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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16일 신문사로 뛰어든 북한인 최인수

국정원 북한인 납치사건의 내막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1998년 7월16일 신문사로 뛰어든 북한인 최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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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수 사건 당시 안기부 간부였던 B씨는 이와 관련해 “북한에 들어간 후 최인수의 생사 여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최인수는 우리가 쓰던 망원인데 말을 듣지 않아 데려왔다”고 말했다.

불법으로 데려온 최인수를 고문하다 놓쳐서 언론사까지 찾아가게 했다면, 이러한 잘못을 한 공작팀에 대해서는 문책이 있었어야 한다. 더구나 최인수 사건을 일으킨 국(局)의 실수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최인수 탈출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1주일여 전인 1998년 7월4일 러시아의 연방보안부(FSB)는 주러시아 한국대사관의 조성우(趙成禹) 참사관을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규정해 72시간 내 출국하도록 요구했다.

조참사관은 외교관으로 위장해 러시아에 나가있던 국정원의 화이트였다. 러시아 연방보안부는 조참사관이 발렌틴 모이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아주국장에게 정기적으로 금품을 제공하고 러시아정부의 비밀문건을 건네받은 것을 포착했다. 그러나 조참사관이 면책특권을 가진 외교관 신분이기 때문에 추방령을 내린 것이었다.

스파이 세계에서 정보를 빼내려다 걸리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때는 재빨리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사건을 최소화하는 게 현명한 처사다. 그러나 국정원은 오만을 부렸다.



주한 러시아대사관에는 러시아 해외정보부(CSV)의 화이트인 올레그 아브람킨 참사관이 있었다. 한국은 아브람킨 참사관이 불법활동을 한 것이 포착되지 않았는데도 ‘기피인물’로 규정해 72시간 이내에 한국을 떠나라고 맞대응한 것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우리가 잘못한 게 무엇이냐”며 거세게 항의했으나, 아브람킨은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한국은 자존심을 회복하고, 역사상 최초로 외교관을 추방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참사관을 맞추방한 것은 그후 한·러 관계를 매우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됐다. 이후 러시아는 모스크바까지 찾아간 탈북자들이 유엔난민구제고등판무관실에서 난민 판정을 받아도 다시 북한으로 송환시키는 등, 사사건건 한국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국정원은 러시아를 달래기 위해 해군에 대해 ‘러시아제 킬로급 잠수함을 도입하라’고 제안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자존심을 세우려다 손해만 보게 된 셈이다.

조참사관 사건에서 비롯된 외교관 맞추방 조치를 추진한 국(局)이 바로 최인수 사건을 일으킨 공작팀이 속한 국이다. 한 국에서 1주일여의 사이를 두고 연속해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으면 최소한 국장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C국장뿐만 아니라 이 국의 중간간부들은 전혀 책임추궁을 받지 않았다. 국정원은 다만 최인수 사건을 아는 외부인들에게 “이 사건과 관련해 국장과 과장 등이 인사조치되었다”는 소문만 퍼뜨렸다. C국장은 1999년 5월26일 천용택(千容宅)씨가 이종찬씨 후임으로 국정원장이 된 후 간부들을 물갈이할 때 조용히 퇴직했다.

대한항공 선양지점장 체포

천용택씨가 국정원장에 취임한 바로 다음날(1999년 5월27일) 놀라운 소식이 선양에서 날아왔다. 대북공작의 전초기지 사령관인 대한항공 선양지점장 원용수(元容秀·39)씨가 간첩죄 혐의로 중국의 국가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에 전격 연행된 것이다. 중국의 국가안전부는 6개월여 동안 종적이 묘연했던 최인수가 어느날 갑자기 선양에 나타난 것을 알고 조사에 들어가 국정원이 그를 납치해 데려갔다가 돌려놓은 사실을 확인했다. 중국인은 물론이고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중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제3국이 마음대로 데려간 것은 중국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

주권 침해를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나라는 없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보복을 결심한 듯 원용수 지점장 주변을 조사하다, 천용택 원장이 취임한 바로 다음날 전격적으로 원지점장을 연행했다. 국정원 직원이 중국 국가안전부에서 조사를 받게 되면 상당한 비밀이 누설될 수가 있다. 또 그가 간첩죄로 중국 법정에서 신문을 받게 되면, 한국의 국가 비밀은 법정 진술을 통해 만천하에 공개될 수밖에 없다. 당황한 국정원은 즉각 중국 국가안전부와 협상에 들어갔다. 중국의 국가안전부는 원지점장을 석방해줄 테니 국정원이 중국에 침투시킨 블랙 요원을 전부 철수시키라고 요구했다.

국정원은 이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연행 11일 만인 6월7일 원지점장은 한국으로 추방되고 이어 중국에 심어놓은 국정원의 블랙 요원들이 대규모로 철수했다. 최인수 사건을 잘못 다룸으로 인해 국정원은 애써 구축해 놓은 공작망까지 다 잃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인수 사건에서 비롯된 일련의 실수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A일보가 취재한 이상 최인수 사건은 언젠가 공개될 수밖에 없는 것인데도, 전전긍긍하며 보도를 막는 데만 주력했다.

이제 남은 의문은 과연 국정원이 총풍 사건을 만들기 위해 최인수를 납치해 왔냐는 부분이다. 총풍사건은 1997년 12월 베이징의 캠핀스키 호텔에 간 장석중·한성기씨가 북한인을 만나 15대 대선 직전 한나라당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판문점에서 사격을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 요체다.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국정원이 장석중·한성기씨 등을 국정원으로 불러들여 조사한 것은 1998년 9월초다. 그리고 10월1일부터 도하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반면 최인수 탈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장석중씨 등이 국정원 조사를 받기 두 달 전인 그해 7월16일이었다.

국정원의 한 소식통은 “당시 국정원은 최인수를 통해 장석중씨 등이 총격을 요청한 증거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최인수는 1997년 12월 장석중을 만난 사실이 없었다. 그 바람에 장석중씨 등을 정말로 모르냐고 압박을 가해 폭행이 일어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석중씨도 “내가 최인수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997년 12월 훨씬 이전이다. 국정원 공작팀이 총풍사건에 대한 혐의를 잡기 위해 최인수를 납치해 왔다면 크게 잘못 판단한 것이다”고 말했다.

총풍사건 재판에서 원고는 검찰이다. 하지만 총풍 사건을 1차로 수사해 검찰에 넘긴 것은 국정원이다. 검찰은 장석중씨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했는데 국가보안법 위반사항은 1심에서는 유죄였으나 2심에서 무죄가 되었다. 그러나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한 것은 인정돼, 장씨 등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장씨 등은 남북교류협력법도 위반한 사실이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해 놓고 있다. 총풍사건은 보안법 위반여부가 핵심 쟁점인데 이 부분은 일찌감치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국정원이 최인수를 납치해 총풍사건 증거를 포착하려 했다면, 최인수 납치에 관여한 사람들은 납치와 고문 혐의 외에도 무고(誣告) 혐의를 받을 수도 있다.

북한 반격에 대한 대책은 있는가

최인수를 조사했던 국정원 관계자들은 한사코 총풍사건을 만들기 위해 최인수를 납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B씨를 비롯한 당시의 국정원 간부들도 최인수와 총풍사건 부분만은 연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최인수는 국정원이 그를 납치해온 것이 총풍사건과 관련 있는 것인지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증인이다. 그러나 그는 북한으로 들어간 후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총풍사건과 최인수 사건은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국익(國益)을 위해서라면 정보기관은, 귀순의사가 없는 북한인도 납치해 올 수 있어야 한다. 정보기관의 공작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나 납치한 북한인을 감시 소홀로 놓치고 탈출한 북한인이 언론기관을 찾아가게 한 것은 용서하기 힘들다. 귀순하지 않는다고 다시 중국으로 돌려보낸 것은 무슨 조처인가. 만약 북한이 이렇게 해서 돌아온 최인수를 내세워 “햇볕정책을 펼친다는 한국의 정보기관이 북한인을 불법으로 납치해 고문했다. 한국은 인권유린 국가다”라고 떠든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러한 위험을 차단하고 국정원이 국익을 위해 공작할 수 있는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최인수 사건은 더욱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신동아 200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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