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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작가 필립 K.딕 & 윌리엄 깁슨 다시 보기

메시지 분명한 선구적 몽상가

  • 박상준 SF칼럼니스트

SF작가 필립 K.딕 & 윌리엄 깁슨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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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은 어릴 때부터 고통과 불행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에서 전투에 참가했던 그의 아버지는 네 살 된 딕에게 가스공격과 창자가 파열된 군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어린 딕은 뉴스에서 화염방사기에 정통으로 한방맞은 한 일본인 병사가 관중들의 환호와 야유 속에서 불에 타면서 달리고 또 달리는 광경을 보았다. 딕은 그때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나는 공포로 정신이 아찔했다. 그리고 무언가 몹시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전적인 어느 글에서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인간과 동물의 고통은 나를 미치게 한다. 내가 기르는 고양이가 죽을 때마다 나는 신을 저주했다. 이는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신에게 분노를 느낀다. 나는 신을 붙들고, 인간은 죄를 지어서 파멸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강요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린 날 어느 땐가는 덫에 걸린 쥐를 죽여야만 했던 경험이 평생 동안 고통스런 기억으로 남기도 했다. 원래 잔인함에 대한 충동이 있었지만, 소년시절 딱정벌레를 괴롭힌 이후 그 충동은 갑자기 사라졌고 대신 생명의 동일성 의식이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것을 ‘인간 무상’이라는 하나의 깨달음으로 인식했다.



콜린 윌슨은 딕의 잔인함에 대한 강박관념을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작품 속 주인공인 이반 카라마조프의 입을 빌어서 “이 세계의 잔인성과 야만성은, 이런 세계로 오는 입장권을 신에게 돌려주고 싶은 생각을 갖게 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런 배경에서 성장한 딕의 작품은 편집증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병적 경향을 띠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영화 ‘스크리머스’의 원작인 ‘두번째 변종’이나 ‘임포스터’등이 모두 이런 성격의 초기 작품이다. 딕의 작품들은 혼미 속에 휘말린 개인을 도드라지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 혼란은 목적의식적으로 행동하려는 모든 시도를 무너뜨린다. 또한 기술적인 설정에서는 컴퓨터나 로봇이 스스로 지능을 진화해 인간이 하는 일을 대신한다는 테마를 상당히 좋아했다.

그는 또한 ‘진실’이라는 용어는 무의미하며, ‘진실’은 살아있는 생물만큼 많이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진실’이란 순전히 주관적이라는 개념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입장은 대개 유아론(唯我論), 즉 우주 안에 자기 하나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흐르기 쉽다. 결국 내 주위에 있는 진실이 ‘상대적’이고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면, 다른 사람이란 내 고독을 부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환영이라는 것이다.

딕의 초기 소설 중 하나인 ‘하늘에 있는 눈’(1957)은 이러한 ‘진실’에 대한 견해를 대변하는 입장에 서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의 진실처럼 다른 사람의 믿음도 ‘진실’이 될 수 있는 ‘양자 택일의 진실’ 속에 모여 있다. 그들 각자는 스스로가 집단 중 한 사람이 가진 비정상적인 진실의 덫에 걸려버린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이 환영에서 도망가려 하지만 그 즉시 다른 이의 환영에 다시 포획된다. 결국 그들이 ‘진실’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각자의 ‘개인의 진실’로 도피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런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 초기작에서 딕은 적어도 ‘진실로의 복귀’는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뒤의 작품은 더 어둡고 비관적으로 흘러, ‘진실’은 없고 개인의 환영이 있을 뿐이라는 확신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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