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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가 명택 13 | 남원 몽심재 (夢心齋)

원불교 성직자 40여 명 배출한 명당

  • 조용헌 <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 > cyh062@wonkwang.ac.kr

원불교 성직자 40여 명 배출한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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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에서 여자교무는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생활을 한다. 그래서 홈실에서는 사위 구경하기가 힘들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다. 동네에서 쓸 만한 여자들은 거의 원불교로 출가를 해서 독신생활을 하니 사위가 적을 수밖에 없다. 여자 성직자가 많이 배출된 사실을 풍수학인이 분석할 때는 몽심재를 포함한 동네 앞의 잘생긴 아미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몽심재 터는 단점도 발견된다. 무엇보다 국세가 좁다는 점이다. 안대가 바로 앞을 가로막아서 약간 답답한 감을 준다. 야무지고 실속 있는 터이기는 하지만 시원하게 터진 느낌이 부족하다. 이 단점 때문에 남원 4대 양택지 가운데 네 번째로 꼽히지 않았나 싶다.

이런 답답함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집터를 되도록 높은 지점에 잡아야 한다. 사랑채 마루에 앉아서 안대를 바라볼 때 안대 높이가 눈 높이에 일치하는 것이 좋다. 안대가 눈 높이보다 훨씬 올라가면 오히려 안대가 집터를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랑채 위치를 보면 이 원칙에 맞추었다. 몽심재의 원래 터는 경사진 언덕이라서 뒤로 올라갈수록 위치가 높아진다. 사랑채(몽심재)도 언덕 위로 올라간 지점에 지었다. 안대의 높이를 감안하였다는 증거다.

그러다 보니 몽심재가 높은 축대 위에 자리잡은 모양이 되어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 위엄 있는 인상을 준다. 이 집의 안채보다 사랑채인 몽심재가 규모에서도 훨씬 크고 당당하다. 몽심재에 올라가는 계단의 수도 5계단이나 된다.



조선시대에는 사랑채의 계단 수가 많을수록 그 집의 품격도 비례해서 높아진다고 생각하였다. 임금이 머무르는 한양에서는 궁궐보다 개인주택의 사랑채 계단이 더 높으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통제를 받았다. 즉 대신의 사랑채가 2계단 이상 올라가면 문제가 되었다는 말이다. 대원군이 살았던 운현궁은 3계단인데, 이는 임금의 아버지라서 그만한 대접을 하느라고 궁궐과 같은 3계단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은퇴해서 지방에 거주하던 정승댁이나 판서댁에서는 이러한 법도가 느슨하게 적용되었던 것 같다. 간혹 3∼4계단을 설치한 집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몽심재의 5계단은 지나치게 높다. 결국 이는 풍수적인 이유로 인해 부득이 사랑채를 높게 잡아야만 했기 때문에 발생한 특수한 건축으로 해석된다.

사랑채 형태는 ‘5칸 접집’으로 불린다. ‘접집’은 사랑채의 앞면과 뒷면 양쪽으로 문과 마루가 설치되어 있음을 뜻한다. 앞면도 사용하고 뒷면도 사용하는, 두 겹으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5칸 건물이지만 두 겹으로 되어 있으므로 실제 사용 가능한 면적은 10칸이다. 평수로는 26평이다. 홑집에 비해서 접집이 개방적인데, 경상도보다 전라도에서 접집이 많이 발견된다.

인물 내는 사랑채 마당 앞 큰 바위

몽심재의 풍수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사랑채 앞마당 중간에 놓여 있는 커다란 화강암 바위다. 가로 3m 높이 1.5m 크기의 이 바위는 원래부터 이 터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집 안에 이처럼 큰 바위가 있으면 범상치 않다. 바위 자체가 강력한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어서,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상서로운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이러한 집안에서 인물이 날 경우 바위의 정기를 받아서 태어났다고 하는 일화가 많이 전해진다. 그러므로 바위를 함부로 옮기거나 훼손하는 일은 꺼린다. 필자는 근래에 이러한 바위들을 포클레인으로 함부로 치우고 나서 좋지 않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바위 모양이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편평하면 그 위에서 바둑을 두거나 좌선을 하거나 낮잠을 자는 것도 좋다. 지기(地氣)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몽심재 마당의 바위에는 ‘주일암(主一岩)’, ‘존심대(存心臺)’, ‘청와(淸窩)’와 같은 글자들이 암각돼 있다. 역대 집주인들이 새겨놓은 글씨로, 이 집 선조들도 바위의 존재를 특별하게 인식하였다는 증거다.

이외에도 몽심재 마당의 바위는 풍수적으로 혈구(穴口) 기능을 한다. 대개 혈구는 연못인 경우가 많지만 이와 같은 바위가 그 기능을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사랑채 앞의 정면 일직선상에 놓여 있어서 혈구 기능이 더욱 분명하다.

사랑채 좌향이 남향에서 약간 서쪽으로 튼 간좌(艮坐)인데, 대문의 방향은 인좌(寅坐)다. 인좌는 간좌보다 15。쯤 더 서쪽을 바라보는 방향이다. 사랑채의 좌향과 대문의 방향을 이처럼 차이가 나게 설치한 것은 이 바위를 피해가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간좌 대문을 설치하면 사랑채와 대문 사이를 바위가 중간에 가로막게 된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호랑이의 의미를 가진 인좌(寅坐) 대문은 호랑이가 키워드인 호두혈(虎頭穴) 형국과도 일치하는 좌향이다. 호랑이 혈에 호랑이 대문이다.

몽심재는 건축구조에서 다른 고택들과 구별되는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인들을 위한 배려에서 잘 나타난다. 대문을 마주보았을 때 대문 좌우측으로는 문간채가 설치되어 있다. 문간채는 대문 옆에 붙어 있는 방이기 때문에 하인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몽심재는 대문의 오른쪽 문간채에 대청이 한 칸 더 설치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다. 가로 세로 3m 크기의 대청인데, 난간 손잡이까지 마련되어 있어서 정자와 같은 형태다. 이 집에서는 문간채 옆의 이 정자를 ‘요요정(樂樂亭)’이라고 부른다. 요요정은 하인들의 휴식을 위한 전용 공간이다. 조선시대 정자는 양반들만의 공간이었으므로 노비나 종들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몽심재의 주인은 날씨가 더울 때 양반들만 정자에서 쉴 것이 아니라, 하인들도 자기들끼리 마음 편히쉴 수 있도록 문간채 옆에 요요정을 만든 것이다.

노비와 종들을 배려하기 위해 만든 정자 요요정. 집주인의 너그러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문간채 옆에 아랫사람들을 위한 별도의 정자를 설치한 고택은 몽심재가 전국에서 유일할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이것이 수백 년간 집안을 유지시키는 원리이자 명문가의 필요충분조건일 것이다.

남원의 죽산박씨들이 홈실에 들어와서 살기 시작한 것은,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 고려말 두문동 72현의 수장인 박문수(朴門壽)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개성 만수산의 문(門)을 막았다고 해서 이름을 문수라고 하였다.

이 가문이 남원에 정착한 시기는 박문수 손자인 박자량(朴子良) 때다. 조선 초기 한성판윤으로 있다가 숙부인 박포(朴苞, ?∼1400년)가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 대항하다가 패배하여 참수당하였다. 그 바람에 박자량도 좌천되어 전라관찰사로 내려왔다가 처가인 남원 양씨가 살고 있던 남원 수지(水旨)면 초리(草里)에 눌러앉게 되었다. 남원은 한양과 멀리 떨어져 이방원의 감시권에서 벗어난 지역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선비들이 낙향하면 대개 처가 동네에서 정착하는 일이 많았다. 이는 조선 중기까지 여자도 유산을 어느 정도 물려받을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박자량은 초리에 명륜(明倫)과 화락(和樂)이라는 두 서당을 짓고 후배들에게 글만 가르치는 조용한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박자량의 후손인 박계성이 충절로 이름을 떨친다. 박계성은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권율 장군을 도와서 금산, 행주 대첩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권율 장군의 추천을 받아 한성판관에 제수된다. 정유재란이 발생하자 다시 의병을 모집하여 구례 석주관(石柱關)과 산동(山洞) 등지에서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하였고, 남원부사 임현(任鉉)의 원군요청으로 율치에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석주관 전투는 임진왜란사에서 가장 처절했던 전투의 하나로 유명하다. 그 부인이 남편의 전사소식을 듣고 자결하였고 계성의 친동생 승성과 종제 언정도 진주싸움에서 순절하였다. 후대에 면암 최익현은 이를 일가삼충렬(一家三忠烈)로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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