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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쟁

소농사회론 vs 내재적 발전론

조선 후기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 이영훈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shamora@donga.com 최윤오 <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

소농사회론 vs 내재적 발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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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아론의 대안으로서 18세기부터 1950년대까지의 근세 한국을 소농사회라는 새로운 역사상으로 바라보자는 필자의 제안은 이상과 같은 새로운 틀에 입각하고 있다. 1950년대까지 인구의 대다수는 자급자족경제가 우세한 농촌에서 소규모 가족단위의 농업체인 소농으로 존재했다. 소농이 구성원의 다수를 이루는 사회를 소농사회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농민들의 가족은 부모와 큰아들 부부가 동거하는 직계가족이 표준적인 형태를 이루었다. 조금 전에 필자는 역사란 외래 문물과 전통의 접합으로 발전한다고 말하였는데, 바로 그 전통의 핵심적 내용을 소농사회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토착 전래의 소농사회와 20세기에 바깥 세상에서 들어온 자본주의가 결혼함으로써 오늘날의 한국자본주의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간단하지 않다. 첫째, 오늘날 지구상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영위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자본주의는 그들 고유의 전통과 세계자본주의가 접합함으로써 성립했다. 그렇게 접합과정을 거치지 않은 순수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최초로 자생적으로 성립시킨 영국이나 그에 해당할까,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접합을 이룰 만한 능력이 없는 민족과 지역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성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적당한 수분, 온도, 자양분이 갖추어진 토양이 아니고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원리다.

자본주의가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회적 조건이 불가결하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우선 사람들 하나하나가 경제의지, 말하자면 자립과 효율을 추구하는 지적 능력으로 훈련되어 있을 것, 다음 사유재산제도가 성립해 있을 것을 들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들을 종합하여 사회적 능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한 사회적 능력을 갖추지 않은 나라에서 자본주의는 성립하기 힘들다.

그러니까 18세기 이후 1950년대까지의 한국 전통사회에 그러한 사회적 능력이 풍부히 축적되어 있었기에 오늘날의 번영하는 한국자본주의가 성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소농사회론의 핵심 내용이다. 그까짓 소농이 무슨 대수냐, 그것은 아득한 옛날 원시공동체가 해체된 뒤로 줄곧 있어온 것이 아니냐, 그리고 무슨 경제의지니 사유재산제도니 하는 것도 보통의 문명사회에서 늘상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결코 그렇지 않음을 힘주어 이야기하고 싶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직계가족 형태의 소농이 성립한 지역을 꼽으라면 서유럽에서 남부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 정도가 고작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구문명권으로서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은 훨씬 규모가 큰 공동체가족이 지배적 형태였다. 거기서는 개인의 자립도와 경제의지의 수준이 떨어진다. 직계가족의 가장 두드러진 경쟁력은 우수한 상속자를 확보하기 위한 아버지의 노력이 자식교육에 대한 맹렬한 수요로 나타남으로써 대중의 지적능력이 세계적 수준에 달한다는 점이다.



20세기 식민지기에 대중교육기관이 보급되기 시작하자, 특히 3·1운동 이후의 민족적 자각과 함께, 교육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폭발했다. 남자의 경우 1940년대에 이르면 취학희망률이 70%를 넘어섰으며, 시설이 부족하여 일부 학생은 입학도 못할 지경이었다. 해방 이후 국민의 의식수준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은 학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대답이 압도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소 팔고 논 팔아 대학에 다니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 벌어지게 된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다. 1997년 OECD가 발표한 한 통계에 의하면, 교육경력 7∼8년생을 대상으로 한 수학능력시험에서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톱을 차지했다. 비록 범용성의 표준화된 지식이라 경제성은 그리 크지 않지만, 그래도 그만한 국민적 범위의 지적 능력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세계시장에서 11위 전후의 교역규모를 갖는 한국경제는 처음부터 기대하기 힘들었을 터다.

바로 그러한 경제인류학적 능력을 갖춘 직계가족이 한국사에서 일반적으로 성립한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 약 1000년 동안의 오랜 기간은 공동체가족이 가족의 기본형태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15세기에 이르러 유교적 질서의 국가체제가 성립한 이래, 차츰 가족제와 친족제 수준의 사회조직마저 유교적으로 변형되기 시작하여 17세기 후반이 되면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부계 종법의 가족과 친족집단이 성립한다. 이렇게 보면 현대한국의 직접적인 문명사적 배경은, 흔히 유구한 반만년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3∼4세기 정도가 고작인 셈이다. 바로 그 문명사적 전환 가운데서 20세기 후반 한국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을 가능케 한 문명능력의 소농사회가 무르익었다.

한 시대를 조망하는 역사상이 한 개인의 힘만으로 구축될 수는 없다. 문제의식에 공감하거나 비판적인 연구자간의 생산적인 토론의 장을 거쳐서야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 과정에서 필자의 문제제기가 산산조각이 나서 무참히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오히려 그렇게라도 될 수 있다면야, 생산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는 보람 하나만으로도 만족하리라. 그런 이유로 우선 필자와 토론을 시작한 최윤오 교수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글을 마친다.

이영훈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 왜곡된 한국사 복원은 시대적 사명

내재적 발전론은 소농사회론이 가지고 있는 외형적 성장론의 위험성을 확인하고 분배중심의 논리를 확인하고자 한다.

한국적 인간형의 재발견

우리가 지금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가난한 흥부의 고달픈 농민상이 아니라 부자 흥부의 세상이며 서로를 아끼며 사는 흥부의 모습이다. 봉건사회가 해체되던 조선후기 농민의 두 유형이라 할 수 있는 흥부와 놀부를 통해 근대사회 인간상의 원형을 발견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근대자본주의의 원형을 찾는 과정을 통해 21세기 한국 자본주의가 나아갈 길을 조망해볼 수 있겠다. 그것은 흥부라는 인간상을 통해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놀부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무한경쟁의 황금만능주의를 추구하는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로 집약된다. 20세기 우리가 놀부 같은 인간형을 통해 성장만능을 목표로 설정하였다면, 이제는 흥부를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과 그런 인간형이 필요한 시기다.

흥부와 놀부의 세계는 각 시기마다 현실 수준에 맞게 검토할 수 있다. 현실을 제대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을 통해 조선후기 사회경제사의 연구대상과 범위를 확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때 우리는 조선후기에 주목해야 한다. 이 시기는 한말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에 이르는 격동기의 배경이다. 아쉽게도 일제에 의해 자주적 민족국가 건설에 실패하고 말았기에 그간 조선후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변동기의 시대적 과제를 밝혀내는 작업에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금까지 오로지 서구 중심의 논리로 한국사를 이해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 당시 사회구조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둘째,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정에서 왜곡된 한국사의 고유한 발전논리를 확립하기 위해서 일제에 의해 왜곡된 한국사의 전개 방향이 갖는 성격을 밝혀내야 한다.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이 필요하다. 식민사관 극복을 통해 우리의 원래 모습을 되찾는 한편 서구의 발전논리를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이다.

한국사의 주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국사 발전의 내적 계기를 중시하는 내재적 발전론이 한국사학계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외적 계기를 중시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발전논리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곧 자본주의적 성장만이 지상목표로 삼기 때문에 한국 사회 내부의 사회통합 논리도 없고, 민족간의 민족통일 논리도 배격한다.

조선후기 이래 내재적 발전이란 한국사의 발전과정에서 추출할 수 있는 내적·외적, 아래·위로부터의 계기를 확인해내는 데 있다. 19세기 이후 한국의 발전은 외적 충격에 직면하여 그 맹아를 싹 틔우지 못하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왜곡되었다. 이러한 시기를 거치면서 시대적 과제를 반봉건·반침략 민족국가 건설로 설정하고 그것을 통해 근대사회를 설명해내는 것이 내재적 발전론의 입장이다.

한편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경우는 일제하 경제성장을 오늘날 한국사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출발점으로 삼고 그것을 기준으로 조선후기의 성장발달사를 정리함으로써 조선후기의 정체성과 낙후성을 밝히는 가운데 한국의 발전은 내적인 역량이 아니라 일본과 미국에 의해 이식된 자본주의라는 것을 강조했다.

내재적 발전론의 경우에는 분단한국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사회통합과 민족통일을 시대적 과제로 설정하는 것임에 비해, 근대화론자들의 경우는 일제 시대를 식민지근대화론으로 설명하는 방식처럼 세계자본주의 입장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을 논의의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해석하는 방법을 취한다. 따라서 그러한 논리는 친일파·친미파를 근대사회의 주역으로 설정하기에 이른다.

또한 근대체제로의 이행과 전환의 논리를 모색하는 데 있어 성장위주의 생산중심 논리를 택하는가, 아니면 분배 중심의 체제전환 방식을 구상하는가에 따라 현실인식 태도에 커다란 차이를 가져온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소농론자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생산성 지상주의로 극단화하기에 이르렀고, 그 배경을 조선후기의 정체성과 일제하 경제성장의 논리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제 그러한 성장과 발전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곧 생산 중심의 역사 발전 논리가 아니라 분배 중심의 역사전개 논리를 확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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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shamora@donga.com 최윤오 <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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