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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평통 서기국 ‘이회창 죽이기’ 나섰다

북한의 2002 대선 개입 내막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조평통 서기국 ‘이회창 죽이기’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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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어김없이 북한의 ‘작업’이 시작되고 있다. 12월18일 대선 당일까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북한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는 테러, 무력시위, 간첩사건 등 돌출적인 방법을 썼다면, 올해는 북한의 관영 매체를 활용해서 특정 후보를 비난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또 그 비난은 과거같은 일방적인 흑색선전이 아니라, 치밀한 취재를 통해서 나름대로 근거를 조목조목 들이대고 있다. 그 근거도 국민 상당수가 공감할 수 있는 한국의 대중매체이거나 공개된 자료 일색이다. 공개된 자료를 대지 못할 경우는 6하 원칙에 따라 치밀하게 사건을 구성하여 누가 보더라도 믿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선거전에서 특정 후보가 상대 후보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과 같은 수법이다. 이는 국내 일간지에서 한창 인기를 끌었던 ‘대선 후보 검증 시리즈’와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거론 대상이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

좋은 예가 있다. 지난 5월14일과 22일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각각 관훈토론회에서 패널리스트들의 질문을 받고 남북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 자리에서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한다고 공언해온 노무현 후보는 김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에 대해 “3단계 통일방안의 내용을 외우지 못하고 있다. 암기하려고 노력했는데 못 외웠다”고 말했다. 노후보는 또 북한의 통일방안인 고려연방제에 대해 “깊이 읽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가능하지 않는데 가능한 것을 전제로 그 토대 위에서 연방제를 해석하고 매달릴 필요가 있는가”라고 했다.

알려진 대로 1980년 제6차 노동당대회에서 채택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은 그 실효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이 펼치는 대남·통일정책의 핵심개념이다. 노후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 통일정책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정책의 기본을 모르면서 무엇을 어떻게 계승하겠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회창 후보는 “6·15 선언의 원칙과 정신을 살릴 것이나, 2항은 그대로 갈 수 없으며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면서 “이 조항을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보는 이에 관한 질문이 계속 이어지자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이 2항을 바로 폐기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오만한 자세로 보이기도 할 것”이라며 ‘폐기’가 아니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미라고 발언을 정정했다.

6·15 공동선언 제2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제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후보는 이 조항을 ‘연방제 합의’로 오해한 듯하다. 이후보가 이처럼 중대한 사안에 대해 한 자리에서 두 말을 한 것은 남북관계에 대한 그의 인식능력을 반영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후보가 “대북 포용 기조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현정부의 햇볕정책과 기조가 같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남북 사이의 구체적인 교류·협력에 대해 애매하게 반응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재미있는 것은 북한의 반응이다. 북한 로동신문은 5월30일 논평을 통해 이 후보의 6·15 공동선언 2항과 관련한 발언을 ‘천추에 용납 못할 반통일적 망발’이라고 공격했다. 로동신문은 “이회창이 북과 남의 통일 방안에 공통점이 있을 수 없다고 전면부정하면서 떠들고 있으니 초보에 초보도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라면서 “사물현상의 기초적인 이치도 모르는 분자가 어떻게 법관 노릇을 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노후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관훈토론회에서의 이 후보의 발언은 노 후보의 발언과 맞물려 있었다. 따라서 노 후보에 대해서도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반응을 보일 법도 한데 일절 언급이 없었다.

평양당국은 또 이날 로동신문 논평을 통해 6·15 선언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뒤집기까지 했다. 문제의 2항이 연방제에 남북이 합의했다던 종래의 아전인수격 주장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그들은 이 조항이 “서로의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인식한데 기초하여 그것을 적극 살려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현 정부와 해석을 같이 한 것이다.

조평통의 이회창 고발장

북한의 ‘이후보 때리기’는 6월13일 완결판이 나왔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명의로 나온 ‘이회창의 반민족적, 반통일적 죄행 고발장’이 그것이다. A4 10장 분량의 이 고발장은 이회창 후보의 △과거 법관 시절 행적 △정계 입문 뒤 행적 △아들 병역비리, 호화빌라 물의, 최규선씨 자금 수수설 등 최근 스캔들을 낱낱이 들추고 있다.

이 고발장은 가장 먼저 이회창 후보가 1961년 5·16혁명재판소에 배석판사로 참가하여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게 사형판결을 내렸다고 언급하고 있다.

「일제통치 시기 검찰서기로 수많은 독립운동자들을 잡아가두고 처형하는데 앞장섰던 친일역적인 애비 리홍규의 피를 이어받은 리회창은 법관 초년기부터 파쑈 통치의 손발이 되어 무고한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재판 처형하였다 … 민족일보 사장 사형사건은 그 대표적 실례의 하나이다 …당시 리회창은 … 민주화와 나라의 평화통일을 주장해 나섰던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에게 북(北)정권의 평화통일론을 보도, 선동하여 반국가적 행위를 했다(남조선잡지 1997년 10월호)는 모략과 날조로 일관된 판결로 그를 1961년 12월21일 교수형에 처하게 하였다」

고발장은 또 1981년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이회창 후보의 판결을 문제삼고 있다.

「광주학살에 분노하고 파쑈 정권을 비난한 것 밖에 없는 성원들에게 강제로 죄를 들씌워 처형한 것도 다름아닌 리회창이었다. 5공정치법협의회(1997년 당시) 공동대표 박재순은 1차 대법원 판결에서 강우영을 비롯한 4명의 대법관들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파기 환송한 한울회 사건에 대해 2차 대법원 판결에서 유죄판결을 내린 리회창에 대해 이렇게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남조선 잡지 1997년 8월호)」

고발장은 이 후보의 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재판과, 이후 대법관 시절의 재판을 일일이 거론했다.

「대법원 판사라고 거들먹거리던 리회창은 … 문부식과 김은숙을 이 방화사건의 주동인물로, 김현장을 배후조종자로, 남강원도 원주교구 교육원 원장 최기식 신부를 이들을 숨겨주었다는 혐의로, 체포 구속한 것을 비롯하여 … 그들에게 악명 높은 보안법을 적용하여 사형을 비롯한 극형을 선고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 그 시기 리회창은 ‘민족통일민주주의 로동자련맹사건’(1990년 4월), ‘혁명적 로동자 계급투쟁동맹사건’(1990년 8월), ‘조국통일촉진그룹사건’(1991년 3월), ‘민족해방활동가그룹사건’(1991년 6월), ‘사로맹인천위원회사건(1991년 6월), ‘사회주의로동자련맹사건’(1991년 9월) 등 수많은 사건들을 조작하고 죄 없는 애국자와 민주인사들을 무자비하게 재판·처형하는 범죄행위를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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