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호

'박근혜 新黨'의 운명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10-27 1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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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2월20일 아침,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계단, 정장에 코트를 갖춰 입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무리 속에는 한때 한나라당 내에서 개혁파로 분류되던 의원들도 있다. 자민련 출신 의원들도 눈에 띄는데, 그 가운데는 5년 전 바로 같은 자리에서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이벤트에 참여했던 정객들도 보인다.

    민주당 의원들도 있다. 개혁성향의 젊은 의원들도 보이고 호남출신 의원 몇몇도 자리를 함께했다. 모두들 상기된 표정이다. 악수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등을 두드리며 서로를 격려하기도 한다. 모두들 환하게 웃고 있다. 대략 100여 명은 될 듯싶다. 방송사 카메라가 여기저기 설치돼 있고 조명도 휘황찬란하다.

    잠시 후 검정색 세단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국회 정문을 통과해 본관 앞으로 다가온다. 세단을 따라 몇 대의 검정 승용차도 따라 들어온다. 의사당 계단에 미리 와 있던 정치인들 사이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터진다. 이윽고 자동차는 멈추고 사람들이 내린다. 이 날의 주인공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환성과 박수 소리는 더욱 커진다. 환하게 웃으며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박근혜 제16대 대통령 당선자. 그 뒤로 김종필 자민련 총재, 김윤환 민국당 대표, 이수성 전총리, 김덕룡 의원 등 낯익은 정치인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정치인들에게 손을 흔든다.

    또 다른 승용차에서는 정몽준 의원이 내린다. 선거 막판 박근혜 신당에 합류해 결정적 도움을 주었던 그도 박근혜 당선자와 악수를 나눈 뒤 다른 참석자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한다. 마지막으로 한광옥 민주당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승용차에서 내려 일행과 합류한다.



    잠시 후 의사당 계단에 설치돼 있던 연단으로 박근혜 당선자가 다가간다. 5년 전 이날 김대중 당선자가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에 둘러싸여 당선 연설을 했던 것처럼 박당선자도 그를 도왔던 동지들에 둘러싸여 당선에 감사하는 대국민 연설을 한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우리는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진정한 정치개혁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힘을 모아준 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의 성원 덕분에 나는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박근혜 당선자는 또박또박 책을 읽듯 말하는 특유의 연설법으로, 느리지만 차분하게 당선사례의 글을 읽어 나갔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박당선자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숨막히는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당락을 가른 표차는 불과 50여만표. 15대 대선처럼 밤새 오르락내리락 시소대결을 벌인 뒤 새벽5시가 다 돼서야 당락의 윤곽이 드러난 치열한 대결이었다.

    짧았지만 험난한 6개월이었다. 지난 2월 한나라당을 탈당해 신당의 깃발을 꽂고 각계각층의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분주하게 달렸던가. 채 진용이 갖춰지기도 전에 시작된 대통령 선거전은 또 얼마나 치열했던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비주류 세력과 자민련, 민국당이 결합하고 민주당의 일부 세력이 박근혜 신당의 깃발 아래 모여 5개월여 숨가쁘게 달려온 끝에 이룬 감격적인 승리였다.

    “만세” “만세”

    박당선자의 연설은 끝나고 승리를 축하하는 만세소리가 국회 앞마당에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자 사상 처음으로 2대에 걸친 대통령 탄생을 축하하듯 멀리 비둘기떼가 날아간다.

    현재 정가에 나돌고 있는 그랜드 신당 구상의 줄거리는 이렇다. 먼저 박의원과 더불어 한나라당을 탈당하는 김덕룡 의원이 합세한다. 김덕룡 의원을 따라 2~3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동반탈당하고, 이회창 총재의 당운영 방식에 불만을 갖고 있는 일부 TK출신 의원들도 당을 떠나 박근혜 의원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 골격이 갖춰지면 여기에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가세한다. 그러나 JP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자민련의 젊은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당을 떠나 박근혜 신당에 합류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김영삼 전대통령도 힘을 보탠다.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는 강삼재, 박종웅 의원 등 YS 직계 의원들이 한나라당을 떠나 박근혜 신당으로 이동한다.

    김윤환 민국당 대표도 당을 해체하고 지구당 위원장들과 민국당의 유일한 전국구 의원인 강숙자 의원을 박근혜 신당의 멤버로 보태준다. 정몽준 의원도 신당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이수성 전의원 같은 이도 신당의 일원이 된다. 이들 가운데 누가 대권주자가 될 것인가는 당내 경선 등을 통해 결정하면 된다.

    민주당의 일부 세력도 신당 대열에 합류한다. 민주당 전부가 옮겨올 수도 있고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세력들이 박근혜 신당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민주당의 젊고 개혁적인 의원들이 신당에 가세함으로써 신당은 사실상 전국적인 영향력을 갖춘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그랜드 구상의 마지막에는 YS JP 김윤환 박태준 같은 원로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신당의 후견인 격으로 버티면서 마침내 노·장·청의 조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 결과는 박근혜 의원의 대통령 당선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박근혜 의원을 중심으로 정계개편이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정치권 일각의 구상일 뿐 현실화하기에는 난관과 변수가 적지 않다.

    가장 큰 변수는 역시 민주당 대선주자 경선이다. 4월27일 서울을 마지막으 해 진행중인 대선후보 경선은 그 결과가 곧 박근혜 신당의 진로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사실 경선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대다수 정치권 인사들은 이인제 고문의 압승을 예상했다. 심지어 국민참여경선제를 두고 “이고문을 민주당 대선주자로 만들기 위한 이벤트”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였다. 이인제 대세론은 그만큼 강고했고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순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경선이 이인제 고문을 위한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가자,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금품살포 등 불공정 경선사례를 근거로 경선불복을 시사하는 주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한화갑 고문이다.

    그러나 제주 경선 결과는 의외였다. 한화갑 고문이 예상 밖의 1위를 한 것이다. 175표를 얻어 172표의 이인제 고문을 근소한 차로 앞질러 1위에 오른 것이다.

    제주 경선이 끝난 직후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 결과를 상당히 의미있게 해석했다.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경선 전까지만 해도 경선에 임하는 한화갑 고문이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불공정 경선이라는 한고문의 문제제기와 달리 제주에서 1위를 함으로써 당분간 경선이 불공정했다는 주장을 펼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의 제주도 대의원들이 들썩이던 한화갑 고문을 주저앉힌 셈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고문의 정계개편을 향한 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당사자는 거듭 대권도전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민주당 주변에서는 아직도 한화갑 고문이 당권도전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가 적지 않다. 그렇지 않고 계속 대권도전을 고집할 경우 당사자의 뜻과 관계없이 경선 이후에 정계개편을 적극 도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인제 대세론이 무너지고 노무현 대안론이 확산되면서 정계개편론은 주춤하는 느낌이다. 특히 지난 3월16일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595표(37.9%)를 얻어 당당 1위로 치고 나가면서, 정계개편론으로 꿈틀거리던 정치권은 움직임을 멈춘 채 민주당의 경선레이스를 지켜보고 있다.

    앞서 ‘그랜드 신당 구상’을 전개했던 인사도 “노무현 고문이 민주당의 대선 주자가 될 경우 상황은 상당히 복잡해진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박근혜 의원의 지역적 연고는 영남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고문이 민주당의 후보가 돼 대선에 나설 경우 영남을 연고로 하는 후보가 두 명이 되는 셈입니다. 민주당에서 신당에 합류할 대표주자가 호남 출신이면 영남 연고의 박근혜 의원과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이 되지만, 영남후보가 둘이 되면 결국 정치적 타협을 할 수밖에 없겠죠. 아니면 박근혜 신당과 노무현 후보의 민주당이 합치면서 전당대회를 통해 후보경선을 다시 한번 할 수도 있겠죠. 어느 경우라도 문제해결이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인사는 “누가 뭐래도 지금의 민주당만으로는 절대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노무현 고문이 민주당 후보가 될 경우 박근혜 의원과 후보단일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노무현 고문 진영의 태도. 노무현 고문은 경선 직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러차례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집권이 불가능한 만큼, 내가 후보가 되면 대선 전 정계개편을 서두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신당과의 통합을 포함해 다양한 정계개편의 통로를 열어두겠다는 얘기다. 만약 노고문이 민주당 대선주자가 되면 정치권 일반의 예상과 달리 후보단일화 등의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려나갈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이 인사는 “이런 판단은 이인제 고문이 민주당의 대선주자가 됐을 때도 마찬가지”라며 “여당의 대선주자가 누구라도 박근혜 의원의 신당과 힘을 모으지 않고는 이회창 총재를 이길 수 없다. DJ의 흔적이 남아 있는 민주당 간판으로는 결코 안된다. 결국 민주당은 깨지고 말 것”이라고 못박았다. 결국 박근혜 의원과 그를 중심으로 한 신당은 그 규모에 관계없이 대선 판도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 하나. 도대체 박근혜 의원의 득표력은 얼마나 될까.

    박근혜 의원이 탈당을 결행한 직후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박의원을 제3의 대선후보로 대입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박의원은 만만찮은 경쟁력을 가진 후보임이 드러났다. 아무런 정치적 후원세력이 없이 당장 선거에 나서도 20% 이상의 득표가 가능한 인물임이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것이다.

    먼저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는 이회창-이인제-박근혜 3자가 가상대결을 벌일 경우 이회창 총재가 31.1%, 이인제 고문이 25.7%, 박근혜 고문이 24.1%의 지지를 얻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의원은 연고지인 영남권보다 수도권에서 더 높은 득표력을 갖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천·경기지역에서는 이인제 고문 29.6%, 박근혜 의원 27.8%, 이회창 총재 27.3% 순으로 나타나 3자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여론조사에서도 박의원은 각각 24.8%와 20.4%를 얻어 ‘박근혜 변수’가 상당히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의 조사에서 박의원은 특히 20대 젊은 층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의원의 한 측근인사는 “아마 대한민국 정치역사상 박근혜 의원처럼 단기간에 23~24%대의 지지율을 확보한 정치인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만약 박의원이 제대로 된 정당의 후보로 대선에 나선다면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치러진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어김없이 제3후보가 등장했다. 1992년 대선 때는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해 대선에 뛰어들었다. 박찬종씨도 신정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또 다른 제3후보로 대선에 참여했었다. 1997년에는 이인제 고문이 제3후보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들 과거의 제3후보와 박근혜 의원과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과거의 후보들이 비교적 뚜렷한 지지계층과 지역기반을 갖고 있었던 데 반해, 박근혜 의원은 현재로서는 이들 만큼 분명한 지지기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박의원의 지지기반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영남권이다. 그러나 탈당 이후 여론조사를 보면 오히려 영남권에서 박의원 지지율이 전국 평균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까 과거의 제3후보에 비해 박의원은 현재까지 확실한 자신의 연고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앞서의 구여권 인사는 박근혜 의원의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흔히들 박근혜 의원이 대구지역 국회의원이고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경북 출신인 까닭에 TK에서 많은 표를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게 뭐냐하면 아직 TK가 박근혜의 한나라당 탈당을 납득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박근혜의 탈당으로 한나라당의 집권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박의원이 실질적인 영남후보로 떠오르면 TK도 달라질 겁니다. DJ에게 정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TK로서는 박근혜 의원이 정권을 되찾아올 영남의 대표주자라는 판단만 한다면 언제라도 표를 몰아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박근혜 의원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이 중요합니다.”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지도자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리더십’이다. 박근혜 의원은 리더십에 관한한 그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탈당 직후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총재 등이 “탈당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박의원의 용기를 격려한 바 있다. 김윤환 민국당 대표도 “두 김씨의 말에 동의한다”면서 “웬만한 남자 저리가라 할 정도로 강단이 있다”고 박의원을 추켜세웠다.

    박근혜 의원의 한 측근인사는 “출마만 하면 아직은 차가운 대구지역 민심을 돌릴 비책이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대구·경북 사람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가장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해마다 10·26때면 국립묘지에서 추념식을 합니다. 그런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고 조화 한번 보낸 적이 없습니다. 대구·경북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당장 이총재에 줬던 지지를 철회하고 박의원을 도울 겁니다. 이처럼 선거가 시작되면 폭로할 꺼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난 3월11일 여권의 외곽 연구단체인 새시대전략연구소는 ‘NSIK주간포커스’ 9호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박근혜 탈당에 대한 여론조사 내용분석’이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박의원의 탈당배경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박근혜 의원이 2002년 통일대통령을 기치로 내걸고 대선후보로 출마할 경우, 일반적으로 지난 15대 대선 때 이인제 후보가 얻은 492만표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함. 그러나 대다수 학자 및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로는 박근혜 의원이 많게는 550만표, 적게는 200만표까지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정계개편의 수위에 따라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도 있다고 자신하여 탈당을 감행한 것으로 봄.’

    보고서는 향후 전망에서 ‘김영삼 전대통령과 탈당설이 나돌고 있는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을 비롯한 민주계 일부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 무소속 정몽준 의원, 대구·경북 지역을 포함한 영남권 의원, 군소정당 등을 대상으로 신당창당에 나설 것’으로 관측했다.

    나아가 보고서는 ‘특히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후보 간 알력이 심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 이들 중 일부가 이탈해 신당에 합류할 경우 대규모 정계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신당창당 시기에 대해 ‘빠르면 4월, 늦어도 6·13지방선거 직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여권의 외곽 연구단체이고 이사진이 전원 민주당 의원임에도 새시대전략연구소는 일반에 공개하는 이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정계개편의 은밀한 부분까지 기술하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의 부총재직 사퇴는 YS와의 교감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정계개편의 수위가 결정될 것이며, YS가 박의원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어 정계개편의 중심축은 박근혜 의원이 될 것으로 봄.

    특히 민주당 내에서도 한화갑 상임고문의 경우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연합을 명분으로 한 ‘반(反)이회창, 비(非)이인제’ 연합군을 염두에 두고 박근혜 의원과 접촉한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박근혜 신당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 탄생하지도 않은 정당의 운명을 논하는 것이 어딘가 어색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지금 사실상 신당 출현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고 오히려 그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연 박근혜 신당은 ‘장면1’을 만들어낼 것인가, 아니면 과거 대선 때마다 나타났다 출몰했던 제3신당들의 슬픈 엔딩이었던 ‘장면2’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많은 정치권 인사들은 박근혜 신당의 미래가 ‘장면1’보다는 ‘장면2’에 가까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근거는 과거의 경험이다.

    한 중견기자는 “과거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정당들을 많이 봐오지 않았나. 오랜 세월 내부갈등과 통합 과정을 겪어 단단한 조직력을 갖춘 정당들 사이에서 과연 신생정당이 제 기능을 할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박근혜 신당이 여러 정치세력과 명망가들의 집합소가 될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 “그렇더라도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은 국민들의 투표성향을 무시한 처사”라고 말했다. 이 인사의 이어지는 말.

    “과거 민국당을 보라. 김윤환 이수성 이기택 허화평 김상현 신상우 박찬종 김광일씨 등등…, 이름만 들어도 천하가 다 아는 거물 정치인들이 모두 모여 만든 정당이지만 이들 가운데 16대 총선에서 당선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나마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민국당은 정당이라고 부르기도 창피한 상황이다. 정치권에서 명망가들의 집합은 힘이 되기보다 힘을 빼는 결과로 종종 이어진다. 3김씨와 같은 확실한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없는 이상 박근혜 신당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들도 대체로 이런 관측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박의원의 탈당 소식이 알려진 직후 이회창 총재의 한 측근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의원이 탈당 후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수성 전총리였습니다. 이 전총리에 이어 앞으로 김윤환 민국당대표, 김종필 자민련총재, 김영삼 전대통령을 만나고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과도 만나 자문을 구할 생각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마 국민들은 이런 박근혜 의원의 행보를 보고 미래지향적인 정치를 한다고 그렇게 떠들더니 ‘겨우 구 정치인들이나 만나러 다니려고 탈당했느냐’며 비난할 것입니다. 만약 박근혜 의원에게 힘을 보태줄 세력이 이들 구 정치인들이라면 국민들이 외면할 테고 박근혜 신당의 돌풍은 미미할 것으로 봅니다.”

    한마디로 찻잔속의 태풍일 뿐, 유교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여성인 박근혜 의원이 결국 그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런 부정적 의견을 펼치는 사람들도 박근혜 의원과 그의 신당이 여전히 대선에서 만만치 않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현재 박근혜 의원은 공식 활동을 자제한 채 민주당 경선과 한나라당 당내 갈등 등 정국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측근인사는 “조만간 기지개를 켤 예정”이라며 “이왕 움직일 때 큰 걸음을 걷기 위해 이것저것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의 원로정치인은 “박근혜 의원이 얻은 24% 지지율을 눈여겨봐야한다”고 말했다.

    “솔직히 박근혜에게 당이 있습니까, 그를 따르는 국회의원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아무도 없이 혼자서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나왔습니다. 그것밖에 한 일이 없는데 국민들은 24%의 지지를 보냈습니다. 만약 여기에 세력이 붙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군다나 박의원의 본거지인 TK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이 정도 지지를 얻은 정치인은 아마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할 겁니다.”

    박근혜의 또 다른 선택은 없을까. ‘장면1’처럼 통합신당의 대선주자로 출마하거나, ‘장면2’처럼 군소정당의 후보로 나서는, 정녕 이 두 가지 길밖에 없는 것일까. 만약 박근혜 의원이 선택할 수 있는 제3의 길이 있다면 그 길은 무엇일까. 그 길에서 만날 미래는 또 어떨까.

    통합신당의 전당대회장, 민주당과 박근혜 신당의 통합 전당대회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통합신당의 대통령 후보선거다. 2시간여에 걸쳐 3만명에 이르는 대의원들은 전자투표를 마쳤고 이제 그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에어컨이 가동되건만 실내체육관은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참석자들로 후텁지근하다. 여기저기서 바쁘게 부채질을 하는 사람들로 멀리서 보면 체육관 안에는 하얀 나비가 잔뜩 날아다니는 것 같다.



    박근혜의 제3의 선택


    잠시 후 통합신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이 연단에 섰다. 그의 손에는 막 인쇄된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 결과가 들려 있다. 연단 오른쪽 자리에 박근혜 의원과 민주당의 대선주자로 결정된 인사가 나란히 앉아 있다. 민주당 인사는 지긋이 눈을 감고 있고 박의원은 여기저기 자신을 아는 체하는 참석자들에게 연신 손을 흔들어 답례를 보내고 있다.

    “개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총 유권자 3만1200명 가운데 투표참가자가 2만8645표로 투표율은…”

    순간 박근혜 의원도 눈을 감았다. 잠깐 사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1998년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이 된 후 만 4년, 정치현실을 제대로 알기도 전 거대야당의 총재와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였고 마침내 탈당…. 마치 슬라이드 화면을 보듯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와!”

    군중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사람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고 하늘에서는 꽃가루가 날린다. 잠시 뒤 함성을 뚫고 누군가의 이름을 연호하는 청중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살며시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있는 옆자리의 민주당 대선주자 옆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 졌구나.’

    팔걸이에 힘을 가해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무력감에 그것도 쉽지 않다. 그 순간 아득하게 자신을 부르는 군중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박근혜” “박근혜” “박근혜”

    군중의 환성은 점점 커지고 단상의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로 다가온다.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연신 그의 눈앞에서 터진다. 이제는 통합신당의 대통령후보 당선자가 된 옆자리 주인공이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대중정치인이 된다는 게 이런 것일까. 군중의 환호에 울고 웃는 공인의 삶, 박근혜 의원은 20대 퍼스트레이디 시절의 그 긴장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맡겨진 제3의 길, 그것은 ‘킹메이커’였다.

    2002년 12월19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서울 여의도의 ‘박근혜 신당’ 중앙당사 상황실, 몇몇 당직자들만이 침통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초저녁까지만 해도 당원과 지지자로 북적거렸지만 모두 빠져나가고 지금은 마치 파장한 시장통처럼 스산한 모습이다. 여성 당직자들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보인다.

    개표 초반부터 선두권에서 멀어지더니 박근혜 후보는 끝내 선두권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중과부적(衆寡不敵), 박정희 전대통령의 후광에 여성 후보라는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박후보는 끝내 세부족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혈혈단신 전국을 누볐건만 민주당과 한나라당이라는 기존 거대 정당의 위세를 꺾기에는 자금력도 세력도 부족했다. 애초 기대했던 영남표도 민주, 한나라의 두 정당 후보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아버지의 고향이자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TK의 유권자들마저 박후보를 외면했다. 그들은 철저히 현실을 좇아 표를 던졌던 것이다.

    220만표, 이대로 개표가 끝난다면 박 후보가 확보할 표는 대략 이 정도가 될 것이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후보가 각각 1000만표 가까이를 득표한 가운데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개표방송 화면에는 1위와 2위 후보의 표차를 소개하는 자막과 그림만 나올 뿐 박후보는 얼굴조차 나오지 않는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어 박근혜 후보가 중앙당 상황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한달 이상 강행군으로 눈에 띄게 핼쑥한 얼굴이다. 박후보는 상황실을 지키고 있는 당직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그의 목소리는 꽉 잠겨 있었다.

    박후보의 손을 잡으며 여성들은 물론 남성 당직자들도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박후보는 이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한 뒤 중앙당사를 빠져나갔다. 그의 모습을 잡으려고 뒤늦게 TV카메라가 따라나간다.

    다음날 아침 박근혜 신당의 대변인은 다음과 같은 박후보의 성명서를 읽어 내려갔다.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에도 불구하고 저는 패배했습니다. 1인 지배체제의 권위주의 정당질서를 바로잡고, 나아가 아버지가 못다 이룬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있는 힘을 다했지만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제 저는 겸허히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

    장문의 성명서였지만 이튿날 조간신문에 박후보의 성명서는 한쪽 구석에 짤막한 단신으로 처리됐을 뿐이다. 대신 신문들은 새 대통령 당선자 주변의 풍경과 앞으로의 정국전망, 그리고 당선자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 등을 몇 면에 걸쳐 특집으로 싣고 있었다.

    몇 달 전 만해도 대한민국 정치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여야 모두 확실히 대세를 장악한 차기주자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권은 이합집산을 하고 있었다.

    민주당 이인제 상임고문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최근까지도 올겨울 대통령 선거에서 두 사람이 여야의 대표주자로 나서 맞붙을 것이라는 전망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15대부터 이어진 두 이(李)씨의 대권전쟁은 지난 40년간 ‘3김의 전쟁’에 비교될 정도였다.

    그러나 3월이 다 지나가는 요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우선 민주당 사정이 복잡해졌다. 지난해까지도 여론조사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던 ‘만년 2위’ 노무현 상임고문이 지역순회 경선을 치르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3월16일 광주 경선 결과 마침내 이인제 고문의 대세론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선까지 올라섰다.

    4월27일 서울지역 경선까지 더 지켜볼 필요가 있겠지만, 울산에 이어 광주지역 경선에서마저 1등을 차지하면서 노고문의 상승세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경선 전체의 판도를 좌우할 중대 변수임이 확인됐다.

    뜻밖의 초반 열세에 당황한 이인제 고문이 텃밭인 대전지역 경선에서 승리, 일단 전세를 반전시켰으나 민주당 경선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혼전 양상을 띠고 있다.

    한나라당은 어떤가. 이곳도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당내 민주화를 요구하며 이회창 총재를 비난해온 비주류들이 마침내 탈당 등 구체적 실력행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김덕룡, 홍사덕, 강삼재 의원 등이 당장 탈당 예상자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 외에도 한나라당을 떠날 의원들이 더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돌고 있다. 이회창 총재는 지금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마디로 여의도는 시계 제로다. 여야의 대표주자들이 내부의 도전에 직면해 휘청거리는 상황이다 보니 정치권의 앞날을 내다보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이처럼 혼란한 상황에서도 가장 명쾌한 행보를 보이는 정치인이 박근혜 의원이다. 지난 2월28일 박의원은 한나라당에 탈당계를 던졌다. 정치권은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얼마 뒤 박의원의 결단에 탄성과 탄식이 이어졌다.

    사실 박의원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목적을 갖고 탈당을 결행했다. 신당 창당과 대통령 선거 출마, 2002년 안에 이 두 가지를 실천할 계획을 갖고 한나라당을 떠났다. 구체적 타임 테이블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통령 선거에 나서려면 신당을 만들고 동지들을 규합해야 한다. 리더십을 분명히 해야 하며 국민들의 동의도 얻어야 한다.

    낙선하려고 선거에 나서는 정치인은 없다. 박근혜 의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되 멋지게 당선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한나라당을 나섰음에 분명하다. 탈당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의원은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정당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역량을 가진 정당이 나와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합니다. 기존 정당으로는 안됩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탈당 직후 박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무슨 준비가 있어 탈당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의원은 “지금 당장 이름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한나라당으로는 안되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떠난 것”이라고 말했다. 박의원은 “준비 없이 당을 나섰지만 지금부터 시작”이라고도 말했다.

    이어지는 박의원의 설명에서 비록 ‘준비’는 없었지만 ‘믿는 구석’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에 대한 지지는 어떤 지역에만 편중된 것이 아니에요. 경기 강원 충청 호남지역에서도 유권자들을 만나보면 뜨겁게 전해져 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지자 중에는 여자가 약간 많지만 남자들도 고르게 분포돼 있었습니다. 20, 30대 젊은층 지지자도 많은데, 이것은 나에 대한 지지가 단순히 아버지의 후광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박의원은 신당창당에 이은 대선출마라는 2002년 정치 스케줄을 이미 마련해 놓은 것 같다. 지지자들의 성향까지 꼼꼼히 분석해 놓은 것이 그 반증일 수도 있다.

    분명하게 자신의 정치 진로를 공개한 까닭에 지금 정가에는 박근혜 의원을 중심에 둔 정계개편론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멸되고 다시 출현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현실감 있게 거론되고 있는 소문은 여권의 일부 대권주자와의 연계설이다. 물론 박의원은 “기존정당과는 연계할 생각이 없다”며 이같은 소문을 일축했지만, 이 소문은 꼬리를 물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어느 정도는 여당 대선주자들의 자가발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냥 흘려듣기에는 현장감 넘치는 가설들이 춤을 추고 있다.

    지난 1월 중순, 여당 대선주자의 한 공보담당자는 기자들을 만나 “좋은 기삿거리가 있다”며 다음과 같은 제안을 내놓았다. 이 공보담당자가 모시고 있는 호남출신의 대선주자와 영남을 기반으로 한 박근혜 의원을 한자리에 불러 대담을 벌여 이를 기사화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모양이 좋잖아요. 민주당의 뿌리는 호남입니다. 반면 한나라당의 뿌리는 TK 중심의 영남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묘하게도 두 당의 대표주자는 호남 사람도, 영남 사람도 아니에요. 민주당에서는 이인제 고문이 선두를 달리고 있고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 총재의 아성이 공고하잖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지역분열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박의원과 우리 영감이 한자리에서 지역통합문제를 두고 대담을 하자는 겁니다. 각각 자신의 정당에서 뿌리에 해당하지만 주류에서 소외된 두 사람이 만나 지역통합과 정치개혁을 얘기한다면 독자들도 흥미있게 읽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이 인사는 “박의원측으로부터 하겠다는 의사만 확인되면 우리 영감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라도 대담에 응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거사’는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여당의 경선이 그다지 언론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또 박의원도 한나라당내 개혁문제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이인제 노무현 고문 등 민주당내 선두권 대선 주자들을 제외한 인사들 사이에서는 박근혜 의원과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인연을 만들려는 물밑 노력이 치열했던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 박근혜 의원의 탈당에 앞서 정치권은 여러 차례 내부 모순으로 들썩거렸다. 정계개편의 욕구는 정치권 저변에서부터 지글지글 타올랐다.

    여당의 한 고위인사는 “정계개편의 열기가 너무도 대단했다.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극에 달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가지 정계개편 시도들이 끊임없이 시도됐었다. 실제 지난 연말과 올해 초로 이어지면서 여권 내부에서 도상훈련까지 전개됐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계개편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습니다. 여당에서도 야당에서도 각종 정계개편론이 파다했습니다. 그런데 두 당의 정계개편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대표적 대선주자를 ‘왕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회창과 이인제를 고립시키고 새로운 대안세력을 찾아보자’, 이런 목적의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정치권 주변에서 끊임없이 나돌았습니다.”

    명실상부한 여야의 선두주자를 고립시키는 정계개편 시나리오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인사의 설명은 이어졌다.

    “지난 몇 년, 두 사람 외에는 차기주자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국 정치의 미래를 대표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현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만 갔습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지지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지하는 정당은 없는데 어쩔 수 없이 이회창, 이인제 두 사람 외에는 대안이 없어 보이는 정치현실에 국민들이 불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정계개편론자들은 바로 이런 국민정서를 파고들었던 겁니다.”

    박의원은 그런 국민들의 불만이 바로 자신의 한나라당 탈당 이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의원도 정계개편론자다. 이회창 총재에 대항해 정치권의 변화를 가져오고 스스로 대안이 되려는 시도를 꾸준히 벌여왔기 때문이다.

    지난 2월28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박의원은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거부한 채 어떻게든 집권만 하겠다는 기회주의적 생각에 더 이상 동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제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의원은 또 “이회창 총재의 지지도가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은 국민이 뭔가 할 말이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라고도 말했다. 박의원의 말에 김덕룡 의원은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삼재 의원은 부총재직을 내놓으며 동조의 의사표시를 했고 홍사덕 의원도 탈당을 결행할 태세다.

    한나라당에서 이회창 총재에 대한 반발은 박의원을 비롯한 소수파가 탈당이나 당직사퇴 등 극단적 저항의 형태를 띠고 있다.

    반면 민주당에서 진행된 ‘왕따 작전’은 말 그대로 다수가 소수를 고립시키는 대형 프로젝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젝트가 가동된 시기는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직을 사퇴한 직후인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 사이, 민주당이 경선일정을 두고 심각한 내부갈등을 겪고 있을 무렵이었다. 앞서의 여당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구체적으로 ‘D데이’까지 정해졌던 것으로 압니다. 지난 1월7일 당권-대권 분리와 국민경선제, 선호투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정치개혁안이 당무회의에서 통과됐죠. 그런데 당무회의가 있기 며칠 전 민주당 일각에서는 한화갑 고문과 그를 따르는 민주당 신파만을 당에 남겨둔 채 이인제 고문을 비롯한 다수가 당을 떠나는 집단 탈당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한고문과 당내 개혁파들이 끈질기게 2단계 전당대회를 주장하며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조기 전당대회론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동교동 구파를 중심으로 ‘당을 깨는 한이 있더라도 한고문에게 이대로 끌려갈 수 없다’며 결단을 내린 거죠.”

    1월초 민주당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은 모처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다. 전화의 상대방은 “조만간 집단 탈당을 할 예정이다. 우리를 따라오겠는가”라며 위원장들의 탈당 의사를 물어왔다고 한다.

    얼마 뒤 민주당 주변에서는 “거사일은 1월5일”이라는 얘기가 은밀히 나돌기 시작했다. 한화갑 고문과 민주당 신파, 그리고 개혁세력만을 당에 남겨둔 채 주류가 당을 떠나 신당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는 1995년 김대중 대통령이 정계복귀 당시, 자신을 따르는 의원들을 당시 제1야당이던 민주당에서 나오게 한 뒤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던 것과 비슷한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한화갑 고문과 소장파 개혁세력도 민주당 주류의 이런 움직임을 간파했다. 그리고 숙의를 거듭한 끝에 한화갑 고문이 특대위 안을 받아들여 당의 내분을 수습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1월7일 당무회의에서 당 개혁안을 만장일치로 받아들이고 민주당은 분열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박근혜 의원의 한나라당 탈당에 앞서 여권이 먼저 분열을 통한 정계개편의 물꼬를 틀 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1월7일 극적 합의 이후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한고문과 그 추종세력을 떼어내려 했던 민주당 주류와 동교동 구파가 이번에는 이인제 고문을 불안한 눈빛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여권의 한 소식통은 “사실 그동안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동교동 구파는 이인제에 대해 불신감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월 들어 행동으로 드러났지만, 사실 권노갑 고문과 동교동 구파에서는 오래전부터 두 가지 이유에서 이인제 고문을 마뜩찮게 보고 있었어요. 첫째는 아무리 돈과 사람을 지원해도 이고문이 동교동 구파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한 겁니다. 둘째, 여론조사를 하면 최근 1년 사이 이회창 총재에게 지지율에서 번번이 뒤지는 겁니다. 동교동 구파 입장에서는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정권재창출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나마 지원하는 후보마저 동교동 구파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대였으니 말입니다. 이 때문에 국민경선 실시가 확인된 직후 이인제 고문에게서 발을 빼려는 구파의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권노갑 고문의 ‘말’이었다. 권고문은 당시 언론과의 접촉에서 “국민참여 경선을 지켜보겠다. 국민의 지지가 높은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권고문은 차기 대권주자에 관한 한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권고문의 침묵은 곧 이인제 고문에 대한 지지의사에 다름아니었다. 그런데 권고문이 그런 침묵속의 지원 원칙을 깬 것이다. 이 소식통은 “비록 이훈평 조재환 의원 등 권노갑 고문 계열의 의원들이 이고문 진영에 가담하기는 했지만 구파 내부에서는 이인제로는 안심할 수 없으므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이 무렵 민주당내 의원모임인 중도개혁포럼(중개포)을 중심으로 은밀히 ‘내각제 개헌 서명’작업이 진행됐다. 은밀하게 ‘작업’을 한 이유는 이인제 고문을 따돌리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당시 정가의 중론이다. 중개포의 내각제 서명 작업은 곧 이고문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의 탈당을 위한 일종의 시그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반(反)이인제 진영과 개혁연대 세력도 이런 중개포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서명작업에 참여하려 했으나 내각제 개헌을 해야 할 뚜렷한 명분을 찾을 수 없어 주저했다고 한다.

    중개포를 중심으로 한 내각제 개헌 서명작업은 사전에 그 본질을 간파한 이인제 고문측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고문 진영에서는 “내각제를 매개로 한 정계개편 움직임은 구시대적 야합으로 당내 경선일정에도 차질을 줄 수 있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중개포의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2월 들어서는 정계개편론과 개헌론에 대한 중개포의 의견을 정리하는 모임을 갖는 등 끊임없이 정치권 변화를 위한 물밑작업을 벌였다. 이런 노력의 가장 큰 원인은 “이인제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는 절박감이었다.

    이 무렵 이인제 캠프에서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이인제 캠프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그 무렵부터 동교동 구파로부터 지원이 뚝 끊어졌다. 돈도 사람도 오지 않았다. 돈이 없으니 사람을 쓸 수 없었다. 경선초반 고전한 것도 그 때문이다”고 말했다.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제서야 후회를 했습니다. 대세론을 믿고 상대적으로 느긋했던 것이 부메랑이 된 겁니다. 사실 동교동을 아군으로 확보할 생각이었으면 권노갑 고문에게만 기댈 것이 아니라 배기선, 이협, 배기운, 설훈, 신계륜 의원 등 중립을 지키고 있는 DJ 비서출신 동교동계 의원들을 우리편으로 끌어들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권고문의 지원에 의지한 채 이들 동교동계 인사들을 소홀히한 것이 중요한 실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겁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경선은 시작됐고 이미 늦었죠.”

    바로 그 와중에 박근혜 의원이 탈당을 단행한 것이다. 박의원의 탈당은 돌연한 사건이었지만 내심 정계개편을 꿈꾸던 세력에게는 가뭄 끝에 내린 단비였다. 이런 저런 변화를 시도하려 해도 묘안이 없던 차에 박근혜 의원이 사실상 “나를 중심으로 정계개편을 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나섰기 때문이다.

    사실 박근혜 의원을 정치적으로 ‘짝사랑’하는 ‘스토커’들은 적지 않다. 그가 한나라당을 떠나기 전부터 박의원을 통해 정계개편의 물꼬를 터보려 했던 정치세력이 한 둘이 아니었다.

    먼저 민주당에서는 지난 연말을 전후해 동교동 구파가 가장 적극적으로 박의원에게 구애의 메시지를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 구파의 간판스타는 그때도 이인제였지만 ‘이인제만으로는’ 안된다는 판단 때문에 박근혜 의원을 영입해 당의 경쟁력을 높여 정권재창출에 나서는 시나리오를 줄기차게 그려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의 마음은 동교동 구파가 아닌 다른 곳에 가 있었다는 게 박의원 주변의 의견이다. 다음은 박근혜의원 진영은 물론 민주당 내부사정에도 밝은 정치권 고위소식통의 전언.

    “박근혜 의원은 협력의 대상을 한화갑 고문으로 대표되는 동교동 신파라고 봤습니다. 호남의 대표주자인 한화갑 고문이 당 대표를 맡고, 박근혜 의원이 대권주자로 나설 경우 그 신당의 파괴력은 대단할 거라는 게 우리들의 판단이었습니다.”

    이 고위소식통의 구상은 다른 곳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박근혜-한화갑 연대설이 소문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두 진영 사이에 상당한 교감이 오갔던 것으로 아는데 구체적으로 정계개편이 현실화될 경우 신당의 지도체제와 역할분담 문제에 이르기까지 의견교환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런 소문에 대해 박의원은 “기존 정당의 인사와는 만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라며 부인해왔다. 그러나 당사자의 생각과 무관하게 박근혜 의원을 향한 ‘정치적 구애’는 멈추지 않았다.

    박근혜 의원을 향한 구애의 몸짓은 다른 대선주자 쪽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동영 고문이 그 주인공. 그는 당내 경선을 앞둔 TV토론에서 돌연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을 거론해 주위를 놀라게 했는데, 정동영 고문 역시 박근혜 의원과의 정치적 연대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날개를 단 새가 멀리 날아가듯 박근혜 신당의 창당과 정계개편론은 여권 뿐 아니라 정치원로 그룹 사이에서도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박의원이 탈당한 뒤 정가에서는 이런 저런 전망이 난무했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 진영을 제외한 모든 정파가 자신과 박근혜 의원을 짝짓는 정계개편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원로그룹을 중심으로 한 거대 프로젝트 즉 여야를 망라해 정치권의 판을 다시 짜는 이른바 ‘그랜드 신당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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