 나도는 하찮은 사물처럼 존재하게 된 것도 궁극적으로는 이성에 의한 신의 살해에 그 기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죽어버렸거나 혹은 이 세계로부터 숨어버린 신을 인류가 다시 불러들이고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우리 인간은 스스로 이성에 한계를 그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이미 백 년이 넘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인간의 몰락은 이백 년 동안이나 계속된 경고에 귀를 막고 있는 과학적인 현대인들에게 주는 이 자연 세계의 답변이 아닌가! 자살 페스트는 영혼,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기를 포기해버린 이성 과학시대의 기막힌 결과가 아닌가! 어쩌면 이 자살 페스트의 광기가 한바탕 인간 사회를 휩쓸고 지나가면, 로마 문명의 몰락 이후 신의 시대가 도래했던 것처럼, 신중세(新中世) 시대라고 불릴 만한 그런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최 목사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역사 속에서 삭제되고, 신 앞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인간 자신에게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리고 사태에 대처한다면, 그리하여 인간과 세계가 전일적인 통일체로서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가 나선다면,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우리는 고대 인도인들이 던졌던 그 질문에 새로운 답을 내야만 한다.」
그 글을 읽고서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어가는 말기 암 환자처럼 방 안에서 뒹굴며 절망에 빠져 있을 게 아니라, 거리로,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어가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죽음을 뒤로 미루고, 우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 뒷동산에 있는 아내의 무덤을 찾은 후에, 차를 몰고 사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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