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권두시론

정치인들이여! ‘商道’를 지켜라

네거티브 캠페인에 나라 결딴난다

  • 글: 서병훈

정치인들이여! ‘商道’를 지켜라

3/6
노무현 후보의 인기가 상종가를 칠 때, 시중에는 여러 소문이 나돌았다. 호사가들이 재미있으라고 지어낸 말도 있지만, 그 파장의 심각함을 볼 때 의도적으로 지어낸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족한 것도 없지 않았다. 당시 노후보와 정치적 자웅을 겨루던 진영의 일각에서는 ‘하루 이틀만 지나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호언성 예언을 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예고는 실현되지 않았다. 그 진실도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불발탄의 당사자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한다는 말은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그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여당의 어느 국회의원은 이회창 후보의 ‘병역 비리’를 명확히 밝힐 물증이 확보되었다고 기자회견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그 결정적 증거를 이 시간까지 제출하지 않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회의원이 그런 짓을 했다. 그는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어느 경우이든 그 국회의원은 책임을 져야 마땅했다. 그는 지금도 건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할지 모르겠다.

창피하지만, 이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화급을 다투는 전쟁터에서도 적장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차릴 줄 알던 선조들의 그 넉넉한 아량과 염치는 눈을 씻고 살펴보아도 없다. 상대방을 거꾸러뜨려야 내가 산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여유도, 필요도 없다는 살기만 번뜩일 뿐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한국 정치가 얼마나 모략과 모함의 모리배 놀음에 취약한지를. 재미를 보니까 흑색선전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안다면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정치꾼들은 치졸한 인신공격과 근거 없는 욕설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국민이 어리숙하고 언론이 물에 물탄 듯하다는 사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진실을 밝혀내서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해줄 사정기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치기류에 민감한지도 훤하게 꿰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무차별 흑색선전을 거듭한다.



뿐만 아니다. 개중에는 진실이 아님이 입증되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이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아니면 말고’ 식이다. 이런 선거전술이 몰고 올 도덕적 파탄에 대해 걱정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당장 국정이 휘청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상처 입는 선거

이런 싸움을 펼치고 나니, 승자도 패자도 모두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된 사람은 온 국민 앞에서 고개를 들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실이 아니니 믿어달라고 하더라도 그럴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패자 역시 그런 흑색선전 때문에 졌다고 생각할 터이니, 온전히 협조할 마음이 생길 수가 없다. 마음속으로 패배를 승복할 수 없으니 투쟁밖에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올 12월 대통령 선거 이후 전개될 우리나라의 정치 기상도다. 이미 우리 국민은 21세기의 서장을 지리멸렬한 기분으로 보내고 있다. 3김 시대가 비로소 끝나게 되었으나 자칫하면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나오기 십상이다. 우리 국민은 지난 월드컵에서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의 저력을 온 세계에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수백만명이 거리로 몰려와서 대한민국을 외쳤고, 그 열기가 ‘광란’으로 이어지지 않을 정도의 자제력도 선보였다. 잘만 꿰면 보배가 될 구슬을 우리는 잔뜩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강권통치를 경험하면서 우리 국민은 대통령 직선제로 압축되는 ‘한국적 민주화’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일까. 어쨌건 민선 대통령인 노태우 정권이 집권 중반을 넘기면서 ‘이게 아닌데…’하는 우려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권위주의 체제를 불식하고 민주주의의 공고화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비로소 처음으로 우리 국민은 ‘레임덕’이라는 말을 접하기 시작했다. 장기 집권에 익숙해 있던 국민들이라, 그런 대가에 대해서도 즐겨 지불할 마음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정권 교체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가는 전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에 들어서서 국민들은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권력욕의 화신(化身)’이라는 비판을 듣던 김영삼대통령은 레임덕을 대단히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사전에는 레임덕이란 없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빠져나가는 권력을 무리하게 붙들려 하다 그만 남아있는 것마저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1997년의 악몽을 잊지 못한다.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유고(有故)상태에 빠지면서 다시 되뇌기도 싫은 국가적 위기를 맞고 말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무사히 그의 임기가 끝나기만 기다리는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3/6
글: 서병훈
목록 닫기

정치인들이여! ‘商道’를 지켜라

댓글 창 닫기

2020/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