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본지독점

골프여왕 박세리 가슴을 열고 말하다

“저 독종 아니에요!눈물 펑펑 쏟는 여자예요”

  • 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whang@donga.com

골프여왕 박세리 가슴을 열고 말하다

2/3
박선수는 골프를 시작한 이래 수많은 우승기록을 세웠지만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명승부는 둘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박선수는 국내의 라일앤스코트오픈에 나가 쟁쟁한 프로선수들과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 또한 US오픈에서 양말을 벗고 해저드에 들어가서 공을 쳐올리는 장면은 경제위기로 어려웠던 시절 한국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저도 US오픈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US오픈은 메이저대회라 다른 시합과 달리 더 힘들고 의미있는 시합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어렵게 우승했지만 그 시합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 캐디 콜린 칸(34)은 어떻습니까?

“아주 호흡이 잘맞는 편이에요. 워낙 열심히 하고 부지런하고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요. 저는 그런 면을 좋아합니다. 특별한 계약조건은 없어요.

―시합할 때 캐디로부터 그린 읽기, 거리계산, 클럽 선택 등 어떤 대목에서 도움을 많이 받습니까?



“거리나 골프코스의 상태도 중요하지만 시합을 하면서 마음이 안정돼야 합니다. 콜린 칸은 그런 면에서 도움을 많이 줘요.

―박선수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다보니까 성적이 부진하면 지금도 아버지가 코치를 하니까 그런 것 아니냐는 식의 비판이 나오기도 해요. 그럴 때는 솔직히 좀 서운하지요?

“아무래도 그렇죠. 아버지가 제 첫번째 코치임에도 시합 못하면 아버지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확히 알지 못하는 분들이 그래요. 기사를 쓸 때 기사의 대상이 된 사람을 한번 더 생각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볼 때는 그게 아닌데 그런 식으로 쓰면 진짜 힘들고 속상해요. 외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다보면 힘들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 정말 따뜻한 한토막의 글이 큰 도움이 돼요. 그런데 조금 부진하면 ‘뭐가 문제인가’라는 식으로 안좋은 말을 많이 쓰잖아요? 정말 잘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안될 때는 속상하지요. 그런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박선수의 표정이 어두워져 분위기를 바꿔본답시고 시중에 유행하는 조크를 꺼냈다. 박선수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공통점 세 가지에 관한 조크다. 아직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소개하자면 둘 다 공주 출신이다(박선수는 실제로 유성 출신이고 여고만 공주에서 다녔다). 둘 다 공을 잘 다룬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필립‘공’을 잘 다루고 박선수는 골프공을 잘 친다. 마지막으로 둘 다 다리가 튼튼하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와 세리의 공통점

―그 농담 알고 있어요?

“예.”

―골프에서 다리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골프에서 제일 중요한 게 중심이에요. 중심을 잃으면 그만큼 좋은 스윙이 나오지 않아요. 하체는 중심입니다. 하체가 튼튼해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골프는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하다지요? 프로골퍼는 보기를 해도 빨리 마음을 안정시켜야 다음 홀에서 잘할 수 있을텐데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그건 자기 하기나름인 것 같아요. 얼마만큼 자기를 컨트롤할 수 있나가 중요하죠. 미국에서는 심리학 박사와 상담하고 교육받는 골프선수들도 있어요. 자신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아요. 스스로 어떻게 컨트롤하는가가 골퍼의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골프를 했으니 어린 시절의 추억이랄까 삶의 잔잔한 재미를 많이 놓쳤겠어요?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습니까?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서 추억을 만들고 싶어요. 골프라는 운동의 특성 때문에 친구가 정말 없어요. 어젯밤에 만난 친구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같이 운동했던 선수들이어서 무척 보고싶었습니다. 추억이 그중 많았으니까. 제가 만약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정말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요.”

―선수생활 하느라고 정규 대학을 다니지 않았는데 아쉬움은 없습니까?

“당연히 있죠. 제 나이 또래들처럼 캠퍼스 생활을 하고 싶어요. 대학교는 초등학교 중학고 고등학교와 또 다른 게 있잖아요? 평생에 한번밖에 없는 캠퍼스 생활을 못한 게 항상 아쉬움으로 남아요. 그렇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지요. 프로로 전향해 운동을 계속해야 했으니까요. 앞으로 많은 친구들을 만나서 사귀고 싶어요.”

타이거 우즈는 서부의 명문 스탠포드 대학을 다니다 2학년 때 중퇴하고 프로로 전향했다. 기자가 스탠포드대학에서 가까운 버클리대학에 있을 때라 타이거 우즈의 대학 중퇴에 대한 의견을 미국 대학생과 교수들에게 여러 번 물어봤다. 선수생활을 하더라도 명문대학 졸업장을 왜 포기하냐는 한국적 단순사고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미국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타이거 우즈 같은 선수에게 대학 졸업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빌 게이츠도 하버드대학을 중퇴했다. 젊은 나이에 성공의 문에 들어선 사람들은 과감하게 대학을 그만둬버린다. 학벌주의가 유행하는 한국과 다른 점이다. 박선수가 나중에 은퇴한 뒤 대학에 등록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타이거 우즈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결혼은 언제쯤 할 계획입니까. LPGA 투어 선수생활이 결혼과 양립할 수 있다고 봅니까. 애니카 소렌스탐은 결혼하고 나서도 선수생활을 합니다만….

“많아요. LPGA에는 결혼한 선수들이 많아요.”

―아버지는 박선수가 대성할 때까지 결혼을 늦추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던데요. 부녀 사이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때까지는 결혼 얘기 안하기로 약속을 한 게 사실입니까? 상황이 바뀌면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저한테 결혼은 급하지 않아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결혼할 날이 오겠죠. 저는 정말 빨리 시집가야겠다는 생각은 안합니다. 아직까지는 그런 계획이 없습니다.”

로렌스 첸은 편한 남자친구

―결혼 상대자로 어떤 타입의 남성을 원합니까? 미국 남성이라도 괜찮습니까?

“저를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아요. 제 직업이 특별하기 때문에 충분한 이해 없이는 부부관계가 유지되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저를 잘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면 좋아요.”

―친하게 지내는 홍콩 출신 남자친구 로렌스 첸 이야기가 가끔씩 신문에 실렸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한 사귐입니까?

“아직까진 그런 생각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할 시기도 아닙니다. 좋은 친구, 좋은 사이로 지내고는 있는데 앞으로 결혼을 하겠다 안하겠다 말하기보다는 좋은 친구로 편하게 지내고 싶어요. 때가 되면 또 모르죠. 결혼할 사람 따로 연애하는 사람 따로 있을 수 있듯이 나중에 결혼할 시기가 되면 누가 될지 모르지만 저를 많이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박세리 선수의 성적이 잘 오르지 않을 때 홍콩 남자 친구 때문 아니냐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와요. 그런 소리 들으면 화 나지 않나요?

“한동안 그런 기사를 많이 썼지요. 많이 화가 났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면 화가 나고 속상하고…. 아무튼 힘들었어요. 전혀 모르는 분들이 그런 걸로 자꾸 연결시키는데 전혀 그런 게 아닙니다.”

―텔레비전에서 보면 박선수가 페어웨이를 기린처럼 성큼성큼 걷는 인상을 줍니다. 그런 걸음걸이를 스스로 의식하고 있습니까?

“특별히 의식하고 그렇게 걷는 건 아니에요. 저는 강하고 멋있는 선수가 되길 원했어요. 걸음걸이를 일부러 그렇게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골프는 항상 리듬을 타잖아요. 걸음걸이에도 리듬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그런 느낌을 준 것 같아요.”

아버지 박준철씨는 한 인터뷰에서 ‘걸음걸이가 당당해야 상대방의 기가 죽는다. 표정 없이 뚜벅뚜벅 씩씩하게 걸으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선수가 경기하는 장면을 보면 표정의 변화가 없는 얼굴로 뚜벅뚜벅 걷는다. 첫 코치의 가르침에다 박선수 스스로 리듬을 붙여 독특한 걸음걸이가 태어난 것이다.

―2년 전부터는 부모님들이 박선수한테 심리적으로 부담을 줄까봐 투어에 따라다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모가 옆에 있냐 없냐에 따라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습니까?

“부모님이 계시면 더 신경 쓰이고, 안 계시면 안 쓰이고 그런 것은 없어요. 부모님이 계시면 마음이 편했습니다. 안 계시면 아무래도 허전하죠. 옆에 계신 것이 더 좋아요.”

―혹시 골프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습니까?

“많죠. 정말 연습하기 힘들고 어려울 때는 ‘정말 힘들다’ ‘정말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연습했는데 시합에서 성적이 안 좋으면 힘들다는 정도를 넘어서 정말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돈을 참 많이 벌었겠어요. 부모님이 모두 관리합니까?

“미국에서는 제가 회사에 맡겨 관리합니다. 한국에서는 부모님이 하지요.”

―부모님이 투자할 때 박선수와 사전에 상의합니까?

“부모님께서 하시는 걸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지 않아요. 부모님이 항상 뒤에서 저를 많이 도와주셨고 힘들 때마다 힘을 주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거면 뭐든지 하셔야죠.”

아버지가 좋아하면 뭐든 O.K

박선수 때문에 ‘잘난 딸 하나가 열 아들 안부럽다’는 속담이 힘을 받고 있다. 아들에게 치어 사는 대한의 딸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혹시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딸만 셋이라서 섭섭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없습니까?

“저희 부모님이 아들을 바랐던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아들이 있었으면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저희들이 느끼기에 부모님은 그런 것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안 쓰셨어요. 딸들을 항상 좋아했거든요. 아들은 아무래도 좀 무뚝뚝하고 살뜰한 애정의 표시를 안하잖아요. 딸들은 항상 부모님 우리 부모님 하면서 챙기니까 좋다고 하셨어요.”

―겨울철이면 태국과 호주로 골프 치러 가는 청소년들이 수천 명에 이릅니다. 예체능은 노력이나 뒷바라지만으로는 안되고 타고난 재능이 중요한데, 골프 지망 청소년들이나 그 부모님들에게 어떤 어드바이스를 해주고 싶습니까?

“재능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얼마만큼 좋아하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리 부모님이 열성적으로 뒤에서 밀어주셔도 자녀가 싫어하면 안되는 거거든요. 부모님들께서도 그걸 아셔야 돼요. 자기가 좋아서 해야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시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자녀 스스로의 결심이 더 중요하죠.”

박준철씨는 전국체전에도 출전한 경험이 있는 아마추어 골프선수다. 핸디캡이 지금도 넷 내지 다섯 정도. 드라이버의 거리가 박선수(250야드)보다 길다.

―아버지를 처음으로 이겨본 게 몇 살 때예요? 18홀을 돌아서 핸디캡 없이 처음으로 꺾은 것이….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아요. 지금도 같이 치면 이기기 힘들어요. 아주 잘 치세요.”

―아버지와 경기할 때는 핸디캡을 몇 개나 드립니까?

“18홀에 4점 드립니다.”

여기서도 아버지와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박준철씨는 세리와 경기를 하려면 9홀에서 3,4점 정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세계적인 선수가 돼서 도저히 못당하겠다는 것이다. 부녀가 골프를 함께 치면 딸은 덜 주겠다거니, 아버지는 더 받아야 한다거니, 핸디캡 협상이 볼만할 것 같다.

―아버님도 굉장한 골퍼시네요?

“예, 잘 치세요.”

―아버님의 장기는 뭐예요? 드라이브 퍼팅 숏게임….

“골고루 좋으세요. 어려운 상황에서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위기관리 능력이 좋으세요.”

―아버지가 15층 계단을 오르내리게 하고 공동묘지에서 샷 연습시킬 때 반발하지 않았나요? 아니면 아버지가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따라했나요?

“제가 좋아서 했어요. 무서워서라기보다는 제가 원했고 좋아했기 때문에 열심히 했어요.”

―길에 나가면 박세리 선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익명 속에 숨어 있을 수 없으니 불편한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주 불편했어요. 저도 보통 사람처럼 여기저기 다니고 싶어요. 다른 분들이 특별하게 보고 대할 때는 약간 부담스러워요. 보통 사람처럼 편하게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죠. 보는 시선이 달라서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훈련이 돼서 크게 불편하지 않아요.”

2/3
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whang@donga.com
목록 닫기

골프여왕 박세리 가슴을 열고 말하다

댓글 창 닫기

2022/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