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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한국 대표적 지식인의 사상적 원류 ③ 보수주의자

한국 주류사회의 파수꾼을 자임하는 사람들

  •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 kimhoki@yonsei.ac.kr

한국 주류사회의 파수꾼을 자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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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복 교수를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선택한 데는 사연이 있다. 현재 명지대 객원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교수는 엄격히 볼 때 학자라기보다 언론인, 정치가, 정책전문가 등이 더 어울리는 게 사실이다. 주위의 이의제기에도 불구하고 이교수를 다루는 이유는 그가 다름아닌 통일문제 전문가라는 점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분단과 통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매우 민감한 사안 중의 하나며, 이는 다른 사회에서 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이기도 하다. 이교수가 신문과 잡지 기고, 방송출연 등을 통해 보수주의 통일론을 대변해온 장본인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교수는 1937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으나 어렸을 때 가족이 전부 서울로 올라왔다. 1957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이교수는 대학 2학년이던 1958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코리아타임스’에서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당시엔 대학을 다니면서 기자가 되는 경우가 없지 않았는데, 이교수는 약관의 나이에 기자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그는 4·19 직후 장기영 사장과의 갈등으로 퇴사해 잠시 동양통신에 입사했으나 1963년 다시 ‘한국일보’로 돌아와 정치부, 외신부에서 기자생활을 이어나갔다.

기자에서 남북문제 전문가로

이교수의 삶의 전환점은 1971년이다. 그는 청와대로부터 남북적십자회담을 위해 일해줄 것을 제안받는데, 그때 34세이던 이교수는 과감하게 언론계 생활을 청산했다. 이교수에 따르면, 처가가 해방후 월남한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실향민이라는 점이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다고 한다. 이교수의 부인 이상희 여사는 서강대 이상우 교수의 동생이다. 그러니까 이동복 교수와 이상우 교수는 처남매부간이다.

이후 이교수의 경력은 크게 네 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1982년까지는 남북회담을 위해 일하던 시기로, 남북적십자회담 사무국 회담운영부장, 남북조절위원회 대변인, 국토통일원 남북대화 사무국장 등 남북회담을 실무적으로 이끌었다. 1982년 정부가 발표한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은 그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번째 시기는 남북회담에서 잠시 손을 떼고 1982년부터 삼성그룹에서 일하던 시기로, 고(故) 이병철 회장의 고문과 삼성정밀 대표이사 겸 사장으로 재직했다.



세번째는 다시 공직으로 돌아온 시기로,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자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로 불려나가 정치가와 남북문제 전문가로 활동했다. 1988년 당시 민정당 공천으로 서초을구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김재순 국회의장 비서실장을 거쳐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별보좌관을 지내다가 1993년 안기부법 개정과 이른바 ‘훈령 파동’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조지 워싱턴대 개스턴·시거 동아시아문제연구소 초청연구원과 국제전략연구소(CSIS)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1996년 2월 귀국한 그는 김종필 총재의 권유로 자민련에 입당, 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전국구로 국회에 진출, 총재비서실장을 지냈다.

현재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2001년 9월부터 명지대 객원교수로 신문과 잡지를 통해 문필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그의 경력은 한국 현대사의 압축판이기도 하다. 20대와 30대는 언론계, 30대와 40대는 공직, 40대와 50대는 기업, 그리고 50대 이후는 공직과 정계에서 그가 보여준 정력적인 활동은 엄격한 성실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인터뷰를 해보니 이교수는 세상사에 해박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현실적인 감각의 소유자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대번에 감지할 수 있듯이 이교수는 논리가 명쾌하다. 이교수는 보수와 진보를 이데올로기적 분류의 패러다임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보수는 이데올로기적 선택이 아니며, 개혁을 인정하되 단지 개혁의 방법에서 차이를 갖는다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주어진 현상에 대해 검증된 방법으로, 급진적이 아니라 완만하게 개혁을 추진하자는 입장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보수주의를 수구 내지 반동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며, 오히려 보수주의야말로 현실을 인정하고 실현가능한 개혁을 모색하는 방법론이라고 강조한다.

방법론적 태도로서의 보수주의

보수주의에 대한 이런 이해를 통해 이교수는 현재 ‘한국적 보수주의’가 표류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가 제시하는 표류의 원인은 우리 사회에서 다수를 이루는 보수적 성향의 국민들의 에너지를 조직하고 집결시킬 지도세력이 부재하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보수적 기성세대는 그 동안 빈곤, 분단, 안보위협 속에서 개발시대와 고도성장을 주도해 왔지만, 그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고 설득력 있는 체제옹호 논리를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1970년대 초반 언론계를 떠난 후 30년 동안 직간접으로 남북관계에 매달려온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통일문제 전문가다. 이교수는 북한에 대한 접근이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을 때 북한당국과의 접촉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관찰한 북한은 그다지 낯선 곳이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해방될 때 여덟 살이던 그는 고향의 큰집에 있던 문학책들을 탐독했는데, 그 가운데는 일제시대 카프 작가들의 소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사상통제가 엄격해 사회주의에 조금이라도 관련되었거나 월북한 지식인들의 책을 거의 접하지 못했던 시기에 이런 독서 경험과 한국전쟁 당시 4개월 동안의 피란체험이 그로서는 북한을 이해하는 데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통일문제에 대한 이교수의 생각을 잘 정리한 책이 ‘통일의 숲길을 열어가며 1·2’(1999)다. 그 동안 이교수는 남북대화의 실무를 담당하며 정부의 입장에서 적지 않은 양의 글을 발표해 왔는데, 이 책은 그 가운데 일부를 가려 묶은 것이다. 이 책 출간 이후에도 이교수는 현정부의 햇볕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교수의 통일론은 통일지상론(統一至上論)에 대비되는 통일신중론(統一愼重論)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통일신중론은 통일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통일을 위해 노력하되, 그런 노력을 통해 앞으로 이뤄질 통일이 ‘내용’면에서 최선의 것이 되기 위해서 ‘방법’면에서 신중을 기하는 것을 말한다. 이교수는 이런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분단관리’라 명명한다. 그가 강조하려는 바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통일국가’라는 결과보다도 ‘분단관리’라는 과정이 중요하며, 이 ‘분단관리’ 단계를 도외시한 통일은 정치적 선전구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교수가 제시하는 전략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분단관리를 위해서 분단주체로서의 두 주권국가간에 평화공존이 제도화돼야 한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북한의 ‘본질적 변화’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정부의 햇볕정책은 북한의 현체제를 안정시키고 그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를 갖고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이른바 ‘일방통행식 퍼주기’는 북한의 대남(對南) 재정의존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말려들어 오히려 남한이 북한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교수의 주장에 통일문제에 문외한인 필자는 두 가지 정도는 덧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이교수의 통일론은 현실적이면서도 보수적인 통일론을 잘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작년 6·15 남북 정상회담의 거품이 빠지면서 현재 햇볕정책이 크고 작은 장애들에 직면해 있는 것을 보면 이교수의 현실주의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이교수의 통일론은 너무 소극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기에는 통일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여전히 높다. 참고 기다리는 게 올바른 지혜라 하더라도 때로는 과감하게 매듭을 자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 보수주의의 아이러니

앞서 네 명의 보수주의 지식인을 살펴보았다. 네 사람의 사상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첫째,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전통을 존중한다. 둘째, 보수주의는 질서 속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한다. 셋째, 우리 사회에 걸맞은 이념은 다름아닌 보수주의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네 사람은 모두 전통, 질서, 개혁을 보수주의의 핵심으로 이해하고 이 보수주의야말로 자유민주주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임을 부각시킨다. 또한 네 사람은 예외 없이 전통사상으로서 유교의 중요성을 주목하고 현대적인 계승을 강조한다.

흥미로운 것은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지식인들이 적지 않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해 의문 또한 만만치않게 제기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강정인 교수(서강대)는 보수주의를 ‘기질적 보수주의’, ‘상황적 보수주의’, ‘정치철학적 보수주의’로 구분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기존 정치질서를 옹호하는 집권세력의 ‘상황적 보수주의’, 즉 ‘철학 없는 보수세력’만 존재할 뿐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김용민 교수(외국어대)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표명한다. 즉 우리의 보수주의는 철학적·종교적 기반을 갖고 있지 못하며, 통치를 위한 정치적 지배이데올로기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는 사상적으로 그 정체가 불투명한 가운데 집권세력과 수구세력, 보수적 중간층을 결집시키는 이데올로기로 발전되어 왔다고 진단한다. 요컨대 보수세력 내지 보수주의 정당은 존재해도 진정한 보수주의 철학은 없다는 게 한국 보수주의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회에서 보수세력만 존재하고 보수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이 경우에 보수세력과 보수주의의 차이는 무엇일까. 먼저 후자의 문제부터 보면 일반적으로 보수세력은 주어진 상태를 유지, 지속하려는 사회집단을 가리킨다고 볼 때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이념이 굳이 보수주의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이들은 수구주의 내지 반동주의를 선택할 수도 있으며, 많은 나라들의 역사적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를 선호할 수도 있다.

보수세력과 보수주의가 이렇게 구분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는 사실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우리 현실을 객관적으로 돌이켜볼 때 자유민주주의가 유보된 1970년대 유신체제나 전두환정권에서 보수세력이 보수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이념으로 표방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본래의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수주의가 민주주의의 한 유형이라면, 유신체제나 전두환정권을 이런 민주적 보수주의와 동일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 보수주의의 한계와 과제

객관적으로 한국의 보수주의는 1987년 이후 민간정부의 출범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간정권들도 보수주의의 정치적 이념에 입각해 통치했다기보다도 보수주의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감이 작지 않았다. ‘보수적 민주주의’라기보다 오히려 198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집권자에게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는 ‘초대통령주의’가 한국 정치현실에 오히려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당과 야당이 모두 보수주의 정당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정작 정치학자들이 보수주의가 부재하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 보수주의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는 ‘상처받은’ 이념이라 할 수 있다. 한편에서 그것은 보수세력의 정치적 지배이데올로기로, 다른 한편으로 수구주의와 반동주의의 이념으로 동일시됐다. 필자는 보수주의를 지지하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상처받은 보수주의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보수적 대안과 진보적 대안 가운데 어떤 게 더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선험적인 해답은 없을 것이다. 서구의 근대역사가 웅변하듯이 바람직한 사회발전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사이에 열린 경쟁과 토론을 통해서 성취되어 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바로 여기에 한국 보수주의의 과제가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무엇보다 정치철학으로서 보수주의 이념을 적극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버크가 강조했듯이, 보수주의의 본질은 단순한 수구나 반동이 아니라 전통과 질서를 존중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모색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보수주의가 상층 계급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인간의 불안정성을 깊이 이해하고 그에 바탕하여 유기체로서의 전체사회를 위해 실현가능한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이념임을 상기해야 한다. 이런 철학과 정책 대안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야말로 한국 보수주의의 미래에서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

신동아 200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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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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