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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만 먹는 사람들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thwang@donga.com

풀만 먹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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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채식 흐름 가운데서 가장 주목할 곳은 쇠고기를 좋아하는 나라 미국이다. 미국을 방문해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현재 세계에서 가장 체구가 큰 사람들은 아마도 미국인일 것이다. 미국인은 둘 가운데 하나가 100kg이 넘는 거구를 이끌고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다. 이 모든 것이 미국인들의 육류 위주 식생활 문화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다이어트 산업이야말로 엄청난 부를 낳는 산업이다. 미국의 채식 바람은 바로 이 다이어트 열풍과 함께 시작되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채식인구를 5∼7% 로 보고 있다. 1% 정도에 불과한 한국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수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채식주의자는 히피족과 같은 시선을 받았다. 이는 히피들이 고기 대신 각종 채소를 넣은 베지버거를 먹고, 소시지 대신 두부를 넣은 두부도그 같은 이상한 음식을 창안하고 먹어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채식 바람은 패스트푸드 업체에도 불었다. 패스트푸드 업체인 ‘에이미즈 푸드’는 일찍감치 채식주의 바람에 편승해 떼돈을 벌었다. 이 업체는 창업 8년 만에 월 100만개의 패스트푸드를 판매하여 채식냉동 패스트푸드업계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베지버거뿐만 아니라 피자, 라자냐, 부리도, 애플파이 등 다양한 메뉴와 채식을 절묘하게 결합한 것이 성공 비결이었다. 고기와 유제품, 달걀을 배제하고 채소도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것만 쓴다는 철저한 ‘건강식품 전략’도 먹혀들었다.

‘홀섬 앤 허티 푸드’와 ‘판타스틱 푸드’도 채식주의를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판스틱 푸드의 경우 디즈니랜드에 베지버거를 공급하고 캘리포니아의 주요 슈퍼마켓을 통해 제품을 판매한다.

채소 패스트 푸드 가운데 가장 성공을 거둔 것은 베지버거다. 쇠고기 대신 콩과 각종 채소를 혼합하고 쇠고기와 흡사한 맛을 내기 위해 향료를 첨가했다. 지금까지의 햄버거와는 다른 맛이지만 크게 히트했다. 그래서 대형 식품회사인 필스버거까지 판매 경쟁에 뛰어들어 주요 슈퍼마켓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베지버거를 월 1억개 이상 판매하는 업체가 늘어나자 대형 슈퍼마켓과 레스토랑들은 앞다투어채식 메뉴를 채택하고 있다. 이제 미국의 ‘인터내셔널 하우스 오브 팬케이크’, ‘하드록 카페’, ‘레드 로빈’ 등의 전통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베지버거 같은 채식요리를 주문하기가 어렵지 않게 되었다. 베지버거, 두부도그, 콩치즈 같은 음식은 소규모 건강식품점에나 있는 제품들이었으나 이제는 대형 슈퍼마켓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또 채식 전문식당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채식 시장 아이템 가운데 가장 크게 인기를 끄는 것은 두부다. 각종 채식에 감초처럼 끼어 있는 두부는 이제 10억달러짜리 대형 시장을 확보했다. 아시아 저개발국가나 1970년대 히피들이 즐겨 먹던 맛없는 음식 두부는 이제 미국인의 입맛을 끌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막상 채식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채식만으로는 영양소가 부족하지 않을까? 채식으로 상을 차릴 때는 잎·줄기·뿌리채소와 과일을 골고루 포함시켜야 한다. 그래야 영양소를 고르게 섭취할 수 있다.

미국에서 인기 끄는 두부

채식나라 등 인터넷의 여러 건강동호회를 찾아보면 다양한 식단을 볼 수 있다. 일단 주식으로는 백미보다는 현미밥이나 잡곡밥을 먹는 것이 좋다. 현미의 영양가는 백미보다 5배나 높다. 해초류를 많이 먹는 것도 중요하다. 미역 김 다시마 등에는 몸에 좋은 칼슘과 미네랄이 듬뿍 들어 있다. 영양 불균형도 막아준다. 땅콩 같은 견과류도 입맛을 돋우고 영양을 보충해준다. 땅콩 호두 아몬드에 들어 있는 불포화지방산은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들깨 참깨 은행 같은 종실류도 마찬가지다. 단백질덩어리인 검은콩 완두콩은 날것으로 먹기 힘들므로 두부나 콩가루로 만들어 자주 먹는다.

고기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기 대체음식도 있다. 밀고기, 채소햄 같은 음식이 그것이다. 밀고기는 밀이나 콩가루에 들어 있는 글루텐 성분을 이용해 만든 반죽이다. 밀고기는 스테이크, 탕수육, 고추찜, 전골, 불고기, 산적, 찜, 채소볶음 재료로 두루 쓰인다. 특히 밀고기 볶음이나 구이는 칼로리가 높지 않으면서도 조금만 먹어도 배가 든든하다.

채식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각광을 받은 것이 사찰 음식이다. 서울 보타사에 있는 사찰음식문화연구원 등 사찰 음식을 배울 수 있는 곳마다 주부들이 몰리고 있다.

정신 수행을 도와주는 사찰음식은 상식과 약식, 병인식으로 나뉜다. 유형별로는 저장식품류와 신선한 식품을 장기보존하기 위한 건식품류, 산중 스님들의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한 부각류가 있다. 그 밖에 산채류와 약용식품류, 불교의례음식과 함께 발달한 다과류, 그리고 천연조미료가 있다.

저장식품은 월동에 필요한 영양소를 다양한 방법으로 섭취하게 도와준다. 김치를 비롯해 각종 장류와 장아찌가 꼽힌다. 사찰김치는 오신채를 쓰지 않는 계율에 따라 파 마늘 젓갈을 넣지 않고 생강과 소금만으로 담근다. 정제되지 않는 굵은 소금을 기본으로 하고 젓갈 대신 발효식품인 간장 또는 된장을 넣어서 담그기도 한다. 특히 늦은 봄까지 먹을 김치는 소금을 많이 넣고 다른 양념은 전혀 쓰지 않으며 고춧가루도 적은 양만 넣는다.

장류로는 된장과 고추장, 보릿가루와 고추씨가루를 넣어 만든 막장, 비지를 띄워 만든 비지장과 청국장 등이 있다. 송이버섯을 넣어 만든 송이버섯간장, 고추간장 등도 채소를 맛있는 음식으로 만든다.

제철에 나는 신선한 식품을 장기간 보존하기 위해 햇볕에 말리거나 소금물에 데친 뒤 말려서 가루를 내기도 한다. 다시마, 김, 표고버섯, 능이버섯, 각종 곡류와 누룽지, 땅콩, 호두, 국수, 호박고지, 박고지, 차 종류와 약재 등이 대표적이다. 이 식품들은 철이 지나 필요한 경우 요긴하게 쓰인다. 찬밥도 말려 두었다가 미숫가루를 내어 먹거나 고추장 담글 때 활용하기도 한다.

각광받는 사찰음식

부각류는 육류를 금하는 계율에 따라 부족한 칼로리와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식품이다. 그 덕에 다양한 튀김류와 부각류가 발달했다. 동백잎, 감잎, 참죽, 들깨꽃송이, 들깻잎, 국화잎, 김, 다시마, 방아꽃송이, 우엉잎, 풋고추 등이 모두 부각재료다. 튀기기 전에 찹쌀풀을 바르거나 찹쌀풀을 붙인 뒤 말려 튀기는데 부풀어오른 찹쌀풀이 매우 바삭바삭해 감칠맛을 안겨주고 고소하기 그지없다.

사찰음식은 종류도 여러 가지지만 조미료는 천연재료를 사용한다. 천연조미료는 말려서 곱게 빻아 사용하는 표고버섯가루와 곱게 갈아 조림에 넣어 먹는 다시마가루, 갈아놓았다가 김치 담글 때나 된장국을 끓일 때 타서 먹는 재피열매가 있다. 이 열매는 살균 작용과 구충제 구실을 하고 중풍을 예방하는 데도 좋다.

일상에서 채식을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고기에 대한 유혹과 영양 불균형에 대한 우려보다 채식주의자를 더 위협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이다. 한국에는 채식을 즐길 만한 식당은 턱도 없이 적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를 거의 의무적으로 갖추어 놓고 있는 영국, 대만의 식당과는 달리 국내 식당에서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배려가 전혀 없다.

한국사회의 식문화도 걸림돌이다. 윗사람이 시키면 알아서 ‘통일’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음식문화다. 따로 채식 메뉴를 시키면 눈치가 보이고, 먹는 것 가지고 유난 떤다는 주위의 시선이 불편하다. 결국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집에서라도 채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터넷에는 채식동호회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채식 요리법, 채식 전문 식당 등 관련 정보도 풍부하다.

신동아 200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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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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