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민병욱·박수룡의 화필기행 붓 따라 길 따라

소록도, 미어지는 한으로 빚은 슬픈 아름다움

  • 민병욱·박수룡

소록도, 미어지는 한으로 빚은 슬픈 아름다움

3/3
아기사슴섬을 뛰노는 사슴을 보고, 사슴을 닮은 환자들과 마주치며 숲길을 걷다보면 소록도의 대표적 명소 중앙공원에 이른다. 1930년대 말 약 4년간 연인원 6만여 명의 나환자들이 강제동원돼 6000평 산을 깎아 만든 공원이다. 세상 그 어느 공원보다 한과 눈물과 서러움이 안으로 응집돼 이루어졌음직한 이 공원은 그러나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외양을 갖추고 있다.

인간사로 돌아가보니

소록도, 미어지는 한으로 빚은 슬픈 아름다움

▲ 800여 명의 환자들은 병사지역에 발 묶인 채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나환자를 동원해 만든 걸 감추려했는지 ‘부드러운 동산’이라고 이름 붙인 그곳에는 반송· 능수매화·편백 등 희귀 수종이 그득하다. 일부 나무들은 독립문상, 마리아상 등 기기묘묘한 형태로 다듬어져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나간 환자들이 ‘가위손’의 경지로 그 수많은 나무를 일일이 깎고 다듬었다는 게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중앙공원 한가운데에는 천사가 나균을 무찌르는 형상의 탑이 서있다. 사면에는 “한센병은 낫는다”는 문구가 절규처럼 새겨져 있다. 불치의 천형을 앓는다며 손가락질받던 나병 환자들이 오직 한마디 “병은 낫는다”는 말을 입안으로 되뇌이며 온갖 박해와 노동을 견뎌냈을 모습이 그 탑엔 응축돼 있다.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뒤 월 평균 1만여 명의 방문객이 소록도를 찾는다. 이중 대부분이 자원봉사자들이다. 일반인은 섬에 들어와도 한나절 머물기만 할 뿐 숙박할 수가 없다. 섬 전체가 국유지로 상업용 숙박시설은 한 곳도 없다. 밤이 되면 소록도 일대는 병동 주변에만 불이 들어올 뿐 캄캄한 어둠, 그리고 정적에 휩싸인다.



소록도, 미어지는 한으로 빚은 슬픈 아름다움

▲ 나환자들의 한과 눈물과 서러움이 응집돼 있을 중앙공원은, 그러나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외양을 갖추고 있다

오후 5시 반 녹동행 마지막 배가 소록도를 떠난다. 오른켠에 송림과 백사장이 아름다운 소록도 해수욕장이 보이고 그 주변 꽃섬, 솔섬과 거금도를 감싸도는 바다는 이제 막 석양을 머금었다. 소록도 선착장 옆 방문객 안내소에 걸어놓은 ‘국립 소록도병원’ 간판이 하루의 마지막 빛을 받아 더욱 희게 보인다.

불과 5분 거리의 녹동항에 도착해보니 세상의 번잡이 이곳에 다 모인 듯하다. 모텔과 노래방, 주점들의 네온사인이 벌써부터 휘황찬란하게 비쳐 바다를 물들인다. 선창에선 술 취한 사람들이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밤낚시를 나가려 엔진을 점검하는 배 안에서는 원정 낚시꾼들이 엔진 소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선원들에게 어황을 묻는다. 어촌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착 가라앉은 소록도와 번잡한 녹동항을 비교하며 다시 한하운 시인을 생각해본다. 과연 어느 쪽의 삶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삶일까.

신동아 2002년 10월호

3/3
민병욱·박수룡
목록 닫기

소록도, 미어지는 한으로 빚은 슬픈 아름다움

댓글 창 닫기

2020/03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