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립과 웅호와의 술자리는 예상대로 길어졌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허무와 고독과 퇴폐만 남은 청춘의 술자리. 미련을 길게 끄는 버릇만 남은 술먹는, 술자리의 들러리가 된 청춘. 마지막이길 바랐다.
그들은 우현의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우현의 행적은 술잔을 털고 쓴 맛을 덜기 위해 귀안주로 올려졌다.
‘진흙투구를 뭘로 만드는지 아세요?’ ‘진흙이겠죠.’ ‘진흙은 조금밖에 안 들어가요. 초식동물의 똥이 주재료예요. 섬유질이 많아서 단단히 굳어지거든요.’ ‘그럼 그 냄새를 허구헌날?’ ‘냄새 없어요. 냄새가 나더라도 향긋하죠. 여자들 똥도 들어가니까.’ ‘진짜로 먹어봤어요?’ ‘배가 부르지는 않았어요. 진짜 맛들인 전사들이 몇 있어서.’ ‘맛은 어때요?’ ‘그렇게 똥그랗게 눈 뜨고 보지 마세요. 회가 동할 수도 있으니까.’ 마지막 청춘은 그렇게 스스로 울적해지고 싶어했고 서로를 감상하였다.
웅호는 우현의 이름으로 거길 가겠다고 했다. 백립은 자신을 겁쟁이라고 자학하며 술잔을 집어던졌다. 왜 사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나는 마구 웃었다. 비겁했다. 미련 없는 마지막이길 바랐다.
자동응답기에는 우현을 상자에 담아 오겠다던 노르웨이 인류학자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급한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에 가야 합니다. 미스터 리 …는 포트 모스비 행정타운 뒤편 퀸 모텔에 있습니다. 모텔주인은 참브리 투쟁을 도왔던 동지입니다. 그가 잘 보관하고 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정부군의 포로가 되어 3년 만에 파푸운에서 추방당했다. 나머지 원주민 포로들은 호주인이 경영하는 커피농장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잭슨 국제공항에서 본 관광안내서에는 파푸운이 곱슬머리 사람이란 뜻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본 건 진흙투구를 쓴 아사로 전사들뿐이다.
우현의 마지막 투쟁은 외로웠다. 정부군의 대공세가 끝난 후 겨우 200명 정도만이 살아있었다. 세계혁명을 꿈꾸는 서구의 젊은이들이 참브리 투쟁을 돕기 위해 모여들긴 했지만 사진 찍기에 바빴다. 우현은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속였고 세계의 좌익계 팸플릿은 반쯤 깨진 진흙투구를 쓴 몽골리언 혁명전사를 소개하였다. 사진 속의 우현은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혁명의 더러운 입김이 닿지 않은 곳을 원했던 그는 그들의 투쟁성금이 아쉬워 포즈를 취했을 것이다.
마지막엔 7명의 전사가 남았다. 그들은 아사로의 폐허로 가서 신의 죽음을 선포하는 축제를 벌였다. 따끈따끈한 적의 심장을 씹으면서 스스로 저주를 풀었다. 우현은 그 자리에서 내게 마지막 편지를 써서 사진을 찍는 노르웨이 인류학자에게 부탁을 했다.
편지의 뒷부분은 해독이 불가능했다. 어린애 그림 같았다. 어쩌면 진짜로 뭘 그리려 했는지도 모른다. 부아이를 씹으면 머릿속이 현란한 영상으로 가득 차니까.
쫓겨다니면서도 그들은 진흙투구를 벗지 않았다. 깨지면 속성으로 만들어 썼다. 적의 얼굴 가죽을 덧대고 진흙을 발랐다. 그들은 광장 화구에 승전비 같이 높은 불기둥을 세웠을 것이다. 전사의 마지막 진흙투구가 제물이 되었다. 스스로에게 바치는 제물인 셈이었다.
정부군이 들이닥쳤고 전멸하였다. 아니 방탄조끼를 입은 노르웨이인은 살았다. 그가 우현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살이 빠지는 풍토병에 걸려, 피골이 상접한 몰골에, 여덟 발의 총알을 맞으며, 부아이를 씹으며, 웃으며 죽은. 그리고 아사로의 마지막 전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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