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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의 書海유람

여행도서도 퓨전 바람

  • 표정훈 < 출판칼럼니스트 >

여행도서도 퓨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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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특징은 ‘사하라에서 배운 성공원칙’이란 부제에서 가늠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저자와 친구들의 여행을 계획과 준비에서부터 마무리 단계까지 자세히 기술한 책이지만, 각 꼭지 마지막엔 일종의 처세훈이 수록돼 있다. 예컨대 여행이 난관에 부딪혀 다른 사람들이 만류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이런 처세훈을 적어놓았다.

“가까운 친척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 때문에 당신의 꿈을 포기하지 말라. 당신이 세운 목표의 가치를 올바로 아는 사람은 당신뿐이다. 다른 사람은 언제나 다른 관점에서 보기 마련이다. 그들은 호의를 갖고 비난하지만, 당신의 목표를 완벽히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그들의 충고를 귀담아 듣고 신중히 검토해야겠지만,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책임질 사람은 결국 당신뿐이란 사실을 명심하라.”

이쯤 되면 이 책이 평범한 여행도서가 아니라 여행도서의 겉모습을 지닌 처세 실용서임을 알 수 있다. 처세 실용서로서의 여행도서와 대극적 성격을 지녔다고 볼 만한 여행도서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여행은 뒷전’이고 저자의 교양과 지식, 지적인 감수성을 유감없이 풀어놓는 책이다. 이 글 첫머리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인용했는데, ‘앎’이 ‘봄’을 압도하는 그런 책으로 김화영 교수(고려대 불문학과)의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城)’(문학동네)이 있다.

‘김화영 예술기행’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30여 년 전의 것부터 최근 것까지 유럽과 인도, 아프리카 여행 후 써둔 글들을 한 권으로 모았다. 불문학자의 예술기행인 만큼 아무래도 프랑스와 유럽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냥 ‘고급 에세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루앙 대성당에 대해 김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 ‘마담 보바리’에서 이 성당의 역할은 중요하다. 레옹은 ‘난생 처음 여자를 위하여’ 제비꽃 한 다발을 사들고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엠마를 기다리는 레옹의 상상을 빌려 성스러운 대성당 내부를 ‘거대한 규방’으로 탈바꿈시켜 놓는다. 그같은 시선 속에는 플로베르의 매서운 반교권주의적 풍자가 깃들여 있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와 그의 ‘마담 보바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김교수의 기행에 동참하기가 무척 힘든 게 사실이다. 요컨대 이 책은 ‘아는 만큼 읽히는 책’에 속한다. 유례를 찾는다면 다작의 저술가이기도 한 김윤식 교수(전 서울대 국문학과)의 101번째 저서인 ‘김윤식 문학기행’(문학사상사), 전영애 교수(서울대 독문학과)의 ‘바이마르에서 온 편지’(문학과 지성사)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떠나는 가상여행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여행도서의 범위는 넓어지고 있다. 그 성격도 매우 다양해졌다. 여행도서란 말로 묶기엔 무리라는 느낌이 들 만큼 다른 분야와의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다. 여행도서의 주종을 이루던 여행지 정보 안내서는 인터넷을 통한 여행정보 입수의 편리함으로 인해 다소 위축된 느낌마저 있다. 여행도서의 평가기준은 더 이상 실용적 기능성에만 있지 않다.

물론 도서 장르의 이런 퓨전화 현상은 비단 여행도서 분야만의 일은 아니다. 예컨대 역사 인물의 리더십을 통해 오늘날의 기업경영 환경에 적합한 리더십을 발굴해내는 내용의 책들, 역사와 처세 실용서의 경계를 넘나든 책들이 유행의 물결을 탄 적도 있다. 결국 도서 장르의 전반적인 퓨전화 현상에서 여행도서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최근 여행도서의 또 하나 특징은 실제 여행을 위한 보조수단으로서의 책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 자체가 하나의 완결된 여행이 된다는 점이다.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기다림’과 비슷하다. ‘떠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여행도서’니 말이다. 독서의 차원에서 본다면, 읽고 떠나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읽는 것 자체가 떠남이 되는 독서, 일종의 가상 여행(virtual tour)으로서의 독서가 점점 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광고 문구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를 이렇게 바꿔도 좋지 않을까. ‘열심히 일한 당신, 읽어라!’

신동아 200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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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 출판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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