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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하원, 탈북자 3명 은밀히 불러 북한인권 청문회 열었다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미 하원, 탈북자 3명 은밀히 불러 북한인권 청문회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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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이 힘을 써준 덕분에 그들은 나를 죽이지는 않았다. 나는 1995년 5월26일 여독 집단수용소에 수감됐다가 4년 뒤인 1999년 1월5일 석방됐다. 하지만 그해 4월28일 친구와 친척들에게 ‘바깥 세계’에 대해 언급한 죄로 다시 체포됐다. 한밤중에 들이닥친 국가보위부 요원들이 수갑을 채워 압송했다. 나는 붙잡혀 가다가 그들을 때려눕히고 도주했다. 그들은 등 뒤에서 총을 쏴댔지만 맞지 않았다. 밤새도록 산을 넘어 달린 끝에 이튿날 마침내 중국 땅에 닿았다. 그후 거의 1년 동안 중국에서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0년 5월22일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나는 북한의 수용소에서 보낸 악몽 같은 생활을 틈틈이 기록했는데, 200쪽이 넘는 분량이다. 수용소에 갇힌 죄수들의 참혹한 실상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죄수들은 대변을 본 뒤 배설물을 손에 담아 근처 옥수수밭으로 옮겨야 한다. 그 때문에 나는 아직도 손에 피부염을 앓고 있다.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일이 다반사기 때문에, 죄수들은 주위에서 누가 죽어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나는 수용소에 있을 때 200구 이상의 시체를 등에 업고 수용소 안에 있는 언덕으로 옮겨 매장한 경험이 있다.

내가 목격한 것 가운데 지금까지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을 떠올려보겠다. 1997년 7월 어느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철’이라고 불리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탈북했다가 중국에서 붙잡혀 강제 송환된 스물두 살 청년이었다. 그는 수용소를 탈출하다 붙들렸는데, 체포될 때 한 쪽 다리에 총을 맞아 심한 부상을 입었다.

수용소의 남녀 죄수 1000여 명은 그가 붙잡힌 언덕 근처 길 양 쪽에 늘어서라는 명령을 받았다. 경비병들은 ‘영철’에게 재갈을 물리고 두 다리를 밧줄로 묶은 뒤 러시아제 트럭 뒷범퍼에 단단히 붙들어맸다. 그러고는 트럭으로 그를 4km나 끌고 갔다. 죄수들은 이 잔인한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야 했다. 그는 피를 엄청나게 흘렸다. 트럭이 멈춰섰을 때 그의 등가죽과 뒤통수 가죽은 모두 벗겨져 있었다. 그는 마침내 공개처형됐다.



수용소 간수들은 죄수들에게 “누구라도 탈출하면 이와 똑같은 일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간수들은 죄수들에게 젊은이의 시체 위로 지나가게 한 다음 시체의 피에 손을 적시도록 강요했다. 그때 참다못한 한 젊은이가 갑자기 줄 바깥으로 뛰쳐나가 경비병의 확성기를 빼앗아 들고 외쳤다.

“우리는 짐승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다룰 수 있습니까….”

그러나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경비병들이 공개처형을 위해 설치해둔 기관총을 그 젊은이에게 발사했다.

나는 중국에서 체포될 때 체중이 94kg이었으나, 4년 간의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석방됐을 때는 53kg으로 줄어 있었다. 죄수들은 예외없이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다뤄졌다. 수많은 젊은 죄수들이 죽거나 의문의 실종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죄수들은 이들이 생체실험을 당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 북한에서 자행되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자세히 증언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곳에서 죄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할 것이다.



격분한 미국 의원들


청문회에서는 이들 탈북자 3명 외에 존 파월 세계식량계획(WFP) 아시아지국장, 홍콩에서 발행되는 영자신문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제스퍼 베커 전 베이징지국장, 탈북자를 지원하는 독일 출신 의사 폴러첸 박사의 증언도 있었다.

파월 지국장은 “WFP의 지원이 없으면 올해 7∼8월에 북한의 식량이 바닥난다”면서 “당장 5월부터 67만명의 초·중등학생들에 대한 급식을 삭감해야 할 처지며, 35만명의 노인들도 WFP를 통한 식량배급을 못받게 된다”고 말했다.

올해 북한이 생산 및 수입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식량은 북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식량에 150만t이 모자라며, 특히 임산부·아동·노약자를 위주로 한 식량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

베커 전 베이징지국장은 “대북 식량원조를 협상도구로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고, ‘국경없는 의사회’의 소피 델로니 북한 대표는 “필요한 사람에게 식량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소개했다.

폴러첸 박사는 “북한 주민을 살리는 유일한 길은 세계가 북한의 실정을 제대로 알게 하는 것”이라며 “국제사회가 언론의 협력을 얻어 북한 사회가 개방되고 인권이 개선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목할 점은 청문회에 참석한 미국 의원들의 반응이다.

리치 위원장은 “오늘 청문회를 계기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보다 더 높아지기를 바란다”면서 “탈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에드 로이스(공화당·캘리포니아) 의원은 “우리는 탈북자에게 안전한 근거를 제공할 수 있도록 중국 정부의 협조를 지속적으로 촉구해야 한다”며 몽골 근처에 난민촌을 세우는 방안을 제의했다. 또한 그는 중국 정부에 탈북자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이 이른 시일 내에 상·하원에서 채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크 커크(공화당·일리노이) 의원은 자신이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연변지역에서 탈북자 실태를 조사한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과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니 팔레오마베가(민주당·미국령 사모아) 의원은 “북한은 굶주린 아동들마저 방치하는 억압적이고 독재적인 정권”이라면서 “희망이 없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고 했다.

한편 이 청문회 직전인 지난 4월말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는 미 하원 인권협의회(Congressional Human Rights Caucus)에서 북한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단체는 1998년 국제종교자유법을 근거로 설치된 연방정부위원회(2003년 5월까지 활동)로, 그동안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서 북한인권 특별보고서(2000. 12), 연례종교자유보고서(2001. 5) 등을 발표하면서 북한을 ‘종교탄압 특별 우려 대상국가’로 지정해 달라고 건의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보고서는 미국 정부에 13개항을 건의했다. 그 내용은 대략 세 가지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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