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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취재

6·29 서해교전은 김정일의 ‘6·15 격침작전’이었다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 hoon@donga.com

6·29 서해교전은 김정일의 ‘6·15 격침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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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속정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등산곶 경비정도 대단한 상처를 입었다. 등산곶 경비정의 85㎜ 함포와 37㎜ 함포 14.5㎜ 고사총도 초전에 무력화된 듯 더 이상 화염이 튀지 않았다. 등산곶 경비정이 피해를 입은 것은 근처에 있던 2-1 고속정과 기타 함정이 지원 사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등산곶 경비정은 2-1 고속정으로는 단 한 발의 총알도 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대형 함포를 이용해 고속정 한 척은 반드시 잡겠다는 것을 목표로 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2-1 고속정이 위치를 확보해 공격을 가하자 등산곶 경비정의 함교와 85㎜ 함포, 37㎜ 함포에서 화염이 발생했다. 등산곶 경비정도 기관 한 개가 파손된 듯 속력이 줄어들며 크게 원을 그렸다.

2-2 고속정은 전투 초기 조타실이 파괴되는 바람에 통신시설이 마비되었다. 이때 비상사태가 일어난 것을 안 2함대사령부는 2-1 고속정에 타고 있던 편대장(소령)을 불렀다. 그러나 편대장은 교전 상황에 몰두한 나머지 호출에 응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2함대사령부는 2-2 고속정의 피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교전이 벌어지는 순간(10시25분) 근처에 예비대로 있던 제3편대가 관측을 통해 교전이 벌어졌음을 알고 현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육도 경비정을 따라 서쪽으로 항진하던 제1편대도 관측을 통해 상황을 직감하고 현장으로 긴급히 이동했다.

10시26분 제1·제3편대를 통해 교전이 벌어진 것을 안 2함대사령부는 어로한계선 근방에 대기중인 초계함 제천함과 진해함에게 북상하라고 지시했다. 10시29분 해병대 연평여단은 포병부대 전원을 전투배치하였다.



10시30분 고속정 제3편대가 4500야드(4113m) 떨어진 곳에서부터 등산곶 경비정을 향해 사격을 하며 교전 현장으로 들어갔다. 10시33분에는 제1편대도 4000야드 지점에서부터 격파사격을 하며 달려왔다. 6대1의 싸움이 붙은 것이다.

이후 등산곶 경비정의 대응사격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군 세력이 월등히 우세해진 10시33분부터 2-1 고속정은 피해를 입은 2-2 고속정을 예인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연평도 남쪽의 ○○섬에는 경비정 공격에 적합한 시스쿠아 공대함 미사일을 장착한 해군의 링스 헬기 부대가 있다. 10시30분 2함대사령부는 이 부대에 긴급출격대기 명령을 내렸다. ‘출격대기’는 전투 준비를 마친 후 조종사가 조종석에 앉아 이륙 명령을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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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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