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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예술에 나타난 섹스와 죽음

“섹스는 위대한 행위예술, 죽음은 몸의 해체와 순환”

  • 문범강 < 화가·미 조지타운대 교수 >

예술에 나타난 섹스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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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가 제니 새블(Jenny Saville, 1970∼ )은 패션현상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져 새로운 각도로 페미니즘을 보고 있다. 새블은 깡마르고 싶어하는 현대 여성들의 일반적인 패션 염원을 거대한 불도저로 밀어붙이고 있다. 500호 가까이 되는 화폭을 그녀는 지방질이 불거져 나오는 비만의 여성으로 메우고 있다(도판 8, 9, 10, 11). 실물 크기의 네댓 배나 되는 거구의 나체 여인상이 거친 붓 터치로 전면에 나타나고 있으며 때론 여러 명의 나체가 생선 통조림처럼 빼곡히 들어차 있다.

새블에게 페미니즘은 깡마르고 각진 모습에서 오는 불모성(不毛性)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풍만하고 마음껏 늘어난 육체를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있는 비옥성에 대한 당당함으로 나타난다. 새블은 “왜 마르고 각이 진 몸매만을 여성들이 추구해야 하는가?”라고 묻지는 않는다. 그녀의 그림에 나타난 비대한 체구의 여체들은 거의 다 자화상이다. 다이어트를 해도 더는 날씬해질 수 없는 몸매를 숨김없이 드러내,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페미니즘을 부르짖는다.

제니 새블과 앙드레 세라노의 성전환에 관한 작품도 이색적이다. 새블의 유화에서는 한 남성이 페니스까지 거세한 자리에 여성의 버자이너를 만들어넣고 가슴도 여성화시켰다(도판 12). 세라노의 사진작품에서도 남성이 여성화를 시도하고 있다(도판 13). 유방의 외형적 구조에서 부자연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 아래 남성 페니스의 온전한 노출은 관람자를 잠시 혼돈스럽게 만든다. 남녀의 성전환에서 여성이 남성으로 변하는 경우는 드물다. 외과적 수술의 한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사실상 여성의 남성화보다는 그 반대인 남성의 여성화가 일반적인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

남성이 지닌 섹스에 대한 게걸스러움을 신랄히 비꼬고 있는 미국의 퍼포먼스 작가 폴 맥아티의 설치작품(도판 14)에서 우리는 성의 또 다른 속성을 본다. 성적인 배설은 참을 수 없는 욕망인가. 패스트푸드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도판 15)하고 있는 맥아티는 현대 문화현상 중 섹스와 패스트푸드에 관한 일련의 풍자적인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도판 16).

지금까지 예술에 나타난 섹스와 관련된 사회 현상을 몇몇 주요 작가의 작품을 실례로 들어 살펴보았다. 이제 예술에 나타난 죽음의 문제를 논하기 전에 죽음의 물리학적 지도를 잠시 훑어보자. 그에 앞서 물리적 죽음에 접근하기 위해 두 가지 전제를 설정해보았다.



죽음이란 몸의 파장화

물질은 파장이다. 죽음이란 몸의 파장화를 의미하며 우주적 차원에서 볼 때 재생산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단계이자 또 다른 시작이다.

현대 양자물리학에서의 접근은 흥미롭다. 물질을 쪼개고 분석하는 일에 능숙한 과학자들은 물질의 최소 입자인 분자를 쪼개어 원자를 밝혀내고 다시 원자핵의 극소단위를 찾아내었으며, 이어 가장 강력한 현미경으로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한계까지 무수히 쪼개고 분석해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은 쪼갤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무언가 보이고 잡히는 것이 있어야 더 쪼갤 수 있을 터인데 이젠 더 쪼갤 그 무엇이 없는 극치의 단계까지 들어섰다. 그 최종 단계에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 즉 무(無)의 상태다. 물질을 분석해 들어가 더 이상 쪼갤 것이 없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도달하니 그곳엔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에너지의 파장’만이 감지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기서 재미있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물질을 분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과학(기독교 사상과 함께 발전된 서구의 과학)은 이제 물질의 제일 마지막 구성단위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감지되는 파장의 에너지’임을 천명했는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뒤집기를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물질=(無)의 파장(에너지)’이라는 공식을 끌어냈음에도 ‘물질은 곧 무의 파장이다’는 개념의 확대를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물질=무의 파장’이라는 등식은 뒤집어보면 ‘무의 파장=물질’이라는 등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과학자들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둘째, 동양철학에서는(인도철학이나 불교사상을 토대로 볼 때) 수천년 전 이미 모든 물질의 본질은 무, 무는 모든 물질의 근본임을 대 화두로 삼고 있다. 불교사상에서 ‘색(色)이 공(空)이고 공이 색이다(色卽是空 空卽是色)’는 핵어(核語)는 첨단의 물리학을 송두리째 집어삼켜 버리고도 남는 여여(如如)한 풍요로움을 드러내고 있다.

동양에서 말하는 무는 아무것도 없는, 물질 부재의 텅 빈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의 총괄 상태의 텅 빔을 가리킨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상태지만 용광로처럼 이글거리는 에너지가 충만해 있는 거대한 블랙홀의 무를 뜻한다.

그러면 어떻게 수천년 전 동양에서는 이러한 사유를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수천년 전에 가만히 앉아서 오늘날의 첨단을 뛰어넘는 대 지혜를 열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마음의 눈으로 현상을 볼 수 있는 깨인 의식에서 비롯됐다.

죽음이란 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몸의 해체를 대전제로 삼고 있다. 몸은 물질이다. 물질의 해체, 즉 쪼개어짐은 궁극적으로 물질을 이루는 근본단위인 무의 파장에까지 다다른다. 죽음을 몸의 해체로 보는 시각에서는 죽음 그 자체를 물질의 파장화로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물질=무의 파장, 무의 파장=물질’의 등식을 상기할 때 파장은 다시 물질을 만드는 근본 에너지로 직화(直化)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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