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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특집 | 올해 정년퇴임 교수 3인의 ‘나의 삶, 나의 학문’

다시 ‘1만 시간 공부’에 도전하는 희열

이초식 고려대 명예교수(철학)

다시 ‘1만 시간 공부’에 도전하는 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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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논리를 기계공학적으로 응용한 컴퓨터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970년대 초로 기억된다. 1971년에는 앞으로 컴퓨터 지식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어 생산성본부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강좌를 몇 달 동안 청강했다. 연필로 종이 위에서만 풀어보며 상상해 오던 기호논리가 컴퓨터를 통해 역동적인 결과를 나타내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해 이 길을 좀더 파고들고 싶었으나, 이미 교육대학에서 도덕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직에 있었으므로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과학철학과 기술철학을 바탕으로 해서 인간의 두뇌를 모방한 컴퓨터와 컴퓨터를 통해 인간의 인지활동을 연구하는 데에는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으며, 컴퓨터과학, 신경과학, 인지심리학, 언어학, 논리학, 철학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에 관해 학제적인 연구를 하는 학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를 1993년 ‘인공지능의 철학’이라는 책으로 발표했다. 또한 과학철학, 과학사, 과학사회학, 과학언론학, 과학관리학을 통합 운영하는 과학학 협동과정이 고려대 대학원에 설치되면서 지난 6년 동안은 이 일에 주력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현재 한국과학기술학연구회를 책임지고 있다.

필자가 서울교대에서 도덕교육을 담당하면서, 그리고 학생들과 철학책을 읽는 동아리 모임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우리의 교육에 철학교육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학생들이 철학공부를 절실하게 요구했으며, 교육의 근본을 새롭게 하고 활기차게 하기 위해서는 지적 욕구가 강한 어린 시절부터 수준에 맞게 철학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대 출신의 많은 현직교사들도 이에 동감, 철학동문회를 연구회 모임처럼 자주 갖고 고민하면서 어린이 철학교육의 모델을 모색했다. 그러던중 1980년대 초에 우리가 주목한 것이 미국 어린이철학개발원의 철학교육 이론서 및 그와 연결된 어린이용 교재와 교사용 지침서였다.

한편 한국철학회를 비롯한 철학계에서는 고등학교 철학교육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철학교육, 특히 논리교육을 기반으로 한 철학교육의 연구개발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어 1990년 중반부터 한국철학교육아카데미의 책임을 맡게 됐다.

이런 사정 때문에 내게 남은 공부시간은 과학철학을 기반으로 한 과학기술학과 철학교육을 지향하는 논리교육 분야에 할애해야 할 것 같다. 이를 서울교대 철학회에서 쓰던 표어로 거창하게 말해보면 ‘인간교육에 의한 인간혁명’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이 달라지는 인간혁명이 절실히 요망되며, 그것은 철학적 인간교육에 의해서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인간교육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날마다 변해가는 사회 안에서 수행돼야 하므로 과학기술 일반에 관한 기초지식을 수반해야 할 것이다.



오래 공들여 만들어진 땅

뿐만 아니라 인간교육이 지향하는 인간상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하여 행동하는 자주적인 인간이므로 늘어나는 과학정보들을 그저 축적하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며, 과학정보를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논리적 사고 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인간교육에서 논리교육은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필자가 살아오면서 이런 일을 했고 저런 일을 해보고자 하는 것은 모두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로부터 큰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와 가족, 친척들의 보살핌은 물론이고, 학교 및 학회의 동료와 선후배 교수들의 도움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아 늘 감사한 마음을 가져왔다. 게다가 나는 제자 복도 많아서 나보다 탁월한 능력을 지닌 제자들과 학문을 토론하며 산하를 즐길 수 있어 기쁘다. 그런 우수한 제자들이 직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을 보면 무척 안타깝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이런 우수한 인재를 적소에 배치하지 못하는 것은 큰 손실로 여겨진다.

‘이 땅에 태어났다’고 했을 때 지금까지는 ‘이 땅’을 인간관계의 모태로서만 이야기했는데, 한반도라는 이 땅이 다른 땅과 구별되는 특색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공통과학 교재에 지질시대를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구의 나이 46억년을 1년으로 환산해 인류가 출현한 시점이 언제인지를 알아보라는 문제가 있다. 그러면 1시간이 약 52만5000년에 해당하니 인류의 탄생시점을 100만년 이전으로 잡는다 해도 지구가 1월1일에 출발해 현재 12월31일 자정에 이르렀다고 가정하면 인류가 출현한 것은 12월31일 밤 10시가 지난 시점이 된다. 이렇듯 인류의 출현은 지구의 차원에서 보면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일찍이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 살았던 전기 구석기인들은 겨우 5, 6분 전에 출현했고, 우리의 ‘반만년 역사’도 40초 전부터 시작됐으며, 사람의 한 평생 70년은 고작 0.5초 정도다.

그러나 서울 사람들이 즐겨 찾는 도봉산 관악산 불암산 등지의 화강암은 1억6000만년에서 2억년 전의 것이라고 하니 12월 중순 정도에 생성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는 바닷속에 있었던 증거를 많이 지니고 있으며, 현재의 형태로 현재의 위치에 있게 된 것은 2억년 전 경으로 추정된다. 한반도는 크기는 작지만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20억∼30억년 전의 지층에서부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에 이르는 지층들을 모두 갖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고귀한 땅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그처럼 오랫동안 공들여 만들어진 땅이 바로 이 한반도다.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일도 중요하고 되찾은 땅을 잘 가꾸는 일도 시급하지만, 그에 앞서 땅의 잃어버린 의미를 되찾는 일이 더욱 중요할 것 같다. 땅의 의미를 모르면 땅을 되찾아 가꾼다는 것이 오히려 땅을 망치는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땅의 개간과 보존을 비롯한 환경문제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주요 관심사가 된 것은 환영할 일이나 그것은 근시안적 이해타산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고, 환경문제가 정치적 투쟁의 수단으로 오용돼서도 안될 것이다. 환경문제는 우리 세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와 지구인 모두의 문제이므로 깊고 폭넓은 철학적 숙고가 필요하다. 하여간 그런 숙고가 후세인들이 ‘이 땅에 태어난 복된 우리’라는 귀결에 이르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신동아 200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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