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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수지는 알아도 수지킴은 모른다”

수지킴 사건 특종 이정훈 기자 vs 은폐혐의 구속 이무영 전 경찰청장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분당 수지는 알아도 수지킴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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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경찰청장 재임 시절로 돌려보겠습니다. 저는 이청장을, 경찰을 위해 참 많은 일을 한 분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몇 가지 잘못하신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호남 출신 인사를 대거 승진시킨 것입니다. 팔이 안으로 굽은 것은 아닙니까.

“좋아요. 얘기해 봅시다. 순수 직업 경찰관이 9만1000여 명쯤 되는데 이들을 본적이나 출신고 등을 기준으로 분류해보면 영남 출신이 31%, 호남 출신이 29%, 충청이 15.5%, 서울·경기·강원 등 중부권이 20% 정도 됩니다. 경정 이하 하위 계급에는 대개 이러한 비율로 배치돼 있습니다. 그런데 총경 이상에서는 영남과 호남만 놓고 따지면 44% 대 21%가 됩니다. 영남 출신은 인구 비율보다 13% 포인트 많고 호남은 8% 포인트가 적습니다.

해마다 경무관 승진자가 10∼11명 정도 나오는데 영남 정권 때 5∼6명은 영남 출신이고 호남 출신은 이른바 ‘배려 차원’에서 1명씩 넣어주었습니다. 나머지는 충청이나 중부권 출신이고요. 저는 이것을 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총경 이상 고위직도 경찰 인구비율대로 4:4:2:2로 승진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특정 지역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박탈감으로 인식됐던 모양입니다. 국회에서도 여당 공격용 자료로 이용했으니 그들의 박탈감은 더욱 컸겠지요.”

-전북 출신으로는 최초의 경찰 총수였지요.

“제가 54대 청장인데, 그동안 호남 출신은 세 명이고, 전북 출신은 제가 처음입니다. 경상도 출신 청장은 28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유당과 공화당 정권 때는 이북 출신이 많았으므로 이들을 뺀다면 사실상 경찰 총수는 영남이 독점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찰청장 임기제 도입 필요

-54명의 경찰청장 중에서 임기 2년을 채운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청장께서는 임기를 채우셨습니다.

“잘못 알고 계십니다. 검찰총장과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은 법적으로 임기가 2년으로 명시돼 있으나 경찰청장은 법적으로 임기가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저는 유사한 분야의 총수 임기가 2년이라, 2년을 채우려 한 것뿐입니다. 사실 경찰청장의 임기는 법령으로 2년을 보장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2년은 근무해봐야 예산안을 짜서 경찰 업무를 추진하고, 그 결과를 교훈 삼아 새로운 정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간섭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경찰청장 임기제는 필요합니다.

54명의 역대 청장 중에서 2년 이상 총수를 맡은 분이 불과 6명에 불과할 정도로 경찰 총수의 재임 기간이 짧았습니다. 저는 4일 모자라는 2년을 했습니다.”

-수지킴 사건을 이야기하며 경찰 개혁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경찰 개혁을 생각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저도 탄탄대로만 달려온 것은 아닙니다. 몇 번인가 ‘이제는 옷을 벗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1998년 경찰종합학교장으로 발령받았을 때는 계급정년 때문에 정말로 옷을 벗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금강경’을 다섯 번 읽고 마음을 비웠습니다.

이기자도 살아보면 알겠지만, 세상일이 나빠져봤자 얼마나 나빠지고, 또 좋아져봤자 얼마나 좋아집니까. 그러니 항상심(恒常心)을 갖고 살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경찰 개혁은 누가 해도 꼭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가하다고 하는 이른바 물 먹은 자리에 가 있을 때 경찰 개혁 방안의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재임중에 경찰 수사권 독립을 추진하셨는데, 일각에서는 이청장이 경찰 수사권 독립을 추진했기 때문에 수지킴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다고도 합니다.

“수사권 독립이란 말은 어폐가 있어요. ‘수사권 현실화’가 적절한 표현이지. 실제 수사의 98%를 경찰이 담당하는데, 사건 당사자인 국민은 검찰에 가서 경찰에서 한 것과 똑같은 수사를 받고 있어요. 일제 때 만들어진 형사소송법에서 검찰에서 작성한 조서를 증거로 채택한다고 해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데, 국민들은 똑같은 조서를 두 번 쓰는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1분1초가 아까운 시대인데 이게 무슨 낭비입니까.

경찰은 실력이 없다고 하는데,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중앙경찰학교에 순경으로 들어오는 젊은이의 92%가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어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악대(樂隊)를 모집하자 미국의 줄리아드 음대를 나온 사람이 도전하더라고요. 순경 계급장을 달아주는 자리인데….

세상이 무섭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결국 국민은 형사소송법을 바꿔 경찰의 수사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경찰은 생명산업”

-형소법만 바뀐다고 경찰의 수사권이 독립되겠습니까. 예를 들어 헌법 12조 3항은 ‘영장 신청은 검사가 한다’로 돼 있습니다. 검찰의 영장 신청이 헌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입니다. 이러니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위해 추진하는 구속장(경찰이 청구하는 영장) 제도는 현실화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개헌을 하지 않고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현실화할 수 없는 것이지요. 또 검찰청법 4조는 ‘검사는 범죄수사에 관해서는 사법경찰을 지휘 감독한다’고 돼 있는 등 곳곳에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를 방해하는 법률 조항이 있습니다. 경찰에서는 이러한 조항들이 경찰을 검찰의 노예로 만드는 ‘노예조항’이라고 하던데, 이에 대한 이청장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잘 아시다시피 경찰 수사권 독립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의 공론화 중단 지시로 인해 중단되었습니다. 그 문제는 검·경이 다툴 일이 아니고 국민들이 해결해줘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 체제대로 가면 결국 수사를 받는 국민이 불편하니까 국민이 변경을 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경찰 수사권 독립이 검·경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져서는 정말 곤란합니다. 경찰은 실력부터 열심히 닦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것을 빠뜨릴 수 없군요. 경찰이나 검찰이 비난을 받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면, 강력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시국사건이나 정치적인 사건을 편파적으로 처리해서 욕을 먹더군요. 경찰이나 검찰이 민생 치안을 위협하는 사건을 편파적으로 수사한다는 비난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국민들은 민생 치안 분야의 강화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보·보안·수사·방범·경비·교통·외사 등 경찰의 여러 분야 중에서 민생 치안과 관계된 방범과 수사 분야가 각광을 받아야 하는데, 거꾸로 경찰에서는 정보나 경비처럼 윗사람에게 잘 보일 수 있는 분야가 인기를 끌고 있어요. 경찰 개혁을 했다지만 수사 분야에서 개선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IT시대에 등장하는 새로운 범죄를 막기 위해 사이버 경찰청을 만들었고 과학수사를 활성화했습니다.”

-과학수사요? 과학수사의 시작은 감식입니다. 그런데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감식기관이라는 서울지방경찰청 감식과에 가보면 전부 ‘할아버지’들만 앉아 있어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감식은 이른바 경찰 내의 3D 분야로 꼽혀 젊은 경찰관들은 거의 지원하지 않습니다. 감식을 잘 해서 범인을 잡아도 결국 범인을 잡은 수사경찰만 특진하니 누가 감식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저는 재임중에 감식과를 과학수사과로 바꾸고 감식을 잘해 범인을 잡으면 감식한 사람도 특진하게 하는 제도를 처음 도입했습니다. 또 여러 번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지문은 전부 컴퓨터에 입력시킴으로써, 사건 발생시 범인 검거 속도를 빠르게 했습니다.

저는 경찰은 생명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사나 방범·교통 등은 직접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분야고, 기타 다른 분야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있는 분야입니다. 제가 인기를 끌지도 못하면서 경찰청장에 2년이나 머물러 있으려고 한 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생명산업을 진작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간첩과 좌익사건을 다루는 보안 분야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DJ 정부 들어 경찰청 보안국은 대공수사를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업무를 놓은 것입니까, 아니면 진짜로 간첩이 줄어든 것입니까. 간첩사건을 수사하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국과, 기무사의 방첩처 그리고 경찰청의 보안국은 공통적으로 국정원과 기무사·경찰청 내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공과 방첩과 보안은 변화한 세계에 맞는 규모를 갖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간첩이 줄었다면 이 분야를 줄여야 할 것이고, 반대로 위축돼 있다면 활성화해야 할 텐데, 워낙 고립돼 있다보니 개혁을 외치는 사람도 이 분야만은 손을 대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많은 분야를 알고 계시는군요. 보안 분야를 조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이제 겨우 나오고 있으니 언젠가는 조정이 이뤄지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너무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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