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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은 인권 운동가 ⑧

“사형제를 ‘사형’시키는 게 복음정신”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

  • 글: 정호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emian@donga.com

“사형제를 ‘사형’시키는 게 복음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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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에 대한 회의론은 1764년 이탈리아 형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의 저서 ‘범죄와 형벌’에서 처음 제기됐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제 폐지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한 것은 1989년 이상혁 변호사가 사형제 폐지협의회를 만들어 변호사, 종교인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부터.

하지만 광복 이후 서대문형무소를 오가며 재소자와 사형수의 인권을 위해 음지에서 애쓴 이도 적지 않다. ‘사형수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김자선씨(고 김홍섭 판사의 부인)는 40년이 넘는 세월을 형무소를 오가며 사형수들을 돌보고 있다. 그러나 명색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우리나라에서 겨우 13년 전에야 사형제 폐지 논의가 본격화한 것은 군사독재정권의 사상탄압 때문이다.

“1987년 이전에는 누구도 감히 사형제도를 반대하지 못했습니다. 한때는 89개 법률에서 사형선고가 가능했던 살벌한 사회였죠. ‘빨갱이’를 처단하겠다는데, 사형제를 반대한다면 그건 곧 이적행위니까요. 정권을 유지하는 방편으로도 악용됐습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그 예죠. 사형은 언제나 악용될 소지가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선 1945년부터 1999년까지 634명에게 사형이 집행됐다. ‘살인율(인구 10만명 당 살인건수)’이 한국과 비슷한 일본보다 사형 집행 건수가 30% 가량 더 많은 것은 한국이 분단상태인 데다 정치적 혼란이 극심해 살인범 외에 사상범, 정치범에 대한 사형 집행이 많았기 때문이다.

상당수 법학자들은 사형이 적용되는 법률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후진적인 법체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근래의 사형수는 다 흉악범들이다. 사상범은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세상이 또 바뀌면 집권자들이 정권 수호 차원에서 써먹는 카드가 될 수 있다.



사형폐지운동은 완전 폐지와 단계적 폐지의 두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완전 폐지는 당장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사형제도를 ‘사형’시키거나 헌법소원을 통해 위헌판결을 받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법은 15대에 이어 16대 국회에서도 표류하고 있고, 1993년 이상혁 변호사가 사형수와 함께 낸 헌법소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96년에 위헌소송을 제기했으나, 헌법재판소는 “현재로서는 합헌이지만 앞으로는 존폐를 고려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판결에서 두 명의 재판관이 소수의견을 냈다.

단계적 폐지의 방법으로는 적극적인 감형운동, 사형 범죄의 종류와 수를 줄이고 사형 구형과 선고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나가는 것 등이 있다. 재심사유를 확대해 억울한 사형수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형제, 생명을 담보로 한 모험

“사형수들은 대부분 가난합니다. 그래서 법적인 도움을 못받는 경우가 많아요.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패륜 대학교수가 갖가지 법적 수단을 동원해 사형을 면한 것과는 대조적이죠.”

그래서 이신부는 사형폐지운동 초창기부터 변호사들과 함께 흉악범과 패륜범 사건에 적극 개입했다. 존속살해로 사형선고가 예상됐던 이모씨의 경우 그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데 초점을 맞춰 무기징역형을 이끌어냈다.

사형수는 약자다. 한때 누군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을지 몰라도 국가가 사형을 명령한 순간부터 그는 언제 죽여도 괜찮은 존재가 된다. 더욱이 그들 대부분은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기 때문에 사형이 집행되는 날까지 돌봐줄 이 하나 없이 고립된다.

사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파괴한다는 게 사형폐지론의 가장 큰 전제다. 또 법관이 신이 아닌 이상 늘 오심(誤審)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사형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천만한 모험이라는 게 이신부의 지적이다.

“사형수들의 재심청구는 잘 받아주지 않습니다.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에서 보듯, 단지 인간의 판단에 의해서 또 다른 한 인간이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갔습니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면 종신형제를 도입해 좀더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둬야 합니다.”

사회는 한 개인에게 너무도 쉽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그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범죄가 한 개인의 잘못만은 아니다.

“사회구조가 죄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통감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네 인간성이 잘못됐으니 너를 없애야겠다’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렇게 죄인을 제거하고 우리는 마치 죄에서 자유로운 인간인 척 행동하는 게 옳은 태도일까요?”

이신부는 1997년 사형이 집행된 김모씨 얘기를 들려줬다. 김씨는 너무나 가난한 집에서 자라 교육은커녕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건강도 좋지 않은 데다 시력이 아주 나빠 어렵사리 직장을 구해도 쫓겨나기 일쑤였다. 결국 그는 세상을 증오하며 여의도광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두 명의 어린이를 치어 숨지게 했다.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된 그는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다. 다른 미결수들의 발을 씻어주는가 하면 무더운 여름밤에는 동료 수감자들이 잠들 때까지 부채질을 해줬다.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자 사형수들과 사형폐지운동 관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후보가 천주교 신자인 데다, 평소 사형폐지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어도 김대통령의 임기 5년 동안은 사형 집행이 없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을까. 1998년 새해를 불과 이틀 앞둔 12월30일, 무려 23명의 사형수가 한꺼번에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김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김씨는 사형 집행장에서 소리내 흐느끼는 종교위원들을 오히려 달래면서 담담하게 죽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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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호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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