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호

“합병은행, 사람도 지점도 줄이지 않을 것”

김정태 국민·주택 합병은행장 후보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입력2005-03-22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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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태(金正泰·54) 주택은행장이 막판까지 시소게임을 벌여온 김상훈(金商勳·59) 국민은행장을 제치고 11월1일 출범할 국민·주택 합병은행의 행장후보로 선임됐다.

    김행장은 후보선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합병은행이 2002년에 3조원 이상의 이익을 낼 것이며 3년 임기 안에 합병은행 주식의 시가총액을 현재의 2배 이상으로 불려놓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김행장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시종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목소리로 합병은행의 미래를 낙관했다.

    -합병은행의 최대 과제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두 조직의 융화입니다. 서울은행이나 한빛은행의 경우에서 보듯 국내 은행의 합병 후유증은 심각했습니다. 더구나 국민·주택은행의 경우 우량은행 간의 대등합병이라 갈등과 주도권 싸움이 치열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어떤 복안을 갖고 계십니까?

    “우선 대화부터 해야겠죠. 조직 안정이 급선무니까. 지금은 좀 시끄럽지만 하루 하루 지날수록 조용해질 겁니다. 사람들이 사정을 다 이해하게 될 테니까요. 그 전에는 합병 자체를 반대하면서 스트라이크까지 했지만, 시간이 흐르니까 합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노동조합이야 자기들 역할이 있으니 저러는 것이고…. 시간이 좀더 지나 안정이 되면 직접 대화를 시도할 거예요. 어제, 그제도 김상훈 국민은행장과 식사하면서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러마고 하셨어요. 곧 그쪽(국민은행) 임원들도 만나야겠죠. 우리 임원들과 함께 앉혀놓고 ‘이제 우린 같은 은행이다. 서로 상의하고 책임져서 잘 해라’고 해야죠. 그 다음에는 부장과 팀장들도 만나고, 언젠가는 노조하고도 대화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주택은행에 온 지 3년이 됐는데, 그 동안 우리 직원 1만2000명 가운데 7000∼8000명쯤과 같이 식사를 했을 겁니다. 같이 밥 먹으면서 행장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은행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서로 대화하고 설득하는, 그런 다이렉트 커뮤니케이션을 통상적인 업무로 삼았어요. 그래야 다들 같은 방향으로 일을 해나갈 것 아닙니까. 똑같은 일을 국민은행 사람들에게도 할 겁니다.”



    지점은 資産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 이해하고 따라올 것이라는 자신감입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요.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요즘 세상에 빵 하나 더 주겠다며 달래고 어를 수도 없고….”

    -조직문화가 다를 텐데요.

    “조직문화가 다를수록 더 많이 얘기해야죠. 지금 저 사람(국민은행 직원)들은 저를 머리에 뿔달린 사람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신문들이 이상하게 기사를 써댄 탓도 있지만….”

    -칼자루를 쥔 것은 사실이잖습니까.

    “제가 칼자루를 쥐고 있고, 그래서 사정없이 휘두를 것이라고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보세요(손을 펴보이며), 제 손엔 칼자루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요. 말씀하신 대로 우량은행 두 개를 합병하는 거니까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첫째, 강제로 퇴직시키지 않겠다. 이건 지금까지 계속 해온 얘깁니다. 둘째, 희망자가 있으면 명예퇴직만 시키겠다. 명퇴 희망자는 두 은행에 다 있어요. 결혼을 한다든지 해서 은행을 떠날 사람들이 몫돈을 받고 나가려고 기다리고 있거든요. 셋째는 국민·주택 직원들을 당분간 섞어놓지 않겠다는 겁니다. 지금 두 은행 직원들이 굉장히 불안해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을 섞어놓으면 더 불안해 할 것 아닙니까, 낯선 곳에 혼자 내던져진 것처럼…. 그래서 교차 배치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년 3월까지 현재의 경영진을 그대로 끌고 가겠다는 겁니다.

    이 정도면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거죠. 그러니 동요하지 말고 현재의 비즈니스를 열심히 하라는 겁니다.”

    -직원들은 구조조정을 안 할 바에야 왜 합병을 하겠느냐, 두 은행의 중복점포가 50%에 이르니 그 중 상당수는 정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면서 불안해 하더군요. 지금 당장은 합병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느라 “강제퇴직이 없다”고 하지만, 합병 이후에는 효율 제고, 생산성 제고를 위해 결국 ‘칼질’이 따르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왜 그런 관점에서 보는지 답답해요. 가령 어느 거리에 두 은행 지점이 나란히 붙어 있는데, 둘 다 수신고가 3000억원씩 된다고 합시다. 이 두 점포를 합쳐서 하나만 살리고 하나는 폐쇄할 경우 이 은행의 수신고가 6000억원이 될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저희 은행 지점 중에서 좀 큰 곳은 고객이 10만명이나 됩니다. 국민은행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한 지점이 20만명의 고객을 커버할 수 있겠어요? 불가능해요. 중복점포를 하나로 줄인다는 것은 고객들더러 나가라고 하는 말이나 같습니다. 우리는 합병하면서 고객을 한 사람도 잃지 않는 것이 목표예요. 지점 줄여서 고객 쫓아내려면 뭐하러 합병을 하겠습니까, 더 늘리자고 합병하는 것인데.

    지점은 자산입니다. 현재 두 은행 합해서 고객이 2800만명이고, 지점은 1100개가 넘는데, 이게 다 소중한 자산 아닙니까. 지점이 1100개라는 것은 합병은행이 그만큼 많은 지역을 커버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두 은행과 거래하는 고객들은 앞으로 전국에서 더 편리하게 은행을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은행이 한국에 국민·주택 합병은행밖에 없는데, 왜 그런 은행의 지점들을 없애버리겠습니까. 합병은행과 거래하지 않고는 한국에서 은행 거래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되는 게 합병은행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대화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서 직원들의 생각이 제 생각과 다르니까요.”

    -중복지점을 단 한 곳도 폐쇄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아주 불가피한 경우는 있을 거예요. 합병은행이 IT 통합을 이루면 두 지점을 하나로 줄여야 할 곳이 없진 않을 겁니다. 예컨대 인구가 3만명밖에 안 되는 시골 마을에 두 은행이 지점을 각자 하나씩 갖고 있으면 문제겠죠.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한 쪽을 완전히 문 닫게 할 것이냐, 아니면 지점은 하나로 통합하고 다른 곳은 사람을 1∼2명만 배치하는 무인점포 형태로 유지할 것이냐를 따져봐야겠죠. 100m가 떨어져 있든 50m가 떨어져 있든 기존에 거래하던 고객이 불편해서는 안되니까요. 이런 것은 전산통합이 완전히 이뤄진 다음에나 고려해볼 문제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원칙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객을 놓치지는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지점도, 직원도 가급적 많이 유지해야 합니다.”

    -특히 국민은행 쪽에서는 김행장께서 주택은행 직원들을 20%나 감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셔도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상황이 그랬어요. 제가 IMF 사태 직후에 주택은행에 왔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구조적으로 은행에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나갔어요. 그게 어떤 사람들이라고 얘기하면 그 사람들이 펄펄 뛸테니 설명은 못하겠지만…. 직원들에게 밥 사주면서 충분히 대화했습니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건 다 당신들을 위한 일이었다고, 당신들이 그렇게 노력한 결과 은행 경영도 좋아지고 주가도 올라가지 않았느냐고.”

    -합병은행의 주요 주주인 골드만삭스는 벌처펀드의 성격에 가깝지 않습니까. 그 쪽에서는 단기간에 합병은행의 주가를 올려 지분을 매각할 속셈일 테니 우선 인원이나 지점을 줄여서 합병의 효율을 높이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들 생각이야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합병은행이 우리나라 은행이라는 사실입니다. 주주가 누구든 우리 국적을 가진 우리 은행이예요. 한국 사람이 경영을 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봅니까? 그 사람들, 경영에 참여하지도 않아요. 주택은행 2대 주주인 ING도 이사 한 명만 보냈을 뿐입니다. 이사가 모두 15명인데 그 중의 한 명이 무슨 대단한 역할을 하겠어요? 의견을 내면 참고할 따름이지. 경영은 행장 이하 전 경영진이 책임을 지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쓸데 없는 걱정을 할 까닭이 없어요.”

    -합병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골드만삭스가 자기들 의사를 밝힌 적은 없습니까?

    “그 사람들이 왜 의사를 밝힙니까. 잘못하다 욕만 잔뜩 얻어먹게요. 그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고 다니면 저는 책임질 일이 하나도 없잖아요.”

    -두 은행의 자회사 중에도 신용카드나 투신운용처럼 업역(業域)이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 이 쪽은 합병 후에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그 쪽에서도 많이들 불안해하고 있는데요.

    “자회사 문제는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본체’에 신경 쓰기도 바빠요. 두 은행을 어떻게 잘 통합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죠. 자회사 중에는 같은 일을 하는 곳도 여러 개 있고, 세 군데가 같은 일을 하는 곳도 있는가 하면, 겉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는 일이 다른 곳도 있어 각양각색입니다. 이걸 다 종합적으로 검토해봐야겠죠. 그 쪽은 규모도 작고 사람도 적으니 바쁠 게 없습니다.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잖아요. 동시에 일을 벌여서 뭐 득될 게 있겠습니까.”

    ING 추가 투자는 미정

    현재 국민은행의 1대 주주는 18%의 지분을 가진 골드만삭스다. 주택은행의 2대 주주는 지분 9.9%를 가진 ING다. 정부는 국민은행 지분 6.5%와 주택은행 지분 14.5%를 보유, 각각 2대 주주와 1대 주주로 올라 있다. 두 은행이 합병하면 합병비율에 따라 정부가 합병은행 지분 9.68%를 보유, 최대 주주가 된다.

    그런데 주택은행이 ING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맺은 약정서에는 ING의 지분이 9.9% 이하로 떨어질 경우 전략적 제휴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90일 안에 원래 지분을 회복하도록 돼 있다. 주택은행이 국민은행과 합병하면 ING의 지분은 4%대로 떨어진다. 따라서 ING가 약정서대로 지분율을 계속 유지한다면, 다시 말해 합병은행에서도 9.9%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면 정부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 최대 주주가 된다.

    김정태 행장을 인터뷰하던 날 아침, 한 경제신문은 주택은행 관계자의 말을 인용, ING가 정부 보유지분을 사들이기로 결정해 합병은행의 최대 주주로 올라서게 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정태 행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펄쩍 뛰었다.

    “오보예요. 내가 신문사에 전화까지 했어요. 투자약정서에는 ING가 8∼9.9%의 지분률을 유지해야 전략적 제휴관계가 성립한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ING가 더 들어오느냐 마느냐는 그 사람들 마음이예요. 그들은 이제 막 검토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다 결정된 것처럼 보도했어요. ING도 우리도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는 만큼 이런 결정에 대해서는 공시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 보도를 믿고 주식을 샀다가 손해본 사람은 언론이 책임져야 해요.”

    -ING가 추가로 투자할 경우 정부 지분을 사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까.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장내에서 그렇게 많은 물량을 사들이면 증시에 혼란이 올 것 아닙니까.

    “지분은 장외에서 살 수도 있고, 주가가 올라서 골드만삭스가 내다판 지분을 사들일 수도 있고, 증자를 시켜주는 방법도 있어요. 정부는 팔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왜 정부 지분을 산다는 얘기가 나옵니까? 그건 정부한테 물어볼 일이예요.”

    -정부가 민간은행 지분을 조속히 매각하겠다고 IMF를 비롯해 대내외에 천명하지 않았습니까.

    “정부는 주택은행 주식을 주당 5000원에 샀는데, 4만원이 넘어가도 안 팔았어요. 무상증자도 하고 주식 배당도 했으니 실제 매입가는 5000원도 안 되죠. IMF 사태 난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누가 가진 지분을 사들이든 ING가 전략적 제휴를 계속하긴 하겠죠?

    “계속할 수도 있고 깰 수도 있다는 게 지금 그 사람들 얘깁니다. 꼭 들어와야 된다는 법은 없는 거니까. 최종시한은 11월1일부터 3개월 후까지예요.”

    -국민·주택 합병은행은 자산 170조원대의 한국 최대 은행입니다. 하지만 나라의 경제규모는 그대로인데 은행만 대형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은행은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게 낙후돼 있습니다. 우리 경제규모가 세계에서 열한 번째니 열두 번째니 하는데, 우리나라에 그런 규모의 은행이 어디 있습니까. 경제개발 과정에서 은행은 자금을 조달하는 기능만 했지, 상업적인 마인드로 경영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국제경쟁력이 가장 뒤지는 업종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래서 합병이 필요한 겁니다. 스위스나 네덜란드를 보세요. 경제규모는 작아도 ING그룹이나 UBS 같은 세계적인 은행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네덜란드는 인구가 겨우 1600만명입니다. 스위스 경제규모가 우리 경제규모와 비교가 되겠어요? 그러니 우리 경제규모에 걸맞는 선진화된 대형 은행이 꼭 필요합니다.”

    -경제가 크게 발전하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을 대형화하면 무모한 경영을 하기 쉽다는 우려죠. 자산을 운용할 만한 곳은 그대로인데 수신고는 넘쳐나니 돈 빌려줄 곳을 찾지 못해 투기적인 투자로 기울 위험이 높다는 얘깁니다.

    “고객은 크게 개인고객과 기업고객으로 나눠집니다. 개인고객은 서민층(연소득 2000만원 이하), 중산층(2000∼4000만원), 부유층(4000만원 이상)으로, 기업고객은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지금까지 주로 서민층과 중산층을 상대로 영업을 했어요. 돈을 빌려줄 곳이 없다고요? 천만에요. 우선 개인고객 중 국민·주택이 취약했던 부분, 즉 부유층 대상 영업을 강화할 것입니다. 이런 고객은 1년에 두세 번밖에 은행에 나오지 않지만 커다란 수익을 안겨줍니다. 프라이빗 뱅킹을 통해 이 쪽 고객을 늘려가면 수익기반이 크게 확대될 겁니다.

    기업고객 중에서는 견실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돈을 빌려주겠습니다. 이들에 대한 대출시장 규모는 대기업의 그것보다 몇배는 더 큽니다. 엄청난 시장이죠. 대기업 여신은 가급적 줄여갈 생각입니다. 대기업은 경영의 투명성이 아직 만족스럽지 못해요. 우리 사회가 의사결정 과정과 회계의 투명성을 계속 요구하는데도 큰 변화가 없어요. 지배구조도 별로 개선할 기미가 없고. 더구나 이런 부분이 확실한 대기업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쓸 이유가 없겠죠. 자본시장에서 직접 돈을 끌어다 쓸 수 있으니까요. 선진국 은행에서는 개인부문과 기업부문의 비율이 대개 80대 20 정도입니다.”

    -그런 은행만 있는 건 아니죠. 기업 위주로 돈을 빌려주는 은행도 많지 않습니까.

    “그건 투자은행(investment bank)들이죠, 골드만삭스 같은. 이들은 일반 은행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기업공개도 시키고 회사채도 발행하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몇 개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대주주인 골드만삭스와 맞붙어서 이길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가령 한국통신 같은 데서 ADR(해외주식예탁증서)을 발행할 때도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주관하지 않습니까. 한국통신, 한국전력, 포스코 같은 대기업이 발행한 물건을 세계시장에 나가서 10억달러, 20억달러어치씩 팔 능력이 우리한테 있습니까? 인베스트 뱅킹은 원래 증권회사에서 하는 일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기업에 돈을 준다면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에 주겠다는 겁니다. 대기업은 이런 과정을 거쳐 자본시장에 가면 은행보다 훨씬 싼 이자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요.”

    보험에서 자산관리까지

    -국내 자본시장이 워낙 불안하다 보니 멀쩡한 기업도 은행 돈줄 끊기면 그냥 문닫을 판 아닙니까.

    “우리 국민의 개인 금융자산이 GDP의 1.5∼1.6배쯤 된다고 합니다. 과거에 1.78배까지 올라갔다가 주가 하락으로 좀 떨어졌다고 해요. 미국 등의 선진국은 이게 3.7∼3.8배쯤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의 개인 금융자산 규모는 상당한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어요. 저희가 개인고객 대상의 소매금융에 치중하겠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결국은 이게 자본시장을 살 찌울 수 있습니다.

    또한 선진국에선 개인 금융자산이 주식, 예금, 보험, 연금, 채권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어요. 금융자산에서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밖에 안돼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개인 금융자산의 54%가 예금이예요. 이렇게 많은 돈이 은행금고 안에 들어 있으니 자본시장에 피가 돌 리 만무하죠. 이제는 은행이 기능을 다양화해서 자본시장으로 돈이 흘러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예금을 받아 대출해주는 전통적인 은행 기능으로는 어려운 일 아닙니까.

    “예금, 대출, 그리고 신용카드 업무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죠. 하지만 2800만명의 고객과 1100개가 넘는 지점망을 활용하면 다양한 기능을 보탤 수 있습니다. 흔히 비(非)은행업(none banking)으로 분류되는 증권, 보험, 리스, 자산관리, 뮤추얼펀드 등의 제2금융권 상품, 인터넷 뱅킹, 모바일 뱅킹 등의 전자상거래, 채권회수, 콜센터, 프로세싱 센터 등의 유틸리티 서비스가 그런 예죠.

    가령 콜센터는 현재 주택은행에서도 운영하고 있어요. 600여명의 직원이 고객들에게 전화상담을 해주고 있는데, 전국 지점으로 전화를 걸면 콜센터로 먼저 연결됩니다. 고객은 은행까지 안 나가서 좋고, 은행 직원들은 일하다 말고 전화나 방문상담에 응할 일이 없어 좋죠. 합병은행이 출범하면 규모도 키워야겠죠. 그렇게 되면 은행 일뿐 아니라 쇼핑센터나 제2금융권의 일도 해줄 수 있어요.

    프로세싱 센터는 은행 지점의 후선업무를 전담하는 곳입니다. 대출서류를 챙긴다든가 등기업무 같은 것을 주로 하는데, 요즘은 보험회사도 대출서비스를 하니까 이곳에서도 은행 대출 지원업무는 물론, 수수료를 받고 보험회사 대출업무를 대신해줄 수도 있어요.

    다시 말해 은행이 갖고 있는 인력, 시설, 제도를 모두 동원해 다양한 수익기반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야 예대마진에 급급하지 않고 다양한 수수료 수입을 통해 경영효율을 높일 수 있어요. 아직 국내에서는 은행들이 이런 돈벌이를 못하게 해놨지만, 선진국 은행에서는 이미 사업범위를 이런 데까지 늘려가고 있어요.

    물론 우리 은행더러 당장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 증권사며 보험회사, 투신권에서 난리가 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고 봅니다. 많은 고객과 지점을 가진 은행에서 이런 다양한 상품을 팔면 예금에서 돈이 빠져 나가게 됩니다. 이 돈은 결국 자본시장으로 흘러들어가죠.”

    -국내 최대의 합병은행은 돈도 잘 벌어야 하지만, ‘최소한의 공익성’은 갖춰야 하다는 주문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취임하자마자 금리가 왜곡돼 있다고 주장해서 한국은행 총재와 논쟁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만, 제가 앞장서서 정기예금 금리를 낮춰온 것도 그런 시각에서 봐주세요. 은행이 이익 보자고 금리를 낮춘 게 아닙니다. 정기예금 금리를 낮추면 그 돈이 은행을 빠져나가 자본시장으로 간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한 일입니다. 결국은 그게 기업들의 투자와 연결될 테니 그런 것도 은행이 공익적인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공익성도 좋지만 일단은 은행이 생존하는 게 먼저고 사회적 기여는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라고 봅니다.

    또한 은행으로서는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여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 은행이 신용대출 비중을 높이고 있는 것도 여신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라고 봐요. 지난해 신규대출로 기업에 빌려준 돈 중에 79%가 담보없이 신용으로 나갔습니다. 지난 1/4분기에는 84%가 신용대출이었어요. 정밀한 신용평가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기업들도 다 압니다. 예를 들어 주택은행은 ‘VIP(Value Improvement Program)’라는 신용평가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령 A라는 기업이 있으면 저희가 사전에 다각도로 이 회사의 가치를 분석합니다. 그래서 300억원 정도는 빌려줘도 괜찮겠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 회사가 B은행이나 C은행으로부터 100억원을 차입하고 있다면 우리 직원이 A회사로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조사해보니 당신 회사에게 300억원은 대출해줄 수 있겠는데 돈을 쓸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게 상상할 수나 있는 일이었습니까.”

    -합병은행이 11월1일 출범합니다만, 국민·주택은행 고객이 아무런 불편없이 두 은행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까.

    “‘데이 원 프로그램’이란 게 있습니다. 출범하는 날부터 은행 거래의 70% 이상은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데이터베이스 전체를 포함한 전산통합이 완료되는 데는 1년 내지 1년 반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루라도 빨리 끝낼수록 이익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습니다. 은행의 실질적 통합은 전산통합이거든요.”

    금리 더 내려갈 것

    -김행장께서 취임하신 후 주택은행 주가가 수직상승, ‘김정태 주가’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습니다. 앞으로 합병은행의 주가는 어디까지 올려놓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목표 주가 얘기했다가 합병은행장에 취임하기도 전에 감방 가려고요? 이 말씀만 드릴께요. 주택은행의 PER(주가수익비율·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수치. 이 수치가 낮을수록 회사가 창출하는 순이익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된 상태로 본다)가 4배쯤 된다고 합니다. 홍콩의 은행들은 15~20배까지 가고 미국 은행들은 30~40배씩 된대요.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량하고 이익을 많이 내는 주택은행 주가가 저 모양이라는 얘깁니다. 주택은행은 자본금이 5900억원인데 지난 상반기에 5700억원을 벌었습니다. 액면가 5000원짜리 주식 하나가 5000원씩 벌어들였다는 뜻이죠. 그런데도 주가가 저래요.

    우리만 이런 게 아닙니다. 삼성전자의 PER가 7배정도인데, 삼성전자보다 훨씬 못한 대만 반도체업체들의 PER가 17∼18배쯤 된다고 해요. 문제는 국가신용등급입니다. 국가등급이 낮으니 한국시장이 전체적으로 저평가돼 있고, 은행이 아무리 돈을 잘 벌어봐야 어느 선 위로는 뛰어오르질 못하는 거죠. 국민·주택은행이 합병을 했으니 만큼 국가신용등급이 올라가면 한국의 리딩뱅크로 인정받을 겁니다. 주가도 오르고, 해외에서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끌어올 수도 있겠죠.”

    -수신금리는 앞으로 얼마다 더 떨어질 것 같습니까.

    “못박아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아직도 더 내려갈 여지가 있습니다. 오늘 1년짜리 금융채 금리가 5.2%예요. 그런데 1년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5.6%입니다. 여기에다 지불준비금, 예금보험료 같은 관리비용을 보태면 은행이 실제로 부담하는 금리는 6.1% 정도 됩니다. 채권금리가 정기예금 금리보다 높아야 정상인데, 지금은 거꾸로예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은행들은 기관들의 예금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금리가 더 내려가야 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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