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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금강산댐엔 침묵하고 경의선은 과장했다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 hoon@donga.com

임동원, 금강산댐엔 침묵하고 경의선은 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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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백서에 정의된 국가목표는 이렇다. ‘첫째, 자유민주주의 이념 하에 국가를 보위하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며, 영구적 독립을 보전한다. 둘째,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여 사회복지를 실현한다. 셋째, 국제적인 지위를 향상시켜 국위를 선양하고 항구적인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2000년 국방백서 기준: 과거의 국방백서는 첫째 둘째 셋째의 세 문장으로 나눠 쓰지 않고 같은 내용을 길게 한 문장으로 기록했다).

1995년 이전의 국방백서는 직접 ‘적’이라는 단어를 써서 다음과 같이 국방목표를 정의했다. ‘적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며, 지역의 안정과 세계평화에 기여한다.’

그런데 1995∼1996년 국방백서는 ‘적의 무력 침공’을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 바꾸어 국방목표를 이렇게 정의했다.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며, 지역의 안정과 세계평화에 기여한다’.

대신 이 백서는 국방목표를 부연하는 설명에서 ‘북한이 …공격형 부대 배치 …등을 멈추지 않고 있는 사실을 감안,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면서…’라며 최초로 ‘주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부연 설명은 해가 바뀜에 따라 조금씩 세밀해져 2000년 국방백서는 ‘첫째,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 함은 주적인 북한의 현실적 군사위협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모든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는 것을 말한다.’ 라고 했다.

1995~1996년 국방백서가 적을 빼는 대신 주적이란 단어를 수용하자, 정신전력을 담당하는 정훈장교들은 즉각 적과 주적에 대한 용어 정의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한 정훈장교의 설명이다.



“보통 적(敵)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세력으로 정의된다. 임진왜란 때는 일본,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는 북한이 적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 평화조약을 맺으면 그때부터는 적이 아니다. 이처럼 적은 우리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가리키는 총칭어다. 때문에 우리는 주적을 적과 구분해, 지금 눈앞에 있는 적으로 한정하기로 했다. 통일되기 전까지 우리와 대적하는 북한만을 가리켜 주적으로 부르기로 정의한 것이다.”

북한을 주적으로 삼는다면 ‘귀순자도 주적인가’라는 문제에 부딪친다. 여기서 정훈장교들은 더욱 정교한 정의를 시도했다. 즉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김일성-김정일 세력과 북한 주민을 구분한 것이다. 국방부는 주적을 ‘북괴군과 그 예비전력, 노동당과 북한 정권기관’으로 한정하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북한 주민과 그 같은 기관에 있다가 자발적으로 탈퇴한 북한인은 주적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따라서 주적은 한반도가 통일될 때까지만 사용하는 아주 ‘한시적(限時的)’인 용어가 됐다. 이러한 한정성과 한시성 때문에 국방부는 주적을 종종 ‘국군의 주적’이란 말로 바꿔 쓰기도 한다.

우리말 어법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뚜렷한 정의 없이 통념적으로 쓰이는 말을 수용해 새롭게 정의하는 것을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라고 한다. 주적은 조작적 정의가 내려진 말이다.

그런 좋은 예가 ‘핸드폰’이다. 핸드폰은 손을 뜻하는 영어 ‘hand’와 전화를 뜻하는 ‘phone’이 결합된 단어다. 그러나 영어에는 핸드폰이라는 단어가 없다. 영어권에서 핸드폰을 뜻하는 단어는 ‘mobile phone(모바일 폰)’이나 ‘cellular phone(셀룰러 폰)’이다. 핸드폰처럼 어법에 맞지 않게 생겨났지만 다중이 사용함으로써 새롭게 단어 뜻이 정의되면 그것이 바로 ‘조작적 정의’가 된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은 매우 감격적이었다. 여기서는 여러 의제가 논의됐는데 그중 하나가 반세기 동안 끊어져 있던 경의선을 다시 잇는 문제였다. 2000년 6월15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측 대표단을 위한 오찬을 열고 그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남측 대표단은 귀경 후 기억을 모아 김위원장이 한 말을 재생해냈다. 흥미로운 것은 이날 김정일도 주적이라는 말을 썼다는 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별 오찬석상에서 “서울에 가겠다”고 거듭 답방 의사를 밝혔다. … 또 자신이 이날 국방위원회를 소집해 대남 비방을 하지 말도록 지시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군대는 가만두면 늘 주적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되니, 그렇지 않게 하자면 일을 시켜야 한다”면서 “경의선 철로 복원사업이 벌어진다면 인민군들을 투입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조선일보 2000년 6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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