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호

MJ와 ‘연합’에 ‘미래’ 건다

다시 뛰는 박근혜

  • 김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4-09-01 17: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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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는 정신이 없었거든요. 창당하자마자 1주일 만에 지방선거 치렀죠, 그에 앞서 창당 발기인대회 했죠, 북한에 다녀왔죠…. 이제부터는 할 겁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만날 겁니다.”

    지난 6월 중순, 박근혜(朴槿惠) 한국미래연합 대표는 ‘신동아’와의 인터뷰(7월호)에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본격적으로 정치권의 중심에 서겠다는 포부를 밝힐 때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박대표는 그 후로 상당기간 뉴스의 중심에서 비켜서 있어야 했다. 아니 박대표가 끼어들 공간이 없었다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한국축구의 뜻밖의 선전으로 6월말까지 온 국민은 축구열기에 취해 살았다. 열기는 7월까지 이어져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태극전사와 한국축구의 미래로 모아졌다.

    그 직후 정치권은 느닷없는 병풍(兵風) 공방에 휩싸였다. 민주당의 내분사태도 정치뉴스의 주요 소재였다. 8·8 재·보궐선거도 빼놓을 수 없는 정가의 화제였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간의 공방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정치 한복판으로 돌아오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군소정당’ 당수인 박근혜 대표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한나라당 비주류의 한 사람일 때보다 더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정계개편의 회오리가 일면서 박대표는 다시 정치의 한복판 주역으로 돌아왔다.

    7월 들어 박대표는 매주 화요일 정기적으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시기별 정치권 이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굳이 정해진 자리가 아니더라도 박대표는 사안별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박대표는 정책정당론자다. 물론 국회의원치고 우리 정당이 정책정당이 돼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이가 없지만,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박대표처럼 국익우선, 당리당략 배격, 이념과 노선에 따른 분명한 정책을 갖춘 정당론을 줄기차게 강조하는 정치인은 그리 흔하지 않다. 한마디로 자나깨나 정책정당과 국익우선 정당론을 거론한다. 당장 ‘신동아’ 7월호 인터뷰에서 박대표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 박대표의 뜻에 공감하는 세력과의 연대나 제휴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함께 정치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국익을 우선으로 하는 분들입니다. 만날 당리당략에 얽매이고 정권을 잡기 위해 다투는 그런 모습이 너무 싫어요.”

    얼마 뒤인 지난 7월16일 박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그의 정치적 진로와 관련해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화두를 내놓았다. 이전까지 박대표는 “국민이 지지해주면”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본인이 대선주자로 나설 수도 있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는데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킹메이커’로 규정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다.

    이날 박대표는 유난히 여유가 있어 보였다. 한나라당 탈당 직후 고점을 찍었던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고 8·8 재·보선에 단 한명의 미래연합 소속 후보도 내지 못하고 있는데 위기라고 느끼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선선히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 않느냐. 뜻을 함께하는 분들이라면 얼마든지 같이할 수 있으며, 이 당이나 저 당에 있는 분들도 함께할 수 있다”며 여유를 보였다.

    박대표는 또 민주당이 대통령후보 재경선을 해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으며 자신을 비롯, 무소속 정몽준(鄭夢準) 의원,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의원과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를 포함한 ‘4자연대’나 ‘3자연대’의 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각자 생각과 계산이 있으므로 억지로 되는 것은 아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박대표는 “누구나 비전과 꿈이 있겠지만 국민의 지지를 못 받으면 그만둬야 한다”고 말한 뒤 “어떤 식으로든 대선에 참여할 것이고 훌륭한 후보가 있으면 지지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대선에는 참여하되 훌륭한 후보를 지지하고 싶다는 말은 곧 킹메이커로 나서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풀이됐는데, 박대표는 “정말 도덕적이고 뚜렷한 비전을 갖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분이라면 지지하고 싶다”며 구체적으로 자신이 힘을 보태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은 인물의 조건을 말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 지난 지금 박대표의 생각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과연 국익우선의 신념에 동의해 줄만한 정치적 동지를 만났을까. 이인제 의원에 대한 연대의식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지난 6월 중순 ‘신동아’ 인터뷰에서 박대표는 “(이인제 의원과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언론을 통해서도 그렇게 느꼈지만 나와 통하는 점이 많았다.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고 말해 당시 진행중이던 이인제 의원과 박대표, 정몽준 의원 등이 연대하는 그림에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 눈치였고 이의원에 대해서도 정치적 호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후 생각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박대표는 아직까지 당을 함께할 만한 정치적 동지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노무현(盧武鉉) 후보와는 이념과 생각이 다르다고 여러 차례 밝혔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 보인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분(노후보)과는 이념과 생각이 다르다. 함께 당을 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같은 일관된 태도에 비추어 만약 민주당이 노무현 후보 중심의 당으로 재편될 경우, 박대표가 그쪽으로 몸을 옮길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인제 의원과도 관계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가 이전보다 나빠졌다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박대표는 이인제 의원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표와는 얘기가 잘됐다”며 사실상 두 사람 사이에 ‘교통정리’가 끝났다는 투로 얘기한 것에 대해 내심 못마땅해하고 있다.

    실제 이인제 의원은 지난 8월호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주장하는 이원정부제 헌법개정론에 대해 박근혜 의원은 어떻게 생각하더냐는 질문에 “박의원에게도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말씀드렸다. 명쾌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언론보도 등을 통해 보니까 긍정적인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는데, 이처럼 사실상 박대표를 자신과 한묶음으로 넘기려는 이의원의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박대표는 “(이의원이) 자꾸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신뢰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 노무현, 이인제 외에 다른 사람들과는 어떻게 됐을까. 아직 뚜렷한 제휴의 대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박대표 주변의 중론. 민주당에서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영입제의가 없었다고 한다. 물론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개인적인 친분관계에 따라 만나기도 하지만 당의 책임있는 정치인으로부터 영입제의는 없었다는 것. 민주당 의원들을 스스럼없이 만나듯 박대표는 한나라당 의원들과도 잘 어울린다.

    민주당 인사 가운데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박대표와 오래전부터 얘기가 잘 통하는 사이였다. 올해 초 한때 두 사람이 연대한 영호남 연합 정계개편론이 정가의 화두가 된 적도 있다. 하지만 최근 한대표로부터 연락은 없었다고 한다.

    최근 들어 민주당의 신당 논의는 이인제 의원 중심의 반노 진영 탈당을 전제로, 이들을 중심으로 자민련과 민국당, 이한동(李漢東) 의원 등이 합세하는 제 3신당의 창당으로 번져가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표는 이들의 신당 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이다. 노무현 후보와 이념이 달라 같이 당을 할 수 없다면, 이들 반노세력 중심의 제3신당과는 정서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박대표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또박또박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국민경선을 통해 공당이 선출한 대선후보를 두고 다시 뽑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국민이 이해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경선에서 뽑힌 후보자를 버리고 나와 신당을 창당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에요.”

    민주당을 탈당한 인사들과 기타 세력이 결집한 제3신당에 대해 박대표는 뜻밖에도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그의 태도는 몇 달 전과도 차이를 보이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지난 7월 박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8·8 재·보선 이후 정계개편에 대해 이런 전망을 내세웠다.

    “국민이 당리당략에 따른 격한 대결과 돈 드는 정치, 부정부패 등 기존 정치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어요. 흩어진 정당들이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헤쳐모여 하고, 정책노선을 분명히 해서 국민이 선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념과 정책노선에 따른 정치권의 자연스러운 헤쳐모여가 가장 이상적인 정계개편의 모델이라는 게 박대표의 소신이었다. 그런 뜻에서 노후보에 대한 거부감은 어느 정도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념과 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갈 수 없다는 논리에도 일관성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박대표와 정치적 지향이 비슷해 보이는 이인제, 이한동 의원과 자민련이 합친 신당에 대해서는 뜻밖에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앞서 밝혔듯 “신당 창당 자체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정치라는 게 원칙을 지키고 정도만 걸어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거친 게임이라는 사실을 박대표는 과연 모르고 있는 것일까.

    박대표의 태도변화 이면에는 나름의 정치적 판단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박대표는 정몽준 의원의 선택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박대표가 과거에도 지금처럼 정의원에게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6월말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정의원에 대해 다소 유보적인 평가를 내린 뒤 완곡한 표현으로 정고문과의 연대를 제안했다. 박대표는 “정몽준 의원과는 초등학교 동창인 것으로 아는데 정의원과 정치적으로 함께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아직 그런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또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상대가 있는데 내가 일방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여운을 남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의원을 향한 연대 제안의 강도는 점점 높아가고 있다. 정의원의 지지도가 높아가는 것과 비례해서 박대표의 제안 내용도 구체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양상이다.

    가장 최근에도 박대표는 정의원에게 연대를 제안했다. 8월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대표는 “정의원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데 연대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같이할 수 있다. 새로운 정치의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 미래연합 창당 때도 (정의원에게)같이하자고 제의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박대표의 한 측근 인사는 “이미 우리는 공개적으로 연대를 제안한 상태다. 이제 정몽준 의원측에서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정의원에 대해서는 박근혜 진영에서도 애증(愛憎)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일단 두 사람의 연대가 성사될 경우를 최선의 상황으로 예상하지만 최근 들어 미래연합 주위에서 정의원이 과거와 달리 고자세로 나오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인사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정의원이 지나치게 고무돼 있는 것 같다. 혼자 뛰어도 40% 가까운 지지를 얻는 마당에 굳이 자신의 몫을 나눠줘가며 다른 세력과 연대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당분간은 정의원 혼자 뛰면서 연대할 파트너를 물색할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튼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박대표가 내심 밀고 있는 ‘킹’은 정몽준 의원인 것으로 보인다. 박대표는 두 사람의 연대 성사를 최선의 결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일단 연대가 성사된 뒤 상황 변화에 따라 박대표도 대권도전의 꿈을 꿀 수 있으나 현재로는 스스로를 ‘킹메이커’로 정리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모두는 미래의 일. 박대표의 현실은 고달프다. 당장 신송센터빌딩의 미래연합 당사를 옮겨야 하는데 그게 만만하지 않다. 박대표측은 현재 당사가 당의 재정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넓다고 판단해 살림을 줄여 당사를 옮기기로 했다. 새 당사는 현재의 절반 정도로 줄일 생각이다. 일단은 여의도 안에서 대체지를 물색하고 있지만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박대표는 “후원금으로 겨우겨우 당을 꾸려가고 있는데 정말 힘들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한국미래연합이라는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당명에도 불구하고 미래연합의 ‘미래’는 아직까지 그다지 밝지 못하다. 의미있는 정당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연합’의 대상을 골라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한국미래연합’이라는 박근혜 신당의 당명에는 새삼 여러가지 복합적인 뜻이 담겨있다는 느낌이다.

    킹메이커로 나선 박대표의 도전은 과연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그는 과연 연합에서 자신과 한국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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