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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우리 것’에 목숨 건 뚝심의 연극인

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 총연출 손진책

  • 이계홍 < 작가·용인대 겸임교수 >

‘우리 것’에 목숨 건 뚝심의 연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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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손씨와 만나던 날 일본 NHK 방송에서는 월드컵 개막식 관련 특집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극단을 찾아왔다. 손씨는 NHK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이사이 필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신없이 바쁘기는 개막식이 끝나도 마찬가지였다.

NHK 방송팀이 개막식 총연출 방향을 담아가는 내용을 옮기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2002 FIFA 월드컵 개막식 컨셉트는 축구를 통한 평화의 메아리였다. 동양에서는 처음 열리는 21세기의 첫 축구 제전을 알리는 이번 개막식은, 공동 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은 물론 여전히 불신과 갈등으로 불안한 미래를 살아가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간절한 평화와 화합의 바람을 불어넣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한국으로부터 발신된 평화의 메시지는 다른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보내는 것보다 의미가 크다. 이런 의미에서 ‘동쪽으로부터’라는 테마로 동양에서 보내는 인간과 자연의 소통을 통한 조화와 상생의 이야기를 전세계에 한국의 춤과 소리로 전달한다는 개막식 컨셉트는 탁월한 것이었다.

개막식 행사는 총 4개 마당으로 구성됐다. 월드컵에 모이는 전세계인을 정중하게 환영하는 첫째 마당과 나라와 민족이 서로 다른 이들 모두를 소통의 장으로 인도하는 둘째 마당, 소통 이후 이루어지는 어울림의 셋째 마당, 그리고 여기서 발아한 평화의 씨앗을 인종과 종교, 이념이 다른 세계 각지로 전달하는 나눔의 넷째 마당이 그것이다.

이 같은 기대와 소망은 전 지구에 타전 되었고, 개막식은 잘 짜여진 성공작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훌륭한 예술 제전이었다는 외부평가에 총연출자로서 느낌이 있을 텐데요. 의도했던 메시지가 성공적으로 전달됐는지도 궁금하고요.

“서구 중심적 사고나 행동에서 벗어나 동양적 메시지를 찾아보자는 것이 이번 개막식의 기본 컨셉트였습니다. 서양의 틀에 익숙한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번 행사에 담긴 동양적 메시지가 강한 인상을 줬겠지요. 재미있는 것은 한국인들을 비롯한 동양인들도 이런 내용물을 보고 신기해 하고 놀랐다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이미 서양적 정서나 문화에 깊이 젖어있다 보니 ‘우리 것’에 이런 아름다움, 스펙터클, 평화와 화합의 정신이 담겨있구나, 새삼 놀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서양사람들은 ‘원더풀’을 연발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들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경이롭게 비쳤다는 겁니다.”

‘오합지졸’이 무용가로 변신

상암경기장과 한강, 주변 공원까지 무대로 삼은 개막식 행사는 규모 면에서도 단연 세계 최대급. 그래서 개막식이 끝나고 난 뒤 문화계 일각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해외에 수출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중동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 스포츠 제전이나 굵직한 국제 행사가 열릴 때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수출하는 방안도 궁리해 볼만 하다는 것이다.

-동양적 메시지를 담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됐는지 설명해주시지요.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첫째 마당 ‘환영’에서는 경기장 천장의 불꽃이 하늘로 치솟는 가운데 축무단이 장중하게 그라운드로 들어와 정렬합니다. 축무단이 대고와 소고를 앞세우고 전통 춤사위를 벌이는 모습은 제가 보아도 장엄했습니다. 둘째 마당 ‘소통’에서는 세계의 어린이들이 소망을 담은 종이배를 띄우고, 북과 디지털이 어우러지면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음과 양이 만나죠. 셋째 마당 ‘어울림’에선 흰 천을 이용한 어울림의 강과 바다가 그라운드에 펼쳐집니다. 아름다운 수묵화의 영상 위로 평화의 성덕대왕 종이 완성되고, 또 종이 울리면서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종 안의 영상에 각국의 어린이가 나와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고요. 마지막 마당 ‘나눔’에서는 6만5000여 관중들이 촛불, 소고, 풍선, 어울림천을 직접 사용해 세계가 하나라며 아리랑을 합창하는 형식이었습니다.”

-그 많은 인력을 어떻게 모았습니까. 연습 기간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출연진은 모두 1300여 명이었습니다. 이중 1000여 명은 군인들이었죠. 이들이 아니었다면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엄청난 인건비를 생각하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축무단 등 군인 출연진과 무용인들은 지난 4월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그러나 문화행사에 전혀 문외한인 군인들은 한마디로 ‘오합지졸’이었다. 처음에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무척 난감했다고 손씨는 말한다.

“병사들은 대부분 백마부대에서 차출한 사람들이었죠. 전문인력이 아니라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숫자 역시 애초에 저희가 필요로 했던 규모에서 크게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부대의 협조를 얻어 소대장급 장교들까지 행사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도무지 손발이 맞지 않아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잔디밭은 사용할 엄두도 못내 먼지가 날리는 연병장에서 연습을 시작했지요. 뙤약볕이 내리쬐는 맨땅에서 훈련을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나자 조금씩 나아지더군요. 축무단의 공연은 철저히 안무에 의한 무용이기 때문에 군인들의 사열이나 행군과는 개념이 다르죠. 무용을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병들이 대다수였고, 당연히 시행착오가 거듭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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