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호

“DJ노벨상금으로 평양과기대에 ‘6·15기념관’ 짓겠다”

김진경 연변과기대 총장 전격 공개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입력2004-09-07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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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아’는 2002년 4월호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금 11억여 원이 아태재단에 기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한 바 있다(2002년 4월호 ‘아태재단으로 간 DJ노벨상금 11억원의 향방’참조). 당시 취재 결과, 노벨평화상금은 청와대 발표와는 달리 아태재단에 기부되지 않고, 단지 아태재단이 맡아서 김대통령이 찾아갈 ‘개인 돈’으로 착실히 이자를 불리고 있었다.

    지난 3월15일 아태재단측에 이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재단측은 상금이 아태재단에 들어와 있으나 기부금 처리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재단 관계자는 앞으로 이를 재단 수익으로 잡아 기부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는 그후 한 대북 취재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신동아 기사가 나간 뒤, 청와대에서 대책회의가 열렸다는 것이다. 이 취재원은 어차피 상금의 용처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신동아 기사로 공론화되었으니 노벨상금을 연변과기대 김진경 총장이 평양에 짓고 있는 평양과기대에 기부하자는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취재원은 기자에게 “신동아 기사를 보고 김진경 총장이 처음에는 사실무근이라고 펄펄 뛰었지만, 이제 결과적으로 덕을 보게 되었다”고 전했다. 기자에게 이 소식을 전한 취재원은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등 북한지원사업을 활발히 펴고 있고, 이 때문에 청와대와도 교감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는 당사자인 김진경 총장에게 확인해야 하는 사안이다. 김총장은 한국과 북한, 중국, 미국을 규칙적으로 오가며 평양과기대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그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5월5일 오후 1시 부산괴정제일교회에서 어렵사리 그를 만나 노벨상금 기탁 여부를 물었다.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수동씨 등과 건립 논의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금이 평양과기대에 기탁된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언제부터 그런 논의가 있었습니까.

    “지난해 10월에 이수동씨 등 아태재단 관계자 5명이 연변과기대에 다녀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평양과기대에 노벨평화상금을 기탁하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태재단 관계자들이 결론을 내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탄 뒤 귀국 기자회견에서 이 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받을 상인데 홀로 탔기 때문에 상금은 북한을 위해서 쓰겠다고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청와대로부터 노벨평화상금을 평양과기대에 기탁하겠다는 방침을 확인했습니까.

    “정확한 소식통으로부터 며칠 전에 상금을 평양과기대에 쓰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동아 4월호 기사가 나간 뒤 청와대에서 대책회의가 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차피 기사화되었으니 평양과기대에 실제로 지원하는 것을 검토하자는 식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지난 4월 임동원 특보가 평양에 갔을 때, 평양과기대 건축 상황을 확인하고 신뢰감을 얻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벨평화상금을 기탁받는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쓸 계획입니까.

    “우선 청와대측의 기탁의사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귀하게 쓰겠습니다. 그 돈으로 평양과기대 안에 ‘6·15 남북정상회담 김대중기념관’을 세우고 싶습니다. 평양에 대한민국 대통령 기념관을 짓는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 기념관은 민족화해를 상징하는 기념관이 될 것입니다. 김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더라도 6·15 정상회담은 역사에 길이 남겨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대학에 개인이 기부할 경우, 기부자 이름과 기념물을 해당시설에 붙여줍니다.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2000년 6월 정상회담 무렵, 한양대학도 100억원을 평양과기대에 투자하겠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나중에 한양대가 단독으로 투자사업을 진행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무산되었습니다. 한양대는 김책공대와 투자사업을 진행한다고 들었는데 잘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평양에 세워졌던 숭실대도 복교 차원에서 평양과기대에 투자하겠다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식으로 투자한다면 해당시설을 숭실대관으로 이름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김대중기념관에 대해 북측과는 어느 정도 합의가 되었습니까.

    “5월18일 평양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입니다. 북한 당국과 맺은 계약서를 보면 평양과기대의 모든 건설권과 인사권이 나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한다면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뜻있는 교육사업에 돈을 내면 국내 정세와 남북관계가 어려운 이때에 더욱 빛이 날 것입니다.”

    -노벨평화상금은 12억원가량인데, 그 정도로 기념관을 지을 수 있습니까. 부족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상징적인 종자돈이 투자되면 추가로 내가 자금을 조성하든지, 김대통령께서 돈을 더 내든지 하면 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성과를 역사에 길이 남기기 위해서라도 이 기념관 건립은 의미가 큰 사업이라 생각합니다.”

    노벨평화상금으로 평양과기대에 남북정상회담 기념관을 짓는다는 사실을 김진경 총장에게 직접 확인했다. 사실 관계를 좀더 알아보기 위해 청와대 국내언론 담당 비서관에게 문의했다.

    -지난 3월15일 현재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금 11억여 원이 아태재단에 기부 처리되지 않고 김대중 대통령의 개인돈으로 보관중이었습니다. 아태재단은 두 달 전 확인 취재 과정에서 향후 정식으로 기부금 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금 이 돈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저희들은 잘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이 처음 기탁하였을 때, 평화상금이라 특별히 용처를 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정식으로 회계처리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태재단에 문의해보십시오.”

    -아태재단이 문을 닫은 상태라 문의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당시 회계 실무자들에게 직접 연락해보십시오. 저희들도 김대통령께서 퇴임 후에 상금의 용처를 결정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는 게 없습니다.”

    -연변과기대 김진경 총장께서 청와대가 노벨상금을 평양과기대에 지원할 방침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는데, 사실입니까.

    “김총장이 청와대의 누구와 말씀했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청와대 직원이 수백명이나 되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노벨상금에 관해서는 퇴임 이후 용도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양과기대 지원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노벨평화상금의 평양과기대 지원설과 현재 상태 등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아태재단측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아태재단은 김대중 대통령 퇴임 때까지 잠정 폐쇄된 상태라 마땅히 문의할 곳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이 재단 김아무개 전 행정실장과 연락이 되었다.

    -노벨평화상금은 현재 어떻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지금 아태재단 꼴이 말이 아닙니다. 건물 짓는다고 하다가 이 모양이 되어서 은행빚에 시달리고 직원들은 퇴직금도 못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상금만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노벨상금 11억여 원은 따로 통장을 만들어서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노벨상금이니까 대통령 뜻에 맞게 잘 쓰자는 게 재단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 돈을 건드리겠습니까? ‘신동아’에서 괜히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불거지는 것 아닙니까? 이건 음해입니다.”

    -제가 노벨상금 관련 기사를 쓸 때인 3월15일 현재만 해도 재단으로 기부되지 않고, 김대통령 ‘개인 돈’으로 보관되고 있던데 그후 확실히 기부금 처리했습니까.

    “기부금 처리했습니다.”

    -그렇다면 처리한 날짜가 정확하게 언제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실무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기부금 처리한 정확한 날짜와 장부를 확인해야겠습니다. 실무자를 연결해 주십시오.

    “지금 실무자와 연락이 안되니 다음에 전화하십시오. 저희들은 지금 파김치가 되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아태재단의 이 관계자는 “기부금 처리했다”고만 말할 뿐 정확한 처리 일자와 장부 현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대통령의 세금 탈루 문제를 비롯해 여러가지 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고 강조해도 확인작업을 거부했다.

    아태재단에서 노벨상금의 기부금 처리 현황을 분명하게 확인하지 못한 기자는 아태재단의 감독관청인 외교부 문화협력과에 문의했다. 아태재단이 김대통령 개인재산으로 보관하고 있던 노벨상금을 투명하게 기부금 처리했다면 기본재산 변동사항이자 정관 변경 사항이므로 감독관청인 외교부 문화협력과에 문서로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외교부 문화협력과 관계자는 “현재까지 아태재단으로부터 그런 사항을 보고받은 적이 없다. 보고가 들어와야 상금의 기부금 처리 현황을 알 수 있는데, 아태재단으로부터 그런 보고는 전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아태재단 잠정 폐쇄는 ‘비리의 온상’이라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피하기 위한 미봉조치의 성격이 짙다. 재단을 정식으로 해체하려면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고 법적으로 청산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럴 경우 재단의 재산은 모두 국고로 귀속된다. 하지만 아태재단은 아직까지 그런 단계를 밟지 않았다. 이는 주무 관청인 외교부 문화협력과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따라서 아태재단은 아직까지 노벨평화상금을 기부금 처리하지 않고 대통령 개인돈으로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올해 초에 발표한 공직자 재산변동 신고가 허위였다고 인정하고 세금 문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

    김대통령의 재산변동 사항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위원장 윤일영)가 2002년 2월28일자 관보를 통해 공개한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포함한 행정부 1급 이상 재산변동 공개대상자 594명의 2001년 재산변동 내역에 포함되었다. 관보에 따르면 김대통령의 재산은 본인의 봉급과 이자수입 등으로 2000여 만원이 늘었으나, 노벨평화상금 11억222만원을 아태재단에 기부해 전체적으로 10억6836만원이 줄었다는 것이다.

    이 재산변동신고는 ‘신동아’ 2002년 4월호 기사를 통해 허위였음이 밝혀졌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청와대는 지금까지 2002년 2월28일 관보를 통해 공개한 김대통령의 개인재산 신고가 허위였다는 사실을 공표하지 않고 있다.

    이는 아태재단이 신동아의 확인 취재가 있었던 3월15일 이후에 노벨상금을 아태재단 수익으로 계정을 대체했느냐 여부와도 관계없는 사안이다. 이미 그 이전에 확정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김대통령은 올해 5월(2001년 종합소득세 신고 마감 기한)까지 노벨평화상금에서 생긴 이자소득을 반영해서 신고해야 한다. 연간 금융소득이 4000만원이 넘으면 종합과세 대상이다. 이번 달까지 김 대통령이 노벨상금 이자소득을 신고하지 않으면 탈세가 될 수도 있다.

    윤리적인 문제도 제기된다. 신동아 2002년 4월호에서 ‘노벨상금을 대외적으로 출연했다’는 사실이 거짓임을 밝혔는데도 청와대는 아직까지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금융실명제법 위반 여부도 거론된다. 노벨평화상금 11억여 원의 실소유자는 분명히 김대중 대통령임에도 아태재단이란 차명으로 예금했기 때문이다.

    말 많은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금은 과연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 김진경 총장의 말대로 평양과기대에 기탁되어 ‘김대중기념관’ 건립에 쓰여질 것인가. 청와대는 하루라도 빨리 노벨평화상금의 처리문제를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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