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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능동적 집단’으로 거듭나자

월드컵 열풍 그후

  • 이근후 < 신경정신과 전문의·이근후열린마음클리닉 원장 > ignoo@hanmail.net

이젠 ‘능동적 집단’으로 거듭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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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아니더라도 열풍이 지나가면 허전한 법이다. 카타르시스라고 하지만 그 카타르시스도 지나가면 그뿐이다. 그보다 더 강한 카타르시스에 대한 욕구가 생기기 때문에 시원한 것은 잠시일 뿐이다.

열풍이 지나간 흔적 위엔 상반된 두 가지의 극단적 현상이 자생한다고 생각된다. 그 하나는 의연함이고 다른 하나는 분노다. 우선 16강이 좌절됐었다고 가정하면, 어떤 형태로든 집단적 행동화로 수동공격적 욕구를 해소하려 했을 것이다. 간단한 화풀이에서부터 심하게는 무질서의 극치까지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러쿵 저러쿵 탓할 사건들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투사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투사 내용의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기존 질서를 위협할 만큼의 사건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집단현상은 개인의 갈등에 바탕을 두고 있긴 하지만, 집단이란 특수한 역동성 때문에 동질적인 위안과 일체감을 준다. 이 모든 것은 분노의 표현이다. 분노란 우리가 기대했던 소망의 수준에 미달하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현상이다. 하지만 분노를 어떻게 조절하는가 하는 행동양태는 개인별로 아니면 사회적 안정성의 측면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다.

1950년대 한 외국학자는 한국인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사람은 정서적으로 내향성이 강하지만 정서적 불안정도 심하여 감정의 억압과 발산이 교체되어 나타난다.” 화병이라고까지 표현되는 한국인의 문화증후군이 정서적으로 내향성과 관계있다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점은 바로 수동공격성으로 표현되는 집단행동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16강에 오르고 나니 이런 것들이 모두 기우였음이 증명됐다. 성급한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국민들의 성숙한 자세’라고 단정해버린다. 나는 이것이 성숙이긴 하지만, 이겼으니까 그런 것이라고 보고 싶다. 과연 졌어도 그랬을까. 앞서 말한 피검자의 방어기제 가운데 반동형성이란 것이 있는데, 우리가 졌더라도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듯 마음을 비웠을까 의문이 남는 것이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발달과정은 같다는 느낌이다. 지구상에 여러 종족과 여러 사회가 있지만, 서로 다른 이유는 개인이나 종족이 발달해가는 과정의 속성이나 속도가 판이하기 때문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확신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개인 속성이나 집단행동 성향이 이런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설명해야지, 나쁘고 좋다거나 애국자 아니면 매국노란 식의 극단적이고 이분법적 논리는 옳지 않다.

신명풀이와 한풀이

외국의 석학들 가운데 한국인은 지도자를 동일시하는 행태가 강하다고 지적하거나, 공동의 위기를 맞아야 일체감을 갖는다고 지적한 사람도 있다. 이런 학자들은 한국의 정치인들이 좀더 안정된 정치를 해왔다면, 지금보다 더욱 성숙한 발전을 이뤄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늘 분열처럼 비쳐지는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있지만, 그 속에는 공동의 적과 적개심의 대상만 있다면 똘똘 뭉치는 속성이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우리가 한동안 일본을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민족적 일체감을 생각한다면, 그 말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월드컵 16강 진출로 그동안 우리 자신을 비하해왔던 열등감이 사라지는 계기를 만들었고, 나아가 열강과도 어깨를 겨눌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은 사회적 발달 단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기쁜 일이다.

그러나 붉은 악마들이 보여준 일체감이 신명풀이인지 한풀이인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설사 그것이 한풀이였다 하더라도 긍정적인 힘으로의 전환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그만큼 예전에 비해 사회가 발전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사회 구성원 중에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소수의 리딩그룹이 있고 다수의 사람들은 리딩그룹의 지도력을 동일시하며 살아간다. 대표팀 감독 히딩크를 대통령감으로 ‘수입’해야 한다는 농담을 즐기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히딩크의 지도력에 대한 선망을 표현한 것이다. ‘히딩크 신드롬’으로까지 불리며 사회 전반에 번져가는 이런 농담들은 그의 지도력이나 경영능력을 이해하고, 그런 경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사회가 성장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히딩크가 명장이라도, 그가 낙하산식 혹은 지연과 학연에 치우친 선수 선발, 주먹구구식 훈련, 축구팀이 산으로 올라갈 정도로 간섭하는 사람들, 감독 흔들기 등 케케묵은 옛 풍토의 한가운데 머물러 있었다면 그인들 좌초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을 것이다. 16강 진출은 이제 그런 식의 선수 선발을 고집하거나, 정신력 운운하며 억지만 써서는 비전이 없다는 것을 통찰한 사회적 수준이 이뤄낸 값진 결과라고 본다. 긍정적인 변화다. 비단 축구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균등한 단계적 발달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우리들이 소망하는 문화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를 이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부패하고 무질서하고 공황상태인데, 축구만 기를 펼 수 있는 상황은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위해 과감히 투자해야만 발전할 수 있고, 그 뒤에 일체감을 바탕으로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신바람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체득한 소중한 경험을 준 2002한일월드컵이다. 소위 사회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 특히 정치·경제·교육 등을 담당한 이들의 도덕성을 사회 구성원 다수가 동일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점을 히딩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 앞에 닥칠 일이나 위기를 침착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능동적 집단을 형성해나가야 하는 점이다. 신바람 나서 신명풀이를 하는 것이나, 화 나서 화풀이를 하는 것이나, 외견상 집단행동으로서의 양태는 유사하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 잠재한 에너지는 확연히 다르다. 신명풀이가 긍정적인 에너지로의 전환으로 바람직한 면을 가졌다면, 화풀이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통찰해야 한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무엇보다 기가 살아서 기분이 좋다. 단지 기우로 남는 한가지 욕심이라면, 이 기운이 생산적 에너지로 이어지고 활용되길 바라며, 또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는 연습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그 기운이 열등의식과 적개심 그리고 화풀이 같은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신명풀이로서의 즐거운 일체감으로 발전하길 소망해본다.

신동아 200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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