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호

F-X사업 ‘외압’ 폭로 조주형 대령 법정 최후진술

“미국만 쳐다보는 군 수뇌부에 문제있다”

  • 입력2004-09-01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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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아’는 차기전투기(F-X)사업과 관련해 군사기밀유출 등의 혐의로 구속된 조주형 대령의 최후진술문을 단독 입수했다. F-X사업의 시험평가단 부단장으로 활약했던 조대령은 지난 3월 초 한 방송에 출연해 평가과정에 외압이 작용했다고 ‘폭로’한 직후 기무사 조사를 받고 구속됐다.

    조대령에 대한 재판은 모두 세 차례 열렸다. 그가 최후진술을 한 것은 6월26일 계룡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제3차 공판 때. 이날 공판에선 모두 4명의 증인이 출석했는데, 그 중 공군의 한 고위장교는 F-X사업을 둘러싸고 공군과 국방부간에 이견이 있었다고 증언해 눈길을 끌었다. 이 장교는 또 조대령이 자신에게 ‘외압’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으며 조대령뿐만 아니라 많은 조종사가 국방부의 기종결정과정에 불만을 품었다고 증언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증인신문이 끝난 후 군검찰의 논고와 구형이 이어졌다. 검찰관들은 “조대령이 군사기밀 유출과 뇌물수수로 공군에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실망을 안겨줬다”며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법정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어 변호인의 최후변론이 전개됐다. 변호인은 군사기밀 유출 혐의는 기밀의 가치가 있을 때만 적용된다는 판례를 제시한 후 “기무사와 군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성립할 수 없는 범죄혐의를 만들어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조대령의 최후진술이 있었다. 조대령은 자주국방에 대한 강한 열망을 피력하면서 군사력 분야, 특히 무기 도입과정에서의 한·미간 불평등한 관계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기술이전이 따르지 않는 미국 전투기 도입으로 한국형 전투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려는 공군의 희망이 좌절된 데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표시한 그는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SLAM-ER을 F-15K에 장착하게 된 배경 등 최고의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F-X사업 관련 비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7월10일, 군사법원은 검찰의 공소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조대령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조대령의 형량은 관할관(공군 참모총장) 확인과정에서 징역 1년6월로 경감됐다. 다음은 조대령의 최후진술 전문. 맞춤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원문을 그대로 살렸다.(편집자)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판사님! 지난 한 달 동안 온 세계가 열광했던 월드컵 대회에서 국민 모두가 단결과 화합으로 하나가 됐던 우리나라는 비록 축구경기지만 세계의 강호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우리 민족의 저력을 발휘해 강대국 대열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나라가 정치나 경제, 국방, 외교 등에서도 강대국의 압력과 간섭을 배제하고 자주성을 확립해 화해와 협력,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제사회의 주역으로 활동하는 것이 우리 민족 모두가 바라는 영광된 조국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번 사건 때문에 구속돼 있던 4개월 동안 저 자신을 돌아보고, 처음 사관학교에 들어가서 재판장님을 비롯한 선배님들께 훈련과 지도를 받으며 순수하게 생활하던 생도 시절, 그리고 교회에서 신자들의 신앙심을 다지기 위해 실시하는 피정생활을 하는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점을 반성하고, 조국과 민족을 향한 뜨거운 가슴을 더욱 불태웠으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기도와 남을 용서하는 기도를 끊임없이 바쳤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박한 마음과 기도는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남북 군사대결 빨리 종식해야

    F-X사업에 관해 상부의 불공정성과 부당한 점을 지적한 내용이 방송에 나가면서 저는 막 취임하신 총장님을 너무 힘들게 해드렸다는 죄송한 마음과 제 행동의 여파로 혹시 고통 받는 동료들이 생길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엄청나게 심적 고통을 느꼈습니다. 옳지 않은 것을 지적한 것에 대해서는 떳떳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보다 큰 뜻을 위한 저의 소신입니다. 이 소신대로 저는 참된 것을 위해 껍질을 과감하게 벗어 던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심적 부담감 때문에 저 혼자 희생하고 떠나면 되리라고 항사단(항공사업단) 부단장께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건과 연관된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짚어볼까 합니다.

    민족 중흥을 위해 우리 국민 모두가 염원하는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는 정말 요원한 것일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외세에 억압받고 내정을 간섭받으면서도 입으로만 자주국방이나 통일을 외친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이번 월드컵 대회에서 보여준 우리 민족의 열정과 단결된 모습은 비록 주변국들이 바라지 않고 훼방을 놓는다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한반도의 통일과 항구적인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입장을 추측해보겠습니다. 일본은 과거의 침략사가 아직 깨끗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이 강대국이 되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또한 중국은 한반도가 통일되면 바로 조선족에게 큰 영향을 끼쳐 만주 지역에서 한민족 공동체가 형성될 것을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도 역시 동시베리아에 고려인 바람이 부는 것을 싫어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당장 미국은 대만을 지원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은 중국에게 대만 흡수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으며, 통일한국에서의 미군 주둔 의미가 크게 약화됨과 동시에 한국에 대한 영향력도 감소되므로 이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한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통일이 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의 희망 찬 미래는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에 민족이 살기 위해서는 남북 군사대결을 빨리 종식하고 주변국들을 설득해서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정착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F-X사업의 기종결정 단계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우리의 단 하나 군사 동맹국인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와 우리나라 지도층 일부의 사대주의가 원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미국의 이익과 우리의 이익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면 다행이겠으나 우리나라가 미국의 이익에 밀려서 큰 이익을 버리고 작은 이익에 감사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이 얼마나 비겁한 모습입니까?

    지난 50여 년간 미국은 우리나라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됐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해방 후 미 군정시절부터 한국전쟁을 치르는 동안 미국의 세력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았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전쟁기간에 맥아더 사령관에게 넘겨주었고, 휴전 이후 체결된 한·미 방위조약에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관에 부여하는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그때부터 50년 가까이 미군이 우리 군의 작전통제권을 행사해왔습니다.

    또한 한·미 방위조약에 의해 한국에 주둔할 권리를 획득한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면서 무상 군원으로 시작한 미국 무기체계는 마약처럼 우리 군에 스며들었고, 점차 유상으로 전환된 후 우리 군의 모든 체제는 미군 체제에 동질화됐으므로 미국 무기 외에는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됐습니다. 냉철하게 따져보면 식민지라는 것이 따로 없습니다. 일제처럼 나라를 통째로 다스리지 않더라도 경제적, 군사적으로 통제할 수 있고 기술적으로 종속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식민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946년부터 1973년까지 우리나라의 경제와 국방을 위해 약 100억달러를 투자했으며, 미국의 지원이 우리의 경제부흥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100억달러 상당의 무기를 구입했습니다. F-X사업으로 40억달러 이상을 미국에 지불하게 됐으며, 이지스함, 지대공 유도무기,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 10년 내에 또 그 이상의 무기대금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미국은 우리나라를 군사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계획을 철저하게 준비했고, 우리는 그 올가미에 걸려 있으면서도 걸린 줄도 모르고 그것이 최상의 선택인 것처럼 생각해왔습니다. 주한 독일대사를 10년 이상 지냈던 유르겐 클라이너씨는 그의 저서 ‘시련 속의 한국’에서 냉전시대의 한국 상황을 미국의 ‘억제정책’의 시험무대였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억제정책이라 함은 양쪽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도발을 감행할 수 없을 만큼 군사력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전쟁발생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을 포함한 남한의 전력과 북한의 전력이 비슷한 대칭을 이루도록, 미국은 무기는 팔면서도 첨단무기의 공급은 제한하고, 정보 전력 같은 것은 한국군이 보유하는 것을 적절히 차단함으로써 전적으로 미군에 의지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구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미국과 소련이 남한과 북한에 무기를 경쟁적으로 공급했던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클라이너씨는 1985년에 미군방송(AFKN)이 발표한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는 바,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은 북태평양 주둔 미군의 본체였고 지금도 그러하며, 태평양을 ‘미국 해양’으로 만드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클라이너씨는 “한국의 지도층은 미국에 종속돼 있고, 미국은 자국의 안보적 이해관계에 따라 습관적으로 한국을 좌우하려 했다. 주한미군의 역할을 단순하게 북한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변화시키면 이런 일은 감소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미국이 한국군 전력을 절름발이 형태로 이끌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단순히 미국만의 잘못도 아닙니다. 미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한국군은 지상군 위주로 육성하고 해·공군 임무는 주로 미군 전력이 담당하겠다고 한국군에 제안했습니다. 한국 육군은 현대전이 해·공군력 위주로 수행되는 것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에 어떻게든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군의 주장을 바이블처럼 믿게 됐습니다.

    그 결과 지상군 위주로 거대하게 커버린 한국군 자체로는 단독 작전수행이 곤란하게 된 것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미국은 한국에 무기를 팔면서 그릇된 주입식 교육만을 함으로써 한국은 자율성과 창의성, 자립의식이 둔화돼버리고 탐험심과 모험심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극단적인 사대주의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4월초 국방부 고위간부께서 “한국은 미국 무기를 미국과 20년 간격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미국은 한국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최신 장비의 제한뿐만 아니라 현대무기의 핵심을 이루는 소프트웨어와 기술이전은 절대 기피했습니다. 특히 정보와 관련되는 전자전 장비의 소프트웨어는 미국의 지원에 의지하도록 만들어, 현재 공군에서도 그동안 미국에서 구입한 장비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막대한 소프트웨어 유지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이 한국을 미국 무기의 기술종속 상태로 묶어놓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공군도 이 부분의 폐단을 인식하기 시작해 지금은 많이 눈을 뜬 상태입니다.

    한 가지 예로, 1999년에는 공군이 신규사업으로 레이더경보수신기 획득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획득대상 기종으로는 현재 KF-16에 장착해 운용중인 장비와 이스라엘이 제공하는 장비 두 가지로 압축됐는데, 미국 장비는 여전히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지 않는 데 반해 이스라엘 장비는 낮은 가격에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제공한다고 제안함으로써 공군은 과감하게 현재 KF-16에 운용중인 장비의 호환성도 무시하고 이스라엘 장비를 선택하는 결단을 내렸던 겁니다. 그때 정책회의에서 저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과 우리 군의 자립성을 강조해 이스라엘 장비 선택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이 기억에 새롭습니다.

    소프트웨어에 관해 한 가지 더 설명하면 1980년대 중반에 한국 공군은 미국으로부터 레이더경보수신기를 구매하고 2년마다 소프트웨어 개량비용을 미국에 90여 만달러씩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1차 계약이 끝난 후 공군은 그 장비의 소프트웨어가 얼마만큼 개량되는지도 모르고 돈을 지불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처사라고 생각해, 공군의 전문가 2명을 미국 회사와 정부기관에 1주일간 출장을 보내 소프트웨어 개량비용 지불을 위한 추가 계약이 필요한가를 확인하라는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이들은 짧은 출장기간 중에 몇 단계를 거쳐 소프트웨어 개량작업 실무자에까지 접근해 그 실무자가 혼자 1주일간, 즉 40시간 작업 분량으로 장비에 입력된 정보 자료를 최신 자료로 바꾸는 것임을 알아냈습니다.

    1명의 일주일 작업에 대해 100만달러 가까이 지불한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귀국 후에 공군본부에는 “당장 우리 능력이 없으니 일단 계약은 하고 우리의 능력을 구축하자”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미국 측이 우리의 의도를 간파했는지 소프트웨어 개량비용을 절반으로 줄여 계약하자는 제의를 해옴으로써 출장비 몇백만원으로 5억원 이상 번 셈이 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술력입니다.

    상호운용성 주장의 허구성

    미국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미국 무기를 한국에 권하면서 상호운용성을 주장합니다. 상호운용성이란 미국 전투기와 한국 전투기가 연합작전을 수행할 때에 아군끼리 무선통신을 하는 데 필요한 주파수 도약장치의 비화 코드, 적과 아군 식별 장비의 비화 카드, 위성항법장비의 군사용 정밀 키 코드, 나토 표준의 데이터 링크 체계의 비밀 카드 등을 같이 사용함으로써 우군 작전에 혼란을 방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미군이 이에 관련되는 핵심 카드나 키를 통제하기 때문에 나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오래 전에 휴대용 지대공 유도탄 획득 과정에서 프랑스의 미스트랄과 미국의 스팅어 미사일이 경쟁을 벌였지만, 우리 군은 미스트랄을 선택했고, 구매 후 미국에서 적아식별장비를 확보해 연동함으로써 방공작전을 이상 없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F-X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로파이터나 라팔 항공기 모두 나토 표준 장비를 장착하도록 준비돼 있어 획득 후에는 상호운용성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경쟁 대상장비로 선정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만약 유로파이터나 라팔이 상호운용성에 문제가 있다면 처음부터 사업이 잘못된 것입니다.

    미군의 군사 통제에 의해 우리 군이 자주성을 가지지 못한 것은 질적인 면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1994년 우리 군도 자주성을 주장해 평시 작전통제권은 확보하게 됐는데, 사실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당시 우리 군 수뇌부에서 이왕이면 전시 작전통제권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때 이 말을 들은 연합사령관이 “한국군에 전시 작전통제권까지 주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과연 유사시에 한국군 누가 한·미 연합전력을 통제해 작전을 수행할 것인가?” 하고 반문하자 우리 군 수뇌부에서 아무도 자신 있게 나서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미군이 만들어준 작전계획에 따르고 제공하는 전술만을 익히기 바빠서 우리 나름대로 자주적인 군사력 운용능력을 기르는 것을 등한시했기에 그런 결과가 됐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렀으므로 이제는 우리 군도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추었을 것으로 짐작은 합니다. 그러나 아직 미군은 휴전협정을 유지하려 하고, 한·미 방위조약도 개정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 군의 작전통제권을 그냥 미군에 맡겨놓아야 하는지, 미군은 언제까지 이 상황을 유지하려는 것인지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의 미국 전략개념을 보면 21세기에는 중국이 미국에 대한 핵심세력으로 부상할 것에 대비해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군 주둔과 작전능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장차 중국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최적의 전략거점인 한국에서 항구적으로 현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고 분석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최근에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다 ‘악의 축’으로까지 규정하면서 대북 강경정책을 표방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반도의 불안감을 조성함으로써 우리나라로 하여금 미국 무기를 구매하도록 만들려는 속셈과 미국의 장기전략 구현을 위한 초석을 까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반도 전문가인 미국의 국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셀리그 해리슨은 그의 최근 저서 ‘코리안 엔드게임’에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미국이 주한미군의 역할을 조정해 한반도의 균형자로서 남북한 사이에서 정직한 중재자의 구실을 해야 하며,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조지타운대학 아시아연구소장 데이비드 스타인버그는 “한국은 동북아의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미국과 같은 지원세력이 필요하고, 미국은 이 지역 내 패권세력의 부상에 대한 균형추로 한국을 필요로 한다고 전제하고, 양국 정부의 협력과 노력이 요구되나 특히 미국은 초강대국의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F-X사업 적극 홍보

    미국이 우리의 진정한 안보동반자, 협력자가 되기를 원하며,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서는 셀리그 해리슨이 제시한 정책 채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한국에 무기를 팔더라도 엉뚱한 압력 행사나 오만함을 버리고 한국의 이익을 존중해 성능과 가격, 기술이전 등은 다른 나라와 유사한 수준을 제시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정정당당하게 이기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10년 가까이 심혈을 기울여 F-X사업을 가꾸어왔기 때문에 미련과 아쉬움이 많습니다. 1993년 저와 매우 가까운 친구인 동기생 한 명이 F-X항공기의 작전요구성능(ROC) 작성 임무를 부여받고 옆 사무실에 왔습니다. 저는 그와 많은 토의를 했으며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지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차세대 전투기에 적용되는 최신 기술들은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으므로 충분하게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1994년까지 ROC 작성업무를 마친 동기생은 전속을 가고, 그후 유능한 동료들이 여럿 참여해 ROC를 완성했으며, 1995년에는 공군 정책회의를 거쳐 합참에 무기체계 선정을 건의한 것입니다.

    1995년 제가 담당했던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사전평가 업무는 노스롭 그루만사가 한국지역에서의 E-2C 적절성에 관해 합참이나 국방부에 6년 이상 설득작업을 한 연후에 공군이 무기체계 선정을 건의하도록 로비했기 때문에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사전 연구단계에서는 E-2C도 우리가 원하는 조기경보 능력과 공중통제 능력을 갖춘 것으로 검토했으나, 현지 실사를 한 결과 E-2C는 구형 레이더 사용과 제한된 능력 때문에 대상장비로 선정하기 곤란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습니다. 귀국 후 보고 과정에서 저는 E-2C를 포함시키라는 상관의 지시를 세 번이나 어기면서, 우리 나라의 국익을 위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상관을 설득시키고 E-2C를 대상장비에서 제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저는 많은 예비역 선배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비쳤다고 합니다.

    1996년 전반기에는 합참에서 공군이 건의한 120대의 F-X 소요를 인정하기 곤란하다는 거부 움직임을 보이는 바람에 공군본부에서 F-X 추진방안을 재검토하게 됐는데, 검토팀은 무슨 영문인지 당시의 F-X 소요를 조정하는 세 가지 방안과 F-X 대신 KF-16을 추가생산하자는 방안 하나를 덧붙여 정책심의를 하게 됐습니다. 당시 국방부 수뇌부는 항공업체의 로비에 따라 새로운 F-X 추진보다는 진행중인 KF-16의 추가 생산에 마음이 기울어 있었고, 이 영향력이 검토팀에 강하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회의장에서 제가 F-16 추가생산 방안은 말도 되지 않으니 삭제하라고 요구함에 따라 선배인 검토팀장과 심한 언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선배는 저보고 “대령 계급 달고 소령 같은 생각을 한다”고 막말을 하더군요. 다음 회의부터 저는 배제됐고, 수차례의 정책회의 끝에 F-16 추가생산 방안은 삭제됐으며, F-X사업 소요가 60대로 조정돼 다시 합참에 건의됐습니다. 결국 누가 소령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는 밝혀졌지만,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절대적으로 F-15K를 밀고 있는 것을 보면 시대에 따라 저렇게 태도를 바꿀 수 있는가 놀랄 뿐입니다.

    1996년 말부터 2년간 저는 국방연구원(KIDA)에 파견 근무를 하면서, 국방부가 IMF 사태 등을 내세워 여전히 F-X사업에는 미온적이고 KF-16을 추가생산하는 방향으로 공군을 압박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국방연구원에 가자마자 홀로 시도한 것이 국방부 설득을 위해 언론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F-X 대상업체들과 1996년 서울에어쇼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F-X 필요성과 전망’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고, 그 글에서 F-X사업의 당위성과 최신 기종들의 특성을 설명했으며, 이 내용은 ‘월간항공’ 1997년 2, 3, 4월호에 게재했습니다. 이 잡지는 국방부 각 사무실뿐만 아니라 공군의 모든 비행대대에 배포되기 때문에 젊은 조종사들이 알도록 하자는 목적이었고, 자연히 F-X의 당위성에 대한 분위기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1997년 후반기에 KF-16 2대가 엔진 고장으로 추락했을 때, 언론에서는 이 사고를 항공기와 엔진 선정의 잘못으로 몰고 가므로 선정과정에 참가한 실무자들만 곤욕을 치를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같은 맥락에서 이 문제를 다루려는 SBS 특집 프로그램 담당 PD가 동료 연구원을 통해 저를 찾아왔습니다. 무턱대고 녹음부터 하려는 PD에게 저는 프로그램의 목적과 방향을 물었고, 그 PD는 이 분야에 비전문가였기 때문에 의욕만 앞섰지 뚜렷한 목표와 방향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단순히 고발이나 폭로가 아니라 과거의 잘못된 점을 거울삼아 향후 전투기 사업의 바람직한 추진방안을 제시하는 쪽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도록 설득했습니다. 2시간 가량 전투기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은 PD는 제가 권고한 방향으로 공군에 도움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제가 말해준 내용을 요약해 40분 정도 녹음을 했으며 음성은 변조하기로 했습니다.

    이 사실을 잊고 있다가, 공군본부에 업무 관계로 전화를 했을 때 전화를 받은 선배한테 제가 TV 프로그램에 나오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황한 저는 결과가 어땠는가를 물었는데, 프로그램의 앞 부분에는 엉터리 폭로기사가 나왔지만 후반은 공군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끝맺음이 돼 만족했으며, 후반부에 나온 사람이 누군지도 알았지만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프로그램 녹화 테이프를 보니 제 말은 두 번 정도 나왔는데 음성변조가 안됐으며, 나머지 내용은 PD가 충분히 소화해 공군력의 중요성과 F-X사업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결과가 됐습니다.

    1998년에도 국방부는 KF-16 추가생산 쪽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공군에서 그 방향으로 수정 건의를 하도록 압박하는 듯이 보였으므로, 저는 유로파이터를 담당하는 영국의 BAe System사로 하여금 한국 국방부와 공군에 차세대 전투기의 중요성을 홍보하도록 요청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공군에서 못을 박듯이 F-X사업에 대한 결연한 추진의지를 밝혔기 때문에 일단락은 됐지만, 당시 국방장관은 여전히 공군 의견에 수긍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결국 1999년 2월 장관은 공군의 전투기 장기전력 운영계획을 보고하도록 지시했고, 공군은 마지못해 F-X 60대를 40대로 줄여서 추진하는 것을 전제로, 정부의 자금 지원하에 20대의 KF-16 추가획득을 수용할 수 있다고 건의하게 됐으며, 이것은 그대로 국방부의 정책으로 결정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국방부가 언론에 떠밀려서 1999년 6월에 F-X사업의 공개설명회를 하게 됐으며, 그때부터 공군에서는 제가 중심이 돼 시험평가를 준비하게 된 것입니다.

    개발 초기 어려움 극복해야

    시험평가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에서 협상을 위한 통합제안요구서(RFP)를 작성하던 2000년 2월 초에는 국방부 수뇌부를 통해 느닷없이 F-X사업 대신 KF-16을 더 생산하자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이 소문의 근원지는 F-16의 제작사로 밝혀졌지만, 당장 진화해야 했습니다. 여러가지 타당한 이유와 근거를 만들어 F-16의 추가생산은 의미가 없으며, F-X사업이 절대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문서를 꾸미고, 상관께 건의해 공군 사후장교회장단을 만나 지원을 부탁하도록 준비했습니다. 우리 보고를 받은 공군 사후장교회 회장, 부회장 등은 청와대 국정원 국방부 등 관련부서에 “현재의 계획대로 F-X사업이 추진되도록 헛된 소문에 현혹되지 말라”는 조언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년이 넘게 시험평가와 협상을 준비했지만 대상 기종들은 저마다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었기에 우리 입맛에 꼭 맞는 형태로 만들어가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군 일각에서는 전력화 시기에 너무 얽매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개발 후 전력화돼 10년쯤 지나 이미 모든 것이 정착화된 미국 장비만을 사왔던 습관이 배어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미군도 개발장비를 처음 사용할 때는 예상 못한 고장 탐구와 수정을 거쳐서 정착화하는 데까지 많은 시일이 걸리며, 이 기간은 운영능력을 향상하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저는 4년 반 동안 전투기 탑재 전자전(ECM) 장비의 국내 개발사업을 담당하면서 우리의 능력과 기술을 믿게 됐습니다. 따라서 신형 장비라도 운영 초기에 발생하는 문제점들은 장비 제작사와 협의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며, 오히려 우리의 능력을 배가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컴퓨터 운용 프로그램들도 처음부터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개발자는 사용자들이 문제점을 지적해주어야만 용이하게 프로그램을 개량할 수 있으며 더욱 좋은 프로그램도 새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항공기 개발관리를 통해 운영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6개월 정도 고등훈련기(T-50) 사업에 관여하면서 사업관리 요원들의 의욕과 모험정신에 의해 항공기 운영 능력이 엄청나게 향상되는 것을 직접 보게 됐습니다. 듣고 보는 것보다도 직접 가르쳐 보면 더욱 잘 알게 된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군에서도 많은 분이 개발 초기의 항공기 운영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지만, 초음속 항공기 개발도 직접 관리하는 공군이 우리보다 경험이 많은 항공 선진국에서 개발된 항공기의 초기 운영상 문제를 걱정해 피한다는 것은 기우이며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공군의 생각 자체가 좀더 젊어져야 하고 도전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기술발전 속도는 더 빨라지므로 앞으로 공군은 많은 무기체계를 ‘개발중인 장비’로 결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자신감과 도전 정신이 없으면 도태 직전의 장비만 사게 될 것입니다. ‘70%의 철학’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는 70%만 충족하면 성공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군이 추진한 국내 개발 전자전 장비도 첫 시험평가에서는 80% 정도만 충족됐고 나머지는 조건부 충족이었지만 공군이 과감하게 그것을 수용했으며, 1년 내에 그 어려운 소프트웨어 문제도 전부 해결했습니다. 따라서 전력화 시기에 얽매여 좋은 것을 놓치고 부족한 것을 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F-X사업에 무한한 애정을 쏟았으며 진정으로 공군을 위하고 우리 후손들을 위해 제 신명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물론 저말고도 그만한 노력을 하신 분이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월드컵을 통해 히딩크 감독의 능력위주 선발이라는 경영전략이 떠오르고 있는데, 무기체계도 학연, 지연과 같은 요소는 뒤로 물리고, 순수하게 능력과 가격 위주로 조작 없이 결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와 생각을 달리하는 분들이 저를 보면 미친 짓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수사 관계자들도 저에게 “혼자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뀌겠느냐”면서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체념하고 있더군요. 아예 포기한 듯했습니다. 현 시점에서 F-X 기종결정의 잘잘못을 말할 필요는 없다 하겠지요. 이미 결정된 것이니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 상태에서 최선의 길을 찾으면 된다 하겠지요.

    그러나 저는 미국의 부당한 압력과 미국 무기에 대한 국방부 수뇌부의 맹목적인 추종은 반드시 고쳐져야 하며, 국민들의 의식이 많이 깨우쳐졌으므로 앞으로는 조금씩 나아지리라고 믿습니다. 당장 F-X사업도 2억달러 이상 가격을 깎을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제가 문제를 삼았던 것이 일면 헛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국민 여론이 그렇게 형성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므로 국방부는 가격을 깎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재판과정에서도 나왔지만, 미 의회 의원 10여 명이 F-15K 구매를 요구하는 편지에 서명해 주미 한국대사관에 보낸 것이나, 한·미간의 각종 국제회의에서 회의 안건에도 없던 F-15K 홍보 및 구매요청 발언 등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력 행위로 간주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국방부의 외압에 대해서도 저에게 말을 해준 동료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에 참모차장님께도 소신껏 평가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한국형 전투기 사업의 바람직한 추진방향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험평가 및 협상과정에 의견을 같이했던 동료들과 공군 지휘부 몇 분의 격려 말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이 진정으로 공군을 위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부 고위 인사가 “F-15가 안되면 미군이 철수할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은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최신 항공기술을 이전해준다는 것에 대해 “우리의 항공기술이 중학교 수준밖에 안되기 때문에 고급기술은 벅차다”고 민족적 비하 발언을 한 것은 기술이전 분석과 협상을 주도했던 ADD(국방과학연구소)와 국내 항공업계 과학자들을 형편없이 무시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고급기술보다는 부품제작 물량을 더 받는 것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사대주의적 발상은 기술력을 높여 국가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하는 우리나라의 국민으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F-X사업의 협상에 관련해 제가 했던 일을 간단히 종합해 말씀드립니다. 검찰은 닷소사와 관련된 사항만을 보았기 때문에 제가 닷소사를 많이 도와주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 많은 증인이 나와 증언해주었듯이 저는 모든 대상기종에 대해 약간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공정하게 대했으며 많은 문제를 해당 업체와 같이 해결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우선 보잉사를 보면, F-15K에 관해 핵심적인 사항은 보잉사보다는 미 정부가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미 국방성에 제 이름으로 편지를 발송했던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RFP에 포함된 내용과 말로만 설명해도 쉽게 동의했으므로 미국에 보낸 것과 같은 편지는 보낼 필요도 없었고, 보낸 적도 없습니다. 특히, 우리는 장거리 미사일을 요구했으나, 미국이 F-15K에 장착해 제공하려 했던 JSOW(합동 스탠드 오프 무기)는 미사일로 취급할 수 없는 폭탄으로서, 보잉사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심각한 문제점을 제가 주창해 해결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 공군은 미국 외에는 처음으로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SLAM-ER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민족의 자존심 지켜야

    유로파이터의 경우에는 자체 개발계획이 너무 늘어져 있어 우리의 요구를 충족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우리의 ROC 내용은 그들이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 계획대로 되는 만큼만 우리에게 제공하려 하면서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비행팀장은 우리의 ROC를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기술적으로 그들의 개발계획을 앞당겨서 우리가 요구하는 시기에 원하는 성능을 충족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개발계획을 당겨놓으니까 이번에는 가격 산출이 문제가 됐습니다. 한국의 요구시기에 맞추어 개발계획 조정은 가능하지만 개발을 위한 예산은 개발 참여 4개국이 동의해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가격 조건이 맞지 않아 국방부에서는 유로파이터를 조기 탈락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여러 요소들이 복합되기는 했지만 기종 결정이 2001년 말에서 2002년으로 연기되면서 유로파이터는 그나마 최종 입찰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러시아 Su-35의 경우는 자료 제공이 제한된 탓에 확인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어 무척 애를 먹었는데, 우리 팀이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 2001년 7월 중순 러시아가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자료까지 가져오도록 만들어 성능 충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존심이 걸려 있기 때문에 대강 넘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업평가단에서는 2001년 7월초까지 러시아가 너무 완강하게 나오기 때문에 그때까지의 자료만으로 인정할 수도 있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지만, 저는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쌍방이 아는데,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 물러설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러시아의 항복을 받은 셈이 됐습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프랑스 닷소사의 라팔은 제가 도와준 것이 없군요. 처음부터 닷소사는 RFP에 포함돼 있는 내용과 협상에서 한국측이 요구한 사항을 대부분 군말 없이 받아들였기에 도와줄 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한국측의 가격 인하 요구를 수용하라고 말해줬을 뿐입니다. 가격이 낮아지면 우리나라에 이익인데 그것을 특정업체에 대한 조언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다른 전력증강 사업의 협상에서 가격을 내리라는 요구는 못하게 될 겁니다. 더구나 “가격을 낮춰라” “한국측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라”는 얘기는 모든 업체에 공통적으로 한 것입니다. 특히 언론이 이것저것 과장해 보도한 내용에 대해 대화한 것을 군사기밀 누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기억하지도 못하는 통화내용을 억지로 지어내도록 한 다음 내용까지도 짜맞춘 것을 기준으로 공무상 기밀누설이라고 보는 것도 지극히 비합리적입니다.

    작전요구성능 충족에 대해서는 4개 기종 모두 조금씩 문제가 있었습니다. 상세한 요구성능이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대상 업체들은 자기들 기준으로 우리 요구성능을 예측하고 부분적으로 미달되는 성능을 제시했던 것이며, 우리 팀은 이것을 정교하게 기술적으로 처리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요구성능이 60~80이라면 우리는 55~85 범위를 요구함으로써 적절하게 요구성능을 만족하도록 유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F-15K조차도 우리의 요구를 충족하려면 많은 것을 개조하고 추가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4개 기종이 최종적으로는 요구성능을 전부 충족하게 됨에 따라 대상 기종 모두 참석하는 협상에서 경쟁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세상을 둥글게 사는 것이, 그래서 현실과 타협하며 일신상 안위를 추구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의 한 몸을 희생해 국가와 공군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지만 다시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저는 그렇게 행동할 것입니다.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민족의 자존심 회복과 국가의 자주성 확립을 위한 작은 노력을 반미와 과대망상증으로 치부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한 행동이 반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반미를 주장한 적은 없으며, 국가 이기주의를 떠나서 한반도의 평화를 함께 고민하는 진정한 동맹 국가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를 반미주의자로 몰아세우는 분들은 친미주의자입니까?

    돈 받은 건 실수

    마지막으로 한 가지, 친형님보다도 더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국가의 미래를 같이 걱정하면서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다가 용돈을 받은 것이 남의 의혹을 사게 했다는 것은 저의 실수였다고 인정합니다. 제가 그 분께 도와드린 것도 없고, 저는 그 용돈이 그다지 소용도 없었기 때문에 교회나 사회단체에 대부분 기부했는데, 그 분은 그 일로 인해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고 빚까지 지게 되신 것 같아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자유롭게 된 후에는 그동안 저를 격려해주신 모든 분께 참신한 행동으로 보답할 것을 다짐하면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공군은 앞으로도 많은 전력증강 사업이 있으므로 보다 투명하고 순수한 군사적 논리에 의해 꼭 필요한 장비를 구매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군은 국방비를 더욱 효율적으로 운용해 지금까지의 지상군 위주 전력구조를 혁신해 한국군의 독자적인 작전수행이 가능한, 3군이 함께 발전하는 전력구조로 바꿔나가야 하며, 자군 이기주의를 버리고 조국의 미래와 국가수호를 위해 다 함께 노력하기를 당부합니다.

    특히 앞으로는 국민 모두가 그릇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국가의 자주성을 확립해 통일을 달성함과 동시에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킴으로써 단군조선에서 시작된 우리 민족의 5000년 역사를 새롭게 장식해 희망찬 앞날을 개척하게 되기를 두손 모아 기도합니다.

    긴 시간 재판을 진행해주신 재판장님과 판사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저와 함께 해주신 변호사님들,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불태워 헌신하시는 모든 선후배 형제, 자매님들께 머리 숙여 고마운 인사 올립니다. 저의 삶을 다해 여러분 모두와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겠습니다. 함께 평화 세상을 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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