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호

1조 2000억 복권시장 돈버는 사람 따로 있다

  • 김소연 < 매경이코노미 기자 >

    입력2004-09-15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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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13일, 1969년 주택복권 발행과 함께 시작된 국내 복권 30여 년 역사상 최고 당첨금액이 나왔다. 자그마치 55억원. 주인공은 한국전자복권 사이트에서 슈퍼코리아연합복권을 구입한 42세의 자영업자 P씨다. P씨는 슈퍼코리아연합복권 발매가 시작된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인터넷에서 복권 30장을 구입했다. 15년 전부터 틈틈이 각종 복권을 사봤지만 지금까지 기록한 최고 당첨금은 1000원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6일부터 올 3월9일까지 3개월 동안 판매된 슈퍼코리아연합복권은 지방재정공제회(발행부처는 행정자치부와 제주도)가 지방자치단체 공익사업과 관광진흥 사업을 위해 한시적으로 발행한 복권이다. 1매에 3000원씩 총 2000만매를 발매한 슈퍼코리아연합복권의 최고당첨금은 60억원. 1등이 30억원, 1등 전·후 번호인 2등 2명이 각각 10억원, 1등 전전·후후 번호인 3등 2명이 각각 5억원씩으로, 1등을 가운데 둔 5매를 한꺼번에 구입했을 경우 60억원의 당첨금을 받을 수 있다. P씨는 3등 1개 번호를 제외한 4개 번호를 한꺼번에 구입해 55억원 당첨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물론 P씨가 55억원을 다 받아간 것은 아니다. 세금을 제외한 실수령액은 총 42억9000만원이었다. 복권 당첨금은 원칙적으로 기타소득으로 분류된다. 1만원 이상에 당첨됐을 경우 당첨금의 20%에 해당하는 소득세와 소득세의 10%에 해당하는 주민세, 즉 22%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55억원이라면 22%에 해당하는 세금 12억1000만원을 제외해야 하는 셈이다.



    당첨금은 종합소득세 면제




    원래는 연간 금융소득이 4000만원을 넘으면 종합소득세 부과 대상자가 된다. 이때 금융소득과 이외의 모든 소득을 합한 총소득이 8000만원을 넘으면 36%를 세금으로 낸다. 55억원을 벌었다면 이외에 1년간 소득이 1원도 없더라도 36%인 2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그러나 12억1000만원을 내는 이유는 복권 당첨금이 금융소득으로 분류되지 않으며 따라서 종합소득세 부과 대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55억원 당첨 소식이 알려진 후 복권 판매량이 폭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절정은 당연히 발표 다음날 아침이었다. 당첨자가 복권을 산 한국전자복권 사이트의 경우 하루 3000장 정도이던 판매량이 당첨자가 알려진 다음날 오전에만 1만여 장으로 늘어났다. 하루 평균 50여 명이 들른다는 서울 한 지하철 판매소 판매상 N씨는 “14일 문을 열자마자 30여 명이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두 달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이 같은 현상은 여전하다. 헬로럭 사이트를 운영중인 로토토는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한 달간 복권 판매액이 25억원으로 이전 한 달 판매액 11억~12억원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복권 판매 서비스를 시작한 ‘야후! 복권’의 경우 55억원 당첨 소식 이전에 비해 200% 증가한 하루 평균 6만5000여 장이 판매되는가 하면 매일 회원 수가 4000명 이상씩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발행되는 복권은 25종이다. 가히 복권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1969년 발행을 시작한 주택복권이 21년간 독점해온 복권시장은 1990년 체육복권이 나오면서 춘추전국시대로 들어섰다. 현재 발행중인 복권은 오프라인복권이 17종, 온라인복권(스포츠토토처럼 전용단말기를 통해 구입하는 복권)이 1종, 인터넷전용복권 7종 등이다. 이외에 인터넷녹색복권, 인터넷자치복권 등 인터넷전용복권 2종과 온라인연합복권이 각각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에 발행될 예정이다.

    물론 아무나 복권을 발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복권은 재원 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정부기관만 발행할 수 있으며 각 정부부처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발행기관에서 책임지고 제작·판매한다. 건교부 위임을 받은 주택은행(현 국민은행)이 주택복권을 발행해 판매하는 식이다. 과학기술부는 과학문화재단, 문화관광부는 국민체육진흥공단, 노동부는 근로복지공단, 중기청은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보통 각 부처 산하기관이 발행을 위탁받는다. 발행주체는 정부기관이지만 발행을 위탁받은 기관을 발행기관으로 본다.

    현재 복권을 발행하는 기관은 (주택은행 복권사업이 그대로 이양된) 국민은행, 국민체육진흥공단, 과학문화재단, 근로복지공단, 중소기업진흥공단, 지방재정공제회(행자부), 제주도청(제주도), 임업협동조합중앙회(산림청), 보훈복지의료공단(국가보훈처), 사회복지공동모금회(보건복지부) 등 10곳이다.

    발행기관 수보다 복권 종수가 많은 것은 한 발행기관에서 방식이 다른 여러가지 복권을 발행하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오프라인 상에서 추첨식인 주택복권과 다첨식(한번 구입한 복권으로 여러번 추첨 가능) 또또복권·즉석식 찬스복권 등 3개를, 인터넷에서는 인터넷 추첨식인 인터넷주택복권과 다음날 주가지수를 맞추면 당첨금을 받는 인터넷주가지수복권 등 5개 복권을 발행중이다. 온라인연합복권까지 나오면 국민은행이 발행하는 복권은 총 6종이 된다.

    국민은행은 선발업체이면서 가장 많은 복권을 발행하는 만큼 시장점유율도 최고다. 2000년 오프라인복권 시장에서 국민은행은 43%의 시장점유율로 1위를 고수했다. 한국과학문화재단과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각각 20%와 14%로 그 뒤를 이었다.

    정부부처로부터 복권사업의 모든 것을 위탁받은 발행기관은 각 단계마다 전문업체에 업무를 위임한다. 인쇄는 인쇄 전문업체에, 배송은 배송 전문업체에, 판매는 판매 전문업체에 의뢰하는 식이다.

    현재 복권 인쇄를 하는 업체는 추첨식과 즉석식에 따라 나뉜다. 인쇄 방식이 다르기 때문. 추첨식의 경우 ‘KD미디어’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즉석식복권 인쇄업체에는 KLS, UCE, 혼셀코리아 등이 있다.

    복권 인쇄는 특성상 아무나 할 수 없다. 당첨 복권은 곧 현금과 마찬가지이므로 돈을 찍는 정도의 인쇄 수준을 갖춰야 하기 때문. 넘버링(각각 다른 번호를 수천만장 찍어낼 수 있는) 기술도 있어야 한다. 1962년 서울신문 출판국에서 시작한 KD미디어는 신문사 산하기관이니 믿을 수 있지 않겠냐는 인식에 힘입어 1969년 주택복권 인쇄업체로 선정됐고, 이후 국내의 모든 추첨식복권 인쇄를 담당하고 있다. 1999년 대한매일에서 독립했다.

    즉석식 복권은 인쇄가 더 어렵다. 당첨됐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알루미늄박을 긁어내야 하는데 이 알루미늄박을 씌우는 작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즉석식 복권 인쇄업의 선두주자는 주택복권·체육복권·기술복권 인쇄를 담당하고 있는 KLS다.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1990년 설립과 함께 국내 최초로 즉석식 복권 인쇄기계를 도입했고, 그해 발행된 최초의 즉석식 복권인 체육복권 인쇄업체로 선정되면서 자연스레 시장 선도기업이 됐다.

    1995년 한때 즉석식 복권이 전체 복권 시장의 64%를 차지한 적이 있다. 그러나 차츰 인기가 수그러들면서 1999년에는 추첨식 복권 비중이 78%로 증가했다. 인쇄업체간 명암도 엇갈려 KD미디어는 지난해 매출 207억원을 올리면서 코스닥 등록을 앞둔 업체로 성장했다. 반면 KLS의 최근 지난해 매출액은 60억원 선으로 떨어졌다. KLS가 최근 온라인연합복권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 역시 새로운 시장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전문업체에서 인쇄된 복권은 바로 수송업체로 넘겨진다. 복권수송전문업체로는 시큐리티코리아와 브링스코리아가 있다. 복권 수송은 은행의 현금 수송 원칙에 준해 이뤄진다. 혼자서는 안되고, 반드시 청원경찰 1명이 동행하도록 되어 있다.

    수송업체가 바로 판매상에게까지 전달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지방 등 수송업체가 일일이 배송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유통전문회사나 중간도매상에 대량으로 넘기기도 한다. 문광부 발행 복권 위탁사업자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자사 발행 복권 유통을 위해 설립한 체육복권주식회사가 대표적인 복권 유통전문업체. 이외에 ‘여러시’ 등 10여 개의 유통전문회사가 활동중이다.

    안 팔리고 남은 복권은 구멍을 뚫어 폐기한 다음 재활용업체로 넘긴다. 수거 역시 수송업체가 맡는다. 새 복권을 갖다주면서 기한을 넘긴 복권을 수거해오는 식이다. 제조업체와 수송업체 관계자로 이뤄진 폐기팀은 이 폐기 복권을 골판지 업체 등 재활용업체에 넘겨준다.

    복권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2000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복권은 12종류에 불과했다. 주택은행이 주택복권(추첨식)·또또복권(다첨식)·찬스복권(즉석식)을, 한국과학문화재단이 더블복권·기술복권을,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월드컵복권(추첨식)과 체육복권(즉석식)을 발행했다. 이외 근로복지공단(복지복권), 중소기업진흥공단(기업복권), 지방재정공제회(자치복권), 제주도청(관광복권), 임업협동조합중앙회(녹색복권) 등이 복권을 발행하고 있었다. 11개 복권의 최고당첨금은 또또복권의 10억원. 주택복권·더블복권·월드컵복권은 최고 당첨액이 5억원이고 나머지는 1억원이었다.

    그런데 2001년부터 복권 발행 붐이 일었다. 2001년 한해 동안만 복지의료공단이 플러스플러스복권과 스피드플러스복권을 발행하기 시작했고, 과학문화재단이 빅슈퍼더블복권을, 지방재정공제회가 슈퍼코리아연합복권, 국민체육진흥공단은 흔히 토토라 불리는 스포츠복권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에 인터넷 전용복권이 가세했다. 인터넷복권이 국내에 최초로 선보인 것은 1998년, ‘노다지랜드’에서 오프라인복권을 사와 인터넷 상에서 판매하면서부터다. 초창기에는 인터넷으로 구입하면 실물복권을 우편으로 보내주다 나중에는 디지털화된 번호로 복권을 판매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그러나 오프라인 복권 중 즉석식은 인터넷 상에서의 판매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주로 즉석식인 인터넷전용복권이다. 지난해 5월 제주도청이 인터넷관광복권이라는 국내 최초 인터넷 전용복권을 선보인 이래, 6개 기관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민은행의 인터넷주택복권과 주가지수복권, 과학문화재단의 사이버기술복권, 근로복지공단의 인터넷복지복권, 보훈복지의료공단의 빅로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이버엔젤복권 등. 임업협동조합중앙회와 지방재정공제회도 올 상반기 중 각각 인터넷녹색복권과 인터넷자치복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심각한 부처간 과당경쟁


    건교부·행자부·과기부·노동부·중기청 등 7개 부처가 연합해 발행하는 로또 방식의 온라인연합복권도 올 하반기 중 발행을 시작한다. 발행기관이 7개나 되는 것은 건교부에서 온라인방식의 로또복권을 추진한다는 사실을 안 타 부처들이 우르르 몰려와 함께하자며 한 다리씩 걸쳤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또 방식은 국내에 처음 도입되는 것으로 복권을 구입한 사람이 1~49까지의 숫자 가운데 임의로 6개를 골라 기입, 당첨번호를 맞추는 식이다. 따라서 당첨자가 여러 명이 될 수도 있고, 최고 당첨금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 주에 얼마나 많은 복권이 팔렸나, 또 당첨자가 몇 명인가에 따라 당첨금이 달라지기 때문. 또 당첨번호를 기입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확률도 높다. 이 때 당첨금은 다음 회로 이월되는데 그런 식으로 몇 회 당첨금이 뒤로 넘어가다 보면 나중에는 매우 큰 액수가 된다.

    이런 매력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로또가 복권 시장의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도 로또가 등장하면 기존 복권 시장의 절반 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돼 복권시장 재편의 핵으로 불린다. 업계에서는 “온라인연합복권 이후에 더 이상의 복권 사업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다.

    복권이 넘쳐나다 보니 경쟁도 날로 극심해지고 있다. 최근 들어 고액당첨금을 무기로 내세우는 복권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소비자의 눈길을 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계산이다.

    고액 당첨금 경쟁에 불을 붙인 것은 지난해 8월 발매를 시작한 ‘플러스플러스복권’이다. 이전까지 10억원이던 최고 당첨금 액수를 일거에 40억원으로 끌어올려버린 것이다. 1등 10억원, 2등 8억원씩 2명, 3등 7억원씩 2명 등으로, 1·2·3등이 나란히 붙은 5매를 한꺼번에 구입할 경우 40억원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플러스플러스복권은 1, 2회차 모두 25억원짜리 당첨자가 나타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1회차 때는 서울에 사는 한 식당 종업원이 1등과 2등·3등 한 장씩에 당첨됐다. 2회차에서는 추석선물로 복권을 산 모씨가 동생과 친구에게 준 복권이 각각 18억원(1·2등)과 7억원(3등)에 당첨돼 화제가 됐다.

    플러스플러스복권의 고액 당첨금 전략이 맞아떨어지자 지방재정공제회는 지난해 12월10일 최고 당첨금 60억원을 내건 슈퍼코리아연합복권을 내놨다. 5일 뒤인 12월15일에는 과학문화재단이 당첨금 100억원의 빅슈퍼더블복권을 출시했다.

    이처럼 복권이 난립하고 한탕주의화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1998년 12월 해체했던 복권발행조정위원회를 지난 3월 부활시켰다.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된 조정위는 향후 각 부처에 위임된 복권발행 업무를 조정하고, 신규 복권사업 참여자들의 자격을 정할 뿐 아니라, 복권 발행 물량과 최고 당첨금 등을 규제함으로써 복권 발행을 둘러싼 부처간의 과당경쟁을 막을 방침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정부부처들이 앞다퉈 복권 발행에 열을 올리는 걸까. 그만큼 복권 시장에 먹을 게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관련기관에서는 복권이 매우 가능성 큰 사업이라 주장하고 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2000년 4000억원 수준이던 국내 복권시장은 지난해 6000억원대로 커졌다.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빅 이벤트가 열리는 올해는 지난해의 두 배인 1조2000억원대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2003년엔 2조2000억원, 2006년에는 3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전자복권시장 확대도 예견된다. 소프트뱅크리서치는 지난해 400억원 선이던 전자복권시장 규모가 올해는 1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한국인의 1인당 복권 구입비가 선진국에 비해 훨씬 적다는 것도 향후 복권 시장 확대를 예견하게 하는 요소다. 한국인의 1인당 복권 구입비는 연간 평균 8달러. 일본(50달러), 영국(150달러), 미국(140달러) 등에 비할 때 미미한 수준이다. 선진국일수록 크게 돈벌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어 상대적으로 복권을 통한 ‘한탕’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될수록 복권 구입비가 날로 늘어나리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예측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시장을 잡으려는 관련업체들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자연히 잡음도 많은 편. 온갖 게이트와 로비설로 어지러운 형국이다.

    요즘 복권업계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최근 정가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최규선 게이트’다. 한국타이거풀스가 스포츠토토 사업권자 선정 대가로 김대중 대통령의 셋째아들 김홍걸씨에게 주식을 주었다는 것이 의혹의 주 내용이다. 최규선씨는 이와 별도로 한국타이거풀스로부터 24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메가톤급 스캔들이 터지면서 “이제 스포츠토토사업은 끝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는 실정이다.

    사실 이 같은 의혹은 스포츠토토가 도입될 당시부터 꾸준히 제기돼온 것이다. 함께 입찰했다 탈락한 한국전자복권은 “한국타이거풀스가 공단측이 제시한 제안요청서의 사양에 맞지 않는 시스템으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음에도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보훈복지의료공단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는 한나라당 이부영 의원이 공단의 인터넷복권 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공단 직원이 대부분인 심사위원들이 방대한 사업계획서를 하루동안 검토하고 바로 사업자를 결정했다는 것. 보훈복지의료공단 단독사업자로 선정된 예스아이비 김준성 사장은 S신문 사장 김모씨의 아들이고, 이 연결고리를 통한 로비가 있었을 거라는 소문은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초 한국타이거풀스를 상대로 로비 의혹을 주장했던 한국전자복권도 로비 주체로 의심받고 있다. 지난해 8월 사임한 김현성 전 한국전자복권 사장은 이수동 전 아태재단 이사에게 이용호씨를 연결시켜준 인물로 유명하다. 김 전 사장이 이 전 이사에게 복권 발행기관인 제주도에 로비를 부탁했고 로비 결과 한국전자복권이 사업권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는 설이다. 김씨는 현재 해외 도피중이다.

    지난 3월에는 업계 최초로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온라인연합복권 선정에서 2위로 탈락한 위너스시스템은 3월7일 사업운영자인 국민은행을 상대로 1위 업체와의 ‘계약체결 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위너스시스템의 주장은 “KLS컨소시엄 대표가 허위자료에 의거해 정책자금을 대출 받은 것과 관련,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는 등 도덕성에 문제가 있으며, 이 컨소시엄에 당시 국민은행 사외이사였던 안철수 사장이 참여하고 있었던 것, 또 KLS사가 찬스복권 인쇄업체로서 국민은행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회사며, 1996년 당시 주택은행과 온라인복권사업 관련 업무협정을 맺은 등 이번 심사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4월 중순 이같은 주장은 법원에 의해 기각됐고 온라인연합복권 사업을 위해 28개 주주가 함께 신설한 업체인 위너스시스템은 현재 청산의 길을 걷고 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라도 무조건 참여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일 만큼 복권사업에 그렇게 먹을 게 많은 걸까. 선발주자냐 후발주자냐, 오프라인복권인가 인터넷복권인가에 따라, 또 각 단계별 주체에 따라 사정은 다르다. 결론적으로 말해 오프라인복권의 경우 몇몇 선발주자와 판매상인들만, 인터넷복권의 경우 발행기관과 ‘다음’ 등 포털사이트들만 신나는 상황이다.

    우선 오프라인 복권의 경우를 보자. 복권 판매총액의 50%는 무조건 당첨금으로 지급된다. 2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고 치자. 이 경우 100억원은 무조건 당첨금으로 지급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외에 25%는 인쇄비 등 각종 발행비와 판매상 수수료, 관리비 등으로 나간다. 나머지 25%가 기금이나 출연금으로 적립된다. 즉석식의 경우 기금적립률이 조금 더 낮아진다. 숫자 위에 알루미늄박을 씌우는 작업이 추가돼 추첨식보다 인쇄비가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비율대로 기금을 적립하는 기관은 거의 없다. 시장점유율 1위를 놓치지 않고 가장 안정적으로 적립금을 쌓고 있으며, 5월이면 누적적립액 5조원을 넘어선다는 주택복권의 사례를 보자. 1969년부터 1988년까지 초창기 40%를 넘던 기금조성률은 1988년 30%대로 떨어졌고 1990년대 중반 후부터는 25%대로 떨어졌다. 후발복권이 쏟아져 나오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초창기 100%에 육박하던 복권 판매비율이 1990년대 후반 이후 70%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은행 창구를 통해 판매되기 때문에 중간 유통비가 없는 주택복권이 이 정도니 다른 복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복권업계 한 관계자는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쏘나타 등을 경품으로 내걸고 있으며 판매수수료도 최고 20%까지 높아졌다. 홍보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판매관리비(발행비 포함)도 20%를 웃돈다. 이 경우 기금적립률은 판매액의 10%를 겨우 넘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판매상들의 역할이 절대적인 오프라인 복권 판매의 경우 이미 주도권은 판매상에게 넘어간 상태다. 중간도매상에게 덤핑으로 넘기는 일도 예사가 됐다. 이 때문에 복권 발행 당시 10%로 계산하고 시작한 판매 수수료가 12~13%는 보통이고 최고 20%까지 치솟고 있다. 판매상에게 수수료를 많이 주면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하고 고객에게 우선적으로 권하기 때문이다. 판매상 지위가 우월적으로 변하면서 돈을 안 받은 상태에서 먼저 복권을 건네주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노동부 위탁업체 근로복지공단의 복지복권 판매대행사인 애드앤리서치사가 부도나면서 근로복지공단이 복권 판매액 20억원을 못 받게 된 것도 이같은 관행 때문이다. 복지복권을 발행하기 시작한 지난 1994년부터 지난해 11월말까지 모두 1495억원의 복지복권이 애드앤리서치를 통해 판매됐는데 부도가 나고보니 모두 114억원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한다. 근로복지공단이 재산압류 등의 조치를 통해 회수할 수 있는 한 회수했지만 최소 20억원 이상은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적립금이 나오면 다행이다. 적립금은커녕 적자를 기록할 수도 있다. A복권을 200억원어치 발행했다고 치자. 이때 100억원은 무조건 당첨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복권이 80억원어치밖에 안 팔렸다. 발행기관으로서는 아주 운 나쁘게도 팔린 80억원어치에 당첨번호가 많이 포함돼 있어 70억원이 당첨금으로 나갔다. 이 경우 복권발행으로 오히려 손해만 보는 셈이다.

    고액 당첨금을 내거는 경우는 위험성이 더 커진다. 당첨금을 모두 감당하기 위해서는 발행매수와 총발행액이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고 당첨금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복권들은 대부분 총 발행액이 1000억원에 육박한다. 발행액이 커지는 만큼 다 팔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다. 실제로 고액 당첨금을 걸어 화제가 됐던 모복권은 판매가 60% 정도에 머물러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복권 발행기관들이 복권 발행과 관련한 흑자·적자 내역, 이를 통해 적립한 기금액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 복권 발행으로 적자를 보는 기관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정확히 알 수 없다. 심지어 통계청·국세청·국정감사에서도 정확히 집계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복권 종류가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잘 팔리지 않는 복권이 있을 수밖에 없고, 특히 후발주자의 경우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고전하고 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오프라인 상에서 큰 재미를 못보고 있는 발행기관들이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인터넷복권이다. 인터넷복권은 오프라인복권과 구조가 조금 다르다. 총 발행액의 50%가 기금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머지는 아주 간단하다. 인쇄비·물류비·폐기비 등 각종 간접 경비가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 발행을 위임받은 업체에 수수료로 주고 남은 나머지 전체가 기금으로 적립될 수 있다. 보통 업체 수수료가 20~25%이므로 25~30%를 적립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뿐인가. 서로 사업권을 따내려는 위탁업체들간 경쟁이 가열되면서 알아서 수수료를 내리는 형편이다.

    발행기관들이 인쇄식 복권보다 훨씬 이문이 큰 인터넷복권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를 봤을 때는 더더욱 인터넷복권 쪽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향후 인터넷복권이 대세가 될 거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넷복권은 30대 후반~50대가 대부분이던 기존 복권 구매자 외에 20~30대 초반 세대를 새로운 고객층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복권은 간편하다. 직접 판매소에 가지 않아도 되며 당첨 후에도 당첨금을 받으러 갈 필요가 없다. 인터넷상에서 클릭 한 번으로 구입이 가능하고 당첨이 돼도 역시 인터넷상에서 본인 확인을 거치면 통장으로 돈이 자동 입금된다. 귀찮다는 등의 이유로 복권 구입을 하지 않던 사람들을 새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복권 발행업체 (주)로또가 최근 인터넷 복권 구입자 6만명을 대상으로 연령 및 성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연령대별 비율을 보면 30대가 45.6%로 가장 많고, 20대 35.1%, 40대 15.9%, 50세 이상 3.2%, 20세 미만 0.2%의 순으로 나타났다.

    발행비용이 적어지므로 기금 조성액도 많아진다. 무엇보다 인터넷은 시대적 조류다. 발행기관들이 인터넷전용 복권 외에 오프라인 복권의 인터넷 판매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반면 인터넷복권 사업을 시행하는 대행업체들은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현재 한국전자복권·로토토(전 타이거풀스아이)·로또 등 전문업체와 SK(주)·삼성SDS·데이콤·서울이동통신 등 대기업 계열, 인컴아이엔씨·가로수닷컴·모디아·한국정보통신 등의 벤처기업이 대행업체로 활동중이다.

    단독사업자로 지정된 경우도 있고 여러 업체가 복수사업자로 뽑힌 경우도 있다. 지난해 8월 발행업체 선정을 완료한 두 발행기관의 경우에는 모두 컨소시엄 사업자를 선택했다. 보훈복지의료공단이 예스아이비컨소시엄(37개사),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조흥은행컨소시엄(14개사)을 선정하는 식이다. 자본과 영업력이 충분한 오프라인, 온라인의 유력업체들이 대거 인터넷전용복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실제 해보면 별 이득도 없는데 왜 저렇게 난리들인지 모르겠다. 하긴 밖에서는 엄청난 기회의 땅으로 보일 지도 모르지만….”

    현재 인터넷전용복권 사업을 하고 있는 모업체 관계자 얘기다.



    인터넷전용 복권사업권자가 가져갈 수 있는 돈은 판매액의 20~25%선. 그러나 이 돈을 모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복권 판매를 위해서는 ‘다음’ 등 각종 포털사이트에 위탁판매를 해야 하는데 그 수수료가 만만치 않다. 보통은 위탁판매 사이트에 총판매액의 10~13%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업권자가 20% 수수료를 받아 위탁판매 사이트에 13%를 떼어준다면 결국 7%만 남는 셈이다. 이 돈으로 재투자하고 인건비·임대료·프로모션 비용 등 각종 운영비를 충당하는 것은 물론 지불결제와 인증수수료도 내야 한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이윤은커녕 적자를 면하기도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혹시 보안 문제라도 터지면 사업을 계속하기 어려울 만큼 치명타를 입게 된다.

    그럼에도 관련 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사업권을 따내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사업권을 따냈거나 따내려고 애쓰는 기업 중 상당수가 코스닥 등록기업이다. 이중 많은 기업이 IR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일단 사업권자로 선정되면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 것은 물론 연내 100억원 이상의 매출이 가능하다고 큰소리친다. A사의 경우 인터넷복권 사업권을 따낸 후 3일간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엄청난 거품이다. 100억원 매출을 달성하려면 500원짜리 복권을 하루에 6만장씩 팔아야 한다. 사업 시작 후 몇 개월은 시장적응기간으로 정상 영업을 할 수 없음을 감안할 때 첫해 매출 100억원은 어불성설이다. 이뿐인가. 최소한 몇 년은 돈을 쏟아부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은 모두 뒤로 감춘 채 금방 대박이 터질 듯한 분위기를 조성,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처럼 위탁사업권자는 별 재미를 못 보는 데 반해 각종 포털사이트 등 위탁판매 사이트들은 쏠쏠한 수입을 챙기고 있다. 사실 복권은 전자상거래 아이템으로는 최적격이다. 우선 판매금액이 1000원에서 비싸야 4000원이다. 소액인 만큼 망설임 없이 구매할 확률이 높다. 또 구매한 복권 중 30%는 당첨이 된다. 그러나 당첨자의 대다수가 이를 현금으로 환급 받기보다는 재구매에 쓴다. 인터넷 사이트들이 위탁판매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회원수가 많은 유명 포털의 경우 사업권자들이 서로 자사 복권을 걸어달라고 로비를 할 정도다. ‘다음’ 등 유명사이트에는 수수료를 13%까지 올려주는 업체도 생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7월 인터넷복권판매를 시작한 ‘다음’의 경우 올 3월 판매량이 시작 당시보다 8배로 늘어났다. 휴대전화로 가장 먼저 복권을 팔기 시작한 SK텔레콤 역시 분기마다 100% 안팎의 높은 매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대박의 꿈’은 정작 인터넷·통신 서비스업체의 주머니 속에서 영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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