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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은 인권운동가 ⑥

“작은 것 하나만 바꿔도 산재 없앨 수 있어요”

노동건강연대 임상혁 공동대표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shamora@donga.com

“작은 것 하나만 바꿔도 산재 없앨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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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임대표가 어린 시절부터 ‘슈바이처’를 동경하며 거창한 사회봉사를 꿈꾼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단지 수학을 잘해 이과를 택했을 뿐이었고, ‘기계나 장비와 씨름하는 일이 적성에 맞을 것 같지 않아’ 의대를 택했을 만큼 의사라는 직업도, 그를 통한 사회참여도 ‘소년 임상혁’의 인생계획에는 애당초 들어있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가 1984년이었습니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사회에 대해 고민하던 무렵이었죠. 많은 친구들이 공장에 위장취업하며 노동운동현장에 뛰어들었어요. 그걸 보면서 일종의 의무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1987년 한양대 의대 본과 2학년 학생이었던 그는 당시 산업보건운동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전개하던 ‘노동과 건강연구회’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원진레이온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산재와 직업병의 무서움을 실감하게 됐다는 회고. 원진레이온 환자들을 처음 만나던 순간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가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인생을 보내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다.

“책에 그렇다고 써 있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분노가 아니라 무서움이었어요.”

원진레이온 피해자들은 앞에서 말한 최씨처럼 ‘이황화탄소 중독’에 의해 죽어간다. 이황화탄소가 뇌에 작용해 중풍과 흡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 중풍이 몸의 일부를 마비시키는 반면 이황화탄소 중독은 대뇌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쳐 기괴한 표정을 짓거나 말을 못하는 등의 후유증을 남긴다.



“싸움은 곧 전국적인 이슈가 됐고 파장도 엄청났지요. 그때 함께 운동을 펼쳤던 청년의사들은 이후에도 대부분 의료운동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원진녹색병원에도 세 분이 남아 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의학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그는 1994년 2월부터 산재·직업병 전문 의료기관인 구로의원에서 일했다. 구로의원은 직업병 추방을 모토로 내걸고 여러 사람들이 돈을 갹출해 1986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민중의료기관. 그가 역대 원장 중 가장 젊은 나이에 원장으로 취임하던 당시는, 단순한 ‘재야병원’으로 인식되던 구로의원이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기관으로 거듭나던 시절이었다.

“처음에는 엑스선 촬영기도 없이 시작한 볼품없는 병원이었습니다. 60만원이라는 턱도 없는 월급을 받으며 일했지만 열정만은 정말 대단했어요. 1995년 한국통신 114 안내원들의 경견완장해 등 전국 어디서든 이슈가 생긴 조사는 모두 구로의원에서 담당하다시피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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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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