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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의약분업 대통령도 망설였다”

‘DJ 동서’ 서재희 전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장의 4시간 격정 토로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의약분업 대통령도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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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심평원에 출근하고 보니 어떠시던가요. ‘준비 안된 의약분업’임을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셨을 법도 한데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의약분업은 매우 바람직한 제도입니다. 문제는 준비가 너무 안돼 있다는 거였죠. 그래도 심평원장을 맡은 건 기왕 이렇게 된 일, 하루 빨리 정착을 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의약분업의 최고 목적이 뭡니까. 약물 오·남용 방지지요. 이걸 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병원과 약국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면 좋으련만 그게 안되니 조정하는 기관이 필요한 거고, 그것이 바로 심평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조직조차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더라 이 말이예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심평원이 출범하기 전, 심평원 주비위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놓은 일이 없더군요. 처음 와 보니 직원 1270여 명 중 500여 명이 심사업무를 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한 달에 6억건씩, 그러니까 한 사람이 하루 3000건씩을 심사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설상가상 의약분업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병원처방전뿐 아니라 약국쪽 청구내역까지 심사해야죠. 일이 딱 두 배로 늘었다고 보면 될 겁니다.

더 큰 문제는 병원-약국 간 연계검사가 불가능하더라는 거예요. 처방내용과 조제내용을 함께 심사해야만 허위·과당 청구를 제대로 찾아낼 수 있는데, 양쪽 급여청구 시점이 다르고 전산화되지 않은 청구도 많아 비교 자체를 할 수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심평원 심사직원들은 간호대를 나오고 종합병원에서 2~5년 이상 근무하다 뽑혀 온 사람들입니다. 고급 인력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박봉에 매일 밤 10시, 11시까지 꼼짝도 못하고 일을 합니다. 공휴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어요. 또 인사적체가 심해 4·5급이 대다수를 차지해요. 승진을 시켜주려 해도, 그러려면 원칙상 지방 근무를 하고 와야 되잖아요. 대다수가 가정주부인 사람들이 남편·자식 놔두고 지방에 가기가 어디 쉽습니까.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만두려는 사람들을 붙잡고 얼마나 통사정을 해야 하는지….”

심평원의 열악한 업무 상황을 이야기하며 서 전원장은 한층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직원들의 고생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목이 메어 한참씩 말을 멈추기도 했다.

“우리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보험노조가 몇 달씩 파업을 해도 아르바이트생 써서 그럭저럭 운영되지 않느냐, 우리는 그렇게 안된다, 여러분은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이다, 꼭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 달라…. 독립하면서 오히려 축소된 기구, 책상 놓을 자리도 넉넉지 않은 사무실, 최선을 다하는데도 쏟아져 들어오는 질책. 그런 가운데서 직원들을 다독이고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서 전원장은 그래서 우선적으로 추진한 것이 사옥 매입이라고 했다. 그러나 심평원의 이러한 계획은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심평원이 재정파탄 와중에 500억원대 사옥을 매입하려는 것은 낭비 아니냐”는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새 사옥 매입은 불가피합니다. 현재 심평원은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건강보험회관(15층)의 9개층과 인근 건물의 1개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단 건물 중 4개층은 심평원 소유지만 나머지들은 임대해 쓰고 있지요. 그 비용만 매월 9000만원 이상이에요. 게다가 사회보험노조는 노상 파업 중이라 어수선하기 그지없지, 또 올해 들어 두 차례에 걸쳐 임시직 300여 명을 충원하고 나니 책상 놓을 자리조차 마땅치 않더라구요. 여직원이 많아 임신 중인 이들도 적지 않은데 점심시간에 잠시 허리 누일 방 한 칸이 없는 겁니다.”

건물 매입 비용 500억원은 자체 기금 350억원과 보험공단 건물 중 150억원 가량의 심평원 지분을 은행에 저당잡혀 융통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또한 예산에 맞는 ‘싼 건물’을 찾지 못해 답보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심평원과 서 전원장을 가장 곤경에 빠뜨린 것은 1999년 1.38%에 이르던 의보 청구비 삭감률이, 의약분업에 따른 급여청구가 본격화한 2000년11월~2001년 2월 사이에는 0.78%로 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의보 재정 파탄 논란이 극에 달했던 지난 3월, 이런 수치가 발표되자 심평원은 언론과 야당, 시민단체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았다.

“약제비 심사 말라” 명령한 장관

-지금까지의 설명대로라면 삭감률이 떨어진 것은 전적으로 의약 분업 실시 때문이란 건데요.

“물론 근본 원인은 그렇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훨씬 더 복잡한 사정이 있었어요. 제가 참 이런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복지부에서 우리한테 약제비 심사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약제비 심사를 하지 말라니. 이는 약국에서 올라오는 의보 청구액은 한 푼도 깎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 의보 재정 파탄 위기의 주무부처인 복지부에서 어떻게 이런 지시를 내릴 수 있었을까.

“앞에서도 말했듯 당시 심평원은 약제비 심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병원과의 연계심사가 안 되는 것도 그렇지만, 전산화되지 않은 청구가 (의약분업으로) 폭주해 제 때 의보 급여를 지급할 수 없었어요. 약사회에서 제 방까지 찾아와 “왜 빨리 급여를 내놓지 않느냐”고 항의하기도 했지요. 저 역시 “약국들에서 제대로 올리면 왜 돈이 안나가겠느냐”고 맞받아칠 수밖에요. 하여튼 그렇게 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습니다.”

지난해 11월이었다. 서 전원장은 심사직원 360명을 증원해 달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들고 복지부 모실장을 만났다. 심사 청구 100건이 들어오면 그 중 70%는 건당 진료비만 보고 큰 문제가 없으면 그냥 넘겨야 했던 상황인 만큼 인력 충원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한 건 심사 소요시간을 4~5초로 잡았을 때 360명을 증원하면 60%는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심평원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그 실장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뭣 때문에 약제비 심사까지 하냐, 약국은 병원 처방대로 약만 지어주는 곳 아니냐, 그 일 안 하면 업무의 반은 없어지는 것이니 인력 충원은 해 줄 수 없다….’ 그러면서 ‘인력 충원은 구조조정에 역행하는 것이라 원장님 신상에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더군요.

기가 막힐 밖에요. 의료비에서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소 3분의 1 이상입니다. 그런데 그걸 심사하지 않고 무사통과시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병원 처방대로 짓는다지만, 막말로 병원에선 3일치만 주라고 했는데 서류에 0 하나 더 붙여 30일치라고 해버리면 그 낭비를 어떻게 합니까. 또 환자들이 약국에 가서 조제비를 내는 데는 병원에서 내 준 처방전에 약물 오·남용 소지가 있으면 그걸 발견해 재조정해달라는 뜻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 잘못된 처방전 그대로 약을 짓는 것도 지적이 돼야지요.”

화가 난 서 전원장은 그와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그리고 얼마 후 최선정 당시 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약사들이 보험급여가 빨리 안나온다는 이유로 다시 파업을 하려 하니 약국 심사는 생략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어쩔 수 있습니까. 지시대로 할 밖에요. 그래도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약제비 심사 필요성을 담은 공문을 만들어 복지부에 올렸습니다. 결국 복지부에서도 뒤늦게나마 중요성을 인식했는지 ‘심사는 정확히 하되 5일 이내에 끝내라’는 공문을 보냈더군요. 그러느라 한 일주일 정도 아예 약제비 심사를 못했습니다.”

서 전원장의 얘기대로라면 의약 분업 대책 미비와, 의·약업계에 속절없이 끌려 다니는 복지부의 원칙 잃은 행정으로 올 초 삭감률이 급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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