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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에이즈 환자 1호를 찾아라!

미군부대 윤락녀냐 동성연애자냐

  • 감명국 < 자유기고가 > eos@newsbank21.com

한국형 에이즈 환자 1호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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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변화에도 이런 특징이 두드러졌다. 1993년 이전에는 해외에서 감염된 사람이 전체의 40∼50%를 차지했으나, 1995년을 기점으로 이후에는 국내 감염이 거의 80%였다. 최근에 발생한 에이즈 환자 역시 거의 대부분은 국내 감염이었다. 역시 ‘한국형 에이즈 바이러스’의 존재 근거가 되는 수치다.

한 가지 특기할 점은 국내 환자의 남녀 성비율을 보면 남성이 6.5:1로 압도적 다수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는 외국 사례에 비추어볼 때 의문스러운 수치다. 남성이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경우는 미국, 유럽에서 보듯이 동성연애 감염 비율이 이성 성접촉보다 훨씬 높은 경우다. 실제 미국은 동성애 감염 비율이 46%로, 이성 접촉 감염(11%)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하지만 국내 HIV 감염 원인 1위는 이성간의 정상적 섹스로 그 비율이 66%나 된다. 이성간 성 접촉이 HIV 감염의 주원인인 아프리카나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조사한 감염 남녀 성비는 1:1이다. 궁금한 대목이다. 이실장은 이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국내의 HIV 감염 경로에서 동성연애 비율이 과소평가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동성애 감염 과소평가

국내에서 ‘한국형 HIV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퍼지는 현상은 이 조사 결과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B형과 nonB형(B형을 제외한 다른 모든 유형)의 비율은 16:13으로 이 기간중 B형이 차지하는 비율은 55.2%에 그쳤다. 그러나 1993년부터 2000년까는 B형이 무려 84.8%나 된다. 남성의 경우 국내 감염자는 B형이 100%였다.



반면 해외에서 옮은 이는 모두 nonB형이었다. 이 당시는 ‘한국형 바이러스’를 따로 구분짓지 않고 전체 B형 범주에 넣어 조사했다. 오늘날 B형의 80% 이상이 ‘한국형 바이러스’인 점을 감안하면 1994∼95년을 기점으로 국내에서 B형,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형 바이러스’가 집중적으로 퍼졌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990년대 이후부터 ‘한국형 바이러스’라는 출중한 국가대표 선수가 단독 드리볼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보건당국이나 학계에서 ‘1호 환자’연구를 서두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실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1호 환자는 비단 한 개인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몇 명의 집단이 될 수도 있고, 어느 특정 지역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조사 결과, 국내 에이즈 바이러스는 뚜렷한 하나의 특징을 가진 바이러스 집단이 매우 강한 번식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집단이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국내 에이즈 바이러스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이 집단을 역학조사해서 역추적으로 최초 발생지를 찾아내야 한다.”

어찌 보면 ‘1호 환자’ 추적은 국내 에이즈의 역사를 다시 한번 통찰하자는 의미와 같다. 한국 최초의 에이즈 감염자는 지난 1985년 11월 중동의 사막에서 일하던 한 근로자다. 이듬해인 1986년에 5명이 더 발견되었고, 이후 급속히 퍼졌다. 물론 모두 해외에서 옮았다. 이때부터 국내에도 ‘에이즈 공포’가 본격적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1987년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 제정된다.

한국인 최초 감염자는 중동 근로자

그렇다면 한국의 에이즈 ‘1호 환자’는 중동에서 일하던 그 근로자일까? 그렇지는 않다. 현재 애석하게도 국립보건원에는 이 환자에 대한 어떠한 유전자 정보나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그 환자가 ‘B형’인지, 또는 ‘한국형 바이러스’ 소유자였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물론 그 환자는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를 ‘1호 환자’로 보지 않는 이유는 그가 감염을 확인한 뒤 제2, 제3의 전파 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우디 현지에서 병이 옮은 사실이 확인된 후 곧바로 국내로 소환, 당국의 보호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5년 이후 해마다 에이즈 감염자가 늘어났지만, 국립보건원의 당시 자료는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다. 김선영 교수는 이에 대해 안타까운 말을 전하고 있다.

“외국에 견주면 국내의 에이즈 감염자 숫자는 아주 적은 편이다. 보건 당국이 심각성을 인식하고 환자 유전자 정보와 자료를 초기 단계부터 착실히 준비해두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전체 감염자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방대한 ‘게놈(염색체) 상황판’을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것으로 감염성 질환 관리체계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1000여 명 이상으로 환자가 급격히 불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번 여수 윤락녀 구씨 사건도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초기 국내 자료가 부족한 점은 국립보건원의 이실장도 일부 인정하고 있다. 1985년에 나타난 첫 감염자에 대한 정보는 물론 1980년대 자료 전체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1990년대 들어서 어느 정도 자료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95년 이후부터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교수는 “1990년대 이후 자료만이라도 면밀하게 역학조사하면 ‘한국형 바이러스’의 특징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의미의 ‘1호 환자’는 어렵겠지만, 그 실체나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이 연구는 국립보건원 면역결핍실과 서울대 미생물학과 천종식 교수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 실장은 6월초 현재 연구 진척도를 30% 정도라고 귀띔했다. 앞으로 두세 달 정도 더 연구해야 윤곽이 드러난다고.

서울대 천교수 연구실에는 HIV 조직표가 그려져 있다. 현재 남은 작업은 ‘한국형 에이즈 바이러스’의 각 샘플로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이를 역추적하는 것이다. 천교수 역시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라며 대단히 신중하게 전망하고 있다.

“반드시 필요한 연구 작업인데, 때 늦은 감이 있다. 국내 감염자의 유전자 샘플과 자료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1호 환자’의 실체에 얼마만큼 다가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국립보건원에는 국내 감염자들의 유전자 역학구조와 면담 자료가 있다. 1차적으로 각 샘플들의 역학구조를 분석해 병이 옮은 경로를 파악한다. 즉 계보도를 그리는 것이다. 다음 이 계보도에 당사자들이 진술한 감염 경로를 대입해 그 뿌리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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