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디지털 점쟁이’가 몰려온다

성행하는 역술 비즈니스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입력2004-11-01 18: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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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황선녀’ ‘사주.com’ ‘사주테라스’ ‘사주카페 필링’….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맞은편 로데오거리가 ‘점술밸리’로 변모하고 있다. 화려한 수입명품 매장과 세련된 고급 카페들이 들어선 골목길을 따라 20~30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점카페’가 속속 들어서 현재는 50여 곳에 이른다.

    점(占) 카페 ‘사주공간’. 커피 한잔을 시키고 5분 남짓 기다렸을까. 한 역술인이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생년월일시를 물었다. 사주를 불러주자 곧 점괘가 나왔다.

    “전체적으로 좋지 않은 운이야. 편재가 있기는 한데, 여러 사람이 덤벼서 돈을 모으기는 힘들어 보여. 그리고 작년에 이별수가 있었는데…”

    상대가 미혼이란 단정이 맞는지 그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점괘가 이어진다. 운이 안 좋다는 말에 실망한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내용이 조금 달라졌다.



    “32세 이후로 대운(大運)이 와. 이렇게 빨리 운이 오는 경우는 드문데… 주식은 근처에도 가지말고 부동산 쪽에 운이 있어.”

    사주풀이에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커피 값은 4000원, 역술료는 1만원이다. 옆 테이블에서 상담하고 있는 20대 초반 여성의 점괘를 엿들어봤다. 사귀는 남자가 3명인데 누구의 운세가 자신과 맞냐는 내용.

    상담을 맡은 역술인은 사주를 풀어 세 남자의 장단점을 설명해준다. 점카페에서 점을 치는 역술인들의 대부분은 ‘언통(言通)’한 베테랑이다. 언뜻 듣기에도 3명의 남자를 두루 꿰는 설명이 그럴 듯하다.

    사주공간은 ‘카페 철학원’의 원조로 통한다. 탤런트 채시라 가수 김태욱 부부가 궁합을 보기 위해 다녀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찻집을 찾아 우연히 카페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곳이 사주를 봐주는 곳이라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내부장식이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벽의 3면이 통유리로 돼 있어 탁 트인 느낌을 주는데다 은은하게 퍼지는 오렌지색 조명과 코코아색, 카키색의 소파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언뜻 보면 평범한 카페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정통 명리학 외에도 기문둔갑, 육효점, 타로카드, 관상 등을 선택해서 볼 수 있다.



    성행하는 ‘점술 비즈니스’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점술을 상품으로 내건 ‘점카페’가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점카페는 아직까지 역술인 2∼3명에 테이블 5개 가량을 갖춘 소규모 업소가 대부분. 그러나 20여 개의 테이블을 갖춘 대형업소도 여러 곳 생겨나고 있다. 돈이 된다는 얘기다.

    점카페 뿐만 아니다. ARS 전화를 이용한 통신상담, PC통신을 활용한 ‘사이버 철학원’이 ‘걱정 많은’ 한국인들의 지갑을 얄팍하게 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도 역술은 게임과 더불어 가장 잘 팔리는 문화 콘텐츠의 하나로 대접받고 있다. 점술업이 문화산업·여가산업·첨단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700, 600, 800번이나 0600, 060번으로 시작하는 ARS전화 운세서비스는 회사당 20~30명의 전문 역술인을 모집, 일대일 상담 형식으로 운세를 봐준다. 보통 30초 단위로 1000~2000원 정도의 요금을 받고 있어 30분 정도 상담하면 요금이 10만원에 이르는데도 찾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 역술인마다 전문 분야가 세분돼 있고 직접 점집을 찾아가는 번거로움도 덜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ARS 전화로 운세를 상담해주고 있는 역술인 김현성(33)씨는 “사설 학원 등에서 명리학을 1년간 배웠다”면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데다 월 수입도 300만원 수준으로 꽤 짭짤하다”고 말했다.

    ‘ARS 점집’은 IP업자들이 통신망 사업체로부터 회선을 임대해 역술을 새로운 사업 콘텐츠의 하나로 상품화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현재 KT 데이콤 하나로통신 온세통신 등이 역술 콘텐츠를 상품화한 IP업체에 전화 회선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사업연합회 관계자는 “전화 운세 상담서비스는 성(性)과 관련된 정보 서비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유망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동통신업체들도 온라인 오프라인 역술업체와 제휴해 인터넷을 통해 부적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유료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유무선 통합서비스를 통해 건당 500∼1000원대의 캐릭터 부적을 판매하고 있으며 KTF, LG텔레콤도 무선인터넷을 통해 운세서비스와 부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모바일 부적은 휴대폰 액정화면 크기에 맞춰 실제 부적을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한 것. 오프라인에서 역술가로 이름 높은 이낙준 화백이 직접 그린 ‘세암부적’과 김용대 화백의 ‘달마도’ 등도 만들어졌고, 고대 솔로몬 부적, 복 돼지 부적, 캐릭터 부적 등이 모바일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또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운세’로 검색되는 사이트가 200~3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사이버 철학원’도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네이버 다음 등 국내 10대 포털사이트의 메인 화면에서 운세코너는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찾는 이들이 많다. ‘인터넷 철학관’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것.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없고 점쟁이와의 맞대면 접촉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데이트베이스로 만들어진 운세는 500~3000원이면 볼 수 있고, 역술인과의 인터넷 게시판 상담도 오프라인 철학관보다 저렴한 1만~2만원 내외에 점을 볼 수 있다.

    점술업이 기업화 대형화하면서 점술가들이 구체적인 ‘전공분야’를 갖고 ‘특화’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정치 분야에 능통한 점술가가 있는가 하면 재산관리나 주식투자 같은 경제 문제, 건강문제, 이혼문제 전문가도 등장하고 있다. 성형수술을 통해 관상을 바꿔 연예인을 만들어준다는 사이버 역술인도 등장했고, 대입 시험에서 뛰어난 염력을 발휘한다고 소문난 역술인은 학부모들과 함께 한 암자에 들어가 단체 기도를 올리는가 하면 개운(開運, 운을 열어줌)이 전공인 역술인 K씨의 수첩엔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의 이름이 가득 적혀 있다. 증권가에서 역술인 P씨는 ‘대박’을 터뜨리는 주식 종목을 골라주는 ‘족집게’로 통한다. 기업의 자문위원 명함을 갖고 활동하는 역술인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기업의 자문인 노릇을 하는 역술인들이 사업상의 중요한 결정이나 신입사원 선발과정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유사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역술사업의 규모가 연간 1조원을 넘어섰다는 추정이 나오고 ‘점술가’의 옷을 벗고, ‘라이프 컨설턴트’란 직함을 내건 역술인들은, ‘돈 잘 버는 떳떳한 직업인’으로 행세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각종 역술학원엔 점술의 부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돈벌이가 잘된다”며 고학력 구직자, 명예퇴직자, 부업을 찾는 주부 등이 문을 두드린다. 스포츠신문 등에는 ‘소규모 투자로 큰돈을 버는 사업’이란 광고 문구를 내걸고 ‘700국 역술 서비스’ 사업을 시작해보라는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 ‘명리학 완성’ ‘성명학 속성’ 등의 문구로 수강생을 모집하는 역술학원 광고도 거의 매일 게재된다.

    역술학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역술을 가르치는 학원 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역술강의는 백화점 문화센터, 대학부설 사회교육원에서도 인기강좌로 부상했고 인터넷 역술사이트 등에서도 월 10만~30만원 정도를 받고 역학을 가르친다. 사설 철학원에서 이뤄지는 그룹강의와 개인지도를 받는 사람들도 갈수록 늘고 있으며, 강의료가 만만찮은 전문학원의 경우도 수강생이 넘쳐 난다. 3~6개월 과정에 300만원을 받는 명리학원, 무속관련 학원도 “점집을 개업하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역술학원 열풍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점술인 숫자도 늘고 있다. 한국역술인협회에 따르면 전국 13개 지부에서 역술인으로 등록된 사람이 10만여 명에 이른다. 역술인협회 박형용(57) 사무총장은 “협회에서 역술인 자격증을 받은 회원은 10만명, 자격증도 없이 영업중인 사람은 20만명 정도”라고 추산했다. ‘접신’한 무당연합인 경신연합회에 소속된 무속인 수도 15만여 명. 등록되지 않은 무속인 10만여 명을 더하면 무속인 수도 25만명 선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역술인과 무속인을 합치면 45만명이 되는 셈이다. 현재 역술인협회에서 공식적으로 배출되는 인원만도 한해 100∼200여 명에 이르고, 사설 학원과 철학원에서 배출하는 역술인과 역학서 몇 권 읽고 ‘도사’를 칭하며 돈벌이에 나서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역술인 수가 70만명에 이른다는 추산도 있다.

    한국사회의 ‘점 열풍’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점은 한국인의 삶과 늘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첨단 디지털시대와 점술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학문하는 선비들이 사서삼경의 하나인 주역을 바탕으로 스스로 괘를 뽑아 앞날을 예측해보곤 했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점을 치는 역술인은 조선시대는 물론 일제 때만 해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역술이 본격적인 ‘상업’으로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 무렵. 피란온 사람들이 많이 모인 부산 영도다리 밑에서 80여 명의 맹인 역술인들이 노상 점집을 개업하면서 점술업은 확산되기 시작한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는 가족이 병에 걸리거나 집에 조금 언짢은 일만 생겨도 점집을 찾았다. 점 봐주던 이들은, 여자는 아무개 보살, 남자는 아무개 도사로 불렸고 점집은 마을의 정보와 소문이 집성하는 곳이기도 했다. 점집에 다녀온 아낙들은 간지러운 입을 참지 못하고 빨래터로 달려가 “누구네가 바람이 났다더라” “뉘집 아들이 몹쓸 병에 걸렸다더라”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점집에서는 액땜을 하는 부적도 이것저것 적어줬다. 부적을 정성스럽게 집에 들고 와 부엌과 안방 문 위에 정성스럽게 붙이고 베갯속 혹은 속옷 사이에 품고 다니기도 했다. 정신병원도 전문상담소도 없던 시절, 점집은 부대끼는 삶에 용기를 줬고, 비록 ‘위약(僞藥)’ 효과일지라도 고통을 잊게 하는 ‘만병통치약’ 노릇도 했다.

    그러나 시대와 사람이 바뀌었다. 21세기를 흔히 ‘디지털시대’라고 부른다. 디지털은 ‘0’과 ‘1’의 조합으로 이뤄진 ‘단순성’ 그리고 이런 단순 조합을 통해 사실로 검증된 ‘정확성’과 ‘신속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앨빈 토플러에 따르면 디지털화한 현대인들은 빠르고 단순하면서도 과학적인 증명이 뒷받침된 ‘사실’만을 정보나 지식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점술열풍은 자연스럽게 사그러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점술은 시대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첨단기술과 접목, 오히려 발전된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시골 마을의 점집과 굿거리 풍경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졌으나, 점술업은 정보통신기술이란 ‘새옷’을 입고 첨단화 과학화를 내세우며 ‘운명’을 매매(賣買)한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원시적인 주술행위로부터 시작한 점이 인류가 발명한 가장 ‘첨단기술’인 유무선통신 인터넷과 만나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역술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는 ‘사이버 철학원’과 ‘점카페’는 어떤 방식으로 ‘점술’을 기업화 산업화 하고 있을까. 또 비즈니스가 된 점술산업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점술왕국 대표 송병창(40)씨는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하고 관광업계에 종사하던 회사원 출신. 진로와 미래에 회의를 느낀 그는 역술가도 전문직의 하나로 대접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역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1994년 철학원을 열었고 1990년대 중반 한국에 인터넷이 도입되자 ‘아!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게 통신을 이용한 점 사이트와 사주카페.

    “점술 분야는 어엿한 문화상품이자 관광상품입니다. 디지털에 익숙한 20~30대들은 정보를 수집하려는 욕구가 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래에 대한 정보를 얻기란 매우 힘듭니다. 그래서 ‘역술’이란 콘텐츠는 장사가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역술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산업입니다. 저희만 해도 여행사와 제휴해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역술 속옷 의류 판매도 올해중에 시작할 겁니다. ‘역술 플랜트’ 자체를 선진국에 수출할 계획도 갖고 있고요.”

    점술왕국의 사업 아이템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망라한다. 점술왕국 오프라인 점포엔 언뜻 보면 액세서리 가게로 착각할 정도로 화려한 진열대가 마련돼 있다. 진열대엔 3만~5만원 대에 부적과 각종 주술도구, 앙증맞은 패션 액세서리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온라인상에선 13명의 역술인이 인터넷 점을 쳐주고 있고, 오프라인 점집 상담 예약도 받는다. 회원들은 오늘의 운세를 휴대폰이나 웹 메일을 통해 받아볼 수도 있다. 또 SK텔레콤 KTF 등 통신업체와 제휴해 동영상 부적판매, 모바일 운세정보 서비스도 시작했다.

    점술왕국 압구정점은, 강수연 이정재씨 등 인기연예인이 자주 드나드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연예인 상담을 자주 한다는 역술인 정혜정씨(가명)는 “이혼한 연예인이 새로 사귀는 남자친구를 데려와 궁합을 보기도 하고 아직 스캔들이 나지 않은 연예인 커플이 찾아와 결혼 여부를 점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점괘를 보니 가수 엄모 이모씨는 전생에 무당이었고, 영화배우 J씨는 사무라이였단다.

    “삼풍사고 붕괴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는데 그때부터 인간의 운명에 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간호사일을 그만두고 불교관련 단체에서 공부하면서 미래와 전생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정씨는 간호사 출신답게 건강 분야에 대한 상담을 많이 한다고 했다. 건강상담은 어떻게 하냐고 묻자, 대뜸 쑥뜸 재료를 판매하는 건강보조식품 회사의 명함을 꺼내 보여준다. 자신이 점을 쳐 신체의 특정 부위가 안좋은 걸로 나타나면 뜸을 떠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역술의 원리를 원용해 진료를 한다는 병원 몇 군데를 소개해주면서,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에게 데려오라는 말도 했다.

    점카페에서 고객을 상대로 봐주는 점의 대부분은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이용한 사주 및 관상 등 역학에서 유래한 것이 많지만 최근엔 서구에서 유입한 점술도 크게 유행하고 있다.

    카드를 이용한 타로카드점, 수정구슬점, 6개의 화살을 이용한 육효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카페를 찾는 이들이 요즘 가장 많이 찾는 것은 타로카드. 타로카드점은 인생의 큰 흐름을 점치는 22장의 카드와 작은 일들을 맞추는 56장의 카드를 섞어 3~12장을 뽑아 나온 그림을 갖고 운명을 점쳐보는 방식이다.

    숫자를 이용하는 동전점이나 주사위점도 인기다. 주사위의 경우 6~12면체의 주사위 두세 개를 던져 나열된 숫자를 가지고 운명을 점친다. 구슬점은 숫자나 그림을 이용하지 않고 사람의 영감에 의존하는데, 기를 증폭시키는 물질로 알려진 수정구를 쓰다듬을 때 떠오르는 영상을 점술인이 점괘로 풀어주는 방식이다. 이들 신종 점술은 술사와 손님이 함께 참여해 게임을 즐기며 점을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20~30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점카페 ‘사주.com’에서 점을 치고 나온 김모(35)씨는 역술인이 말해준 사주풀이가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그는 얼마전에 미아리 점집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미아리 한 점집에서 IT(정보통신)업체로 자리를 옮기는 문제를 물어봤는데 IT가 뭔지도 모르더군요. 그런데 여기서는 세세한 부분까지 상담이 가능했습니다.”

    압구정동에서 사주를 푸는 역술인 박모(34)씨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사회현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역술인, 손님들 보다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역술인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광고 문구에 씌어 있는 압구정동 점술가 역술인들의 프로필 중엔 서울의 명문대 출신도 눈에 띈다. “영어 상담이 가능하다”고 광고를 내걸고 조기유학생과 외국인을 유치하는 역술인도 있을 정도.

    대부분의 역술인들이 대졸 이상 학력을 지닌데다 PC로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지속적인 개인 사주관리가 가능하다는 점도 미아리 점집촌과 다른 점이다. 이들 업소는 1만∼2만원 정도의 비교적 저렴한 ‘복채’를 책정한 대신 벤처기업처럼 다른 방식의 다양한 수익모델을 창출하고 있다. 인터넷 통신판매를 통해 ‘소원성취부’ ‘사업재물부’ ‘취직합격부’ 등의 부적 판매를 겸하는 곳이 많고 디지털카메라로 고객의 얼굴을 찍어 화상과 사주 데이터를 관리하다가 궁합이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연락해 주는 곳도 있다.

    사주공간 지배인 최승영(38)씨는 “낮에는 자식교육을 상담하는 가정주부들이 많이 찾아오고, 밤에는 금전문제를 상담하는 직장인, 방학기간엔 해외유학생들의 진로상담이 많다”면서 “미아리 스타일의 구질구질한 점집 분위기로는 첨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외국물을 먹은 해외유학생을 상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씨가 카페에서 하고 있는 일은 ‘압구정문화’를 선도하는 세련된 분위기를 만드는 것. 변화에 민감한 첨단 유행의 새로운 음료를 개발하고 내부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엔 미아리 사람들이 압구정동으로 진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요. 압구정동에 와서도 미아리식으로 영업하는데 사람이 꼬이겠습니까. 이젠 역술도 문화산업입니다. 분위기를 ‘쿨’하게 만들어줘야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습니다.”

    점카페의 수가 빠르게 늘다보니 카페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차별된 볼거리와 재미를 제공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벤처 컨설팅과 연예기업 컨설팅을 내세운 역술업체 ‘라이프 비전’의 이희수씨는 “최근엔 경쟁이 치열해 단순히 ‘사주를 본다’는 것 하나만으로는 망할 수밖에 없다”면서 “영업전략을 구체적으로 세워놓고 유능한 역술인을 대거 포진시키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발한 아이템을 들고 나오는 업소도 있다. 점술카페 ‘데팡스’는 좁은 공간에 많은 테이블을 붙여놓은 다른 카페와 달리 70평 규모의 넓직한 공간에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미니바와 8개의 테이블을 설치해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카페 내부를 꾸몄다. 수맥탐사기의 일종인 L-로드, 펜듈럼 등을 이용해 기(氣)의 흐름을 측정해주는 등 이색적인 볼거리도 마련해 서비스중이다. 이곳에선 5만원을 내면 천생연분을 찾아 중매를 해주는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점술카페라고 하기보다는 ‘점술 엔터테인먼트 공간’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점술포털의 선두주자는 ‘산수도인(www.fortune8282.com)’. 가입자 수가 3월8일 현재 150만명에 이른다. ‘미신이 아닌 역학 과학으로서의 운세정보’를 제공한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이 사이트는 ARS와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한 운세상담이 주요 수익모델이다. ‘산수도인과의 대화’라고 이름이 붙여진 게시판 상담 서비스의 요금은 600~1200원. 삼성카드와 제휴해 산수도인 신용카드도 발급하고 있고 웹 메일을 통해 상품광고를 실은 ‘인터넷 잡지’도 보내고 있다.

    산수도인 관계자는 “다양한 수익모델의 개발로 흑자 전환 시점에 이르렀다”면서 “네티즌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정보 위주의 무료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성공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주포털 ‘도통(www.dotong.net)’을 운영하는 역술인 강태의씨는 대구에서 사업을 시작, 지난해 서울로 진출했다. 초기 투자비용은 컴퓨터 2대가 전부. 현재는 17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벤처기업으로 성장했다. 도통의 수익모델은 정액제 상담과 인터넷 부적판매. 6만~8만원 하는 부적이 월 400~600장이 팔려나간다.

    “인터넷 사업에서 성공한 만큼 이제부턴 역술의 대중화에 나서려고 합니다. 도통의 풍부한 노하우와 콘텐츠를 바탕으로 역술 교육사업을 펼칠 계획입니다.”

    강씨는 현재 KTF와 제휴, 모바일 역술서비스를 시작했고, 앞으로는 전자상거래 분야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업계관계자들에 따르면 ‘사이버 철학관’의 이용자 분포가 20대에서 30대 40대로 확산되는 추세라고 한다. 30, 40대 여성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유료상담을 하는 고객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구매력이 있는 30~40대 회원이 늘면서 전자상거래에 나서는 역술사이트가 늘고 있다.

    각 대학에 ‘천기누설’이란 동아리를 갖고 있는 ‘구통도가’가 운영하고 있는 토탈오즈스타(www.totalozstar.com)도 운세 풀이와 온라인 상담으로 네티즌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사이트다. 구통도가의 창시자인 안중선(54)씨가 사이트 운영자인데, 서울 압구정동에 사주를 봐주는 카페도 열고 있다.

    역술 이외에도 인터넷 방송, 심령전시관, 크리스털볼, 소원성취파, 기부적 서비스 등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으며 생활역학 기공술과 관련된 오프라인 교육기관도 갖고 있다. 또 영화사 모델에이전시 등과도 제휴해 다양한 역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이트 이름과 동일한 오프라인 점 카페는 ‘개운’ 카페로 유명하다. 사주팔자를 나쁘게 타고난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식을 통해 생년월일과 탄생시간을 바꾸어주는 ‘개운법’을 받을 수 있다. 토탈오즈스타닷컴은 다른 인터넷 업체와는 다르게 기존 오프라인 점집의 특징도 많이 갖고 있다. 수십만원대의 개운판을 판매하기도 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사주를 풀어 부설 한의원에 보내기도 한다.

    “우연히 카페에 들렀다가 한 시간짜리 ‘개운법’을 받았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개운을 하고 나선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때부터 역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배우는 수준을 넘어서 이젠 상담까지 해줄 정도가 됐습니다.”

    토탈오즈스타닷컴 압구정점에서 상담을 해주는 유소현씨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한 현직 의사다. 병원 일을 하며 틈틈이 시간을 내 ‘역술인’ 노릇도 하고 있는 것이다. 유씨는 “운명론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것은 문제지만 서양의 잣대로 동양의 전통문화를 미신이라고 폄하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사주닷컴(www.sazoo.com)에서 운세상담을 하고 있는 노해정씨는 명함이 3종류다. 노씨는 사주닷컴 시니어 컨설턴트, 사주닷컴의 교육 자매회사인 사주닷컴 아카데미 부원장, 모바일 솔루션을 개발하는 벤처기업 엠키컨텐츠에선 개발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노씨는 롯데그룹에서 근무하던 지난해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 출연해 죽은 사람과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사주를 생년월일시 즉, 사주 감명으로 정확히 알아맞춰 유명해진 인물.

    “갑작스러운 산업문명의 유입으로 인해 가치를 잃고 미신으로 치부돼온 ‘주역’과 역의 원리를 현대화해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으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가능하다면 해외에도 수출해 세계인들의 문화적 공백을 메우고 싶습니다.”

    노씨는 서강대 경제학과 남성일 교수와 함께 ‘재운이 부자를 만드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해 사주의 과학성을 학문적으로 입증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불고 있는 ‘사이버 철학원’ 열풍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산수도인, e-라이프 같은 콘텐츠 위주의 사이트들은 역술을 대중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터넷 포털 분야가 인기를 끌면서 최근엔 사이비 업체들이 크게 늘고 있어요. 사주카페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개운 운운하면서 값비싼 부적을 판매하는 곳은 일단 의심해봐야 합니다.”

    실제로 300여 개에 이르는 역술관련 사이트 중에 제대로 된 포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은 10곳을 꼽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미아리 형태의 점집을 그대로 인터넷상으로 옮겨온 형태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전화상담을 해주고 고액의 상담료를 요구하는가 하면 운세풀이를 미끼로 수백만원에 이르는 부적을 강매하는 곳도 있다.

    종합주가지수와 개별 주가의 등락을 미리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에스크퓨처닷컴(www.askfuture.com)은 운세포털 중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이트다. 종합주가지수가 크게 상승하면서 혹시나 하는 사람들의 ‘마우스 클릭’이 끊이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주장을 하는데도 찾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

    “한복을 입고 앉아 사기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UN빌리지 4층 빌라. 에스크퓨처닷컴 이수(37) 사장은 “꼭 외국계 기업 CEO의 방에 온 것 같다”는 말에 이같이 대답했다. 에스크퓨처는 소속 역술인 60여명 가운데 20~30대가 40% 정도를 차지한다. 이사장은 “강호에 흩어진 고수들을 실력대로 모으다보니 자연스럽게 젊은 사람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역술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력을 갖고 있는 인물. 서강대 대학원에서 중국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주택은행에서 외환딜러로 6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다. 그가 역학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은 직장에서 금융사고를 내는 바람에 실직, 호구거리를 찾다 중국 명리학의 고전을 섭렵하면서부터.

    에스크퓨처닷컴은 2000년 6월 이씨가 활동하던 PC통신 하이텔 역학동호회의 ‘고수’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강호의 고수들을 모아 왜곡된 역학의 이미지를 바꾸겠다는 사명감(?)이 설립취지. 이씨는 지난해 7월 한국능률협회가 개최한 하계최고경영자 세미나에 정몽준 월드컵조직위원장, 양승택 정보통신부 장관, 유홍준 명지대 교수 등과 함께 강연자로 나서기도 하고 경제주간지와 일간지에 경제와 경제인 관련 고정 칼럼을 연재할 정도로 ‘저명인사’가 됐다.

    “고객들은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이 태어난 생년월일시와 상담받을 내용을 올리고 역술가들은 상담내용을 게시판에 공개합니다. 또 증시장세 전망 시사 스포츠 승부예측 등 사회전반에 걸친 사항들도 예측합니다.”

    에스크퓨처닷컴에선 서양점성술에 비교되는 자미두수, 정확도가 높다는 육효, 이름풀이 성명학, 궁합과 택일, 관상과 해몽의 대가들이 포진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공개적으로 상담하고 있고, 예측이 틀렸을 경우 환불까지 해준다.

    “경제 사회문제 등 네티즌들의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게 성공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이트에는 적천수 서머리, 명사들의 사주산책, 나의 풍수유적 답사기 등 읽을거리도 풍부합니다.”

    인터넷 점에도 VIP가 있다. 이씨는 변호사 고위공무원 펀드매니저들의 질문에 A4용지 반 장 정도의 답변을 해주고 20만원의 복채를 받는다. 고액이지만 월 50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이씨는 대선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국회의원 J씨, 민주당의 모 경선후보 측에서도 사람을 보내온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월 수입은 3000만~4000만원 정도.

    “역술은 주먹구구식으로 예측해선 안됩니다. 그래서 직원들과 투자자들에게 한국의 역술을 예측산업화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유가 주가 등 각종 경제지표를 예측하고 기업의 신축부지 선정과 사무실 배치에 풍수지리를 이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지요. 술사가 정확하게 맞추지 못한다면 더 이상 술사가 아닙니다.”

    네티즌의 상담내용이 담긴 게시판을 그와 함께 열어보았다. “트리플 위칭데이(Triple Wiching Day 3월14일) 직전 3일간의 주식운을 알고 싶습니다.” 증권투자를 하는 K씨의 질문이다. 트리플 위칭데이는 선물 옵션 개별주식옵션의 동시 만기일로 3개 파생상품의 동시만기가 겹쳐 주가가 크게 요동칠 수 있는 날이다. 그의 답변은 간단했다. “운 없으니 몰아넣지 말라.” 또 구체적으로 어떤 주식을 몇일에 사야 하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당신의 사주는 어떤 종목을 사야 한다” “당신은 주식시장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등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답변한다.

    이씨는 95% 이상의 적중률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거의 ‘도박 수준’에서 이뤄지는 그의 답변이 정확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점괘의 적중 여부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자 흥미로운 상담사례를 보여줬다. 모 프로농구단의 감독과 선수, 매 경기 상대팀 감독의 사주가 적혀 있었고 선수들의 경기 당일 운세가 인터넷 게시판에 기록돼 있었다. 출전시키면 좋은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가 구별돼 있는 것. 이씨는 이 농구단의 경기 선발 라인업은 자신이 짠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농구단의 매 경기 성적을 예측했고 적중률 또한 상당했다. 모 프로농구단은 지난해 꼴지였다가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동양오리온스다. 동양오리온스 관계자는 “단장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점을 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점 때문에 팀이 우승했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주장과 점괘의 적중여부를 떠나서 인터넷을 통한 역술 마케팅이 이처럼 정치계 경제계 스포츠계에 만연해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를 경영하는 정치인, 수백억원을 굴리는 펀드매니저, 수십만명의 팬이 있는 스포츠 구단이 점술가를 찾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점’이 디지털 시대에도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맞추지 못하면 술사가 아니라고 했던가. ‘디지털 점쟁이’들의 점괘가 들어맞을지 틀릴지 여부가 궁금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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