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호

“염소 젖 더 짜내려 땀 흘리디요”

<현지 르포>신의주 특구 그후

  • 신석호 kyle@donga.com

    입력2002-11-04 1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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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소 젖 더 짜내려 땀 흘리디요”

    10월2일 평양시 주체사상탑에서 만나 북한 여대생들(위)

    불과 석 달 사이. 북한은 너무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평양시내 중심가에서 시 외곽에 자리잡은 강동군 구빈리까지, 2시간 동안 힘겹게 달려야 했던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는 표면이 잘 다듬어져 포장도로나 다름없었다. 얼룩덜룩하던 주택 외벽에는 하얀 페인트가 칠해졌고 산등성이마다 염소떼가 쉬어 가는 축사들이 예쁘게 지어졌다.

    얼마 전까지 구빈리는 북한에서도 가장 낙후한 지역에 속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염소젖을 짜 만든 산유(요구르트)와 치즈를 내다 팔면서 수입이 높아져 타 지역 인민들은 구빈리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1996년 북한 당국이 축산단지 시범지구로 지정한 구빈리 협동농장은 최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염소젖 경쟁생산 단위를 마을(20∼50가구)에서 개인으로 세분화했다. 농장은 주민 한 명에게 20마리 안팎의 젖염소를 나눠준 뒤 매일매일 산출하는 젖의 양을 기록해 개인별 실적에 따라 농장 수입을 분배한다.

    사회복지법인 굿네이버스(회장 이일하)가 물자를 지원하고 있는 구빈리농장은 출범 초기 젖염소를 공동 사육하다가 1999년 마을 단위의 경쟁체제를 도입했다.

    경쟁과 인센티브제도라는 자본주의적 경영방법을 잘 활용해 이곳에 기적을 일군 임귀남(44) 지배인을 2일 다시 만났다. 임지배인은 지난 6월 방북했을 때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남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생필품을 구입할 돈을 많이 분배받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농장 주민이 젖을 더 생산하려 노력한다”고 개인 경쟁체제의 효과를 자랑했다.

    -7월1일 경제관리 개선 조치로 살림살이가 더 좋아졌습니까?

    “예. 쌀과 옥수수 가격이 올라 수입이 많이 늘었습니다. 전에는 수입의 70%가 산유에서 나왔는데 이제는 산유와 곡물 수입이 반반씩입니다. 지난해 농장 수입이 400만원이라면 올해는 2000만원 정도 될 것입니다.”

    -최고경영자(CEO)로서 경영 철학이나 원칙이 있다면.

    “더 많이 생산하자면 모두가 발동이 걸려야 합니다. 어떤 자극을 주어 능력을 개발하는지가 문제입니다.”

    -개인별 경쟁체제와 물질적 보상이 주민들의 생산의욕에 ‘발동’을 건 셈이군요.

    “그래요. 지금은 연말에 한 해 동안의 수입을 나눠주는데 앞으로는 월말마다 한 달 수입의 절반씩이라도 지급해 생산 의욕을 더 높일 생각입니다.”

    -실제로 주민들의 생산과 소득에 큰 차이가 납니까?

    “지난해 생산량을 놓고 보자면 ‘똑똑하게 한 사람’과 ‘건달뱅이’의 수입은 다섯배 차가 납니다. 2만5000원을 받은 사람이 있는 반면 5000원밖에 못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똑똑하게 한 사람’의 비결은 뭔가요.

    “묵묵히 열심히 하는 겁니다. 생산을 많이 하는 사람은 오전 8시에 도시락을 싸들고 염소와 함께 산 위로 올라갔다가 오후 8시에야 내려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면 아침에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산에 올라갔다가 점심을 먹는다며 염소를 데리고 내려옵니다. 그리고는 낮잠을 자고 두시 넘어 올라갔다가 해지기 전에 내려옵니다.”

    그는 “하루 종일 풀을 뜯은 염소가 젖을 많이 내고 주인 따라 왔다갔다만 한 염소가 젖을 많이 못내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임지배인은 최근 균실험실을 만들어 산유와 치즈에 사용되는 다양한 균을 배양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균을 대량으로 만들어 다른 농장에도 나눠줄 생각입니다. 그 대가로 돈을 받으면 주민들이 사는 데 도움도 되고 좋잖아요?”

    CEO답게 그의 머리 속은 더 많이 생산해 더 많이 버는 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이 농장에는 사업장책임제도가 도입된 지 오래다. 한 해의 생산목표는 국가가 아니라 주민 대표들이 모인 관리위원회에서 정한다. 이런 개혁으로 염소가 날로 늘어나 10월 현재 3300마리 가운데 2000마리가 젖을 낸다. 도심과 주변 농가에서 70여 가구가 이주해 인구는 599세대 1200여 명이 됐다.

    “염소 젖 더 짜내려 땀 흘리디요”

    평양금강판매소 여성 판매원이 대표단 일행에게 물건을 팔고 있다.

    북한이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실시한 이후 북한 곳곳에서 변화가 일고 있다. 올 7월 평양 시내의 한 협동농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다른 때 같으면 공무원이나 군인들이 나가서 김매기를 도와줘야 했다. 그런데 올해는 농장 사람들이 스스로 하겠으니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보다 많이 생산하고 비용을 줄이면 자신의 몫이 많아지는데 공연히 일손을 빌려 일당을 주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 농장 이야기는 경쟁체제와 인센티브라는 물질적 보상제도를 도입해 ‘생산성 향상’을 꾀하는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북한에 다녀온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김영수 교수는 “시골 협동농장에도 일손이 넘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1일 순안공항에서 만난 한 재미동포는 “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변화를 재미있어 하더라”고 전했다.

    전철·버스 정류장 등 사람이 많이 오가는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간이매대’는 더 많이 팔려는 기업소들의 의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남측의 ‘테이크아웃’ 상점에 해당하는 간이매대는 8월15일 막을 내린 아리랑축전 기간에 한시적으로 허용됐으나 이후 정식 판매수단이 됐다.

    한 안내원은 “한 매대에서 하루 3000원어치 이상의 청량음료를 파는 등 여름철에는 정식 상점보다 길가의 간이매대가 청량음료를 더 판다”며 “많은 기업소들이 간이매대 사업을 원하면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는 평양 거리에서 한 여성이 자전거 뒤에 간이매대를 달고 물건을 파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또 석 달 전에는 적막하기만 하던 묘향산 주차장에도 간이매대 7~8개소가 설치돼 영업을 하고 있었다.

    기존 판매소들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평양 시내에 있는 한 외국인식당 지배인(여)은 “안내원들이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데리고 와 다른 식당보다 수입을 더 올릴 수 있도록 음식과 봉사의 질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 안내원은 “안내원은 손님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해 주는 식당을 찾게 마련”이라며 “서비스가 나쁜 식당은 안내원들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의 언론도 생산성 향상에 최대 역점을 두고 보도하고 있다. 평양으로 들어가는 고려항공 비행기 안에서 받아본 1일자 노동신문은 1면에 ‘기름작물을 대대적으로!’라는 제목을 붙인 대형 기획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좋은 기름작물을 많이 심어 먹는 기름문제도 풀어야 합니다”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적을 화두로 남포시 등 여러 지역에서 유채 등을 심어 먹는 기름을 많이 생산한 사례를 보도했다.

    3면에서는 ‘공동사설의 요구대로 현존발전능력을 최대한 리용하여 더 많은 전력을’이라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웅-웅-”으로 시작되는 평양화력발전연합기업소 르포가 실렸고 허천강발전소가 ‘잡은 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 등이 소개됐다.

    “이제부턴 타산에 밝아야”

    노동신문은 3일자에도 ‘경제관리를 잘하는 것은 강성대국 건설의 중요한 요구’라는 기사로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취지를 설명했다. 북한이 이번 조치의 핵심을 ‘사회주의 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가장 큰 실리를 얻는 것’으로 표방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들이다.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일부 나라들에서는 사회주의원칙을 지킨다고 하면서 경제적 효과성을 소홀히 하거나 경제적 효과성을 중시한다고 하면서 사회주의원칙을 줴 버리는 좌우경적 편향이 나타났다.”

    “국가의 통일적 지도를 보장하면서 아래 단위의 창발성을 높이 발양시키는 것은 사회주의경제관리에서 틀어쥐고 가야 할 중요한 원칙의 하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근로자에게 일감을 똑똑히 주고 노동조건을 잘 지어줄 데 대한 문제, 근로자의 생활을 안정향상시킬데 대한 문제, 노동에 대한 정치 도덕적 자극과 물질적 자극을 옳게 배합하는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었다.”

    이 날자 노동신문 3면에는 ‘기업관리를 우리 식으로 하여 경제적 효과성을 더욱 높이자’는 제목으로 대동강축전지공장, 라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 등의 성과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신문과 방송에는 ‘밝은 타산’ ‘노력과 설비의 1% 효과적 이용’ ‘원가와 노력을 줄이자’ ‘혁신’ 등의 경제 용어가 자주 등장했다.

    한 안내원은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타산에 밝다’는 것은 ‘이기적이다’라는 심한 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이나 개인이나 타산에 밝은 것이 덕목이 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7월1일 이후 물가와 임금을 동시에 인상한 것도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러한 정책을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인민들이 일을 하지 않거나 집에 모아둔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살기 힘들게 해 노동력과 자본을 창출하는 한편 생산직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상대적으로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았지만 효과는 기대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3일 평양역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월급이 오른 뒤 인민들의 살림살이가 훨씬 넉넉해졌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안내원들도 “물가는 올랐지만 기본적인 배급이 되고 월급이 더 올라서 살기는 나아진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북한 주민도 이용할 수 있다는 평양시내 ‘평양금강산판매소’ 정성희지배인(50·여)은 “하루 판매액수가 10∼15원으로 과거의 두세 배”라며 구매력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자의 임금은 2000∼6000원으로 올랐는데 평양시 판매소에서 일하는 여성 판매원의 월급은 3000∼4000원이다. 아주 어려운 일을 맡은 광산노동자는 1만원 이상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염소 젖 더 짜내려 땀 흘리디요”

    평양역 야경.

    7월1일 이후 ‘1달러=150원’의 환율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도 달라진 현상이다. 상점마다 진열대에 물건의 달러 가격과 원 가격을 적은 표를 붙여놓았다. 석 달 전에는 ‘외화 바꾼 돈표’라는 것이 있었다. 외국인이 달러로 물건을 사고남은 잔돈은 이 돈표로 돌려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물가가 오르면서 저액권 화폐도 유명무실해졌다. 7월1일 이후 100전 50전 10전 1전 등의 화폐는 사라졌고 주로 100원 50원 10원 1원 화폐가 이용된다. 고액권 화폐는 아직 발행되지 않았다.

    한편 국영상점과 농민시장(장마당)의 물가가 비슷해지고 당국이 농민시장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면서 농민시장에서 거래되는 물품의 종류와 양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안내원은 “장마당에서 공산품과 쌀 등을 전혀 볼 수가 없으며 가정에서 소비하다 남은 닭고기 오리고기 채소 과일류 등만 조금씩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개혁초기라서 장마당이나 국영상점이나 물자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두 시장의 가격이 비슷하기 때문에 인민들이 수중에 팔 물건이 생기면 합법적이고 안전한 국영상점으로 가져온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 방북 대표단 40명이 북한에 체류하던 4박5일 동안 북한은 온통 ‘손님’들로 북적댔다. 외부인을 안내하는 안내원들은 “요즘처럼 바쁜 적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북적거림은 평양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됐다.

    9월30일 오후 4시경 중국 베이징(北京) 스위스호텔 내 북한 고려항공 사무실. 1일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 두 대에 혹시 자리가 남았는지를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선생님처럼 화물기라도 타고 가겠다는 사람이 많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요즘 평양에 가시려면 미리미리 예약을 하셔야 합니다”(남자 직원이 전화통화에서).

    여자 직원은 “아리랑축전 때 승객이 많아졌는데 이후에도 줄지 않고 있다”며 “내일 비행기에 230명이 자리를 잡고 50명이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여행사에서 일하는 한 조선족 여성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가족방문이나 사업차 북한에 들어가는 동포들 수가 늘었고 한 사람의 방북 횟수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 붐비는 북한 거리

    1일 오후 베이징공항 탑승구에는 평양에 들어가는 외국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유엔개발계획(UNDP) 소속 인도인 마쯔바이씨는 “현지 직원들에게 ‘변화의 관리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러 간다”며 “북한이 세계경제에 편입하려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정교회 소속 포츠드니에프 신부는 “북한 당국이 평양에 러시아 정교회를 세우도록 허용했다는 말을 듣고 확인하러 왔다”고 말했다.

    베이징과 평양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는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토요일에 있다. 목요일에는 화물기가 뜬다. 오후 3시 반 고려항공편으로 순안공항에 도착한 대표단 일행이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는 데는 1시간 15분이 걸렸다. 비행기로 들어오는 수화물의 양이 3개월 전보다 두 배는 많았다. 일반 여행가방말고도 파나소닉, DVD, 중국제 컴퓨터 등 이른바 ‘보따리’ 물건들이 비행기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대표단은 1일 평양교예극장과 3일 묘향산에서 건국기념 연휴를 맞아 북한에 관광을 온 수천명의 중국인 관광객들과 마주쳤다. 중국인 여성 가이드는 “한 사람이 3박4일 여행하는데 중국 돈 2500위안(약 300달러)이 든다”며 “중국인들이 북한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KBS와 MBC등 한국 방송사 일행이 출국한 뒤 3일에는 천주교 신부 100여명이 북한을 찾았다. 사단법인 남북어린이어깨동무 관계자 4명도 1일 입국했다. 대표단은 3일 순안공항으로 가는 길에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 등 미국 대표단 일행을 태운 벤츠 6대가 시내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켈리 차관보 등을 태운 특별기는 5일 순안공항을 이륙했다.

    거리를 오가는 북한 주민도 늘었다. 한 안내원은 “기업소들의 생산활동이 활발해져 직업상 낮에 거리를 오가는 사람이 많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4일 밤 9시 30분경, 방문한 평양역 외벽에는 환하게 조명등이 켜져 있었다. 대합실에서는 일을 보고 밤차로 평양을 떠나 청진과 신의주 등으로 가려는 북한 주민 수백명을 만날 수 있었다.

    묘향산과 평양 시내에서는 소학교(우리의 초등학교) 학생들 가을운동회 광경을 두세 차례 볼 수 있었다. 대표단은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이나 평양시 동명왕릉과 주체사상탑 등지에서 관람을 나온 수백명의 군인과 여대생 무리를 만났다. 이렇게 북한인을 무리로 만나는 기회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다.

    북한은 이번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이미 3년 전부터 구상하고 준비해왔다. 그동안 800여 명의 북한 관리들이 중국과 일본 등 전세계를 다니며 자본주의 경제를 공부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경제관리 개선지침’을 하달했는데 이 지침에 이번 조치의 골자가 되는 내용이 모두 담겨있다. 여기서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관리를 개선 완성하는데 틀어쥐고나가야 할 종자는 사회주의 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가장 큰 실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침의 주요 내용은 ▲기업의 경영 자율권 확대 ▲노무관리 개선 ▲개인경작지 확대 ▲식량 및 생필품 배급제의 단계적 폐지 ▲물가 임금의 대폭적 인상 ▲환율 관세의 조정 등이다.

    한 안내원은 “어떻게 하면 인민들이 일을 더 열심히 하도록 하는지가 이번 조치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가 일터로 돌아와 더 일하게 하고 기업소와 협동농장이 더 많이 생산하게 하는 것. 이를 위해 도입된 것이 권한의 분산과 경쟁 및 인센티브제라는 물질적 유인의 도입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또 일 잘하는 기업소나 협동농장을 뽑아 경쟁상대들과 차별화해 국가가 지원하는 식의 혁신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한 관계자는 “당국은 업종별로 기업소들을 경쟁시킨 뒤 생산성과 창발성(혁신성)이 뛰어난 기업소를 골라 국가가 집중 지원하거나 외자를 우선적으로 배분해 다른 기업과 차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내년 초 상업은행을 신설해 급한 자금을 빌려주거나 사업을 하고 남은 돈을 맡아주는 기능을 맡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과 화해, 미국과 회담, 남북대화, 신의주 특구지정 등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생산주체 혁신과정에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는 것이 큰 목적인 것 같다. 국가가 1등업체를 골라 지원하는 방식은 과거 한국의 개발 모델이다. 한국에 돌아온 뒤 북한경제전문가들에게 이 관계자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북한팀장은 “북한 당국이 과거처럼 권력관계와 단순한 순서 등에 따라 국가의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과 생산성이라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조교수는 “말 그대로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며 “최근 북한의 변화는 사회주의 국가가 소유권 인정이 아닌 인센티브제도만으로도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아주 특별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양문수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경쟁이라는 것은 원래 자본주의와 더 친화력이 있는 시스템”이라며 “북한이 개인 단위로까지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기업 간 경쟁을 통해 1등 만들기를 한다는 것은 평등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주의 이념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일꾼 만들기 위해 교육제도 개선

    한편 북한은 현재 4∼7년인 대학교의 재학연한(수학 기간)을 선별적으로 줄이는 등 고등교육 학제개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경제관리 개선과정에 고급 노동력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수학기간을 실용주의적으로 줄이고 대학학제 표준화를 추진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김영수 교수는 “현지에서 만난 북한 고위관계자가 ‘김책공대의 수학기간을 7년에서 3년 반으로 줄이는 등 지나치게 긴 재학연한을 선별적으로 단축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교수는 “이 관계자는 ‘인민들이 대학교육을 쉽게 빨리 마치고 덕목도 갖추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김일성종합대학 일부 학과의 연한이 5년에서 4년으로 줄고 학점제도에도 변화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확인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교수는 “북한이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실시하면서 사회주의 체제하의 실리 추구를 표방한 것처럼 교육제도도 실용적으로 개선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환규 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도 “북한 당국이 경제 개혁을 추진하려면 고급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고 대학간 표준화가 시급하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9월1일부터 4년제 초등교육기관인 인민학교를 소학교로, 6년제 중등교육기관인 고등중학교를 중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차우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박사는 “사회변화를 위해서는 교육개혁이 필수적”이라며 “북한이 초등·중등·고등교육의 보편적인 틀을 갖추려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북한이 진행중인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경제 분야에 국한된 조치인지 아니면 정치 사회적 변화도 함께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교육개혁은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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