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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40년 만에 털어놓은 군사쿠데타의 숨겨진 진상 5

장면은 장도영의 이중플레이에 속았다

  • 김준하

장면은 장도영의 이중플레이에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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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이 발생하기 약 3개월 전인 1961년 2월22일 민주당의 구파 동지회는 신민당을 결성했다. 위원장(당수)에 김도연 의원 그리고 간사장에 유진산 의원을 선출했다. 그리고 그들은 장면내각에 파견했던 5부 장관을 즉각 철수시켰다. 장면정권에 대해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사실상 장내각이 단독으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게끔 최악의 궁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신민당 출현 직전인 1960년 12월29일에 실시된 지방선거(서울시장과 도지사 선거)에서 4·19혁명 덕분(?)으로 탄생한 거대 정당 민주당이 신·구파로 갈라져 각각 별개의 공천후보를 내세워 격전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집안싸움의 극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구파는 경남에서 이기주, 전남에서 민영남, 그리고 충남에서 이기세씨 등이 승리해 예상외 성적을 거두기도 했으나 본격적으로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던 정치군인들에게는 집권당의 분열이 다시없는 호재가 된 것이다. 야당도 쿠데타 드라마에 조연역을 담당했다고 평한다면 지나치다고 할 것인가?

9개월 단명인 장면정권이 당면한 국내외 정세는 가혹하리만큼 혼란스러웠다. 첫째, 혁신세력의 대두였다. 민주수호를 외치고 폭발했던 4·19 혁명 후에 탄생한 장면정권으로서는 모든 분야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남북협상론’ ‘중립론’ 그리고 ‘평화통일론’ 등이 공공연하게 대두됐다. 참의원에서 여운홍 의원은 1961년 1월 남북협상을 공개적으로 제기했으며 고정훈씨를 선봉자로 한 혁신세력은 조총련계 자금으로 설립된 민족일보 등을 이용해 사회주의를 외치는 북을 두들겼다. 5·16 쿠데타가 발생하기 한달 전인 5월13일 서울운동장에서는 ‘민주자유통일’이라는 학생단체가 ‘남북학생회담’을 판문점에서 가질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4·19 이후에 무려 1836회의 데모가 발생했고 데모에 동원된 인원은 95만명으로 알려질 정도였다. 데모가 끝나면 으레 난동으로 변했고 사회질서는 거의 파괴된 상태로 방치됐다고 봐야 했다.



4·19 혁명주체가 아니었던 장면정권은 자연 비혁명적 방법으로 국사를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4·19 혁명의 주체를 이룬 학생층, 특히 젊은층과 마찰을 빚게 됐고 그들에게 끌려다니는 허약한 양상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자유만을 부르짖는 1500여 종의 출판물이 쏟아져 나와 장면정권을 무비판적으로 공격하자 무정부상태가 될 정도로 사회 혼란이 심했다. 사회가 불안해지자 경제는 침체됐고, 특히 행정력과 경찰력이 약화됨으로써 신문은 매일같이 밀수를 비롯한 경제악(經濟惡)을 보도했다.

혼란상태를 틈타 1961년 1월2일에는 650대 1이던 환율을 1000대 1로 인상하더니 한달 후인 2월2일에는 1300대 1로 인상하는 최악의 상태를 초래했다. 물가는 졸지에 폭등하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장면내각이 직면한 국내외 정세는 자유당 말기인 1959년 11월1일 미국의회에 제출됐던 콜론(Colon)보고서를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신현확은 안 돼요”

콜론보고서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분석한 다음 ‘군부의 쿠데타가 발생하더라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고 결론짓고 있다. 콜론보고서는 장면내각이 출현하기 직전 이미 한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미국 상원에 알리고 있었다. 세상에 잘 알려진 콜론보고서는 미국 상원외교위원회가 앞으로 미국 외교정책을 어떻게 펴나가야 하는지 그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전문가 집단에게 자문을 구해 만든 보고서였다.

장면정권이 안정을 못 찾고 갈팡질팡 허덕이고 사회 혼란만 가중되자 청와대는 ‘자문회의’를 구성할 것을 결정했다. 정부조직법은 청와대에 비서실 이외에 대통령 자문기구를 만들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자문회의는 비공식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자문회의 구성원 일부를 소개하면 정치에 김상협 고려대총장(후에 국무총리), 법률에 윤세창 고려대교수, 경제에 신태환 연세대교수(후에 장관), 언론에 백광하 동아일보 편집국장, 외교에 이재항 비서실장(후에 상공회의소 부회장) 그리고 간사는 내가 맡았다. 한달에 두세 번 청와대에서 회합을 갖고 현안에 대해 기탄없이 의견을 교환했다.

자문회의를 구성할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워낙 낚시를 좋아해 주말이면 친구들과 자주 낚시를 하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4대 국회의원이었던 김진만씨가 이재학 전 국회부의장과 낚시를 가자고 했다. 이른 아침 내 지프에 두 사람을 태워 서울을 막 떠나려고 할 때, 그들은 느닷없이 신현확(후에 국무총리)씨도 함께 데리고 가자고 했다. 그때 신씨는 4·19 당시 국무위원이었던 탓에 형무소 생활을 하고 막 출소한 상태였다. 신씨도 합류해 경기도 전곡 방향으로 낚시를 하러 갔는데 여관에서 나와 신씨가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된 것이 인연이 돼 밤이 새도록 그 분으로부터 경제문제에 대한 고견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솔직히 그 분의 고견에 감복했다.

아침이 되자 이재학, 김진만씨가 신현확씨를 대통령 자문위원으로 추천했다. 다음날 신현확씨에 관한 내 보고를 들은 대통령은 매우 좋아하면서 “내가 신현확이를 잘 알지. 내가 상공부장관을 할 때 그가 금속 관계 과장으로 있었는데 매우 총명하고 장래가 총망되는 사람이었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대단히 좋은데 장총리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니 총리 의향을 물어보고 오라”고 지시했다.

계엄령 검토

나는 그 날로 장총리를 만나 대통령의 뜻을 전하면서 “총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물었다. 장총리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됩니다. 안돼요. 그 사람 자유당정부에서 일한 사람이 아닙니까? 앞으로 말썽이 나면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하슈”라고 대답했다.

내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웃으면서 “아니, 자기는 이대통령 밑에서 일한 적이 없다고 하던가?” 뼈있는 한마디를 했다. 결국 신현확씨의 자문위원 추천은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았던 데모, 4·19혁명 발포 명령자들에 대한 판결문제(법원 판결이 기대 이하의 형량이었던 점), 4·19혁명 부상자들의 국회의사당 난립사건 등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자 대통령 자문회의는 헌법 제57조에 규정된 ‘긴급조치’ 발동과 심지어 헌법 제64조에 규정된 ‘계엄령의 선포’를 논제로 삼고 검토를 시작했다.

‘긴급조치’를 규정한 헌법 제57조의 내용은 ‘내우외환,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 위기에 대해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긴급조치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대통령은 국회 소집을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국무회의의 의결에 의해 재정상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 전항의 처분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때에는 국무총리는 법률의 효력을 가진 명령을 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무총리가 법률의 효력을 가진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입법·행정권을 장악하는 막중한 권한을 의미하기도 했다. 김상협 고대총장 같은 분은 데모도 문제가 되지만 그보다도 군 내부의 무정부 사태를 우려했고, 하극상 사태에 관해 대통령이 전혀 예상 못했던 중요한 정보를 보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군 내부에 불순세력이 형성돼가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불장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의 백광하 국장은 장정권에 대한 언론의 보도흐름을 설명하면서 장정권을 지지하는 신문은 하나도 없다고 극언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계엄령까지는 몰라도 긴급조치 발동은 필요불가결한 조치로 판단하고 장총리에게 적극 권유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대통령은 야당의 반대를 예방하기 위해 김도연 신민당 당수와 유진산 간사장을 청와대로 불러 사전에 정지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문회의를 거듭할수록 자문회의 분위기는 차츰 장정권의 정권 담당 능력에 대해 회의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장정권에 대해 자문회의는 첫째, 장정권은 확실한 지지기반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4·19 혁명으로 붕괴된 자유당 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4·19 혁명 세력도 혁명입법 지연, 부정축재자 처벌에 대한 애매한 태도 때문에 차츰 장정권에 대해 등을 돌리는 것으로 판단했다. 둘째, 원내 지지세력의 불안한 판도를 지적했다. 5부 장관을 파견해 연립정권에 참가한 신민당이 차츰 내부적으로 장면정권의 도각(倒閣)을 결정하고 장정권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셋째, 이철승씨를 중심으로 하는 집권당 내 소장파가 강력한 당내 투쟁을 벌임으로써 장내각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넷째,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의 반개혁적인 동향과 군 고위인사를 둘러싼 집권당 내부의 분규를 염려했으며, 다섯째, 장정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상상 외로 크다는 것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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