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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들의 이미지 따라잡기

링컨·케네디에서 블레어·고이즈미까지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대선주자들의 이미지 따라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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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링컨과 노고문은 얼마나 닮았을까. 우선 중도에 포기한 학력을 들 수 있다. 링컨은 초등학교를 중퇴했고, 노고문은 상업고등학교 출신이다. 똑같이 변호사를 지냈으며, 각종 선거에서 수차례 패했다는 점도 같다. 링컨은 하원 상원 부통령 선거에서 잇따라 떨어졌고, 노무현도 국회의원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거푸 낙선했다. 또한 두 사람은 광범위한 정치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채 대권에 도전했다.

우리나라 정치인 중 십중팔구는 백범 김구를 존경한다. 독립운동에 앞장섰고,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이었으며, 최후의 순간까지 명분을 포기하지 않았던 민족의 지도자…. 적어도 국민들 가슴 속에 김구는 그런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노고문도 인터뷰 때마다 ‘존경하는 인물’로 김구를 꼽았다. 하지만 그는 ‘우리 역사에서 존경할 만한 인물이 왜 패배자여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품고, 역사에서 승리한 링컨을 주목하게 됐다고 한다. ‘링컨의 리더십을 거울삼아 개혁정치를 이루자.’ 그것이 노고문이 링컨에게서 빌려온 정치철학이다.

노고문이 링컨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유가 또 있다. 링컨은 남북전쟁까지 치르면서 지역통합에 힘을 기울인 사람이다. 또한 링컨은 미국 정치사에 최초로 민주적 대통령제를 정착시킨 인물이다. 노고문은 자신이야말로 지역갈등을 극복하고, 민주적 리더십을 구현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링컨은 1860년 5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3차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대통령후보에 선출됐다. 링컨은 1차투표에서 71표, 2차투표에서 3표를 뒤졌지만, 3차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었다. 노고문측은 200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결선투표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는 링컨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처럼, 자신도 한국의 제 16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김중권 전민주당 대표도 한때 링컨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민주당 대표 시절 “모 재벌회장이 나에게 ‘링컨의 이미지를 접목하라’고 충고했다”고 소개한 일이 있다.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고, 변호사를 지냈으며, 지역화합에 노력했다는 점이 닮았다는 것. 하지만 김고문은 이후 특별한 ‘링컨 마케팅’을 시도하지 않았다.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했던 유명한 말이다. 한국 정치인 가운데 이 대목을 가장 자주 인용하는 사람은 아마도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일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정고문이 정치스타일은 물론 헤어스타일과 연설모습까지 케네디 대통령을 따라간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이인제 고문도 정고문의 후원회에 참석해 ‘정동영 의원은 한국의 케네디’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케네디를 꿈꾸며

정고문과 케네디도 몇 가지 점에서 유사하다. 우선 두 사람 모두 40대에 정치적으로 성공했다.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두 사람의 가정환경도 비슷하다. 정고문의 부친이 도의원과 면장을 지내 일찍부터 정치에 익숙했다면, 케네디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집안이다. 비주류로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치행보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 통한다.

정고문이 케네디를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발상의 전환’ 때문이다. 케네디가 대통령직에 머물렀던 기간은 불과 1000일이다. 하지만 케네디는 오늘날까지도 미국인의 정신적 지주로 남아 있다. 할리우드가 끊임없이 케네디 영화를 만들고, ‘케네디 정신’이 오래도록 미국을 움직이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케네디 집권 당시 미국은 쿠바를 사이에 두고 소련과 지루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때 케네디가 ‘우주로 가자’고 선언하면서 미국은 ‘차원이 다른’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고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도 케네디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 좁은 땅에서 정쟁에 휘말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고문은 15대 국회 상반기까지 국방위와 교육위에 몸담았지만 후반기부터는 과학기술정보통신위로 옮겼다. 한국사회의 미래가 정보산업에 달려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 그는 2001년 한해 동안 두 차례에 걸쳐 ‘IT산업 보고서’를 냈다. 이 또한 ‘케네디식 발상의 전환’에서 나온 행보로 볼 수 있다.

정고문은 조만간 대권도전을 공식화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그가 실제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드물다. 정고문측은 얼마전 ‘정동영의 e-campaign’이라는 문건을 작성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기본컨셉트는 ‘서울시장’이었다. 정고문이, 선거에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제시 벤추라 미네소타 주지사나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독자노선으로 부시에 맞섰던 존 멕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주)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미래를 위한 포석으로 봐야 할 것이다.

민주당 한화갑 상임고문은 흔히 ‘리틀DJ’로 통한다. 김대중 대통령과 동향인데다, 정치에 입문한 뒤 오랜 기간 동교동 비서를 지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을 닮는다던가. 한고문을 보고 김대통령의 이미지를 느끼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인터뷰할 때 오른손을 칼질하듯이 내린다거나, 깨알같은 글씨체까지 한고문은 김대통령을 빼닮았다. 또한 한고문은 연설 도중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묻는 김대통령 특유의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하는 몇 안되는 정치인이다.

김대통령의 인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한고문이 ‘리틀DJ’라는 이미지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한고문이 김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부쩍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한고문측 사람들은 “한고문은 아무리 힘들어도 DJ와 갈라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고문은 DJ에게 정치를 배웠기 때문에 DJ가 어렵다고 해서 배신할 사람이 아니라는 게 그들의 해석이다.

한고문 진영에서는 얼마전 자체적으로 이미지 심층면접조사(FGI)를 벌였다. 그 결과 한고문에게서 ‘충성심’과 ‘비합리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고문측 이용범 공보특보는 “동교동의 부정적 이미지를 한고문이 그대로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한고문의 최종학력을 목포상고로 아는 사람까지 있었다.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면 이미지는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고문측은 최근 ‘탈 DJ이미지’의 방향을 구체화했다. 여기서 핵심은 DJ의 개혁방향과 철학은 계승하되, 의사결정 과정과 추진방식은 보완한다는 것. 다시 말해 한고문은 3김시대의 리더십을 투쟁적·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규정하고, 자신은 정책적·합리적 리더십을 지향하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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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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